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III-6. 사랑의 맛

엘 푸르가토에 두 명의 여자가 들어왔다. 한명은 굉장히 침울해보였고, 한명은 그런 한 명을 달래주고 있었다. 칵테일을 마시자, 술기운에 울음이 터진 여자는 ‘이게 도대체 몇 번째냐’면서 울고 있었다.

“야… 진정해… 여기 다른 손님들도 있잖아… ”
“그치만… 그치만… 흐어엉… 대체 이번이 몇 번째냐고… 그놈 또 나 몰래 소개팅 하다가 걸렸어… 으앙-”
“아, 알겠어, 알겠으니까 진정해, 여기 다른 손님들도 계시잖아… ”

어찌나 서럽게 울고 있었는지, 그녀의 울음소리가 바 안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런 그녀를 어떻게든 달래보려고 했지만 술기운 탓인지, 서러움 탓인지 그녀는 더욱더 서럽게 울고 있었다.

“젊은 아가씨가 무슨 일로 서럽게 울고 있어? ”
“죄송합니다… 얘가 취했나봐요… ”
“왜, 남자친구가 사고쳤어? ”
“사실은… ”

여자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여자가 먼저 고백해서 사귀게 된 두 사람은 처음에는 알콩달콩 예쁜 사랑을 했지만, 그 사랑은 한달도 채 못 가서 깨지고 말았다. 여자친구 몰래 클럽에 놀러 가다가 걸리기도 하고, 클럽에서 만난 여자와 러브러브 모드로 나오다가 걸리기도 하고,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비밀로 하고 다른 여자랑 소개팅을 하다가 그 광경을 여자친구에게 걸려 상대 여자는 물론 소개해 준 친구에게 욕을 대차게 얻어먹기도 했다.

그럼에도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남자친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여자를 만나러 다녔다. 오늘도 다른 여자와 소개팅을 하다가 여자에게 딱 걸렸고, 현장을 본 여자는 이제 됐다면서 그와 함께 맞췄던 커플링을 빼서 헤어지자는 말과 함께 주고 왔다.

“와, 그거 정말 답이 없네. 사탄도 이렇게는 안할 듯? ”
“제 말이요… ”
“그런데 왜 지금까지 헤어지지도 않고 끙끙 앓으면서 사귀고 있었어? ”
“그럼에도 남자친구를 너무 사랑했거든요… 주변에서 이건 아니라는데도 당최 들어먹지를 않아요. 오늘 헤어지자고 하고, 또 남자친구가 사과하면 받아줄까봐 걱정이예요… 몇 번이나 이런 식이었거든요. ”
“사랑의 힘은 무시무시한 법이지. 하지만 사랑에 빠져있을 때일수록,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 법이야. 맛있는 칵테일을 만든답시고 쓸데없이 베이스가 되는 술을 많이 섞었다간,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맛만 나는것처럼 말이지. ”

마스터는 품 안에서 명함을 두 장 꺼내, 두 사람에게 건넸다. 하얀 명함에는 ‘쇼콜라타’라는 글자가, 마치 초콜렛으로 쓴 것처럼 쓰여 있었다. 명함 뒷면에는 가게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명함을 받은 여자의 눈은 깜짝 놀라서 휘둥그레해졌다.

“여기 되게 유명한 가게 아니예요? 쇼콜라티에가 5성급 호텔에서 일하다가 차린거라고 들었는데…? ”
“아, 여기 알고 있었구나? 여기, 내 친구가 하는 가게야. 5성급 호텔에서 일하던 쇼콜라티에라서, 실력은 확실하지. 씁쓸한 사랑의 맛을 본 친구에게, 달콤한 사랑의 맛을 보여줄 수 있을거야. 친구랑 한번 가 봐. ”

마스터에게 명함을 받은 여자는, 다음날 친구에게 연락했다. 술에 취해 서러워하는 동안 남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엄청 왔는지, 일어나자마자 하소연을 하는 여자를 진정시킨 그녀는 쇼콜라타에 가자며 여자를 불렀다.

“쇼콜라타? 거기 가자고? ”
“엘 푸르가토의 마스터가 명함을 줬거든. 너 어제 엄청 서럽게 울었다고, 딱해보여서 주셨나봐. ”
“아… ”
“뭐… 그래… 미진아… 네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일단 그놈 연락은 더 이상 받지 마. 한 번 헤어지기로 마음먹었으면, 그걸로 끝이지. 너 언제까지 그렇게 맘고생 할래? ”
“…… ”
“일단 가자. 너네 집으로 갈게. ”

미진을 데리고 명함에 그려진 지도로 가자, 영어로 ‘쇼콜라타’라고 쓰인 간판이 보였다. 간판은 마치 초콜렛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믿어도 될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화려했다. 간판뿐 아니라 문 장식이나 창문 등, 인테리어가 전부 초콜렛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한창 작업중인 모양인지, 가게 안에 달달한 초콜렛 향이 감돌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쇼콜라타입니다. ”

가게 안에서 나온 것은 SNS에서 보았던 수수께끼의 쇼콜라티에였다. 그녀는 달콤해보이는 하얗고 긴 머리를 뒤로 단정하게 묶고, 부드러운 미소로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 다음 방금 만든 초콜렛들을 진열대에 하나하나 진열하고 있었다.

“저, 엘 푸르가토의 마스터가 소개해줘서 왔는데… 이 친구가 어제 실연을 했거든요. 여기로 가서 달콤한 사랑의 맛을 보여주라고 하던데… ”
“실연을요? 어쩌다가? ”
“얘, 남자친구가 정말 쓰레기였어요. ”

여자가 자초지종을 설명할 동안, 쇼콜라티에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떻게 남자친구가 미진을 괴롭혔고, 어제는 어떻게 헤어지게 됐으며, 그 날 엘 푸르가토에서 마스터가 어떤 얘기를 했는지까지.

“사랑의 힘은 강력하답니다. 그리고 강력한 사랑의 힘이 때로는 이성을 마비시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 하게 하기도 해요. 그렇기때문에 씁쓸한 맛인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 달콤한 맛이 나리라 기대하면서 포기하지 못 하는 것이죠. ”

쇼콜라티에는 작업실로 가, 사각 용기에 포장된 두 개의 초콜렛을 가져왔다. 한 초콜렛은 분홍색이었고, 다른 초콜렛은 갈색이었지만 두 초콜렛 모두 화살이 꽂힌 하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들은 큐피드의 화살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
“책에서 봤어요. 누구든 맞으면 사랑에 빠지는 화살이죠? ”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큐피드의 화살은 두 가지가 있는데, 황금으로 만든 화살은 맞으면 사랑에 빠지지만 납으로 만든 화살은 맞으면 그 사람을 싫어하게 돼요. ”

쇼콜라티에는 분홍색 초콜렛을 미진에게 건넸다.

“씁쓸한 사랑을 맛본 그대에게는 달콤한 사랑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초콜렛을 드릴게요. ”

분홍색 초콜렛을 한 집 물자, 딸기초콜렛 특유의 달달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느껴졌다. 가운데에는 화이트초코로 층을 만들어서, 딸기초콜렛을 씹다 보면 화이트초코의 맛이 느껴졌다.

“마… 맛있어… ”
“두 사람이 사랑을 약속하고 서로를 배반하지 않는다면, 사랑은 이토록 달콤한 맛이 난답니다. ”

쇼콜라티에는 다른 하나의 초콜렛을 미진에게 건네며, 이 초콜렛은 이별 선물로 남자친구에게 전해주라는 맛을 덧붙였다. 그렇게만 하면 씁쓸한 사랑을 맛보게 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거라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무조건 참기보다는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의사결정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왜냐하면 심사숙고 해야 할 결정을 기분때문에 얼떨결에 정해버리게 되거든요. 소위 말하는 예스맨이 되는거죠. 사랑도 마찬가지랍니다. 사랑에 빠져있을때일수록 사랑이 판단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신중해야 해요. ”
“네, 명심할게요. ”

쇼콜라타를 나온 미진은 친구와 함께 남자친구가 줬던 선물들을 차곡차곡 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쇼콜라타에서 받아 온 초콜렛을 박스에 동봉하고, 그대로 남자친구의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남자친구의 번호를 그대로 차단한 미진은, 친구와 함께 하루종일 자취방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드라마를 봤다.

“이거 정말 재밌다. 다음 시즌은 언제 나온대? ”
“조만간 나온다는 얘기는 있더라. ”

초콜렛의 힘때문인지, 미진은 그녀에게 잘못했다며 매달리는 남자친구를 단호하게 끊어낼 수 있었다. 예전같았으면 남자친구가 무릎을 꿇고 빌고 있으면 쩔쩔매면서 받아줄테니 그만 하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단호했다. 남자친구가 다시는 안 그러겠다며 집까지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빌었지만, 그녀는 그런 남자친구가 보기 싫다는 듯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보다못한 이웃들이 경찰에 신고해서 쫓아내는 게 일상이었다.

이런 일이 매일 일어나자 집을 이사하게 되었다. 이웃들도 저 남자 포기하긴 글렀으니까 이사를 가라고 해 줬고, 남자친구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미진이 오면 뒷문으로 가라고 알려주거나 대신 쫓아내주었다. 미진의 사정을 들은 집주인도 계약기간은 석 달정도 남았지만 다른 집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 이사는 무사히 끝났다.

“안녕하세요~ 옆집에 이사 왔습니다. ”
“아, 안녕하세요. ”

이사를 마친 미진은 옆집에 인사차 갔다가, 옆집 총각에게서 연락처를 줄 수 없겠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옆집 총각은 전 남자친구처럼 꽃미남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푸근하고 듬직해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원래 초면에 연락처를 묻거나 하는 성격이 아닌데 미진같은 사람이 이상형이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주인집 아주머니 역시 옆집 총각을 잘 알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아침부터 마당은 물론 집 앞의 눈을 먼저 치우기도 하고, 분리수거도 솔선해서 하며, 집에서 명절 음식을 해 주면 혼자 사는 주인집 아주머니에게도 종종 나눠주곤 했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옆집 총각이 테레비에 나오는 연예인같이 잘생긴 건 아니지만 정말 진국이라면서, 딸이 미혼이었다면 사위로 맞고 싶을 정도라고도 했다. 옆집 총각의 덩치가 좀 있다보니 가끔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던 학생들이 대문 밖으로 나온 그를 보고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초면에 대뜸 연락처를 묻는 그를 보며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가끔 마주칠때마다 보이는 모습들을 보니 주인집 아주머니에게서 들었던 그대로 그는 진국이었다. 전구가 나가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고 올 때 도와준 적도 있었고, 이사간 집을 알아낼 요량으로 퇴근하던 미진을 뒤따라오던 도현을 발견하고 미진의 오빠인 척 연기하면서 도현을 쫓아준 적도 있었다. 도현을 쫓아줬을 때, 그 일을 계기로 점점 친해진 두 사람은 남자친구의 고백으로 연인 사이가 되었다.

남자친구는 전 남자친구와 달랐다. 연락이 잘 안되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도 남자친구와 비슷하게 건실한 청년들이었다. 전 남자친구와 달리 여자인 친구가 있어도 유사연애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친구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걸 알고 상대방이 더 조심하게 되어서, 가끔 데이트 할 때 조언을 해 주는 정도였다. 거기다가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는 전 남자친구와 달리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숨기지도 않았다.

“올~ 미진쓰~ 얼굴 쫙 폈다? ”
“응, 이게 사랑의 달콤한 맛이구나 싶어. 요즘 진짜 남자친구 덕분에 행복해. 도현이랑 사귈때처럼 하루하루 맘 졸일 필요도 없고… ”
“그래? ”
“응. 친구 만나긴 한데 대부분 동성친구고, 이성친구들은 여자친구 생겼다고 하니까 거리를 두더래. 나도 몇 번 만나봤는데, 데이트 맛집 이런거랑 데이트 코스같은거 알려줘서 가봤어. ”
“예쁘게 잘 사귀는게 보기 좋다, 야. 참, 너 도현이 얘기 알아? ”
“도현이? 아니, 나 그때 차단하고 차단 한번도 안 풀어서 몰라. ”
“내가 걔네 친구 중 한명이랑 아는 사이인데, 이번에 그 친구 전해서 들었더니 걔 완전 망했대. ”
“응? 왜? ”

도현은 미진이 사귀고 있었을 때도 미진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진과 연애관계를 지속해 온 이유는, 만날때마다 밥이나 커피값은 물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팝콘이나 영화표까지 전부 미진이 냈기 때문이었다. 즉, 그는 만나면 돈을 쓸 일이 없기 때문에 미진을 만났던 거였지만 미진의 외모는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뒤로는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니가 도현이한테 헤어지자고 할 때 소개팅 중이었다고 했잖아? 그 여자가 알아버린거야, 도현이가 여자친구가 있는데 없는 척 하고 소개팅한 걸. ”

여자친구가 있는 걸 숨기고 소개팅을 했다는 걸 알게 된 여자는 불같이 화를 냈다. 미진이 돌아가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어안이 벙벙한 도현의 따귀를 한 대 올려붙이고 돌아가면서 소개팅을 주선했던 친구에게까지 불같이 화를 냈고, 도현에게 소개팅을 주선해줬던 사람은 도현의 직장 동료였다.

덕분에 도현의 친구들은 물론 도현의 직장 동료들까지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소개팅을 한 것을 알아버렸고, 남자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양다리를 걸치려고 한 폐기물급 쓰레기가 되었다. 이는 여사원들한테도 퍼져서, 여사원들 사이에서도 한 트럭 갖다줘도 사양할 폐급 쓰레기가 되었다. 평소에는 여사원들에게도 심심하면 들이대던 도현의 행실까지 겹쳐서, 사원들 사이에서는 친해지면 안 되는 사람으로 찍혔다.

“회사에 소문 다 퍼져서 걔 완전 쓰레기 됐어. 그래서 소개팅은 소개팅대로 안 들어오고, 직장에서 평판도 일은 잘하는데 인성은 쓰레기인 사람이 됐으니 이직을 한 거지. ”

이직한 직장에서도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도현은 여사원들에게 들이대기 바빴다. 하지만 새 직장에도 도현의 행실이 퍼져있어서 여사원들은 다들 바쁘다고 일축하며 도현을 피하기 바빴다. 그때는 이미 미진과 헤어진 상태였지만, 다른 여자와 사귄다고 해도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숨기고 소개팅을 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여자를 만나러 이곳저곳 다니던 도현은 헌팅술집에 갔다가 이상형인 여성을 만났다. 도현은 바로 여성에게 다가가 합석을 제안했고, 여성도 도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흔쾌히 허락했다. 두 사람이 술을 주거니받거니 하는 동안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그대로 두 사람은 헌팅술집을 나서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근데, 걔가 보냈던 여자가 알고보니 약혼자가 있었던거야. 심지어 상견례도 마쳤대. ”
“그 정도면 결혼 직전 아냐? ”
“그치, 거의 결혼 직전이지. ”
“근데 약혼자 있다고 얘기는 안 했대? ”
“하긴 했는데… 그 남자는 돈때문에 약혼한거라고, 내일이라도 파혼하고 너랑 사귈거다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나봐. ”

두 사람이 뜨거운 밤을 보내고 며칠 후, 도현은 고소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헌팅술집에서 만났던 여자에게는 결혼을 앞둔 약혼자가 있었고, 여자는 그것을 숨기고 헌팅술집에서 도현을 만나 뜨거운 밤을 보냈다.

당연히 여기에 분노한 여자의 약혼자는 약혼을 파기했다. 그리고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든 모든 비용을 여자에게 청구함과 동시에 위자료를 청구했고, 함께 뜨거운 밤을 보낸 도현에게도 위자료를 청구했다.

“그래도 이직해서 직장이 있었으면 몇달 고생하면 갚긴 하겠네. ”
“아니, 그게 그렇지도 않아. 그 약혼자가 도현이네 새 직장 부장님 아들이거든. ”
“일이 꼬이려면 그렇게도 꼬이네? ”
“누가 아니래? ”

하필이면 그 약혼자가 도현이 지금 다니는 회사 부장의 아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새 직장에도 약혼자가 있는 여자랑 하룻밤을 보낸 도현의 소뮨이 퍼졌다. 새 회사에서도 여사원들에게 대시를 멈추지 않던 행실괴 더불어 부장 아들의 약혼을 망쳤다는 소문이 퍼지자, 도현은 더 이상 회사에서 일을 할 수가 없어 퇴사해야만 했다.

빠져나갈 돈은 남의 사정을 봐 주지 않는다. 핸드폰 요금도, 공과금도 도현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한 것과 상관없이 나가야 하는 돈이었다. 거기다가 위자료까지 물어야 해서, 도현은 하루빨리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부랴부랴 이직처를 알아봤지만, 평소 행실 탓에 직장을 금방 구할 수도 없어 일용직이라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너, 도현이 전화 차단 안 했으면 아마 너한테도 돈 빌려달라고 연락 왔을걸? 들어보니까 친구들한테도 돈 빌려달라고 연락깨나 하는 중인 것 같던데… 몇 명은 하도 연락이 와서 차단했대. 너 그렇게 막 대하더니, 벌 받은거지 뭘. ”

미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만날때마다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씁쓸한 사랑을 선사했던 도현은, 제 버릇 개 못 준 결과 미진에게 선사했던 것 이상으로 씁쓸한 결과를 맛보게 되었다. 이별 선물로 줬던 초콜렛의 힘이었는지, 미진과 헤어진 후 도현은 꽃미남인 얼굴을 가졌음에도 어떤 여자와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 했다는 이야기는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