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4. 귀향

아침. 사무실로 출근하던 미기야는 우체통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다른 편지들과 달리 밀랍으로 봉해진, 붉은 봉투였다.

‘응? 저승에서 온 편지인가? ‘

봉투에는 사무실 주소가 영문으로 적혀 있었고, 보내는 사람의 주소 역시 영문으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한문이었다.

‘……이거 뭔 말이여… ‘
“아, 미기야. 일찍 나왔네. ”
“아, 안녕하세요. ”

미기야가 봉투를 이리저리 뜯어보고 있을 때, 키츠네가 출근했다. 그 옆에는 쿠로키도 같이 있었다. 미기야는 키츠네에게 봉투를 건넸고, 키츠네와 쿠로키도 봉투 겉면에 쓰인 글자를 읽었다.

“어, 이거 중국에서 온 거네. ”
“네? ”
“주소가 중국이예요. ”
“외국에서 편지가… ”

봉투를 뜯어 보니, 편지도 영어로 쓰여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꼬부랑글씨로군, 미기야는 천천히 편지를 읽었다.

“무슨 내용이야? ”
“이 사람이 중국 연안의 어느 섬을 사서 별장을 지으려고 했는데, 땅을 다지는 것 까지는 성공했지만 건물을 지으려고만 하면 이상한 유령이 나타나서 방해를 한다… 그러니 해결해달라. 이런 얘기인 것 같아요. ”
“아아… 그럼 중국으로 가야 하는 건가? ”
“네. 의뢰를 들어준다면 중국으로 오는 비용과 묵는 비용은 다 대 주겠다네요. 사례도 톡톡히 해 주겠대요. ”
“그럼 콜. ”

얼떨결에 의뢰를 수락한 미기야는, 편지에 적힌 주소로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후, 의뢰인에게서 다시 답장이 왔다. 정말 감사하다며 비행기 티켓과 중국에 도착하면 연락할 연락처를 동봉했다.

“어, 오너. 그건 뭐예요? ”
“중국에서 의뢰가 왔어. ”
“중국에서요? 아아, 키츠네 씨가 얘기했던 그거군요…? ”
“너도 들었구나. 그래서 내일 바로 출국을 해야 하거든. 라우드 씨랑 파이로 씨에게도 전해줘. ”
“네. ”

다음날, 오전에 비행기를 탄 미기야와 일행은 정오가 지났을 무렵 중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은 미기야는, 쪽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다.

“아, 여보세요? 괴담수사대입니다. ”
-안녕하세요, 첸 야오입니다. 의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국에는 잘 도착하셨나요?
“네. 방금 짐 찾아서 공항으로 나왔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나요? ”
-기사가 공항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서 괴담수대에서 왔다고 하면 태워 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

공항 입구로 나가보니, 까만 리무진이 있었다. 미기야가 괴담수사대에서 왔다고 하자, 까만 양복을 입은 남자는 타라는 듯 손짓을 했다. 미기야가 올라타자, 남자는 차에 짐을 싣고 어딘가로 향했다. 리무진이 도착한 곳에는, 평생 돈을 모아도 사기 힘들 정도로 고급스러운 저택이 있었다.

“대박… ”
“별장 지을 정도면 어마어마하다고는 생각했지만… ”
“아무튼 여기 의뢰인이 있는 모양이야. 들어가보자. ”

집 안으로 들어서자, 짧은 머리의 남자가 미기야를 맞았다. 그는 미기야를 안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 차를 내 왔다.

“제가 첸 야오입니다. 몇주 전에 편지를 보냈었죠. ”
“아, 반갑습니다. 괴담수사대의 유키나미 미기야입니다. ”
“의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별장을 하루빨리 지어야 하는데, 게속 유령이 있다는 이유로 공사를 하지 않으려고 해서… 처음에는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정말 믿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어요. 자재가 무너져 있거나, 새로 시멘트를 칠한 바닥에 손자국이 보이고 피가 떨어져 있다거나… ”
“그렇군요… ”
“그리고 급기야는 작업중인 인부가 다치기까지 했습니다. ”
“흐음… 알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그 곳이 좀 외딴 섬이라, 일단 숙소에 짐을 가져다 두고 제 전용기로 함꼐 가시죠. ”

첸과 함께 호텔에 들어간 미기야는 방에 짐을 갖다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첸의 전용기를 타고 첸이 말한 섬으로 날아갔다. 섬은 생각보다 가까웠는지 비행기는 금방 착륙했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미기야는 어딘가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그걸 느낀 건, 미기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파이로는 가윗날을 꺼낼 기세였다.

“파이로 씨… 혹시 당신도 느끼셨나요? ”
“응… 너도 느껴지냐? ”
“네. ”
“해가 될 만한 녀석은 아닌 것 같으니, 금방 해결될거야. 하지만 너는 여기 있는 편이 좋아. 현, 혹시 모르니까 이 녀석하고 같이 있어. ”
“네. ”

파이로는 현에게 첸의 경호를 부탁하고, 미기야와 함꼐 공사 현장까지 갔다. 첸의 말대로, 공사 현장은 터를 닦아놓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진행되지 않았다. 시멘트에 찍힌 발자국과 손자국, 그리고 주변에 떨어진 핏방울이 보였다.

“진짜 발자국이 있네… ”
“그러게요. ”
“분명 녀석이 이 근처에 있을거야. 난 저 쪽으로 들어가서 찾아볼게. 혹시라도 녀석이 나타나면 처리를 하든 결박을 하든 알아서 해. ”
“조심하세요. ”
“너야말로. ”

파이로는 미기야를 뒤로 하고 근처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쯤에 있을텐데… ”

주변에는 잡목들과 잡초, 그리고 식물 덩쿨이 어지럽게 나 있었다. 덩쿨을 헤치고 앞으로 더 가 봤지만, 이렇다 할 단서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묵직한 느낌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이 묵직함…… 분명 뭔가 있어. ‘

곧 그녀는 지금까지 느껴 왔던 묵직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묵직함이라고 생각했던 가운데, 원인을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그녀는 어째서인지 깊은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 울고 있는건가… ‘

곧 그녀는 발걸음을 멈췄다.

“이런 곳에… 왜 이런…… ”

그녀의 눈앞에는, 부자연스럽게 돌로 가려진 무언가가 보였다. 마치 안에 있는 무언가가 나오지 못 하도록 어거지로 막아놓은 것 같았다. 그녀가 지금까지 느껴왔던 원인 모를 슬픔의 근원도 이 곳이었다.

돌무덤인지, 동굴인지 모를 곳 주변에는 텐트같은 것을 지었다가 허문 것 같은 흔적이 보였다. 어느 누구도 오지 않았던 곳인지, 흔적은 비교적 깨끗하게 남아 있었다.

‘흐음…… ‘

-찾아와줬어……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어느 누구도 없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은 자신과 괴담수사대, 그리고 섬의 주인인 첸 뿐이었다.

-날… 여기서 꺼내줘……

“누구지? ”

-도와…… 엄마……

“어디에 있는거지? ”

곧이어 무언가가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꽤 오래 된 복색이었다. 고운 한복을 차려 입고, 머리를 길게 땋아 묶었다. 발에는 꽃신을 신은, 여자의 형태를 한 무언가였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파이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넌 누구지? ”
“찾아와줬구나…… 날… ”
“…… 네가 혹시 별장 공사를 방해한 범인이냐? ”
“응… 하, 하지만 처음부터 방해 할 작정은 아니었어…… 난…… 그저 누군가가 날 찾아주길 바랬어…… ”
“찾아주길 바래……? 그보다 너는, 현대의 인간들과 다르네. 여기에 꽤 오랫동안 있었던 모양이구나. ”
“응…… 나는… ”

파이로와 비슷한 연배인 것 같지만, 그녀는 이 곳에 몇십년도 넘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현대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좋아. 그럼 별장 공사를 방해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너를 찾아달라는 것 때문이었나? 어째서 너를 찾아주길 바랬던거지? ”
“집에… 집에 돌아가고 싶어…… ”
“집에…? 집이 어디지? 너도 한국에 사니? ”
“내 고향을 아는구나! 너도 한국 사람이니? ”
“정확히는 나도 너와 같아. 유령이야. 하지만 지금 한국에 있는 건 맞지… 그러고보니 여기서 알 수 없는 깊은 슬픔을 느꼈어. 너는…… 그 슬픔의 근원이 웬지 너인 것 같아. 그리고 너는 이 안쪽에 있을테지. ”
“…… 맞아… 여기에서 죽었으니까…… ”
“……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말해봐. 너는 왜 여기에서 죽었는지. 그리고 이 돌들은 대체 뭔지. ”

그녀는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의 손길이라곤 닿은 적 없는 황무지와 돌들로 막힌 입구.

“변하지 않았어, 하나도…… ”
“오래 전부터 이랬던 모양이군… ”
“응…… 내 이름은 점례야. 난 열네살에 일본 순사들에 의해 여기로 끌려왔어… 그리고 여기서…… 으악……! ”
“…… ”
“떠올리고 싶지 않아…… 그놈들에게 무슨 짓을 당했는지…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었어… 그 놈들은 나를 유린했어…… 마치 짐승 다루듯이 다뤘다고…… 싫다고 했어… 몇 번이나 저항했지만 도리어 놈들에게 얻어맞았어… 그렇게 하루에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했어…… 죽고싶을 정도로 힘들었어… ”
“느껴져. 네가 느끼고 있을 고통이 느껴졌어… ”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나와 다른 여자들을 여기에 전부 몰아넣은 일본군이 입구를 이렇게 막은거야. 안에는 폭탄을 넣어두고… 나오려고 하면 구둣발로 차서 넣었어. …그리고…… 그리고…… ”
“…… 요컨대 너는, 이 곳에 끌려와서 강제로 녀석들을 상대했던 거구나. 그리고 그 후에 원치 않게 죽임당했지… 그랬던 거야. ”

파이로는 대답 대신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을 치웠다. 그러자 머리를 숙이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낮은 문이 나왔다. 안으로 들어간 그녀가 혼불을 비춰보자, 많은 사람들의 유골이 뒤엉켜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 이런 짐승만도 못한…… ”

그녀는 안에 있던 유골을 수습한 다음, 다시 밖으로 나와 입구를 막고 있던 돌들로 탑을 쌓았다.

“…… ”
“…… 가여워…… 그 혼만이라도 고향으로 꼭 돌아가길 바래. 여기서 힘들었던 만큼, 고통스러웠던 만큼… 다음 생에는 꼭 행복해라. ”
“고마워, 날 찾아줘서… ”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파이로는 미기야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미기야는 그녀를 보자 반가웠던지 달려가 맞았다.

“파이로 씨! 무사하셨군요! 한참을 안 보여서 걱정했어요. ”
“설마 두 번 죽겠냐. 이번 사건은 해결됐으니 돌아가지. ”
“벌써요? ”
“그래. 어떻게 된 일인지는, 의뢰주에게 같이 설명하지. ”
“네. ”

파이로와 미기야는 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아, 오셨군요. ”
“이제 공사를 해도 좋아. 다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
“해야… 할 일…? ”
“따라와. ”

파이로는 미기야와 현과 함께, 첸을 데리고 아까 그 동굴로 갔다. 동굴 앞에는 돌탑이 쌓여 있었다.

“그 유령은 처음부터 너를 방해 할 생각이 없었어. 단지 누군가가 찾아주길 바랬던거였지… 너는 몰랐겠지만, 여기에 도착한 순간부터 묵직한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 이 곳에 가까워질수록 알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었지… ”
“찾아주길… 바랬다고요? ”
“…… 그녀는, 꽃다운 나이에 일본에 의해 끌려와서 여기서 위안부로서 살고 있었어. 놈들에게 유린당하다가, 녀석들이 항복하면서 그녀들을 여기에 밀어넣곤… 돌로 입구를 막고 죽인거지. 그래서 오랫동안 고향에 가는 것은 물론, 시체를 수습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어. ”
“…… ”
“안에 있던 유골들은 대충 수습했어. …네가 해야 할 일은,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여기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명복을 빌어주는 거야… 죽어서라도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고향으로 가고, 이번 생에 억울했던…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만큼 행복해지길 빌어줘. 그러면 그 사람들도 더 이상 너를 방해하진 않을테니까… ”
“그런 일이…… 알겠습니다. ”

미기야는 돌탑 앞에서 말없이 합장을 했다.

며칠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일본에서 사과는 커녕 저런 짓을 했다는 걸 부정하고 있다는 걸 알면… 많이 슬퍼하겠지. ”
“그렇겠죠… ”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싸워야 해. 잘못을 저지르고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는 잘못이니까. …그들이 진심으로 사과하기 전까진 절대, 잊지 말아야겠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
“…… 그런 날이 올까요? ”
“와야 해. 반드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