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III-5. 재능맛, 노력 첨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도록 두 남학생이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한 학생은 체력을 단련하려고, 그리고 다른 학생은 벌로 운동장을 연거푸 돌고 있었다.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며 텅 빈 운동장을 달린 두 남학생은,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 짜증나… ”
“뭐냐, 재호. 담배라도 걸렸어? ”
“미쳤어? 프로 선수가 되려면 그런 건 멀리 해야 한다고. ”
“그럼 왜 운동장을 달린거야? ”
“국어 점수가 평균 미만이라고 운동장 뛰랜다… 다른 애들은 앉았다 일어서기 100번 했는데, 나는 축구부니까 평균보다 점수 차이가 많이 나는 만큼 운동장 뛰는걸로 퉁친다고. ”
“저런… ”

운동장 달리기를 마친 두 사람은 학원으로 가고 있었다. 학교뿐 아니라 학원도 같은데다가, 같은 축구부이기까지 했던 둘은 때로는 투닥거리고 때로는 라이벌이 되기도 하면서 같이 다니고 있었다. 부모님들끼리도 사이가 좋아서, 가끔 한쪽이 학원을 몰래 빠진다던가 하면 금방 들키기 일쑤였다.

“어? 오늘은 저 바 열었네? ”
“그러게. 바 하니 아까 엄청 달려서 목말랐는데… 얼른 편의점 가서 이온음료라도 사먹자. ”
“그래, 우리는 아직 바에 갈 나이가 아니야. ”

두 사람은 학원 앞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과 이온음료를 샀다. 달리기를 마치고 학원에 늦을까봐 부랴부랴 오느라 아무것도 못 먹었던데다가 달리기때문인지 유난히 허기가 졌다. 돌도 씹어먹을 나이인 두 사람이었지만, 시원한 이온음료를 들이키고 삼각김밥을 먹으니 어느정도는 요기가 되었다.

“어이, 영씨. 하나갖고 양이 되냐? ”
“많이 먹었다가 식곤증 오면 어쩌려고. ”

배지껏 먹고 학원에 올라간 두 사람은 자리를 잡고 수업을 들었다. 이제 곧 중간고사가 다가와서, 훈련도 훈련이지만 원하는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성적 관리를 해야 했다. 아까 무리해서 달린 탓인지 졸음이 쏟아졌지만, 두 남학생은 서로를 꺠워주면서 겨우겨우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오늘은 집 가자마자 바로 뻗어도 이의제기 못 하지… ”
“아니, 씻고 자라고 이의제기 할 것 같다. 우리 지금 땀냄새 엄청 나거든… ”
“그건 그래… 가자마자 바로 씻어야지. ”

학원을 마치고 털레털레 돌아가던 두 사람은 아까 지나가면서 봤던 바를 다시 보게 됐다. 아까는 오픈 준비라도 하는 모양이었는지 한산했지만, 지금은 멀리서 보기에도 손님이 꽤 있어보였다. 노란 네온사인 안에는 붉은 네온사인으로 ‘엘 푸르가토’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프로팀에 들어가면 저기서 축하주 한 잔 하자. ”
“좋지. ”

두 소년은 프로 팀에 입단해서 축구선수로 뛰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월드컵 국가 대표로도 나가고, 해외 리그에서도 뛰어보고, 나중에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될 정도로 유명해지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매일같이 공을 차고, 연습했다. 고등학교는 갈라졌지만, 두 학생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프로 팀에 입단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두 사람 다, 프로팀에 입단하게 되었다. 비록 두 사람이 소속될 팀은 달랐지만, 각 팀에서는 두 사람을 영입하기 위해 열심이었다.

“비록 팀은 다르지만, 그래도 축하한다. 너네 팀에서 되게 적극적이라며? ”
“너네 팀도 만만찮다더라? 어머님께 들었어. ”
“엄마는 뭐 그런걸… ”
“응? 두 사람,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
“저희, 이번에 프로 축구팀에 지명됐어요. ”
“아, 그래? ”

두 사람은 중학교 3학년때 나눴던 프로 팀에 들어가게 되면 엘 푸르가토에서 같이 축하주를 마시자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두 사람은 사이좋게 테이블에 앉아서 모히토를 시키고, 건배를 하면서 앞으로 서로의 앞날이 잘 되기를 축복했다.

“이야, 그거 대단하네. 어떻게 보면 목표하고 있던 걸 이룬 셈이니까. 그럼 다음 목표는 뭐야? ”
“월드컵에 나가보고 싶어요. ”
“해외 구단에서 뛰어보고 싶어요. ”
“손흥민처럼 말이지? ”
“네. 저는 손흥민처럼 인품도 실력도 뛰어난 선수가 되고 싶어요. ”
“저도요. ”

마스터는 카운터로 돌아가더니 상자를 하나 꺼냈다. 상자 안에는 미니어처 축구공이 들어있었다.

“마침 내 친구한테 받은 초콜렛이 있는데, 아무래도 내가 볼 때 이 초콜렛의 주인은 너희들인 것 같다. 안주로 하나씩 먹어, ”
“잘 먹겠습니다. ”

축구공 모양은 화이트 초콜렛과 다크 초콜렛을 깎아서 만든 듯 했다. 꽤나 정교하게 깎아서 이어붙여서,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미니어처 축구공인 줄 알았을 것이다. 초콜렛 속을 채운 건 부드러운 크림이었다. 화이트 초콜렛의 단 맛과 크림의 부드러운 맛이 어우러질 무렵, 다크초콜릿의 쌉쌀한 맛이 느껴졌다.

“맛있다! ”
“다행이네~ 친구 중에 쇼콜라티에가 있는데, 그 친구 작품이거든. 이거, 5성급 호텔에 납품되는 귀한 초콜렛이야. 이래뵈도 특별한 초콜렛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고… ”
“이렇게 비싼 걸 그냥 얻어먹어도 되나요? ”
“초콜렛 값 받았다고 하면 그 친구가 화낼걸? 가끔 손님들 나눠주라고 이런 식으로 주고 가는거니까 괜찮아. ”

두 사람이 술값을 계산하고 나갈 무렵, 마스터는 영을 따로 불렀다. 그리고 카운터 구석에서 종이를 하나 꺼낸 다음, 매직을 건넸다.

“이게… 뭔가요? ”
“미래의 대스타님, 사인 미리 받아두려고 그러지. ”
“에이, 제가 미래의 대스타라고요? ”
“그럼. 분명 넌 더 성장할 수 있어, 내가 장담할게. 지금 하는것처럼만 꾸준히 하면 아마 네가 동경하던 손흥민 선수도 만날 수 있을거고, 해외 리그에서도 뛸 수 있을거야. ”

영이 사인을 건네자, 마스터는 사인을 액자에 담은 다음 나중에 영이 월드컵에서 뛰게 되면 걸어두겠다고 했다. 그리고 엘 푸르가토에 방문하는 첫 번째 유명인이 될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오래 기다렸어? ”
“아니. 무슨 얘기 하고 왔냐? 돈 모자랐어? ”
“아니, 사인 하나 해 달라셔서… ”

며칠 후, 두 사람은 각자 프로 팀에 입단하게 되었다. 영이 입단한 곳은 연고지가 지방이었고, 재호가 입단한 곳 역시 연고지가 지방이었지만 영보다는 집과 가까운 위치였다. 입단해서도 두 사람은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각각 데뷔전을 치르면서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려가기 시작했다. 축구선수로서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가끔 그라운드에서 만날때면 이긴 팀을 축하해주고, 서로 피드백도 해주면서 두 사람은 성장해나가기 시작했다.

학창시절에도 그러했듯, 영은 팀 내에서도 ‘경기장이나 숙소에 없으면 훈련하러 가 있는’ 선수로 유명했다. 한 시간이나 일찍 등교해서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을 열 바퀴씩 돌고, 샤워실에서 씻고 수업을 듣고, 수업과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에 또 운동장을 돈다. 누군가 영에게 왜 매일 운동장을 달리느냐고 묻자, 영은 축구도 체력싸움이라면서 그라운드에서 지치지 않고 오래 달리려면 체력단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운동장을 돌던 것이, 프로 팀에 입단해서는 재호에게 피드백을 받았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코치나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물론, 지구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금은 운동장을 도는 대신 줄넘기나 런닝머신으로 바뀐 것 뿐이지만.

“오늘도 훈련하느라 연락이 안 되냐? ”
“늘 그렇지, 뭐. ”
“얌마, 지구력 강화도 좋지만 쉬엄쉬엄 해. 무리하면 안 좋아. ”
“괜찮아, 코치님도 계시고 팀 닥터도 있으니까 지칠 것 같으면 도와달라고 하지 뭐. ”

고된 훈련 뒤에 마시는 시원한 물 한 잔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다. 훈련을 하다가 지칠 때 쯤이면, 엘 푸르가토의 마스터가 얘기했던 지금처럼만 하면 잘 될거라는 말을 되새겼다. 정말 이렇게만 하면 손흥민도 만날 수 있고, 해외 리그에서도 뛸 수 있을까?

한번정도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그는 그럴때마다 확신에 찬 눈으로 영의 사인을 액자에 걸어두던 마스터를 떠올렸다. 마스터는 영이 월드컵 국가대표로 뛰게 되는 날 가게 한쪽에 걸어두겠다며, 이게 엘 푸르가토에 방문한 첫 유명인의 사인이 될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었던 그 날을.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네? 제가 국가대표에요? ”
“그래. 감독님께서 데뷔전 치를때부터 눈여겨보셨다나봐. 너를 꼭 국가대표팀에 넣고 싶다고 하셨어. ”

월드컵 국가대표 선수를 뽑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감독님이 자신을 눈여겨 보고 계셨을줄은 몰랐다. 갓 신인이었던지라 국가대표 후보로 거론만 되어도 영광인 상황인데, 국가대표 감독님이 자신을 꼭 팀에 넣고 싶다고 했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영광이었다.

“엄마! 나 국가대표 팀에 들어가게 됐어! ”
“뭐? 그럼 프랑스 가는거야? 이거 가문의 영광이네? ”

국가대표에 발탁된 것 그 자체보다도 국가대표 팀에 손흥민이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더 영광이었다. 어릴적부터 목표로 삼았던 손흥민을 드디어 만날 수 있다. 함께 그라운드를 누리고, 숙소를 함께 쓰고, 훈련도 같이 한다. 꿈이었던 국가대표에도 한발짝 다가가게 된 그는, 국가대표에 발탁된 것 보다도 어릴 적 우상이었던 선수를 만나게 된 것이 더 좋았다.

월드컵 경기를 위해 프랑스로 갔던 영은 꿈에 그리던 선수를 만났다. 거기다가 같은 숙소를 쓰게 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릴적부터 우상이었다는 것과, 어떻게 훈련했는지, 그리고 영국에서의 생활은 어땠는지 등. 월드컵에서는 아쉽게도 8강까지 진출하고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꿈에 그리던 선수와 만났던 영광의 시간이었고 배울 점을 더 돌이켜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이고, 우리 아들! ”
“어서 와라. ”
“이게 뭐라고 현수막까지 걸었어? ”
“우리 집에서 국가대표가 나왔는데, 이 정도는 걸어야지. 이거, 사실 부녀회장 아주머니가 걸자고 한 거야. ”
“어? 부녀회장 아줌마가? ”
“응. 우리 아파트에서 드디어 유명한 사람 나왔다고. ”

오랜만에 엄마의 밥상을 받은 영은 엄마표 갈비찜에 잡채까지 배지껏 먹고, 소파에 앉아 쉬었다.

“영아, 너 재호랑 연락은 하니? ”
“예전에는 훈련 끝나고 간간이 안부정도 주고받았는데, 요즘은 연락이 없어. 월드컵 국가대표에 뽑히고 나서 그랬던 것 같은데… 재호네 부모님은 댁에 계시지? 한번 물어보고 올까? ”
“재호네 이사가서 이제 거기 안 살아. ”
“이사갔어? 언제? ”
“좀 됐어. ”

영은 훈련하는 동안 핸드폰을 거의 꺼놓다시피 해서 재호네의 소식은 모르고 있었다. 부모님도 재호네가 이사갔다는 게 별로 좋은 이유는 아니었던터라 굳이 영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거기다가 월드컵 국가대표가 된 후로는 늘 오던 전화도 오지 않게 되었다. 뭔가 석연찮았지만 부모님도 이사를 갔다는 것 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귀국한 김에 연락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메신저에는 (알 수 없음)이라고 떠 있었고 메시지를 아예 보낼 수 없었다.

며칠 집에서 쉬고 소속팀으로 돌아간 영을 맞이한 것은, 중년의 외국인 남자였다. 남자가 옆에서 무어라 말하면, 그 옆에 서 있던 남자가 그에게 통역을 해 주었다. 그리고 영이 말하는 것을 다시 남자에게 통역을 해 주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독일 분데스리가의 프로팀에서 왔으며, 영을 영입하고 싶어서 직접 찾아왔다고 했다.

“네? 분데스리가에서 저를요? ”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팀에 영입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월드컵 경기 뿐 아니라 영 선수가 팀에서 뛰었던 경기도 하나하나 보시고 내린 결정입니다. ”

지금 소속된 프로팀과 달리, 분데스리가에 가게 되면 독일에서 살아야 한다. 독일 땅은 한번도 밟은 적 없었고 독일어도 잘 몰랐던 그였지만 구단에서는 영이 필요하다면 독일어 통역을 붙여주거나 독일어 과외도 시켜주겠다고 했다. 독일에서 인종차별을 심하게 겪었다는 얘기를 알음알음 들어왔던 터라 긴장했지만, 감독님이나 코치진, 다른 선수들도 ‘차붐의 나라’에서 온 선수라며 살갑게 대해줬다.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하는 관객이 발견되면 구단측에서도 즉시 조치를 취해주었다.

분데스리가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고 뛰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재호가 잘 지내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자리잡고 있었다. 국가대표에 발탁된 후로 재호와는 연락이 끊겼고, 재호네 부모님도 연락이 끊긴 것은 물론이고 이사까지 가 버려 이제는 소식을 알 길이 없다. 그 뒤로 그가 재호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오랜만에 스승의 날이라 중학교 담임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을 때였다. 중학교 담임 선생님은 제자 중에 국가대표가 나와서 기쁘다면서, 나중에 귀국하면 사인 한 장 부탁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침에 일찍 등교해서 운동장을 열 바퀴씩 뛰는 너를 보면서, 선생님은 네가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단다. ‘

그 뒤, 잠시 귀국할 일이 생겨 한국에 들어왔던 영은 엘 푸르가토로 갔다. 오랜만에 발걸음했지만, 마스터는 갓 축구선수가 됐을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영을 맞았다. 시원한 모히토를 준비하면서 마스터는, 예전에 영이 해 준 사인을 월드컵 첫 경기날 바로 벽에 걸었다며 영이 앉은 자리 뒤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곳에는, 영이 갓 프로 팀에 입단했을 때 했던 사인이 걸려있었다.

“친구는 뭐 하고 지내는지 모르지? ”
“네. 부모님 통해서 여쭤보려고 했는데 부모님도 이사가셨다고 하고… ”
“월드컵 경기하면서부터 연락이 안됐고? ”
“그걸 어떻게 아세요? ”
“다 아는 수가 있지. 전에 내가 줬던 초콜렛 기억해? ”
“아, 그 축구공 모양 초콜렛이요? 네. 안에 크림도 부드러워서 맛있었어요. ”

축구공 모양을 정교하게 잘 만든데다가 맛도 괜찮았던 초콜렛이었다. 거기다가 5성급 호텔에 납품되는 쇼콜라티에의 작품인데다가, 특별한 초콜렛이라고 재차 강조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초콜렛이 훨씬 부드럽고 맛있었다.

“그 초콜렛은 만든 쇼콜라티에의 실력때문에 특별한것만은 아냐. 그 초콜렛의 효과때문에 특별한거지. ”
“초콜렛의 효과요? ”
“응. 그 초콜렛은 재능을 빌려주는 힘이 있거든. 하지만 변덕이 좀 심해서, 가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재능을 아예 주기도 해. 그리고 너는 초콜렛이 마음에 들어했던 사람인거지. ”

초콜렛이 어떤 재능을 빌려줬는지, 그리고 왜 그를 마음에 들어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재능을 빌려준다니, 그런 초콜렛은 만화에나 나올법한 물건이지 실제로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물건이 실제로 있다고 해도 그런 일이 정말 자신에게 일어날거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다.

“혹시 재호도 여기 왔었나요? ”
“아니, 너랑 왔던 그날 이후로는 한번도 온 적 없었어. ”

여기에 한번이라도 더 왔었다면 재호의 소식을 알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재호는 엘 푸르가토에도 온 적이 없었다. 소속 팀에 연락해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동창들에게 연락을 할 수도 없고, 메신저는 탈퇴해서 보낼 수도 없고, 가족들도 어디로 이사갔는지 모른다.

“한번 왔었으면 소식이나 들으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

그 때, TV에서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건축에 관련된 다큐였는데, 시골에 넓은 땅을 사서 배리어프리 하우스를 지었다는 사람을 인터뷰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은 그 다큐멘터리를 보자마자 어안이 벙벙했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인터뷰를 하는 노인이, 그토록 소식을 듣고싶어했던 재호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어? ”
“아는 사람이야? ”
“재호 아버지예요. 이사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시골로 가셨나… ”

배리어프리 하우스라면 어머님이 사고라도 당하셨나, 생각했지만 재호의 어머니는 멀쩡히 거동하고 계셨다. 영상 속에서 재호의 아버지와 재호의 어머니가 집을 소개하는 동안 휠체어를 탄 남자가 보였고, 휠체어를 탄 남자의 얼굴을 본 영은 머리를 무언가로 맞은것처럼 멍해졌다.

“……! ”

휠체어를 탄 남자의 정체가 재호였다. 재호의 방으로 보이는 공간에는 프로 팀 유니폼이 걸려있었고, 축구화도 놓여있었다. 하지만 재호는 더 이상 축구화를 신을 수 없었다. 아니, 신을 수는 있지만 신고 걸을 수가 없었다.

“네 친구한테는, 초콜렛이 조금 나쁜 쪽으로 변덕을 부렸네. 아무리 그래도 재능을 빌려줄 필요가 없는 몸으로 만들 것 까진 없었는데… ”

재호는 영이 월드컵 국가대표에 발탁될거라는 소식을 듣고, 분해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둘이 친구이긴 했지만, 키가 고만고만한 영이 축구부에 입부했을 때 별다른 칭찬을 듣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키가 큰 재호는 영보다 축구 실력이 뛰어나서 입부했을때부터 감독님에게서 될성부른 에이스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때부터 둘은 친하게 지냈지만, 재호는 속으로 영을 은근히 무시하고 있었다.

프로 팀에 입단해서도 영이 꾸준히 훈련했던것과 달리, 재호는 영이 피드백을 준 부분에 대해서 별다른 훈련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놈이 가르치려 든다며 툴툴거릴 때도 있었다. 감독님이 될성부른 에이스라고 치켜세우긴 했지만, 그는 천재라고 해도 노력을 하지 않으면 천재성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영이 월드컵 국가대표에 발탁될거라는 소식을 들은 재호는 그날부터 무리해서 훈련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아닌 놈이 됐으면, 나도 지금부터 시작하면 되겠지, 싶은 마음에 팀 닥터와 코치가 만류하는데도 계속해서 무리한 결과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그 결과 평생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의사가 앞으로는 걸을 수 없고 휠체어를 타야 한다고 했을 때, 그는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것보다 더는 될성부른 에이스도 뭣도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물론 방송에 친구를 은근히 무시했다던가, 퉅툴거렸던 것이 온전히 다 나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영도 이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지금도 재호가 부상때문에 장애를 입은 것 외에는 모른다. 하지만 마스터는 영과 재호가 엘 푸르가토에 왔을 때부터 두 사람을 꿰뚫어보고 있었고, 그 날 집으로 돌아가려던 영의 사인을 미리 받아둔것이었다.

“전에 너와 네 친구가 먹었던 초콜렛의 이름이 ‘재능맛, 노력 첨가’야. 초콜렛이 가진 힘이랑 딱 걸맞는 이름이지. 초콜렛에 노력이라는 첨가물이 더해지면, 초콜렛이 마음에 들어하지만 초콜렛에 아무것도 더해지지 않으면 초콜렛의 미움을 사버리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