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III-7. 사명

“아유, 영수 엄마, 그러지 말고 들어와. ”
“하지만… ”

11월의 어느 오후, 두 중년 여성이 쇼콜라타의 문을 열었다. 유리문에 달린 종이 맑게 딸랑, 하며 울리자 안에서 갓 만든 초콜렛을 들고 쇼콜라티에가 나와 두 여성을 맞았다.

“어서오세요, 쇼콜라타입니다. ”
“여기, 내일 아들이 수능을 보는데… 수능날 먹을 수 있게 초콜렛 다섯 개 묶음으로 된 것도 있나요? ”
“안그래도 곧 수능이라 초콜렛을 찾는 분이 많아서 몇 개 만들어뒀어요. 이 쪽 매대에 있는 걸로 한번 둘러보세요. ”

잘은 모르지만, SNS에서 한창 유명하던 쇼콜라티에의 작품이라 그런지 초콜렛의 가격은 눈이 튀어나오도록 비쌌다. 하지만, 충분히 그 가격 이상의 가치를 할 것 같은 생김새였다. 연필 모양의 초콜렛은 나무 부분과 심의 색깔이 달라서 잘못하면 진짜 연필과 헷갈려 연필깎이에 넣을 것 같이 생겼고, 그 옆에 있는 동전 초콜렛은 금박 포장이 더해져 얼마 전 뉴스에서 봤던, 해저에서 건져올린 금화의 녹을 제거하고 그대로 올려둔 것 같았다.

“영수 내일 수능이니까 하나 사 줄게, 그러니까 부담갖지 말고 골라 봐. 이거, 사장님이 영수 내일 수능이라니까 초콜렛이라도 하나 사 주면서 응원하고 싶다고 하셔서 그래. ”
“사장님께서? ”
“그래, 가끔 엄마 데리러 오는 게 기특하다고, 이번에 수능 보는데 자기도 뭐라도 좀 챙겨주고 싶다고 하셨거든. ”

영수 엄마는 작은 봉제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남편은 용달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지금은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그 때문에 일을 마친 영수 엄마를 남편 대신 아들이 종종 데리러 와서 공장 사람들도 영수의 얼굴을 몇 번 본 적 있었다. 영수는 수능때문인지, 엄마를 데리러 와서도 가로등 아래에서 단어장을 보고 있었다.

공장 사장님은 그런 영수를 보고 한창 친구들이랑 놀 나이인데 기특하다며 종종 용돈을 챙겨주시거나 간식거리를 몇 개 쥐어주시곤 했고, 같이 일하는 외국인 동료들도 고향에서 간식거리가 들어오면 영수에게 조금 나눠주곤 했다. 영수는 그 중에서도 특히 몽골에서 만든 빵과 치즈, 그리고 수테차를 좋아했다.

초콜렛 가격때문인지 몇 번 들었다 놓았다 한 끝에 영수 엄마가 고른 것은, 크레용 초콜렛이었다. 형형색색의 포장지에 싸인 크레용이 그레파스 상자와 비슷한 플라스틱 통에 담겨있어서 초콜렛이 녹더라도 다른 소지품에 묻지 않을 것 같아보였기 때문이었다고 둘러댔지만, 사실은 그 초콜렛이 제일 저렴해서 그걸로 고른 것이다.

“손님께서는 오늘 저희 가게에 처음 오셨나보네요. ”
“아, 네… ”
“내일 아들 수능이라, 유명한 쇼콜라티에가 만든 초콜렛 먹고 잘 보라고 제가 데려왔어요. 이 집 아들이 어쩜 그리 심성이 고운지… 가끔 지 엄마 늦게 퇴근하는 날은 데리러도 오고 그런다니까요. ”
“그렇구나… 요즘 그런 아이들이 흔치 않은데, 자식 농사를 정말 잘 지으셨네요. ”

영수 엄마는 대답 대신 멋적게 웃었다.

“이건 제가 드리는 서비스입니다. 첫 방문 고객에게 드리는거니까 하나씩 받아주세요. ”

계산을 마친 쇼콜라티에는 크레용 초콜렛과 함께 학사모 그림이 있는 초콜렛 두 개를 각각 하나씩 건넸다. 영수엄마는 그 초콜렛을 소중하게 받아들고 가게를 나와, 영수에게 줄 초콜렛이 든 봉투에 넣었다.

“영수야, 공부하니? ”
“아니, 이제 자려고. ”
“그랬구나. 참, 이거… 엄마 공장 사장님이 영수 내일 수능이라 하나 사주시는거래. ”

초콜렛이 담긴 봉투에 적힌 ‘Chocolata’라는 글자를 본 영수의 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쇼콜라타와 그 곳의 주인에 대해서는 친구들이 얘기하는 걸 얼핏 듣긴 했지만, 그 가게의 초콜렛은 하나같이 영수의 용돈으로 먹기에는 부담이 돼서 차마 먹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봉투 안에는 초콜렛 뿐 아니라, 영수가 수능을 친다는 얘기를 들은 외국인 동료들이 챙겨준 외국 과자들도 있었다.

“엄마랑 같이 일하는 몽골 동생이, 수테차도 챙겨줬어. 보온병에 싸 가서 마셔. ”
“아, 응… 여기 엄청 비싼 곳 아냐? 사장님이 진짜 여기서 사주셨어? ”
“응. 유명한 데서 만든 초콜렛 먹고 시험 잘 보라고 사주시는거래. ”
“이거 아까워서 못 먹겠다… 그래도 내일 꼭 가져가서 먹어야지. 사장님께 고맙다고 전해줘. ”

다음날, 영수는 늦게까지 일하고 퇴근해서 주무시는 엄마를 뒤로 하고 교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엄마가 깰까봐 아침도 못 먹고 나온 영수는 요기라도 할 요량으로 어제 엄마가 쇼콜라타에서 받아온 학사모 그림이 있는 초콜렛을 먹으며 시험장으로 갔다. 시험장 입구에 도착하자, 다른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응원하면서 배웅하는 모습이 속속들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영수는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피곤하신 어머니가 무리해서 왔다가 일할 때 다치거나 하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며 스스로를 달랬다.

“뭐야, 영수 너도 이 시험장에서 치냐? ”
“어, 민성아. 너도 여기야? ”
“응. 나도 이 근처 학교 다니니까… 전화기는 아예 두고 온거야? ”
“응, 가져가봐야 거치적거리기만 하니까 아예 두고 왔어. ”
“그래서 전화를 안 받았군? ”

시험장으로 향하던 민수는 민성이를 만났다. 어릴적부터 친했던 민성이는, 비록 학교는 달랐지만 종종 연락하고 지내는 오랜 친구였다. 민성이는 엄마가 특별히 영수 것도 챙겼다면서 도시락 가방 하나와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핫팩을 건네고, 잘 보라는 인사를 나눈 다음 시험장이 있는 교실로 들어갔다. 영수 역시 교실로 들어가 제자리에 앉은 다음, 초콜렛을 하나 까먹었다. 포장은 어릴 적 몇 번 사먹었던 크레용 초콜렛이었지만, 맛은 그 때 먹었던 초콜렛과 달리 군더더기 없이 달달한 맛 뒤로 살짝 쌉쌀한 맛이 느껴졌다.

‘역시 SNS에서 유명한 집은 다르구나. ‘

아침에 먹은 초콜렛 덕인지,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한 덕인지 언어영역 문제가 술술 풀렸다. 한 영역 시험을 마치고 초콜렛을 하나씩 먹은 영수는, 그 덕인지 막히는 문제 없이 시험지를 술술 풀어갔다. 물론 가채점을 위해 수험표 뒷장에 답을 적고, 제 시간에 마킹하고 답안지를 제출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민성이네 집에서 싸 준 도시락으로 점심 요기를 한 후로도 외국어영역과 탐구영역까지 치른 영수가 시험장 밖을 나섰을 때는, 아침과 달리 붉게 석양이 물든 하늘이 보였다.

“아~ 드디어 끝났다~ ”
“영수! 잘 봤어? ”
“모르겠어… 가채점 해 봐야 할 것 같아. 참, 어머님께 도시락 고맙다고 전해드려. ”
“오냐. 아버님은 아직도 입원중이셔? ”
“응, 오늘 수술하실거라 당분간은 입원하실 것 같아. ”
“그러냐… 빨리 나으셨으면 좋겠네. ”

집에 돌아와 답지를 보며 가채점을 한 영수는 두 눈을 의심했다. 모든 문제를 전부 맞춘 것이다. 두세번 확인해도 결과는 똑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한달 후 성적표를 받아봤을때도 그대로였는지, 영수의 성적표에는 1이라는 숫자가 쭉 적혀있었다.

“영수야, 전에 선생님한테 의과대학 진학하고 싶다고 했었지? ”
“네. 하지만… ”
“선생님이 최대한 알아봐줄게, 한번 원서 써 보자. 아마 학비 지원제도도 있을거야. ”

사실 영수는 어릴 적, 구순구개열이 있었다. 하지만 어릴 적 이름 모를 누군가의 도움으로 구순구개열 수술을 마쳐서, 지금은 번듯한 얼굴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때가 까맣게 어릴 때라 그런 이야기가 있는 줄 몰랐던 영수는,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서 전해들은 후로 의사가 되어서 자신이 도움을 받았던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를 데리러 가면서도 단어장을 보며 공부했던 것이다.

“영수 엄마, 축하해. 영수가 Y대 의과대학에 가게 됐다면서? ”
“글쎄, 성적도 수석이라 의과대학 장학재단에서 학비도 내준대요. ”
“누나, 축하해요. 영수 좋은 데 갔어요. ”
“녀석, 효도했네. ”

의과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한 영수는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게 되었다. 학교는 집과 거리가 있었지만, 수석으로 입학하면서 기숙사 비용도 면제가 되어서 영수는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통학하는 시간만큼 아끼게 된 영수는 열심히 공부해서 본과를 마칠때까지 장학금을 한번도 놓지 않았고, 성형외과 의사로서의 길을 걷게 된 후로도 논문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였다.

“영수쌤, 혹시 같이 일 하나 안 해볼래요? ”
“네? 일이요? ”
“실은… 우리가 봉사 모임을 하나 만들었는데, 영수쌤도 거기 꼈으면 해서. ”
“봉사 모임이요? ”
“응. 해외에 가서 의료 봉사를 하는건데 내과에서도 가고, 정형외과에서도 가고, 흉부외과에서도 가서 진료를 해 주는거예요. 이름하여 10원짜리 병원! 왜, 3000원짜리 김치찌개 파는 식당 알죠? 그것처럼 정말 최소한의 돈만 받고 치료가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는거예요. ”
“재미있어 보이네요. 저도 참가할게요. ”

동료 의사로부터 제의를 받은 영수는 흔쾌히 승낙했다. 어릴 적 구순구개열 수술을 받은 후로 언젠가 의사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줘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꿈을 작게나마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의사들과 함께 해외로 간 영수는 특히 구순구개열 환자들을 수술해주는 데 열심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의사들도 의아해했지만, 영수의 사연을 듣고 나서는 감동을 받는 사람도 있었고, 멋지다며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도 영수는 개인 병원을 열기 전까지 계속해서 봉사 모임에 참석했다. 개인 병원을 열고 나서는 이전처럼 모임에 참석할 수는 없었지만, 같이 모임을 다녔던 의사들과 계속 연락은 하고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영수의 병원으로 초대해 무료로 수술을 진행했다. 언론사에서 인터뷰를 하러 왔을 때도 무료로 수술을 받기로 했던 환자가 와 있었다.

“영수냐? 오늘 바빠? ”
“아니, 오늘은 스케줄 없어서 일찍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
“그럼 간만에 친구들끼리 한잔 할려? ”
“그러자. ”

민성이와 만나기로 한 곳에는, 몇 명의 동네 친구들이 더 와 있었다.

“이게 누구야, 조영수 원장님 아냐? ”
“야, 기사 잘 봤다. 진짜 감동이였어. ”
“내 친구도 그 기사 봤는데, 진짜 멋지다고 하더라. ”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은 고기를 안주삼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개중에는 벌써 결혼도 하고 토끼같은 자식들을 본 친구들도 있었고,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가 있는 친구도 있었다. 어릴 적 살았던 그 집에 아직 사는 친구도, 이사를 간 친구도 있었다.

“영수 너는 아직도 그 집 살아? ”
“진작 이사갔지. 어머니도 일 그만두셨고… 아버지는 그만두라고 했는데도 계속 용달일 하셔. 칠순 되기 전까지는 하실거라더라. ”

번듯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영수는 그 동안 신세진 집주인 아주머니에게도 답례로 두툼한 돈봉투를 건넸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이런 돈은 받을 수 없다며 한사코 거절하셨지만, 전세 대란일때도 집값 한 번 올리지 않고 가족들을 묵묵히 도와주신 것에 대한 답례라며 돈봉투를 쥐어주었다. 그 뒤로 어머니는 공장을 그만두시고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등교 도우미를 하고 계시고, 아버지는 아직도 용달 일을 하고 계셨다.

“참, 너 수현이 얘기 알아? ”
“수현이? 진짜… 걔 수능치고 연락 끊겼는데 뭐 하고 지낸대? ”
“걔도 P대 의대 들어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 뒤로 한동안 연락 끊겼다가 뉴스에서 봤다니까? ”
“뉴스에서? 뭐 사고쳤냐? ”
“말도 마, 파도 파도 괴담이라니까… ”

영수와 어울려 놀던 동네 친구 중에는 수현이도 있었다. 하지만 수현이 엄마는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과 달리, 수현이가 영수는 물론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탐탁치 않아했다. 대놓고 놀지 말라고 말씀은 안 하셨지만, 같이 놀고 있으면 쯧 하고 혀를 차거나 더러운 것을 보는 듯한 눈으로 친구들을 보고 있었다. 그게 은근히 기분 나빠서,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이라면 몰라도 수현이네 집에 놀러가는 건 좋은 소리 들을 일 없다며 거절했다.

중학교를 마치고 수현이는 강남 8학군으로 이사가서 간간이 연락만 하는 정도였지만, 수능시험 성적이 나오고 P대 의과대학으로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그 연락도 끊기고 말았다. 생일에나 간간이 연락 몇 번 하는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전부였다.

“의과대학이 힘든가, 연락을 해도 안 받더라. ”
“힘들긴 하지… 공부 못 하면 유급이거든… ”
“하긴, 영수도 한동안 연락 잘 안됐잖아. 그런 거 보면 힘들어보이더라. ”
“근데 수현이는 왜 뉴스에 나온거야? ”
“병원에서 마취중인 환자 성추행해서. ”
“뭐? ”
“아니, 진짜라니까? 거기다가 그것때문에 우리 회사에서도 영업직 하나가 수현이가 했던 갑질 다 찌르고 퇴사해서 그것까지 추가로 조사 들어갔어. 영수 너도 그 뉴스 봤지? ”
“어, 보긴 봤는데… 그게 수현이일 줄은 몰랐지. ”
“히포크라테스가 뉴스 봤으면 오열하겠더라. 선서를 해놓고 이렇게 막되먹은 짓을 한다고? 하면서… ”

고기로 어느정도 배를 채우고 2차로 엘 푸르가토에 간 친구들은 칵테일을 하나씩 시켜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 이 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며칠 전에 신문에 나온 거 봤어. ”
“정말요? ”
“맞지, 조영수 원장님? 사연도 사연이지만 자기가 받은 것만큼 베풀면서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 인상깊었거든. ”

마스터는 참된 원장님에게 주는 서비스라며 안주 접시를 내려놓고, 친구들에게 며칠 전 어떤 의사가 여기 왔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양복을 입은 남자랑 같이 온 것을 보면 접대라도 받을 요량으로 온 것 같았는데, 우리 바는 그런 곳이 아니라 실망한 눈치더라는 얘기는 덤이었다. 그 뒤로 뉴스에 나왔다는 걸 보면, 아마 며칠 전 엘 푸르가토에 왔던 의사는 수현인 듯 했다.

“여기 계신 원장님이랑 달리 그 의사는 사명감이라곤 하나도 없어보였어. 그냥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의사가 된 느낌을 팍팍 받았지. 뭐, 기본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그 직업에 종사하면서 느낄 수 있는 사명감 같은 게 있잖아? 그 의사는 그런 게 없어보였어. 돈귀신이라도 들렸나 싶은 인상이더라니까. ”

영수는 학교를 졸업하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외웠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선서를 외울 때도 영수는 어릴 적 자신이 도움을 받았던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자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그게 본인이 가진 의사로서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그 자체는 멋진 일이지. 그리고 전문직에 올곧은 마음씨를 가지고 종사하는 건 상당히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