VIII-7. 사과받을 곳 없는 재앙

사실 그것은, 매우 오래 전 일이었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가서는 안 되는 곳이 있었다. 문이 없이 창문만 나 있는 양옥집 한 채, 동네 어른들은 그 집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외지에서 놀러온 녀석이 가자고 했었고, 마침 심심했던 우리들은 그 집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것이, 내 친구들을 습격한 죽음의 정체였다.

어느 건물 옥상, 낯선 여자가 무언가에 끌려오듯 꼭대기에 서 있었다. 마치 뒤에서 떠밀리듯, 그녀는 옥상에 올라 오는 것을 거부했지만 허사였다. 그리고 무언가에 떠밀려 떨어지려던 찰나.

“위험해! ”

막 떨어지려던 그녀를 파이로가 낚아챘다. 무언가가 그녀를 밀쳐 떨어지려던 찰나, 파이로는 그녀를 난간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녀는 살았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봐, 이봐. 이렇게 마무리하기에 인생은 너무 길어. ”
“제, 제가 뛰어내리려고 한 게 아니예요… 떠밀려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
“떠밀려서 왔다고? ”
“네… 제가 마지막 차례였어요… ”
“…마지막 차례라는 건 또 뭐야? 잠깐, 네 뒤에 뭔가 있는 것 같군… ”

그녀의 뒤에, 하얀 무언가가 떠 있었다. 하얀 얼굴에, 기분 나쁠 정도로 커다란 입이 달려 있는 무언가는, 파이로를 보고 움찔했다. 마치 금줄로 엮은 듯한 팔을 휘적거리던 그것은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낮게 쳇, 하는 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뭔가 있군… ”
“오늘은 살았지만, 아마 절 죽일 때까지 절 따라올거예요… ”
“대체 뭘 잘못 했길래 저런 게 붙어 다니는거야? 게다가 네가 마지막 차례라니, 그건 무슨 말이고? ”
“그게… ”

그녀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오래 전에 마을에 있었던 들어가서는 안 되는 집과 그 곳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그 곳에서 봤던 하얀 것의 정체와 그 후 친구들의 행방까지. 그리고 그녀는 옷소매를 걷어 팔에 난 이빨 자국을 보여주었다. 쌀알만큼 작은 잇자국이 촘촘히, 크게 나 있었다.

“이게 그 놈의 잇자국인가보군… ”
“맞아요… 처음에 죽었던 친구도, 팔에 이런 잇자국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팔, 그 다음은 다리, 그리고 전신에 걸쳐 이런 잇자국이 보이다가 갑자기 죽어버렸대요… ”
“음…… 그렇군. 잠깐 따라와. ”

파이로는 그녀를 사무실로 데려갔다. 마침 퇴근할 채비를 하던 미기야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그녀는, 작은 부적 하나를 미기야에게서 받아 건넸다.

“일단 받아. 그 녀석이 아예 못 다가오게 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널 쉽게 죽이지는 못 할거다. ”
“고맙습니다… ”

여자를 돌려보낸 후, 파이로는 아까 봤던 하얀 것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
“아까 그 여자 말이야. 옆에 이상한 게 붙어 있었어. 하얗고 동그란 얼굴이 붕 떠 있었는데, 입이 기분 나쁠 정도로 크고 이빨은 쌀알만큼 자잘했지. …아까 그 녀석을 해하려고 했는데, 날 보자마자 사라졌어. 대체 그 녀석은 뭘까… ”
“글쎄요… 저는 못 봤는데… 파이로 씨가 계셔서 아예 사라진 모양이네요. ”
“아예 사라진 게 아니라, 그냥 물러난 모양이야. ”
“그럼 언젠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도 있겠네요. ”
“그렇겠지. …오늘은 내가 발견해서 살았지만, 다음엔 아닐 수도 있어. ”

다음 날, 파이로가 사무실에서 아침을 먹을 때, 어제 옥상에서 만났던 그녀가 찾아왔다. 어제와 달리 꽤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오, 부적을 받은 뒤로는 시달리지 않은 모양이네. ”
“덕분에요. 휴우… 어제가 친구들 기일이었는데, 오늘 고향으로 내려가려던 참이었어요. ”
“처음에 죽었다는 그? ”
“아뇨… 그 집에 갔던 모든 친구들이 같은 날 죽었어요. 처음 집에 갔던 녀석이 죽은 지 1년 후에, 한 명이 교통사고로… 그 다음은 역살, 그리고 암… 작년에 죽은 친구는 독극물 중독으로요. 누군가가 죽고 일 년째가 되면, 다음 사람이 죽는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이 제 차례였고요. ”
“일 년이나 텀을 주다니, 참 웃기는 녀석일세… ”
“사실 교통사고가 나서 친구가 죽었을 때는 우연히 그 날 사고가 났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역살로 죽은 친구는… 이전에도 종종 연락을 하고 있었고, 같이 대학에 다니던 친구 말로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떠밀리듯 선로에 떨어졌다고 해요. 그 때, 그 집에 있던 무언가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어요. ”
“그 집에 있는 무언가라… 그 하얀 머리통인가보군. ”
“네. 아무튼, 덕분에 고향에도 내려갈 수 있게 됐어요. ”

그녀가 돌아간 후, 파이로는 그릇을 싱크대에 넣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간만에 마트나 갈 참이었지만, 정오즈음 그녀의 전화가 시끄럽게 울렸다. 발신인은 야나기였다.

“여보세요. ”
“파이로, 큰일났어. 여기 D사거리 역인데, 사람이 쓰러졌어. ”
“사람이 쓰러져? 어쩌다가? ”
“모르겠어. 멀리서 이런 게 날아와서 머리를 맞추더니… 게다가 그 옆에 하얀 머리같은 게 둥둥 떠서, 쓰러진 사람을 먹으려고 하고 있어. ”
“하얀 머리? ”

부적때문에 접근은 못 할텐데, 어떻게 죽인거지? 그녀는 야나기가 말한 D사거리 역으로 갔다.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그녀는 봉투를 땅에 떨어트린 채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맡에 야나기가 서 있었고, 하얀 머리는 야나기의 맞은 편에 둥둥 떠서 쓰러진 여자의 다리를 노리고 있었다. 발밑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피 묻은 유리병 조각이 있었다. 봉투에는 고향에 가져가려고 샀는지, 청주 한 병과 북어포가 들어 있었다.

역에 도착한 그녀는 쓰러진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어제 사무실에서 본 그녀였다.

“…… 부적 때문에 접근을 못 하니까 이런 술수를 쓰는건가… 저 머리통, 은근 고단수군… ”
“대체 이 머리, 뭐야? ”
“상황 설명은 나중에. 일단 경찰부터 부르자. ”
“응. ”

오후 내내, 야나기와 파이로는 여자가 쓰러져 죽은 것 때문에 사정 청취를 하느라 하루 종일 경찰서에 있었다. 야나기가 그녀가 쓰러졌을 때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게 날아와서 피해자의 머리를 가격했단 말이죠? 던진 사람이 누구인지는 못 봤나요? ”
“네. 퍽 소리가 나서 보니까 이게 떨어져 있고, 사람이 쓰러져 있었어요.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
“저기, 형사 양반. 그 여자… 사망했어? ”
“네. 사망한 지 꽤 오래 된 것 같습니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해 봐야 알 것 같지만… ”
“결국 그렇게 돼 버렸군…… ”

둘은 저녁 여덟시 쯤 경찰서를 나왔다.

“결국 그렇게 돼 버렸다니… 그럼 그 사람, 죽을 운명이었던거야? ”
“나도 자세한 건 잘 모르지만… 어찌됐건 그 하얀 머리통이 노리고 있었던 건 맞아. 그 녀석의 친구들도 그 머리통이 죽였고… ”
“흠…… 악신이라도 건드린건가… ”
“글쎄… 머리통의 정체라도 알면 좋으련만. ”

다음날, 사무실에 어제 사정 청취를 했던 형사가 찾아왔다. 그녀를 부검한 결과, 알 수 없는 잇자국이 전신에 퍼져 있었기 떄문이었다. 팔이며 다리며 할 것 없이, 쌀알만하고 거대한 잇자국이 있었다. 게다가 잇자국은 목을 가로질러서까지 나 있었고, 어째서인지 부검 결과, 그녀의 두개골 속은 텅 비어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그 머리통이 뭔지 알아 볼 필요가 있겠군… ”
“머리통이라니? ”
“하얄고 큰 머리통. 그 녀석을 쭉 노리고 있었어. 쌀알만한 이가 뺴곡히 박힌 녀석이지… 팔은 뭔 금줄같은 것을 매단 것 마냥 생겨갖고… ”
“어제 역에서 봤던 그…? ”
“응. 거기다가 1년 주기로 타겟을 죽이는 거 보면, 꽤 주도면밀하단 말이지… ”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문이 없는 양옥집이라는 것 만으로 문제의 그 집을 찾기는 힘들었다.

“흐음…… 일단 두 사람이 얘기를 마칠 떄까지 기다려보자. ”
“응. ”

잠시 후, 형사가 돌아가자 파이로와 야나기는 미기야에게 다가갔다.

“부적을 좀 더 강한 걸 써 줄 걸 그랬나요… 아무래도, 수련이 좀 필요하겠네요. ”
“아니, 부적을 썼기 때문에 그런 방법으로 죽인거야. 머리도 쓸 줄 알고… 그 머리통, 제밥이네. ”
“부적을 썼기 때문에…? ”
“응. 부적을 써서 그 녀석이 접근하는 건 막았지만, 부적이 외부에서 날아오는 다른 물체를 막아주는 건 아니잖아. 외부에서 날아와서 맞는 공이나 새똥같은 거. ”
“그렇죠. ”
“그 머리통은 그걸 노린거야. …죽은 녀석의 고향이 어디인 지 알면, 그 머리통의 본거지도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
“본거지요? ”
“그 녀석도, 그 녀석의 친구들도 전부 어릴 적 금기된 장소에 찾아갔다가 이런 죽음을 맞이했어. 친구들이 1년 주기로 사망하고, 그 녀석이 마지막 차례였다고 했거든. 문이 없는 양옥집이라는 단서만 가지고는, 찾기가 힘들거든. ”
“문이 없는 집이라…… 그렇겠네요. 일단 라우드 씨에게 조사를 맡기도록 하죠. ”
“좋아. ”

미기야가 라우드에게 조사를 맡겼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그는 문이 없는 집이 있는 곳 몇 군데를 추렸다. 그리고 파이로는 그녀가 쓰러졌던 D사거리 역에서 갈 수 있을 법한 곳을 다시 추렸다. 그러자 수많은 곳들 중, 유독 한 군데가 나왔다. 바로 C구였다.

“이 곳인 것 같군… 일단 내일 출발해야겠어. 애더도 같이 가자. ”
“응. ”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한다. ”
“네. ”

다음날, 파이로는 야나기와 데스 애더를 데리고 C구로 향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문이 없는 집을 찾았다. 집에는 문이 아예 없고, 창문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까만 서랍장과 테이블, 소파만이 덩그러니 보였다. 그 외에는 먼지만 켜켜이 쌓여 있는 집이었다.

“여기 되게 더럽다… 관리 안 하나봐. ”
“잘못하면 머리통이 나오는데 관리를 하겠냐… 일단 거미줄부터 두르자. ”
“응. ”
“그런데 이 집은 왜 이런 모양으로 지은 걸까? 그 머리떄문에 사람이 아예 살지 못 하게 한 건가…? ”
“글쎄… 그런데 여기서 물어본다 한들, 사람들도 이 집을 기피하는 입장이라 쉽게 가르쳐 주진 않을 것 같아. ”
“좋아, 그럼 내가 줄을 치고 가서 그 집에 대해 조사를 해 올게. ”

데스 애더는 집 주변에 거미줄을 둘러주고 마을로 내려갔다. 그리고 파이로는 주변에 쌓여 있는 포대자루를 밟고 야나기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밖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더러웠다. 먼지는 둘째치고, 집은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라곤 타지 않아서 타일이 다 깨지고 벽지는 죄다 벗겨졌다.

“복층집인가… 하얀 머리는 위에 있는 모양이군. 그나저나 먼지 정말 장난 아니네. ”
“이런 집을 수리한다고 해도, 수리공은 무슨 죄야… ”
“그렇군… 그 머리통이 고객이라면 나라도 거절할 거 같은데. ”

둘의 눈 앞에는, 나무로 만든 계단같은 것이 있었다. 원래부터 이 집이 복층이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오래 전에 복층으로 지은 듯 했다. 잘못 밟으면 부서질 것 같은 계단을 조심조심 밟고 복층으로 올라가 봤지만 그 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오래 돼서 복층도 곧 부서질 것 같았다.

“머리통 땅바닥에 닿으면 이거 무너지는 거 아니냐… 어이, 머리통! 나와! ”

파이로가 복층에 대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가구를 유심히 보던 야나기는, 서랍 안쪽에서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부적으로 붕인한 봉투를 손으로 만져 보니, 안에는 동그란 무언가가 들어있는 듯 했다. 종이도 들어있는 모양인지 두께감이 꽤 있었다. 하지만 봉투 입구를 부적으로 막고 있어서 함부로 열 수는 없었다.

“파이로, 여기 뭐가 있어. ”
“뭔데? ”
“서랍 안에서 찾았는데, 부적으로 입구를 막아놨어. ”
“오. 이게 머리통을 봉인하고 있는 모양이군… 아마 그 녀석들, 이걸 열었다가 머리통을 만난 거겠지? ”
“아무래도 부적을 붙여둔 거 보면 그런 것 같아. 일단 이 집에 대해 더 알아본 다음에 이걸 어떻게 할 지 생각해보자. ”
“그러지. 함부로 건들면 머리통이 우리도 물어뜯으려고 할 테니까… 적어도 그 머리통이 날뛰지 못하게 하려면, 애더가 있어야 해. ”

마을로 갔던 데스 애더는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밖에서 쌓아둔 것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온 애더는 들어오자마자 엄청난 먼지때문에 재채기를 했다.

“에취! 이 정도 폐가면 당장 거주해도 될 것 같네. 이 집 주인만 없으면. ”
“주인? ”
“응. ”
“그 하얀 머리 말하는건가봐. ”
“머리? 아아, 그러고보니 하얗고 큰 머리같은 게 두 개 있긴 해. 그리고 사람이 하나 있어. …사람인가? ”
“뭐가 이 집에 또 있는거야? ”
“응. 그 안에 봉투같은 게 들어있을텐데, 그게 그 녀석들을 봉인하는 거래. 그래서 봉투를 열지 않으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 ”
“역시 그런 거였군… 참, 뭐 알아온 거 있어? ”
“음… 아아, 어. ”

데스 애더는 마을 사람들이 가르쳐 준 집에 대한 것들을 얘기했다. 이 집에 원래 살던 사람이 주살을 하려다 실패해서 역으로 죽었다는 것과 이 집에 있는 것은 저주가 실체화 된 무언가라는 것, 그리고 서랍 안에 있는 봉투에 그 저주에 썼던 주문과 여자가 저주를 걸었던 매개체가 있었던 것. 또한 그 하얀 머리는 한 번 발견한 타겟은 반드시 죽인다는 것과 그것 때문에 얼마 전에 상을 치른 집이 있었다는 것까지.

“그럼 이 안에 있는 건 저주 덩어리구만… ”
“그런 셈이지. ”
“가만, 며칠 전에 상을 당했다는 집… 혹시 D사거리의 그 사람 아닐까? ”
“D사거리의 그 사람이라니? ”

야나기는 데스 애더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D사거리 역에서 그녀가 갑자기 쓰러져 죽은 것과 그 떄 보였던 하얀 머리, 그리고 그 후 부검을 하면서 발견한 잇자국까지.

“그 녀석이, 자기는 마지막 차례라고 했는데… 맞아! 어릴 적에 이 집에 방문했다가 그 머리통을 보는 바람에 친구들도 차례차례 죽었다고 했어. ”
“차례차례? 그럼 피해자가 몇명 더 있단 말이야? ”
“응. 그 머리통, 1년주기로 방문자들을 죽인 모양이야… 그 녀석이 죽은 날이랑 그 녀석의 친구들이 죽은 날짜가 일치해. ”
“흐음… 피해자를 죽이는 방식도 그렇고, 저주 덩어리 치고는 꽤 주도면밀하네. ”

파이로는 서랍 속에서 봉투를 꺼내들어 혼불을 붙였다. 푸른 불꽃이 옮겨붙자 무언가 타들어가나 싶더니, 봉투는 간단하게 열려버렸다. 부적은 멀쩡한 상태였다. 봉투 안에 든 건 회중시계였다.

“이거 대체 언제적 물건이냐… 시계줄도 없어 보이는데, 이런 건 어디서 잘도 샀대? ”
“잠깐만, 그 시계… ”
“??”
“아무래도 이건 보통 시계가 아닌 것 같은데… ”

데스 애더는 파이로에게서 시계를 건네받아 찬찬히 뜯어봤다. 오랜 시간동안 있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계는 꽤 깨끗한 은색이었다. 시계줄도 없고 작동도 하지 않는지 바늘은 여덟 시에서 멈춰 있었다. 그리고 시계 뒷면에는 각인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CRAWLY라는.

“크로울리…? 이것도 그 녀석의 물건이란 말이야? ”
“크로울리라니? ”
“아레이스타 크로울리. 꽤 유명한 마술사로 알려져 있지… 악마를 숭배한다나 뭐라나… 이 시계, 그 녀석이 썼던 것 같아. 그것도 평범한 시계가 아닌 주술용으로. ”
“이걸 구한 집주인도 용하다… 그 당시엔 해외직구도 안 됐는데;; ”
“외국에 직접 가면 살 수도 있을걸… 게다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시계이고 말이지. ”
“음… ”

그 때였다. 위층에서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파이로가 봤던 하얀 머리가 나타났다. 금줄로 만든 것 같은 팔을 휘적거리며 하나, 그리고 또 하나, 그 뒤에는 하얀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머리도 마치 금줄을 엮은 것 같이 생겼다.

“저 머리통, 하나가 아니었나… ”
“머리통이라니, 기분 나빠. ”
“머리통밖에 없으니 머리통이지. 근데 이 하얀 건 뭐냐? ”

기분 나쁠 정도로 종잇장처럼 하얀 여자였다. 까만 머리를 기조로 해서 핏빛으로, 그리고 하얗게 그라데이션을 이루는 머리는 마치 금줄처럼 몇 갈래로 묶여 있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그저 온통 하얀 상태였다. 여자는 붉은 눈으로 파이로와 야나기를 보고 있었다.

“봉투를 열다니, 제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죽은 자였군. 대체 왜 우리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머리통이라고 부르는거야? ”
“머리통같이 생겼잖아. ”
“그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
“아무래도 이 녀석이 이 안에 봉인된 녀석인 것 같은데? ”
“머리통들을 통솔하는 거 보면 확실하지. ”
“여기까진 무슨 볼일? ”
“여러가지로 볼일이 있지… 얼마 전 D사거리 역에서 죽은 녀석 때문에 이 머리통을 잡으러 왔지만 이 머리통은 네녀석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데. 넌 대체 뭐냐? 그리고 이 집에는 왜 눌러앉아 있는거고, 그 놈들은 왜 죽인 거야? ”
“흐음…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거지… ”

그녀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머리통, 니가 말해봐라. ”
“머리통 아닌데요… ”
“어허. ”
“힝…… 저희들은 주령이라고요. 머리통같은 게 아니예요. ”
“주령? ”
“네. 우리는 저주의 집합체라서 주령으로 불리고 있죠. 저나 주인님 둘 다요.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는지는 너무 오래돼서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가 태어났을 때 처음 본 게 이 집에 사는 사람의 피였어요. ”
“그렇겠지. 니네가 주살했잖아. ”
“주살을 했다고요? 우리가요? 전혀요! ”

하얀 머리, 그러니까 주령은 여기에 있게 된 계기에 대해 말했다.

“저희들이 저주의 집합체이고, 누군가를 주살하고자 하는 저주에서 태어난 건 맞지만 우리는 이 집 사람들을 주살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우리가 태어났을 떄 이 집 주인은 이미 죽어있는 상태였죠. ”
“그럼 이 집 주인이랑 네놈들은 전혀 상관 없는거냐? ”
“그런 셈이죠. 이 집 주인이 오컬트 매니아였다느니 하는 소문이 있긴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이 집 주인은 우리가 태어날 때 피살당했대요. 범인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뒤로 범인도 죽었다는 거예요. 아마 집 주인이 죽은 뒤 우리가 생겨나서 소문이 그렇게 나 버린 모양이지만… ”
“그럼 그 아이들은 왜 죽인거냐? 이 집에 들어오면 다 그렇게 죽는거야? ”
“칩입자들을 다 죽여버리면 이 집 청소는 누가 하나요… 이 집에 가끔 들어오는 인부들도 있는걸요. 그 아이들이 온 후로는 한번도 본 적 없지만… ”
“그 냥반들이 봉투를 열지는 않았겠지… ”
“애초에 봉투를 못 열게 사전에 가구를 봉하고 옮기니 봉투를 뜯어볼 수는 없겠죠. 그 녀석들처럼 아무데나 헤집고 봉투를 열면… 우리들을 보게 되는 거고요. 하지만 단순히 우리들을 보게 되는 걸로 우리가 죽이는 건 아니예요. 그 봉투 안에 보면 종이가 있을텐데, 한 번 보실래요? ”
“종이…? 아아, 이거… ”

파이로는 봉투 안에 있는 종이를 꺼낸 다음 펼쳤다. 안에는 무언가 주문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이게… 뭐냐? 주문인가? ”
“그 주문이… 이 집 주인을 주살했던 주문이예요. 맨 처음에 죽었던 녀석은, 그 주문을 외워서 죽은 거예요. 그 뒤로 죽은 녀석들도… 거기에 적혀 있는 주문은 자기자신을 주살하는 주문이라 그랬던 거예요. …원래대로라면 처음 그 종이를 읽은 녀석만 주살당했어야 하는데… ”
“음…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왜 죽은거지? ”
“나머지 사람들도 죽었다고요? ”
“어. ”
“그럴 리가… 그 주문, 자기 자신을 주살하는 주문이라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아.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처음에 죽은 사람이 어떻게 죽었다고 하던? ”
“누가 뒤에서 머리를 파 먹은 것 같았다고 했는데. 온 몸에 잇자국도 있었고… ”
“그건 주살이 맞아. 그럼 다른 사람들도…? ”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마지막에 죽은 녀석은 잇자국이 보였어. 이 머리통도 보였고. ”
“저요? 저는 계속 여기에 있었는데요? ”
“머리도 팔도 내가 봤던 그대로인데? 심지어 이도 똑같아. ”
“우리는 사람 고기같은 건 먹지 않습니다. ”

뭔가 이상했다. 분명 파이로와 야나기가 봤던 것은 이 집에 떠 있는 하얀 머리통이었는데, 그럼 대체 그들을 죽인 건 뭐지?

“잠깐만… 나, 이거랑 관련된 글을 본 적 있어. 죽은 사람들 모두 여기에 왔다 간 후 하얀 여자가 나오는 꿈을 꿨다고 했어. 이 머리통도 봤고… ”
“그야, 봉투를 열어서 우리가 나타났으니 봤겠지. …그 뒤로는 출타한 적 없지만. 그런데도 우리들의 형태를 빌릴 수 있다니… 대체 무슨 짓을…… ”
“잠깐만. 그러고보니 뭔가 집히는 게 있어. 마을에서 다른 집은 여기에 대해서 말하는 걸 기피했는데, 한 집만 이 집에 대해 알려줬거든. …그게 아까 말했던 거고. 그 집에서, 여기에 왔다가 죽은 사람이 있었다고 했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제령을 받았다는… ”
“가위라…… 뭐, 심심해서 장난을 좀 치긴 했지. 그 뒤로 제령을 받았다라… 그렇다면 그들은 무사해야 하는데 왜 그 사람들도 같은 날 죽은거야? ”
“어쩌면… 그 제령이라는 거, 제령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 저주를 거기 있던 아이들에게도 옮겼던 게 아닐까? 분명 처음에 죽었던 녀석은 주살당한 게 맞으니까 잇자국도 있었고 머리가 텅 비었겠지. 그리고 그 저주를 다른 아이들에게도 뒤집어 씌운 걸지도 몰라. ”
“…… ”

가설이지만, 정말로 그런 거라면. 역시 인간들은 무섭군, 파이로는 할 말을 잃었다.

“어찌됐든, 그 녀석들이 죽은 건 이 녀석 탓은 아니야. …어쩌면 네 가설이 맞을 수도 있겠군. 인간이안 생각 외로 무서온 존재들이거든. ”
“그렇긴 하지… ”
“일단 이 주문은 어떻게든 소거해야 다른 사람들이 위험하지 않을 것 같군. 우리에게 맡겨. …사무실에 뭘 더 들였다간 한소리 들을 지도 모르겠군. ”
“저주의 집합체라면 역시 한소리 들을 지도 모르지. ”
“좋아, 그럼 시계줄 구할 떄까지만이다. ”
“시계줄? 이거 줄도 있는 거야? ”
“회중시계는 원래 줄이 있어서 매달고 다니는거야… ”
“어쩐지, 고리가 달려 있더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