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3. 악순환

요 며칠 새 인터넷과 TV는 아동 학대 사건으로 화제였다. 사실 단순한 아동 학대였어도 그랬겠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더 했다. 학대 끝에 죽어버린 아이의 시체를 부모가 훼손했기 때문이었다. 관련된 뉴스가 나올 떄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아이의 명복을 빌어줬다.

“어쩌자고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지, 원… ”
“그러게요. 아이들이 불쌍해요. ”
“……전생에 무슨 업을 가졌길래… ”
“…… ”

그 떄였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웬 여학생이 들어왔다. 곁보기에는 열너덧살 쯤 돼 보인 여학생은, 오랫동안 안 빨았는지 더러워진 교복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를 풀어헤친 채였다.

“여기가… 괴담수사대 맞나요…? ”
“그…그런데… 무슨 일이지? ”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
“…… 여기 앉아서 천천히 얘기 해 봐. ”

파이로가 물 한 잔을 건네자, 급하게 들이키다 사래가 들렸는지 연신 기침을 해 댄다.

“천천히 마셔. ”
“콜록콜록, 괜찮…… 콜록… ”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군. 그래, 무슨 일이야? ”
“동생이… 동생이 위험해요…… ”
“동생? ”
“…… ”

파이로와 현이 얘기를 나눌 동안, 야나기는 조용히 그 여학생을 지켜보고 있었다.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라도 있는 건지, 그녀는 그 여학생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동생이 지금… 집에서 학대를 당하고 있어요… 어제도 맞았어요… ”
“그런 일이 있으면 경찰에 신고를 해야지. ”
“하지만 경찰에 아무리 전화를 해도, 그 떄 뿐이예요. 경찰아저씨가 왔다 가고 나면 또 다시 폭력을 휘둘러서…… 그런 날은 더더욱 아파요… 이렇게 가다간 동생이 죽을지도 몰라서…… ”
“흐음…… 일단 알겠어. 자, 여기 연락처를 줄 테니까 동생이나 너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해줘. ”
“고맙습니다, 언니. ”

연락처가 적힌 쪽지를 받아 든 여학생은 꾸벅,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여기는 죽은 자의 의뢰도 받는거야? ”
“…네? ”
“쟤, 죽었잖아. ”
“죽어요…? ”

현은 야나기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 했다. 우리에게 도와달라고 왔던 학생이 이미 죽었다니? 그럼 대체 무슨 일이…

“나 왔다. ”
“아, 오셨어요? 오너, 아까 의뢰가 하나 들어왔었는데… ”
“무슨 의뢰? ”

현은 외출했다 막 돌아온 미기야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야나기가 했던 얘기도 같이. 미기야도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죽은 사람이 여기에 의뢰를 하러 올 일이 있나…? 우리가 그들의 원한때문에 일을 저질러서 처리 하러 가는 경우는 있지만… ”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사를 먼저 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학생의 이름은 얼핏 봐서 알고 있으니까요. ”
“일단 형사님께 연락해서 여쭤볼게. 혹시라도 그 학생한테 연락이 오면 어떻게든 도와줘. ”
“네. ”

죽은 사람이 의뢰를 하다니, 그럴 수도 있는걸까. 역시 이상했다. 하지만 일단 의뢰가 들어왔기때문에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네, 형사님. 저 미기야인데요… 잠깐 여쭤볼 게 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네, 네… ”

그리고 잠시 후. 전화를 끊은 미기야가 현을 불렀다.

“현… 야나기 씨의 말이 맞아. 우리에게 의뢰를 했던 사람… 이미 죽었어. ”
“죽…었더고요? ”
“응. …형사님께 여쭤봤는데, 몇년 전 죽었어. 거의 몇시간동안 아버지에게 얻어맞고 방치돼 있었나봐. ”
“…… 그럼 동생이 위험하다는 건… ”
“아마도 동생이 걱정돼서 편히 성불하지 못 했던 모양이겠지. ”
“…… ”

여학생에게서 올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현도 현 나름대로 그 여학생에 대해 조사를 했다.

그 여학생의 집은 가난했지만 꽤 단란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가출을 했고, 아버지의 폭력은 더 심해졌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재혼을 한 후로는 새어머니마저 폭행에 동참했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 몇시간 가까이 얻어맞고 방치돼 죽었지만 그 와중에도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감싸, 동생은 가벼운 부상에 그칠 수 있었다.

‘동생을 많이 걱정했던 모양이구나… ‘

아마도, 그 여학생은 죽고 나서도 동생을 많이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살아있었을 때는 어떻게 해서든 동생을 지킬 수 있었지만, 지금은 죽어버린 몸이라 그렇게 할 수도 없었으니. …그녀는 여학생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파이로 씨. ”
“응? ”
“그 여학생 말인데… 동생을 정말 걱정하고 있었던걸까요? ”
“음… 아아, 그때 그…? ”
“네. 아무래도 그래서 저희한테 부탁을 했던 것 같아요… 동생을 구하고 싶어서. 그래서 죽어서도 성불하지 못 하고 여기에 왔던 것 같아요. ”
“음… 글쎄, 그것도 그거겠지만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본다. ”
“다른…원인…? ”
“너는 못 봤겠구나. 그 아이 몸 군데군데에 난 이음매를. 교복으로 가리고 있어서 무릎 부분에서나 겨우 보이던거라, 상흔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
“무릎에…? 이음매라면 관절 부분을 말씀하시는건가요? ”
“응. 뭐,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그 아이, 시신이 훼손돼 있을 가능성이 커. ”

파이로의 말에 따르면, 죽어서 시신이 훼손되거나 유체가 소실된 경우 그 흔적이 유령의 몸에 드러난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몸을 갖기 전의 파이로도 붕대를 두르고 다녀야만 했던 거였다. 그리고 이번에 사무실에 찾아왔던 여학생 역시 무릎 부분에 이음매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 아래를 잘렸을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장기 기증이라면, 본인이 원해서 했을 테니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타인이 임의로 시신을 훼손한 것이라면 그건 영체의 몸에 여실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그 여학생의 부모가 여학생의 시신을 훼손했을 수도 있다… 그 얘기인가요? ”
“아직까진 가설이지만 그랬을 수도 있어. 무릎에 난 이음매를 보아 하니 최소한 그 부분은 잘랐을 수도 있겠는데… 이거, 꽤 심각해. ”
“…… 그럼 그 동생도…… ”
“유감스럽지만 그래. 그 동생이 살아있을 때 빨리 매듭짓지 않으면 그 아이도 위험해져. ”
“…… ”

현은 파이로에게서 전해들은 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나머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영체의 상흔을 증거로 제시할 수는 없는거잖아요. ”
“일단 여학생에게서 연락이 오면, 바로 집으로 가자. 우리의 일차적인 목적은 그 아이의 부탁으로 동생을 구하는 것이야. 시신을 찾는 건 그 다음 일이고. ”
“알겠어요. ”

웬지 씁쓸했다. 부모에게서 축복받아야 할 존재가 어째서 사랑받지 못 하고 그렇게 생을 마감해야 했을까. 그리고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 하고 동생이 걱정돼 구천을 떠돌고 있는 것일까. 현이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즈음.

“현, 그 여학생에게서 연락이 왔어. 여동생이 또 맞는 것 같다고, 도와달래. 난 형사님께 연락해볼게, 파이로 씨랑 먼저 가 줘. ”
“아, 네. ”

현은 미기야와 함께 여학생의 집으로 향했다. 근처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여학생이 보였다. 그리고 현은 그제서야 파이로가 말했던 이음매를 볼 수 있었다. 교복 옷깃에 가렸지만, 그녀의 목 부근에도 이음매가 보였다.

‘목 부근에도 이음매가…? ‘
“언니! 이 쪽이예요! 동생이… 동생이…! ”
“알겠어! 파이로 씨, 가요. ”
“일단 지금 들이닥쳐봐야 저 아이한테 좋을 거 하나도 없어. 일단 증거부터 남기자. 애시, 듣고 있냐? ”
“우후후~ 무슨 일이야? ”
“저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 동영상으로 찍어 와. ”
“알겠어. ”

파이로의 전화기가 허공에 붕 뜨는가 싶더니,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이 정도면 증거로 남기기 충분하지? ”
“좋아. 이제 아이를 구하러 가자. ”
“네. ”

전화기를 받아들고 영상을 확인한 파이로는 현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온통 난장판인 집 한복판에서 분노를 삭이지 못 하고 식식거리는 중년의 남자와, 그 옆에서 남자를 말리는 척 하는 여자, 그리고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남자아이가 보였다. 파이로는 다짜고짜 남자에게 다가가 따귀를 올려붙였다. 짝, 소리가 나자 남자가 비틀거렸다.

“네 딸이 아니었으면 저 아이도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됐을 거다. 애가 샌드백이냐! 어떤 부모는 아무리 바라고 바라도 얻지 못 할 귀중한 생명을 여기서 이런 식으로 낭비해? 니가 그러고도 애비야? 어? ”
“그쪽이 참견할 일이 아니에요! 단지 훈육을 하려던 것 뿐이라고요! ”
“옆에서 쫑알거리지 말고 입 다물어! ”

파이로는 옆에 서 있던 여자에게도 소리쳤다. 뭐라 말하려던 여자가 움찔거리더니 입을 다물었다.

“훈육? 이게 훈육이야? 이렇게 멍들고 정신 잃을 때까지 떄리고 방치하는 게 훈육이냐? 그러고도 네녀석들을 부모라 부를 수 있어? 낳아야만 부모인 줄 아냐? ”
“댁이 뭔데 남의 집 일에 상관이슈? ”
“괴담수사대다. 네 딸 한혜영의 의뢰로 네 아들, 한진수를 네녀석들로부터 구하러 왔다. 현, 아이 데리고 나가. ”
“아, 네. ”
“그 손 치워! 내 아들을 네가 뭔데 데리고 나가라 마라야! ”
“입 다물어. ”

파이로가 가윗날을 목 앞에 들이대자, 남자는 침만 꿀꺽 삼킨 채였다.

“니들이 아까 한 짓은, 증거로 제출할 예정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

파이로는 가윗날을 목 앞에서 거뒀다. 남자가 그녀에게 덤벼들려던 찰나, 파이로는 가윗날 등으로 남자를 가볍게 밀쳤다. 남자가 쓰러지면서 벽이 무너지고, 이상한 나무상자가 나왔다.

“!!”
“이건가보군. ”

파이로는 남자를 가볍게 들어 내치고, 나무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온 몸이 토막난 시체 한 구가 있었다. 부패된 지 오래 되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혜영의 시체인 것 같았다.

“…… 니들은 오늘 경찰에 체포되기 전에 내 손에 죽는다. ”
“파이로 씨, 진정하세요! ”
“…… ”

마침 정훈을 데리고 미기야가 도착했는 지,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파이로는 나무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와,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남자아이를 진정시켰다.

“형사. 이거, 이 정도면 증거로 제출해도 되겠지? 그리고 이거, 저 쪽에서 찾은 시체인데 신원 조회가 가능할 지 모르겠군. ”
“이…게 뭐죠? ”
“저 집에서 찾은 나무상자야. 보시다시피, 내용물은 시체다. …토막난… ”
“…… 단순히 아동학대 혐의만 있는 게 아니었군…… ”

두 사람을 체포한 뒤 돌아가는 정훈을 보고, 여학생의 영혼은 이제 됐다는 듯 눈물을 흘렸다.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제 동생을 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
“……말 안 해도 알아. 나도 원래는, 시체가 심하게 훼손돼 그 원한때문에 구천을 떠돌던 몸이었거든. 지금은 새 몸을 얻었지만… ”
“…… 정말 고마워요… ”
“이제 푹 쉬어. 동생은, 괜찮아질거야… ”

여학생의 영혼은 희미한 미소를 남긴 채 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바라고 바라도 오지 않는 아이가, 어째서 저런 자들의 밑에서 태어나서 꿈도 펼쳐보지 못 하고 죽는걸까. 신이란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르겠단말이지… ”
“…… ”

파이로는 씁쓸한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