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합니다. ”
평화로운 오후, 괴담수사대 사무실에 손님이 왔다. 오전중에 급하게 전화로 예약하고 싶다고 연락했던 손님이었다. 손님의 정체는 머리를 하나로 묶고 흰 셔츠 위에 검정색 슬랙스를 입은, 검정색 구두를 신은 여성이었다. 아마도, 이 근처에서 직장 일을 하는 듯 했다.
“아, 오전에 급하게 예약한다고 했던 손님이구만. 오너는 잠깐 나갔는데, 금방 올 거야. 여기 앉아서 잠깐 기다려. ”
여자가 테이블에 앉아있으니, 잠시 후 미기야가 돌아왔다. 가방을 내려놓고 미기야가 테이블 맞은 편에 앉자, 야나기가 시원한 냉차 두 잔을 가져왔다.
“이거 마시면서 이야기 나눠. ”
“고맙습니다. ”
여자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사무실 책상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탁상 달력이었다. 탁상 달력은 회사에서 받은 모양인지, 달력 밑에 회사 이름과 로고가 있었다. 직업상 업무와 관련된 일정이 꽤 많은 모양인지, 달력 이곳저곳에 무언가 적혀있었다. 색깔이 있는 펜으로 동그라미가 된 곳도 있었다.
“이 달력… 어딘가 이상해요. ”
“달력이요? ”
“네. 직업상 다른 회사에 방문할 일이 많아서 일정을 써 두는 편인데… ”
미기야는 달력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주말을 제외하면 주에 두세번은 다른 회사에 방문하는 듯 했지만, 달력에 적힌 문구가 어딘가 이상했다. 보통은 일정이 있으면 회사명과 시간 정도를 적어두지만, 그 달력에는 회사와 시간 밑에 무언가가 적혀있었다.
“6월 15일… 오후 2시… 교통사고…? ”
“실제로 6월 15일에, 회사 차를 몰고 K사에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어요. 백주대낮에 급발진한 차랑 그대로 부딪힐 뻔 했거든요… ”
“그러셨군요. 다른 날들도 비슷한 일이 있었나요? ”
“네. 이 날은 아침에 뜨거운 커피를 급하게 마셨다가 입천장을 데었고, 이 날은 발목을 접질렸어요. ”
“음… ”
다음 달은 아직 아무 것도 없었지만, 날짜마자 ‘어떻게 죽고 싶어?’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혹시 회사에서 본인만 이 달력을 사용하고 계신가요? ”
“아뇨, 다른 직원들도 이 달력을 사용하고 있어요. 이건 회사에서 주는 달력이거든요. ”
“그럼 다른 직원들은 괜찮은건가요? ”
“네. 다른 직원들은 괜찮은데 제 달력만 이래요. 다음 달 일정을 미리 적어두려고 했더니, 어떻게 죽고 싶어? 라고 쓰여있었고… 날짜 칸에 뭔가를 적으면, 교통사고나 골절같은걸로 바뀌어요. ”
“그 현상이 올해 초부터 있었나요? ”
“네. 달력을 받고나서부터 계속 있었어요. ”
“음… ”
미기야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한참동안 달력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던 미기야는, 입을 열었다.
“이 달력을 저희한테 맡겨주시면, 해결해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아서요. ”
“일정은 여기 말고 개인 다이어리에도 기록해두고 있어서 괜찮아요. ”
“알겠습니다. 여기 제 명함 드릴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
미기야는 여자에게 명함을 준 다음 돌려보냈다.
“명함도 조만간 새로 하나 만들어야겠네요. 그나저나 이 달력, 확실히 뭔가 있어요. ”
“확실히 뭔가 있네… ”
달력을 다시 넘겨보니, 6월달까지는 일정마다 하나씩 사고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7월달부터는 어떻게 죽고 싶어? 라는 얘기가 날짜마다 적혀있었다. 시험삼아 7월 1일에 ‘명함 제작’이라고 적자, ‘어떻게 죽고 싶어?’가 흐물거리나 싶더니 ‘화재’로 바뀌었다.
“이러면 7월 1일에 불나는 거 아냐? ”
“연필이니까 지우면 될거예요. ”
달력에 적었던 걸 지우자, 글자가 흐물거리더니 다시 어떻게 죽고 싶어?로 바뀌었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은 괜찮았다… 처음부터 뭐가 붙어서 온 걸지도 모르겠네요. ”
“뭐가 붙었던 달력을 하필 그 사람이 받았을 수도 있겠지… 원래 재앙이라는 건 예측하지 못 한 상황에 찾아오는 법이니까. ”
“그렇죠… 그 달력을 하필 그 분이 받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
“내 생각엔 그 달력, 뭔가 저주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
“저주요? ”
“응. 그러니까, 원래대로라면 6월 15일 오후 두 시에 이 사람은 급발진한 차랑 부딪혀서 교통사고로 ‘죽었어야’ 했던 거지. 그런데 그 사고를 피했다고 했잖아? 저주를 막아주는 무언가가 있어서 그나마 무사했던거지. ”
“음… ”
파이로는 달력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날짜가 적힌 부분 뿐 아니라, 뒤쪽에 사진이 붙어있는 부분, 그리고 달력 받침, 달력 표지까지. 그리고 이내 무언가를 북, 하고 뜯는 소리가 났다.
“그거 그렇게 뜯어도 되는건가요? ”
“원래대로라면 안되겠지만, 이건 뜯어버리는 편이 좋아. ”
달력 뒷표지에, 부적이 하나 붙어있었다. 까만 종이 위에 붉은 잉크로 그린 부적은, 어딘가 불길해보였다. 파이로가 부적이 붙은 뒷표지를 뜯자, 달력에 적혀있었던 글자들도 사라졌다.
“하나 더 남았어. ”
파이로는 달력의 앞표지도 북 뜯었다.
“여기도 부적이 붙어있어. 자, 그럼 우리는 내일 달력을 돌려주러 가서 좀 더 조사해보자고. 어떤 놈이 이런 부적까지 써서 그 사람을 저주했는지 말이야. ”
미기야는 여자에게 연락해 생각보다 일찍 해결되었다며, 내일 사무실로 달력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미기야는 파이로와 함께 여자에게 달력을 전해주러 갔다. 안내 데스크에 상황을 설명하자, 안내 데스크에 있던 직원은 어딘가로 연락했고, 곧 여자가 아래로 내려왔다.
“일단 문제는 해결됐는데,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게 있어. ”
“그럼 이 달력, 쓸 수 있는건가요? ”
“일단은. 이 달력, 회사에서 줬다고 했지? 그럼 언제쯤 배부했어? ”
“원래는 연말에 배부하는데, 올해 달력은 좀 늦게 나와서 1월 상순에 받았어요. ”
“네가 직접 받았어? 아니면 다른 직원이 받았다가 건네줬어? ”
“원래 달력을 나눠준 날 제가 연차라서, 옆자리에 있던 직원이 제 것도 대신 받았다가 다음날 줬어요. ”
“그 직원, 지금도 다녀? ”
“네. 저랑도 사이는 꽤 좋고… 그건 왜요? ”
“이걸 봐. ”
파이로는 여자에게 뜯어냈던 달력 표지를 보여줬다. 달력 표지에 부적이 붙어있는것을 본 여자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달력을 통해 널 저주했었어. 네가 달력을 직접 받지 않았고 누군가가 대신 받았다면, 그 사람이 저주했을거라 생각했거든. …잠깐만. 네 달력을 대신 받았던 그 사람이 자리를 비웠을 때 붙였을수도 있겠다. 회사에 원한 살 만한 사람은 있었어? ”
“한 사람 있긴 한데… 지금은 그만두고 없어요. ”
“지금 없다는 건, 달력을 나눠줄 때는 다녔을 수도 있다는 얘긴데… 맞아? ”
“네. 계약직이었는데 1월 말에 그만뒀거든요. ”
“뭐… 이유야 어찌되었건,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주살하려고 하는 것 자체는 잘못된 행동이 맞지. 아마 그 사람은, 너를 저주한 죄를 씨게 받을거다. 저주할 때 무덤을 두 개 파라는 얘기가 있거든. 하나는 저주 받는 사람의 무덤, 하나는 저주 하는 사람의 무덤. ”
“그럼에도 당신이 살아남은 건, 아마 당신을 지켜주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일거예요. 달력 표지는 저희쪽에서 처리할테니, 안심하시고 그 달력을 사용해주세요. ”
미기야와 파이로는 건물을 나오면서 혼불로 달력 표지를 태웠다. 혼불이 붙자, 달력 표지에 붙어있던 부적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일단은 이걸로 끝인가요? ”
“응. 부적이 떨어졌으니까. ”
며칠 후, 여자는 용하다는 타로집에 갔다. 친구가 며칠 전부터 가고싶어했던 곳인데, 꽤나 용하지만 하루에 끽해야 두세시간 여는 게 고작이라 가는것부터가 운이 필요한 집이었다. 안에는 색이 바래버린듯 하얀 머리를 가진 여자가 있었다.
“너, 최근에 저주받은 것 때문에 괴담수사대에 갔었지? ”
“네. ”
“깔끔하게 저주가 떨어져나가서 다행이네. 뭐, 저주받은 것에 네 잘못은 없어. 저주 한 사람이 잘못한거지… 애초에 그건 충분히 지적할만한 사유였잖아. ”
그녀는 여자의 가방을 가리켰다.
“그 가방에, 너를 저주로부터 지켜줬던 물건이 있을거야. 그 물건도 슬슬 힘이 다할때쯤, 적기에 괴담수사대를 찾아갔던거지. 딱 적기야 적기. 아마 내년에는 딱 적기에 맞물려서 승진도 하고, 좋은 짝도 만날거야. ”
“그… 저를 저주했던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요? ”
“멀리 갔어. ”
“……! ”
최대한 돌려서 말한 듯 했으나, 그녀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했던 사람이라면, 그리고 괴담수사대를 통해서 그녀가 저주를 풀었다면 분명 되돌아간 저주에 의해 죽었을 것이다.
‘저주할 때 무덤을 두 개 파라는 얘기가 있거든. 하나는 저주 받는 사람의 무덤, 하나는 저주 하는 사람의 무덤. ‘
그녀는 회사에서 만났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