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8. Avaritia(상)

그녀는 아름답다.
그녀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래서 좋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녀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가질 수 없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XX 대학교에서 3학년 선배가 1학년 후배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범인은… ”

아침부터 TV에서는 흉흉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학교에서 선후배간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범인은 3학년 선배였다.

“또 살인사건인가… ”
“선후배간 살인사건이라니… 쯧. 말세구나, 말세야… 그나저나 미기야, 병원에서는 뭐라더냐? ”
“골절된 부분은 없대요. 물리치료만 꾸준히 받으면 나을거에요. ”
“다행이군. ”

크리멘과 처음 조우했을 떄의 일로 인해, 미기야는 허리에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도 골절은 아니었지만 근육통이 꽤 심했는지 한동안은 파스를 붙이고 다녔다.

“그나저나 선후배간에 어째서 살인사건이 일어났을까요…? ”
“음… 그러게. …응? 웬 전화지? ”

살인 사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애쉬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
‘크크크… 네녀석, 역시 여기에 둥지 틀고 사는 모양이군. ‘
“이 목소리… 너, 크리멘이지? ”
‘정답. 나다, 크리멘. 그나저나 천하의 애쉬가 여기에 둥지를 틀고 살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야. 너, 지금 괴담수사대에 있지? ‘

발신인은 크리멘이었다.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아낸거지? 그보다 여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긴 하다만… 본론이 뭐니? ”
‘그냥 안부인사나 할 겸 전화했다. 크크~ 참, 이번 살인사건 말인데… ‘
“이번…? 설마 그… 캠퍼스 살인사건 말하는거야? ”
‘응. ‘
“그게 왜? ”
‘지금 범인이라고 나온 녀석, 범인 아냐. 진범은 따로 있어. ‘
“진범이 따로 있다고? ”
‘응. 경찰에서 취조중이긴 하지만, 아마 앞뒤가 심하게 안 맞는 진술에 뭔가 어긋난 정황까지… 그래서 곧 풀려날거야. 그리고, 그 녀석은 죄의 표식이 없다고. ‘
“그런가… ”

애쉬는 전화를 끊었다.

“누구냐? ”
“크리멘. …이번 살인사건, 진범이 따로 있다네… ”
“네? 진범이 따로 있다고요? ”
“응. 그 녀석은 죄를 지은 사람의 이마에 있는 죄의 표식이라는 걸 보는데, 이번 사건의 진범이라고 잡힌 녀석에게서는 그 표식이 보이지 않았나봐. ”
“음…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그런거면 골치아파지겠군. ”
“뭐, 어찌됐건… 선후배간에 왜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상황이 온 걸까요? ”
“모르지, 나야… ”

이번 살인사건이 상당히 화제였는지, 연신 뉴스에서는 그 살인사건에 대해 다루었다. 며칠이 지나다, 그 사건에 대해서라면 어린아이라도 알 정도였다.

“아니… 솔직히 말해 봐. 네가 죽인 게 맞아? 지금 앞뒤가 하나도 안 맞잖아! ”
“저기… 그러니까… ”

태훈은 현장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영현을 체포해 취조실에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하지만 영현이 대답을 하면 할 수록 앞뒤가 안 맞았다. 거기다가 영현이 그 시간에 현장에 없었다는 증거도 잡혔고, 무엇보다 영현의 태도부터 이것저것, 여러가지가 수상쩍었다.

“휴우… ”
“얌마, 점심 한 끼 떄리자. ”
“벌써 그렇게 됐나? ”

태훈은 한숨을 푹, 쉬고 취조실을 나왔다. 밖으로 간 정훈과 태훈은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 휴지통 엽에서 담배 한 개비씩을 사이 좋게 태웠다.

“누가 보면 취조실 전세 낸 줄 알겠던데. ”
“뭐, 그럴 수 밖에… 애초에 정황도 안 맞고, 용의자라고 체포한 녀석은 알리바이까지 잡혔고… 뭔가 안 맞아. 무조건 자기가 범인이라는데 그것도 수상하고… 하여튼 여러가지로 수상해. ”
“그러냐? 흐음… 아예 원점부터 다시 수사해야 하나… ”

점심을 먹은 두 사람은 괴담수사대를 찾았다. 사무실에서는 마침 점심을 먹고 있었는지 미기야가 있었다.

“아, 형사님. 무슨 일로 오셨어요? ”
“오늘은 제가 아니라 이 쪽이 볼일이 있답니다. ”
“아, 그러시군요. 저는 유키나미 미기야입니다. ”
“한태훈입니다. 정훈이 형 동생이죠. ”
“아, 두분이 형제예요? ”
“네. ”
“하하, 그렇군요.. ”

정훈과 달리 태훈은 어딘가 약해보이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다부진 구석이 있어 보였다. 정훈과 태훈을 자리에 앉게 한 미기야는, 그릇을 대충 정리하고 태훈과 마주 앉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나요? ”
“요번 살인사건 때문에 왔습니다. ”
“요번 살인사건이라면… 캠퍼스 살인사건이요? ”
“아, 그게 그렇게 불리는 모양이네요… 네, 그 사건이요. 아무래도 그 사건, 진범이 따로 있는 것 같아서요. ”
“진범이요? 현장에서 잡았다는 범인이 진범이 아니란 말씀이신가요? ”
“네. 그 녀석, 심지어 그 시간에 현장에 없었어요. 증거까지 있고, 그 녀석의 진술과 여러가지가 앞뒤가 맞지 않아요. 그런데 그 녀석은 끝까지 자기가 범인이라고 우기더랍니다… ”
“자기가 범인이라고 우겼다고요…? ”

딸랑,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갔던 파이로가 돌아왔다. 파이로의 뒤에는 크리멘도 있었다.

“손님이 오셨네. ”
“아, 파이로 씨. …크리멘 씨도 오셨네요? ”
“놀러 왔어. ”
“근데 무슨 일이야? ”
“그 살인 사건이요. 크리멘 씨 말대로 진범이 따로 있는 모양이예요. ”
“그걸 봐. 표식이 없었다니까? 그런데 자기가 범인이라고 부득부득 우기고 있지? ”
“그걸 어떻게 아세요? ”
“먹어치울까 해서 갔다가 김 새서 기억하고 있지. ”

역시 그런 거였군. 파이로는 뭔가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훈과 태훈이 돌아간 후, 미기야와 라우드는 사건 현장으로 갔다. 조사는 끝난 듯 했지만, 여전히 피가 튀어 있는 바닥과 너저분한 강의실은 그대로였다. 사건이 일어난 후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며칠이 지났는데 뭐가 보일까요…? ”
“일단 한번 해 봐요. ”
“네. ”

책상에 손을 얹은 라우드가 눈을 감자, 영상이 떠올랐다. 칼에 찔린 듯한 여자, 그리고 한 남자였다. 키가 크고 까만 머리를 한 남자는, 칼에 찔려 생명을 잃어가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
“왜 그러세요? ”
“이 뒤로 영상이 끊겼어요… ”
“끊겨요? ”
“네. 마치 잘라낸것처럼 끊겨버렸어요. ”
“…… ”
“진범이 키가 크고 까만 머리를 가진 남자라는 건 알겠지만, 사건 후에 염색을 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
“그건 그렇죠. 그나저나 영상이 끊겼다니… ”

라우드는 강의실 구석에서 슬픈 눈을 한 여자를 봤다. 길고 구불거리는 머리가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하얀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여자였다. 그녀는 라우드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치, 이 뒤의 영상은 보지 말아달라는 것 같았다.

‘보지 말아달라는걸까… ‘

“라우드 씨, 뭐 하세요? ”
“아, 아… 저 쪽에 웬 여자분이 서 계셔서요. ”
“여자분…? 아아, 저 쪽에 계셨네요. 혹시 피해자의 원혼일까요…? ”
“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미기야 씨, 이 뒤의 영상을 보는 걸 원혼이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영상이 잘렸나봐요. ”
“원하지 않는다라… 진범을 찾는 데 필요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겠네요… 일단 사무실로 돌아가요. ”

한편, 파이로는 사건 현장이 있는 캠퍼스를 둘러보고 있었다. 피해자와 같은 과였던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물어 볼 요량이었다. 애쉬와 크리멘도 학교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피해자는 화학과 전공이었다는데… ”
“아, 저기가 화학과 건물이네. ”

건물로 들어서니, 화학과 강의실이 있었다. 마침 수업이 있었는지 한 무리의 학생들이 복도를 걸어 오고 있었다.

“학생,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 ”
“…네? ”
“우린 괴담수사대에서 왔어. 이번 살인사건, 진범이 따로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 수사중이거든. ”
“그… 그런 소문이…… 아, 들어본 것 같아요. ”
“역시 여기에도 소문이 퍼졌구만…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
“앗! 선배, 안녕하세요? ”
“응, 안녕? ”

여자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찰나, 파이로보다 머리 하나는 큰 남자가 멀리서 걸어왔다. 당황했는지 인사를 건넨 여자는 파이로에게 급히 전화번호를 적어 주곤 후다닥 뛰어갔다. 그리고 지나쳐 가는 남자를 본 크리멘은 크큭, 웃음을 터뜨렸다.

사무실로 돌아 온 파이로는 아까 여자가 가르쳐 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아, 여기는 괴담수사대인데요… ”
‘아, 아까 그 분이시구나… 아까는 죄송했어요. 사실, 진범이 태휘 선배라는 소문이 있어요… ‘
“태휘 선배? ”
‘아까 제가 인사했던 키 큰 남자요. ‘
“아아… 그 남자가 진범이라는 소문이 있다고? ”
‘네. 이미 학교에 소문 쫙 퍼졌어요. 태휘 선배가 민영이를 짝사랑했는데, 민영이에게 남친이 있었던거예요. 그래서 고백했다 차였죠. ‘
“그랬군… ”
‘그 선배, 평소에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민영이한테 고백했다가 차인 후로 완전히 스토커로 변하더니 결국 저질렀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
“그런가… 그러니까 그 남자가 피해자를 짝사랑해서 그랬다는 얘긴데… 그럼 지금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하고는 무슨 관련이 있는 거야? ”
‘아, 영현 선배요? 저도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
“아, 알겠어. 고마워, 학생. ”

전화를 끊은 파이로는 크리멘이 왜 웃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녀석, 표식을 본 건가…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