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1. Moonlight demon_The positive navigation

그는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갔을 때, 깜짝 놀랐다. 만화를 좋아하는데다 키가 작고 뚱뚱해서 둔하다는 이유로 일진들이 괴롭혔던 동창이, 180도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군대 가서도 키가 큰다더니, 그는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보였다. 거기다가 근육질에 탄탄한 몸매까지, 뭇 여성들의 시선을 잡아 끌 정도로 적당히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어 이름을 말하기 전까지는 ‘우리 반에 이런 애가 있었나?’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성형수술을 한 건지, 안경을 벗어서 그런지 꽤나 훈훈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네가 진짜로 그 재원이라고? 오타쿠라고 애들이 놀리던? ”
“맞다니까, 인마. ”

그의 변화된 외모가, 드라마틱한 걸 넘어서 아예 한번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믿을 수준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입이 떡 벌어졌지만, 학창시절에 재원을 괴롭혔던 일진들이 오히려 친하게 지내자고 알랑방귀를 낄 정도니 말 다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을 때는 키는 군대 가서 컸고, 운동해서 살을 빼고 몸을 만들었다 정도만 얘기했다. 그리고 동창회를 파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오랜만에 만났는데 2차 갈래? 내가 살게. 어떻게 이렇게 된건지도 얘기해줄 겸… ”
“니가 산다면 나야 좋지만… 키는 군대 가서 컸고 운동해서 몸 만들었다며. ”
“그것도 어떻게 보면 맞긴 맞는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거든. ”
“비하인드 스토리? ”

두 사람은 근처 호프집에 들어가 모둠 소시지에 생맥주를 주문했다. 곧 점원이 팝콘을 내 오자, 두 사람은 팝콘을 하나씩 집어먹었다.

“그러고보니 너 만화 좋아했었는데, 지금도 좋아하냐? ”
“게임도 하고 애니도 봐. 일도 그쪽으로 하고 있고. ”
“정말? 무슨 일 하는데? ”
“N사에서 게임 원화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해. 아까는 일진들이 들으면 성가시게 달라붙을까봐 얘기 안 했지만… ”
“와, 성공했네 재원이. 그나저나 그 비하인드 스토리라는 게 뭐냐? ”
“다른 건 아니고… ”

곧 점원이 시원한 생맥주와 함께 맥주 두 잔을 내왔다. 재원은 두 개의 잔에 맥주를 따른 다음, 한 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중간고사 전날, 공부도 안 되고 해서 근처 공원을 산책하러 갔었어. 밤 산책이 또 묘미가 있잖냐. ”
“그렇지, 나도 가끔 하고 있고… ”
“집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하는데, 되게 이쁜 여자를 봤지 뭐냐. 정말 내가 살면서 본 여자 중에 제일 예뻤어. 흰 얼굴이 가로등 빛을 받아서 빛날 정도였다니까. 머리도 살짝 푸른 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피그말리온이 조각상을 만든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게 아름다운 여자였는데, 한번 말을 붙여볼까 하다가 이런 얼굴로 말을 붙였다간 차일 것 같아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거든. ”
“그랬구만. ”
“시험 칠 때도 계속 그 여자가 생각났어. 그리고 언젠가 그 여자한테 자신감을 갖고 말을 붙여볼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결심했어. ”
“오, 멋진데. ”

언젠가 산책을 하면서, 굉장히 아름다운 여자를 만난 적 있었다. 그리고 자신감이 없었던 그는 결국 그녀에게 말을 붙이지 못했고, 그녀에게 자신감을 갖고 말을 붙일 정도의 외모를 갖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재원의 터닝 포인트였다. 마치 피그말리온의 조각상과도 같은 아름다운 여자를, 다시 한번 더 보고싶어서.

“그래서 시험 끝나고 태준이한테 갔던 거야. 태준이는 운동부니까, 뭔가 운동에 대해 빠삭할 것 같아서. 뭐든지 할테니까 살을 쭉 뺄 수 있는 운동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면서 쓰던 줄넘기가 있다고 줬어. 그래서 그걸 하루에 100번씩 시작했고, 점차 횟수를 늘려가서 500개, 1000개까지도 했어. ”
“쉬는시간에 자리에 없었던 게, 태준이를 만나러 가서 그랬던거야? ”
“응. 그 뒤로도 태준이가 여러가지 가르쳐줘서 아침에 운동하고 등교했지. 그 뒤로 태준이랑 친하게 지내니까 일진들도 괴롭히지 못 했고… 졸업하고 나서도 PT 등록해서 운동하고, 운동 네튜브도 보면서 하고 그랬어. 군대에서도 틈틈이 체력단련도 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키가 작았는데, 어느 순간 바지가 작아져서 보니까 키가 컸더라. ”
“하긴, 군대 가서 키 크는 케이스도 있다더라. 그 얼굴도 그럼 살에 봉인되어 있던 얼굴이 봉인 해제된거구만? ”
“그런 셈이지. 처음에 엄마가 잘생기게 낳았는데 왜 이렇게 됐냐고 했을 때는 안 믿었는데, 진짜였을 줄은 몰랐다. 울 엄마, 지금도 날 이것저것 도와줘서 태준이한테 많이 고마워하고 계셔. ”
“태준이랑은 지금도 연락해? ”
“어, 나 걔가 일하는 헬스클럽 다니고 있어. ”
“욜~ 어딘지 나도 가르쳐줘라. 나중에 한번 가봐야지. ”
“이따 가르쳐줄게. ”

마침 잘 구워진 소시지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두 사람은 안주로 나온 소시지를 하나씩 먹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여자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비슷한 여자를 만났던 분 말로는 사람이 아니라더라. 뭐라던가… 달의 악마라고 불린대. ”
“달의 악마? ”
“어. 나도 자세한 건 모르는데, 남자들을 한눈에 뿅가게 하는 힘이 있대. 그래서 나도 달의 악마에게 반했었나봐. ”
“무서운 힘이네… 그래도 네가 이렇게 바뀐 거 보면 잘 된걸지도 몰라. 왜, 이야기 책에도 보면 악마한테 속아넘어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악마를 속여넘기는 사람도 있잖아. ”
“맞아. 그쪽은 어떨 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감사하고 있어. 어떻게 보면 내가 바뀔 계기를 준 거니까. 내가 그리는 게임 캐릭터가 미형인 것도 그쪽이랑 최대한 비슷하게 그리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고… ”
“그럼 이번에 새로 나온 캐릭터 니가 그린거야? 되게 예쁘다고 굿즈 만들어달라고 난리던데… ”
“그것도 원화 내가 그렸어. 3D 만드시는 분이 일러스트의 그 아름다움을 못 살렸다고 되게 아쉬워했어. 반응 보니까 다른 유저들도 성능도 괜찮고 일러스트도 너무 예쁜데 3D가 너무 아쉽다는 평이 많았고… ”

N사에서 서비스하는 게임에, 새로운 캐릭터가 나왔다. 그는 게임을 잘 하지 않았지만 직장 동료가 그 게임을 하고 있어서 반응 정도는 주워듣고 있었다. 어쩌다 직장 동료가 일러스트가 예쁘다며 보여줘서 한 번 본 적 있었는데, 혼을 불어넣어서 그린 것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직장 동료의 말로는, 일러스트는 정말 아름답고 성능도 괜찮은데, 3D가 좀 아쉽다고 했었다.

“우리 직장 동료가 그 게임 해서, 한번 보여준 적 있었거든. 이번에 벚꽃 스킨인가 나왔는데 예쁘다면서. 그 때 처음 봤는데, 와… 진짜 누군지는 몰라도 혼을 불어넣었구나 싶더라. ”
“짜식, 칭찬 고맙다. ”

재원과 헤어져, 그는 집에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어디선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이 시간에 누구지? ‘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 보니, 살아있는 마네킹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다. 타버린듯한 검은 머리끝이 핏빛으로 붉은, 위압감을 주는 붉은 눈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의 얼굴은 가로등 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한 손에는 편의점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고, 그 안에는 과자와 맥주로 가득 차 있었다.

“……! ”
“엉? ”

한번도 본 적 없는 여자였지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예전에 직장 동료가 보여줬던 일러스트와 닮은 것 같다. 어쩌면 예전에 재원이가 만났던 여자가 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넌 뭐냐? ”

그녀는 마치 꿰뚫어보는 것 같은 눈으로, 이 쪽을 보고 있었다.

“호오, 그러고보니 꽤나 재미있는 녀석을 친구로 두고 있군. ”
“제 친구를 아세요? ”
“알다마다. 유재원 아냐? ”
“……! ”
‘이 사람이 그 악마인가…? ‘

어째서인지 그녀는 재원의 이름까지도 알고 있었다.

“아, 나는 그쪽은 아니고, 그쪽의 쌍둥이. 네 친구 얘기는 동생을 통해서 들었어. ”
“동생…이요? ”
“잘은 모르지만, 그쪽 친구가 내 동생이랑 한번 마주쳤었나봐. 그걸 계기로 열심히 운동해서 긍정적으로 변한 인간은 처음이라 쭉 지켜보고 있었대. ”
“……! ”
“뭐, 그 녀석은 운이 좋은거라고 해 둘까… 이런 케이스가 생각보다 적거든. 내 동생을 만나고 그걸 계기로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사람은 열에 하나정도 나올까 말까 해. ”
“…… ”
“살 것도 다 샀으니 난 이만 돌아가야겠다. 바이바이. ”

그녀는 인사를 건네고, 그대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