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7. Invidia(하)

-너의 죄를 아는가?

희끄무레한 것이 그녀에게 물었다.

“나의… 죄…? ”

-나는, 너의 죄를 먹기 위해 이 곳에 왔다. 먹히지 않으려면 떠올려라. 그리고 뉘우쳐라. 그렇지 않으면 먹힌다.

“너, 넌 누구야? 어디에 있는건데! 내가 무슨…! ”

-뉘우치거라. 그렇지 않으면 먹어치우리라.

그리고 희끄무레한 그림자는 사라졌다.

“나의… 죄라고…? 뉘우치지 않으면… 먹힌다고……? 하지만…… ”

탐문수사를 갔다 왔던 미기야와 파이로가 돌아왔을 때, 애시는 두 개의 쌍검을 꺼내들었다.

“히이익- 그, 그 칼은 뭐예요? ”
“쉿, 그렇게 소리지르면 이 녀석들이 날뛸 수도 있어. 이번 사건에 필요해서 특별히 소환했단다. ”

애시는 막 꺼낸 대검을 천으로 닦고 있었다. 두 검은 마치 애완동물처럼, 그녀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하나의 검은 눈보다도 하얀 색이었고, 하나는 심연보다도 검은 색이었다.

“이번 사건에 필요하다면… 설마, 죄를 먹는 녀석 떄문이냐? ”
“응. 필요 여하에 따라서는, 그 녀석을 제압해야 할 수도 있어. 안 그러면 곤란해지거든. ”
“죄를 먹는……? 그게 무슨 말이예요? ”
“아. 그 녀석에게 괴이가 들러붙었거든. ”
“괴이…? ”
“아직 녀석의 이름은 몰라. 하지만 ‘죄를 먹어치우는’ 괴이라고 불리우고 있지. 그 녀석이 먹어치우기 시작하면, 그 인간의 미래는 사라져버려. ”
“그, 그럼 키츠네 씨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요? ”
“그 녀석과 대적하려면 키츠네보다 훨씬 강한 녀석이 와도 부족해… 아니, 그 녀석은 어떤 존재도 상대할 수 없어. 그 녀석을 상대하려면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아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

애시조차 이름을 모르는 강력한 괴이. 키츠네라고 해도 함부로 맞붙을 수 없는 괴이.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은 자만이 상대할 수 있는 괴이… 누구일까, 그 녀석은?

“애시 너도 죄 좀 짓지 않았냐… ”
“우후후, 그야 그렇겠지만 나는 여차하면 존재를 먹어치워버리면 그만이거든. ”
“…… 그런 거였냐… ”
“그나저나 탐문 수사를 했던 건 어떻게 됐어? ”
“그 녀석이 원한을 산 사람이 한 명 있었나봐. 그래서 만나봤는데… 그 녀석은 지금 이승에 없어. ”
“그럼 죽었다는 얘기야? ”
“응. ”

그럼에도 원한령이 들러붙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괴이가 있기 떄문이 아닐까. 하지만 유령은 이미 죽은 몸인데 미래가 먹힌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괴이가 미래를 먹어치우면… 어떻게 되는건가요…? ”
“그대로 어비스행이지. ”
“…뭐? ”
“생각해봐. 미래가 있다는 건, 정해진 삶이 있다는 얘기잖아? 정해진 수명이 있다는 얘기고. 그런데 정해진 수명을 먹어치운다면 죽어버리겠지? ”
“그렇겠지. ”
“그리고 그 녀석에게 미래를 먹혀서 죽게 되면 무간지옥으로도 가지 못 하고, 그 혼은 어비스를 정처 없이 떠돌게 되다가 리바이어던에게 먹혀버리는거지. 그렇게 되면, 다시는 이 곳으로 나올 수 없어. ”
“어찌됐건 그 녀석은 막아야겠군. ”
“그나저나 무슨 원한을 샀길래… 잠깐, 그 편지에 뭐라고 왔었지…? ”
“‘당신은 어쨰서 지어서는 안 될 7대 죄악 중 하나를 짓고도 무사한가요? 신의 천칭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벌하겠어요. ‘. 그리고 Invidia는… 라틴어로 질투. ”

순간 파이로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Invidia, 그러니까 질투라는 단어였다. 원한을 산 사람이 죽었고, 질투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 편지가 온다. 설마, 그 녀석이 사자를 질투해서 죽음으로 내몰아 간 것은 아닐까?

“설마… 그 녀석이 질투로 인해 죽음으로 내몬 게 아닐까? ”
“!!”
“거기까지 조사하기는 힘들겠죠, 아무래도 유족분들에게 묻기조 뭐하고 하니까… ”
“기다려봐. 나 전화 좀 하고 올게. ”

파이로가 밖으로 나가고, 애시도 대검을 집어넣었다.

“애시 씨. ”
“응? ”
“그 죄를 먹어치운다는 녀석 말인데요… 이번에 나타나게 된 이유가 뭘까요…? 그 전에도 죄를 지은 사람은 많았지만, 그런 괴이는 한번도 본 적 없었거든요. ”
“글쎄… 그건 그 녀석을 만나면 물어봐야겠는걸. ”

마침 파이로가 통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 파이로. ”
“파이로 씨, 어디다가 전화 거신거예요? ”
“세베루스 씨. ”
“뭔가 알아내셨어요? ”
“어. ”

세베루스의 얘기는 이랬다.

그녀는 회사 동료를 질투했다. 동료의 나이는 연상이었고 자신보다 늦게 들어왔지만, 일처리도 꼼꼼하게 잘 하고 보고나 잡무도 잘 하는 편이었다. 거기다가 다른 사람의 취향을 고려해 이것저것 배려도 잘 하는 성격이었고, 최근에는 실적까지 껑충 뛰어서 회의를 할 떄마다 윗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그럴 떄마다 그녀는 동료를 미워하고 시기했으며, 질투했다. 결국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꼐 동료를 따돌리기에 이르렀고, 견디다 못 한 동료는 자살했다는 것이다.

편지 또한 동료의 짓이었다. 그녀의 곁에 괴이가 들러붙어 가까이 갈 수 없게 되자, 편지를 매일 보내 정신을 말려 죽일 셈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렇게 괴롭혀놓고도 뻔뻔하게 회사를 다니며 좋은 사람인 척 하는 그녀가 너무나도 싫었다고 했다.

“그걸 자신이 기억하고 뉘우치지 않으면 어비스행인건가… 아무튼, 연락이 오면 움직여야 할 것 같아. ”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뉘우치지 않으면, 어비스에 끌려가버린다. 그 전에, 반드시 어떻게든 해야 했다.

오늘도 그녀는 편지와 소포때문에 겁에 질려 있었다. 이제는 어떻게 되도 좋으니, 제발 이 편지가 멈추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제발… 누가 이것 좀…… ”

-너의 죄를 기억하라. 그리고 뉘우치거라.

또 다시 낯선 목소리가 들리고,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보였다. 이전과 달리, 그림자의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손들이 떠 다니고 있었다. 마치 종이와도 같이, 펄럭거리는 까만 손들이었다.

“히이익- 또, 또 나타났어…! ”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기억하라, 그리고 뉘우치거라.

“너, 넌 대체… 누, 누구야? ”

-더 이상 기다려줄 수 없어. 뉘우치지 못 하면, 먹어치우는 수밖에.

“거기까지 하렴. 우후후- ”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애시는 등 뒤에서 흑아와 백아를 소환해 그림자를 막아섰다.

-방해자…

“키츠네 아니었으면 저거 먹혔다, 분명. ”
“그러게요. ”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점점 선명해져갔다. 그리고 이내 진보랏빛 옷을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의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손이 떠다니고 있었다. 길고 검은 머리와 나풀거리는 손, 그리고 붉고 검은 두 눈까지.

“죄를 먹어치우는 괴이…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우후후. ”
“네녀석… 설마… 애시 리스트로베라? 애시냐? ”
“내 이름을 알고 있었어? ”
“네녀석의 이름을 모르면 간첩이지… ”
“하나만 묻지. 어째서 여기로 다시 나온거지? ”
“그야… 이 녀석, 죄질이 엄청나서. 쿠쿠쿠… 본인이 기억을 못 하는 모양이니, 상기시켜줄까… ”

까만 손 하나가 여자의 머리를 지나쳤다. 그리고, 무언가 괴로운 일이 떠올랐는지 그녀는 머리를 감싸쥐고 쓰러졌다.

“아아악- 아, 아아- ”
“이제 너의 죄를 떠올려라. 그리고 뉘우치거라. 그렇지 않으면 먹어치울테니까. ”
“아아…… 나, 나는…… ”
“오호, 너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서 스스로 떠올리길 기다린거냐. ”
“기억하지도 못 하는 주제에 자신이 저지른 죄를 뉘우치는 인간은 없거든. 자, 그래서… 기억나나? ”

그녀는 여전히 괴로운지 머리를 감싸쥐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미기야가 그녀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파이로가 막아섰다.

“섣불리 나섰다간 너도 먹힌다. ”
“…… 하지만… ”
“너는 네 회사 동료를 질투해 그녀를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녀석이 이번 사건의 범인이지. …그리고 그 녀석이 지금까지 너에게 편지와 소포를 보낸 건, 네녀석의 주변에 이 녀석이 있었기 떄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 녀석이 없었으면 너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지. 무간지옥으로 끌려갔을 수도 있어. …자, 이제 입을 열어. 그렇지 않으면, 나도 널 도와줄 수 없어. ”
“나… 나는…… 나도…… 나도 열심히 했는데…… 어째서…… 어째서 나는 칭찬받을 수 없었던거야……? 어쨰서…? ”

파이로는 그녀의 넋두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가윗날은 여전히 혼불이 타오르는 채였다.

“왜… 나는…… 열심히 해도 그 사람을 뛰어넘을 수 없는거야…? 그래서…… 이기고 싶어서…… 그래서 그랬는데…… 죽어버릴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아아…… 그런데- 그런데… ”
“정신줄을 놓아버린 것 같은데. ”
“아. 기억을 상기시키면서 잘못 건드렸나… ”
‘그게 그렇게 말하고 끝날 일이 아니잖아… ‘
“어째서 그렇게 하면 안돼……? 재수없어서 그랬을 뿐인데…… 단지 샘나서…… 그랬어… 샘나서- 샘나서샘나서샘나서샘나서샘나서샘나서샘나서샘나서샘나서샘나서샘나서샘나서샘나서샘나샘나샘나샘나샘나샘나-!!! ”
“피해! ”

가만히 혼잣말을 늘어놓던 그녀는, 머리를 감싸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미기야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이로는 미기야를 밀어냈지만, 벽에 부딪히면서 충격을 받았다. 미기야 역시 밀려나면서 넘어져 다쳤다.

“크윽- ”
“아야야… 이게 대체…… ”
“맛이 갔군. 이래서는 뉘우치고 뭐고간에 우리가 죽게 생겼다. ”

아직도 벽에 부딪힌 허리가 욱신거리는지, 파이로는 한 손으로 허리를 감싸며 가윗날을 들었다.

“애시. ”
“응? ”
“먹어치우게 둬. 저 녀석, 완전히 맛이 갔어. 이대로라면 뉘우치기 전에 우리가 죽을지도 몰라. ”
“!!”

이미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사나워진 들짐승처럼 날뛰면서 달려드는 그녀를, 파이로 혼자서는 어찌 할 재간이 없었다.

“죄를 먹어치우는…… 그래. 네 이름이 뭔지, 생각났어… 네 이름은, 크리멘. 라틴어로 ‘죄’를 의미하지… ”
“제법이군, 내 이름까지 알고 있을 줄은… ”
“네녀석… 처음부터 먹어치울 작정이었냐? ”
“아니, 아니. 난 단지 녀석의 죄를 상기시키고 싶었을 뿐이야. …저렇게까지 미쳐버릴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
“애시! 위험해! ”
“!!”

애시에게 달려드는 그녀를 무수히 많은 손이 막아세웠다. 그 틈에 애시는 두 대검을 뽑아들고 몸을 피했다. 그리고 다시 까만 손이 그녀의 머리를 통과했다.

“미치게 만들 생각은 없었지만, 미치지 않았더라도 뉘우칠 생각은 없었겠지… ”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가 모래처럼 부서져 사라졌다. 산산이 부서져,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사르르 녹아 떨어진다.

“!!”
“미치게 만들 생각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이 죄 자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미쳐버릴 정도였던걸지도 모르지. ”

애시는 대검을 집어넣고 아직도 넘어져 있는 미기야를 일으켰다.

“이 녀석, 데리고 병원에 가 봐야겠어. 충격이 심했던 모양이야. ”
“맙소사, 힘조절에 실패했군… ”
“뭐, 어찌됐건 해결은 됐네요. 뒷맛이 영 좋지는 않지만… 어서 돌아가요, 우리도 먹히기 전에. ”
“뭐, 이번엔 포식을 해서 당분간 무언가를 먹을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그럼, 애시한테 안부 전해줘. ”

크리멘이 사라지고, 바닥에는 한때 사람이었던 것만이 밖에서 들어온 산들바람에 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