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II. 괴이사냥꾼 키츠네

「보통 괴이는, 소문을 타고 움직이는 법이지만…
이번 녀석은 달라… 」

“휴우… 여기로군. 겨우 도착했네- ”

보통의 인간과는 확실히 다르다.
일단 인간은 노란색 눈을 가지고 있지 않다. 눈이야 백 번 양보해서 렌즈를 낀 것이라 치더라도, 은빛의 귀와 꼬리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바로 괴이사냥꾼이라고 불리우는, 은여우 키츠네였다.

“이번 괴이는 어떤 녀석일 지 궁금한걸… ”

어제까지만 해도 지내왔던 시골과는 확실히 다른 공기였다. 높이 솟은 건물 하며, 거리를 다니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자동차들. 거기다가 시골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도 많이 보였다.

“그나저나 괴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

키츠네는 무작정 발길을 돌렸다. 어느 곳으로 가야 괴이에 대한 정보를 모을 수 있을까?

한편, A동의 어느 중학교.

“너 그거 알아? 밤 12시에 거울을 보면 이상한 여자가 나타나는데, 그 여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저주받는대. ”
“정말? ”
“응. ”
“에이, 설마. 진짜로 나타나겠어? ”
“정말이래. 옆집 오빠가 봤대. ”

밤 12시에 거울을 보면 나타난다는 이상한 여자의 소문이, 학교 안에 쫙 퍼졌다. 개중에는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느냐고 하는 사람도, 정말인지 확인해보고자 하는 사람도 있었다. 채연도 그 소문이 정말인지 확인해보고자 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연희야, 그 소문 진짜일까? ”
“에이, 설마… ”
“그래도 한번 해 보고 싶다. ”
“그런 거, 함부로 따라하면 안된대. 얼른 학원이나 가자. ”
“에이, 설마 무슨 일이 있으려고… ”

내심 채연은, 한번 소문이 진짜인지 실험해 보고 싶어졌다.
지금은 마침 시험기간이라 밤을 새도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을것이고, 부모님은 자정 전에는 주무신다. 그러니 지금이 딱 좋은 기회라고 채연은 생각했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채연은, 공부를 하는 척 하면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책을 보는 척 하면서 시계를 보고, 소문의 괴이를 부르는 법을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너 그거 정말 해볼거야? 그거 위험하대. ‘
‘뭐, 별 거 있겠어? 어, 벌써 자정 5분 전이네. 나 화장실로 이동함. ‘
‘진짜 해 볼거야? ‘
‘응. 나타나면 사진 찍어서 보여줄게. ‘
‘내일 사지 멀쩡히 나오면 인정해줄게. ‘
‘오냐, 내일 꼭 사지 멀쩡히 나가마. 크크’

시간은 어느덧 11시 59분이었다.
채연은 거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어차피 여기서 몇 초만 지나면 자정이겠지, 소문이 맞다면 누군가가 나타나겠지.

하지만 무작정 거울을 바라보고 있자니 할 일도 없고, 무료했다. 그래서 화장실에 올 때 같이 들고 왔던 과자를 먹고 있을 때였다.

‘!!’

갑자기 등골이 서늘했다.
무언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온 것 같았다.
순간, 채연은 자신이 이걸 실행한 것을 후회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려고, 문자를 보내려고 핸드폰을 집어들었지만 갑자기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어라, 이거 왜 안 되는거지? 분명 아까까지 충전했던건데…? ‘

문득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채연의 뒤로, 낯선 여자의 상이 보였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낯선 여자가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뭐, 뭐, 뭐야? 다, 다, 당신 누구야? ”
“우후후, 아주 좋은 먹잇감이 있네? ”
“설마 당신이 소문의 그…? ”
“…소문? 무슨 소문? ”
“자정에 거울을 보면 나타난다는…… 당신이 그 괴이잖아요. 아니예요? ”
“우후후, 맞아. 뭐, 꼭 거울이 아니어도 상관 없지만… ”
“…… 그럼 원하는 게 뭐예요? ”
“원하는 거? ”

낯선 여자는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채연을 바라봤다.

“글쎄… 원하는 게 없는데? ”
“…… ”

그리고 낯선 여자는 사라졌다.
문득 핸드폰을 켜 보니,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별 거 아니네. 뭐… 그럼 이만 자 볼까… ‘

하지만 그것은 채연의 착각이었다.

한편, 미기야는 사무실로 출근했다가 잠든 키츠네를 발견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인간은 아닌 것 같았지만, 밖에서 자면 위험했기 떄문에 미기야는 키츠네를 깨웠다.

“저기요? 저기요. 이런 데서 주무시면 위험해요. ”
“으음… 어라, 넌 누구지…? ”
“저는 괴담수사대의 오너, 유키나미 미기야라고 합니다. 일단 사무실로 들어가요, 밖에서 자면 위험해요. ”
“하암… 뭐, 그렇다면야… ”

미기야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선 키츠네는, 주변을 둘러봤다. 밤새 야근이라도 한 모양인지, 사무실이 상당히 너저분했다.

“당신은 누구세요? 왜 이런 곳에서 주무시고 계셨던건가요? ”
“난 키츠네, 괴이 사냥꾼이지. ”
“괴이…? 그게 뭔가요…? ”
“쉽게 설명하자면, 여러가지 기현상을 일으키는 녀석들이지. 인간과 귀신의 중간 단계랄까… ”
“음… ”
“시골보다는 아무래도 도시에 이것저것 무언가도 많고, 무엇보다 인간들이 많다보면 괴이도 자연스레 많아지는 법이거든. 그래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괴이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그것들을 퇴치하고 있어. ”
“그렇군요… ”

미기야는 그제서야 키츠네의 머리에 달린 귀를 발견했다. 선명한 은빛 털로 뒤덮인 귀는, 한눈에 봐도 인간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괴담수사대는 뭐야? ”
“귀신이나 오컬트 쪽 일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을 수사하는 곳이죠. 그쪽이 하는 일하고 대충은 비슷해요. ”
“도시에는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도 있군. ”
“모든 동네에 다 있는 건 아니예요. ”
“그나저나, 이 주변의 괴이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뭐 알고 있는 거라던가, 소문같은 거 있어? ”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그 쪽으로 빠삭한 분이 계셨는데, 지금 잠깐 명계에 내려가셔서… ”

아쉽게 됐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만날 수 있었을텐데.
키츠네는 입맛을 쩝, 다셨다.

“아쉽게 됐네… ”
“동감입니다만. ”

한편, 연희는 등교하자마자 채연의 자리로 갔다. 어제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것과 달리, 채연은 잠을 못 잔 탓인지 축 늘어져 있었다. 연희가 불러도 대답도 없고, 그냥 한 곳만 쭉 응시할 뿐이었다.

“너 어디 아프냐? ”
“…… ”
“야, 채연아. ”
“…… ”
“어이. 채연아? 야! 대답 좀 해봐! ”

연희가 어깨를 흔들어봤지만, 채연은 반응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빈 껍데기만을 갖다 둔 것 같았다.

“얘들아, 큰일났어! 채연이가 반응이 없어! ”
“뭐? 자는 거 아냐? ”
“그게 아냐, 내가 어깨를 흔들기까지 했는데도 대답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는단말야! ”
“!!”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어쩌지…?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
“저, 사실… ”
“??”
“채연이가, 그 소문… 해 보겠다고 어제 자정쯤에 톡을 했었거든…… 그런데 그 뒤로 답장도 없고…… 이거 봐봐. ”

재희가 핸드폰을 열어, 어제 채연과 나눴던 톡을 보여줬다. 자정 전에 했던 톡은 읽었는지 읽었다는 표시가 있었지만, 그 후로는 읽었다는 표시가 하나도 없었다.

“!!”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우리 학교 끝나고, 괴담수사대로 한번 가 보자. ”
“그러자. ”

재희와 연희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채연을 데리고 부랴부랴 괴담수사대로 갔다. 오르페우스 사건 이후로 괴담수사대는 꽤 이름이 알려져서, 위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다. 덕분에 두 사람은 괴담수사대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다 왔다… 여기가 괴담수사대인가봐. ”
“어서 올라가자. ”
“응. ”

계단을 올라간 연희가 사무실 문을 열자, 재희가 채연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문이 열리자 종소리가 들리고 안에서 현이 나왔다.

“저, 여기가 괴담수사대인가요? ”
“네. 무슨 일로 오셨나요? ”
“도와주세요! 제 친구가… 제 친구가 이상해요! ”
“진정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얘기해주세요. 친구분은 일단 이 쪽으로… ”

연희와 재희는 현이 가리킨 대로 소파에 채연을 눕혔다. 그리고 현에게 최근 돌기 시작한 괴이의 소문이며, 채연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를 설명했다.

“괴이라… 미안하지만 여기는 괴이와 관련된 일은 맡지 않아요. ”
“그럼 어쩌죠… ”
“아, 오늘 아침에 오너가 괴이 사냥꾼을 만났다고 했어요. 지금 둘이 같이 나가 있는 모양이니, 한번 연락해볼게요. ”

현은 미기야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급한 일이 있으니 빨리 돌아오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미기야는 키츠네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키츠네는, 소파에 누워있는 채연을 발견했다.

“현! 무슨 일이야? ”
“이 학생들이 의뢰할 게 있는데, 괴이와 관련된 일이예요. ”
“괴이? 무슨 일인데? ”
“그러니까… ”

현은 키츠네와 미기야에게 모든 일을 설명했다. 그리고 키츠네는 설명을 듣자마자 주머니에서 대통을 꺼내, 정수리에 침을 꽂았다.

“됐다. 이렇게 하면 일단 시간은 벌 수 있을거야. 그나저나 이 녀석, 꽤 강력한 괴이가 들러붙었는데…? ”
“강력한 괴이…? ”
“비춤의 괴이라고 하지. 거울이나 다른 무언가에 모습을 나타내며, 거울에 비춘 상을 잡아먹음으로서 존재를 없애버려. 괴이 중에서도 상당히 강력한 녀석이라, 어떤 사냥꾼들도 쉽게 잡지 못 했어. ”
“흐음…… ”
“그나저나 이런 소문이 돌 정도라니, 역시 도시는 다른걸… ”
“지금 거기에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요… ”
“알아. 그래도 일단 침은 꽂았으니, 영혼이 걸려서 빼 가는데 애 좀 먹을거야. 일단 거울 하나만 줘 봐. ”
“네. ”

현은 얼마 전 새로 산 작은 손거울을 하나 건넸다. 키츠네는 그 거울을 앞뒤로 천천히 뜯어보더니, 미기야에게 강한 영을 붙잡을 떄 쓰는 부적을 가져와 달라고 했다.

그리고 미기야가 부적을 써 오자, 키츠네는 그 부적을 거울의 뒷면에 붙이고 채연의 얼굴을 향해 비췄다. 그러자, 채연의 머리맡에 있던 낯선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무언가를 붙잡고, 잘 안 빠지는 지 이리저리 돌려보며 끙끙거리고 있었다.

“역시, 네 녀석의 짓이었구나. 애시 리스트로베라. ”
“우후후… 너, 괴이사냥꾼이지? 나에 대해 단번에 알아맞추는 건, 괴이사냥꾼밖에 없거든… ”
“도대체 이 인간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
“별 거 아냐. ”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독을 쏠테다. ”
“알았어, 알았어- 가르쳐줄게. 어차피 그냥 사소한 거였지만- ”

애시는 붙잡았던 무언가를 놓았다. 키츠네와 달리, 그녀는 상당히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선명하게 붉은 눈이,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아이, 먹잇감으로 없애버리기에는 꽤 재밌는 녀석이더라, 당돌하고… 날 보자마자 당신이 소문의 그 괴이냐고 묻던걸. 다른 인간들하고는 달라… 역시, 사춘기라서 그런가? ”
“그러니까 뭘 요구했느냐 그 말이다. ”
“우후후- 그냥, 나랑 영원히 함께 해 달라고… 그런데, 자기는 몸이 있어서 안 되겠다고 하길래 영혼을 빼 가려던 것 뿐이었는걸? ”
“…… ”
“전혀 안 사소하잖아… ”
“우후후, 그냥 내가 질려서 떠나갈때까지만 나랑 있으면 되는거였는데…? ”
“역시 너답구만… ”

키츠네는 애시의 손을 탁, 쳐 그녀가 붙잡았던 것을 놓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제법이라는 듯 키츠네를 쳐다보곤, 미기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라, 너… 귀엽게 생겼네~ ”
“잠깐, 이 쪽으로 다가오지 말아요! ”
“우후후, 해치지 않을게~ ”

재밌다는 듯 미기야에게 다가간 그녀는, 하얀 손으로 뺨을 가만히 쓸어봤다. 그리고 이내 목을 꼭 끌어안고 품에 얼굴을 폭 파묻었다. 미기야는 애시가 뺨을 쓸어 본 순간부터 거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키츠네 씨, 이거 어떻게 못 하나요…? ”
“미안… 상급 괴이는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리고 지금 저 상황에서 애시를 건드려버리면, 여기 있는 모든 인간들이 위험해. ”
“…… ”
“따뜻해… ”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았던 현의 생각과 달리, 애시는 금방 미기야에게서 떨어졌다. 애시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쉰 미기야는, 채연 쪽을 바라봤다.

“하아, 살았다… 그나저나 저 아이는 이제 괜찮은건가요? ”
“응. 아직 영혼이 원전히 빠져나가지는 못 한 것 같고… 반혼침 한 방이면 금방 돌아올거야. ”
“휴우, 다행이네요… ”

키츠네가 대통에서 침을 꺼내 채연의 머리에 놓자, 채연이 눈을 떴다.

“어…? 여긴…… ”
“야, 김채연! 너 괜찮냐? ”
“으…응…? 무슨 일이…? ”
“괴이에게 당했었던 것 뿐이야. 영혼을 털릴 뻔 했다고- 다음부터는 조심해. ”
“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지 알아? 문자도 안 읽고, 연희가 꺠웠는데 반응도 없고! ”
“그… 그랬어? ”
“그래! 우리가 너 여기까지 데려오느라 죽을 뻔 했어! ”
“히히… 미안, 대신 내가 떡볶이 산다! ”
“떡볶이 갖고 되겠냐? 분식이란 분식은 다 거덜낼거다. ”

재희와 채연이 투닥거리는 동안, 연희는 키츠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친구가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다음부터는 소문같은 데 휘말리면 안 돼, 괴이는 소문에 휘말리길 좋아하는 아이들을 아주 좋아하거든. ”
“네, 알겠습니다.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
“다음부턴 조심해~ ”

세 사람을 보내고, 미기야는 아까 애시를 비췄던 거울을 집어들었다. 거울 뒷면에 붙여 둔 부적이 까맣게 타 버렸다.

“어라, 부적이 타 버렸네요… 정말 강한 괴이였나봐요. ”
“우후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네. ”
“!!”

어디선가 애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어느새 미기야의 등 뒤에 나타나, 목을 끌어안고 턱을 어깨에 살짝 걸친 채 거울을 보고 있었다.

“뭐야, 너 아직 안 갔냐? ”
“우후후, 진정해. 해치지 않을테니까- ”
“히익- 저, 저리 떨어지면 안되나요? ”
“이 부적이 탄 이유를 가르쳐줄까? ”
“……? ”
“난 어떠한 부적으로도 통제할 수 없어. 나를 봉인하려고 거울 뒤에 붙여둔 부적이라는 부적들은 전부 이렇게 돼 버렸거든. 뭐… 그래도 반쯤 남았다는 데 의의를 두는 게 좋으려나, 부적의 힘이 꽤 강해서 나도 빠져나오는 데 애를 좀 먹었으니까 말이야… ”

맙소사, 부적으로도 통제가 안 된다면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거나 말거나, 애시는 미기야의 볼을 쓸어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너, 마음에 들었어. 우후후- ”
“이번 사건은 다 좋은데, 이 분이 여기 계신 게 나한테는 새드엔딩인 것 같네요… ”
“너무 그러지 마, 심심했단말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