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2. 가면 아래의 진실

아무도 없지만 불이 켜져있는 실험실. 사실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듯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고민하던 그녀는 시약장에서 시약을 꺼내 섞었다. 잘 섞이라는 듯 튜브를 툭툭 치고, 이내 섞인 걸 확인한 그녀는 튜브의 뚜껑을 열고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녀는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다.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울시 C동 소재의 C 대학교에서 학생으로 추정되는 20대 중반의 여자가 사망한 채 발견됐습니다. 사체는 부검중이며…

“또 살인사건은 아니겠지. ”
“그건 아직 모를걸요. ”

아침 뉴스에 보도된 사건은, 실험실 내에서 죽은 채 발견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발견된 지 얼마 안 됐고 수사중이라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내가 볼 때 저거, 자살이야. ”
“그걸 어떻게 알아? ”
“저기 봐봐. ”

화면에는 현장을 찍은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야나기가 가리킨 곳에는 시약장에서 꺼냈는지 실험대 위에 올려진 시약이 있었다. 그리고 사체가 쓰러진 곳 부근에 떨어진 튜브까지.

“현장에 가 보면 어떤 독인지까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
“그걸 어떻게 아세요? ”
“난 독 전문가거든. 독을 먹어도 안 죽으니까. ”
“일단 저 건으로 의뢰가 오면, 같이 가 봐요. ”
“그러지. ”

그 날 오후, 야나기는 파이로와 함께 마카롱을 만들고 있었다. 그 떄, 정훈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어이, 미기야. 손님. ”
“네~ 아, 형사님. 어서 오세요. ”

미기야는 정훈을 보자마자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테이블로 안내했다.

“미기야 씨도 뉴스에서 보셨겠지만, C 대학교에서 사체가 발견됐습니다. 현재 사인은 부검 중이고, 현장을 조사했는데 의문의 물질이 든 튜브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
“튜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고요? ”
“네, 아무래도 사인은 자살인 것 같은데… ”
“일단 현장으로 한 번 가봐요. 관계자들은요? ”
“안그래도 후배녀석이 탐문조사를 하고 있습니다만… ”

정훈과 미기야, 야나기는 현장을 찾았다. 세 사람이 도착했을 때는 마침 탐문 수사가 끝났는지 후배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어, 선배. ”
“수사 끝났냐? ”
“네. 그런데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평가가 좀 이상하네요… 평소에도 좀 이상했다던가, 원래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던가… ”
“…… ”
“그런데 이 분들은 누구예요? ”
“아아, 괴담수사대에서 왔어. ”
“그렇군요… 처음뵙겠습니다, 정훈이 형 후배인 지성입니다. ”
“유키나미 미기야입니다. 이쪽은 야나기 씨예요. ”
“현장에서 뭐 나온 거 없지? ”
“없어요. ”
“그런가… 들어가시죠. ”

현장 안으로 들어간 야나기는 실험대 위의 시약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건 염산… 진한 거네. 그리고 이건…… ”

시약을 살펴본 야나기는 발 밑에 떨어진 튜브 주변의 냄새를 맡았다.

“아몬드 냄새… 이거, 시안화수소야. 분명 이걸 들이켜서 죽었을거야. 두 시약을 섞으면 시안화수소 가스가 발생하거든. ”
“시안화수소…? ”
“응. 치사량도 꽤 적고, 금방 날아가버려. 하지만 순도가 낮을 경우 폭발할 위험이 있지. …도대체 어째서 이런 독극물을… ”
“일단 자리를 좀 조사해도 될까요? ”
“네. ”

미기야와 야나기는 비어 있는 자리로 갔다. 온갖가지 종이와 책, 논문들이 어지러이 올려진 자리는 주인을 잃기 전이나 후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책상 위며 책꽂이며 확인하던 미기야는 종이 뭉치를 발견했다.

“이건…? ”
“시안화수소, 그리고 그 재료가 되는 물질들. …제법까지 나와있네. 그리고 이건… 일기장인가? 음… ”

야나기는 책꽂이에 꽂혀진 노트를 읽었다. 그리고 노트를 천천히 읽어 보던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일이예요? ”
“…… 탐문 수사 다시 해야겠는데. 이 사람하고 친했던 사람 없어? ”
“…네? ”
“자세한 건 돌아가면서 알려줄게. 일단 이 사람하고 친했던 사람 있나 수소문 좀 해 봐. ”
“네. ”

미기야가 밖으로 나가 있을 동안, 야나기는 자리를 더 찾아봤다. 하지만 이렇다 할 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그것들 외에는 전부 논문이나 스크랩 파일이었다.

‘어째서일까. ‘

그러던 와중에 그녀는 책꽂이 한켠에 있는 노란 파일을 발견했다. 파일을 꺼내보니 영수증이라고만 적혀있었다. 안을 열어보니 영수증과 처방전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녀는 처방전에 적힌 약을 메모지에 적고, 영수증을 살펴봤다.

‘정신과…? 그럼 대체 이 약들은 뭐지…? ‘

처방전과 영수증은 날짜 역순으로 정리돼 있었다. 가장 최근에 받은 것은 이틀 전이었고, 가장 오래된 것은 두달쯤 지난 것이었다. 약의 명칭은 바뀐 게 없었지만, 중간에 뭔가가 추가되거나 용량이 바뀌거나 했다.

“야나기 씨, 찾았어요! ”
“그래? 어디 있어? ”
“위쪽 실험동에요. 일단 지금은 바쁜 것 같아서 이따가 얘기 나누기로 약속을 잡았어요. ”
“그럼 됐어. 라우드한테 연락해서 이 약들 종류 좀 알아봐달라고 전해줘. ”

야나기에게서 메모지를 건네받은 미기야는 라우드에게 야나기가 말한 그대로 부탁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망자의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저 사람인가? ”
“네. 안녕하세요, 괴담수사대에서 나왔습니다. ”
“아, 안녕하세요… 은하 일로 얘기하실 게 있다고…… ”
“네… 친구의 일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일로 수사를 나왔는데,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요. 그 실험실 관계자들은 전부 은하 씨를 안 좋게 얘기하고 있었어요. ”
“…… 결국 그럴 줄 알았어요… ”
“역시, 뭔가 있는 모양이군. ”

그녀는 잠깐 숨을 고른 다음 말을 이어갔다. 말을 이어가는 내내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오히려 은하는 실험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그런 애였어요. 실험때문에 지각하기는 했지만 꼬박꼬박 나오기도 하고… 하지만 실험실 생활이 힘들었는지 스트레스가 심했죠. ”
“스트레스라… ”
“거기다가 은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실험실 사람들의 태도였어요. 일이 힘들어서 털어놓아도 그 사람들은 교수님 편이었다고 매일 불평하곤 했고… 심지어는 새로 사람들이 들어온 후로 따돌림까지 당했다고 해요. 요 이틀 전에는, 은하가 실험실에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런 말도 없이 자기들끼리 나가서 커피를 마신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은하는 그런 게 트라우마였고, 그렇다고 그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까지 했거든요… 그나마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라고…… ”
“…… 그 은하라는 사람, 혹시 최근에 병원에 다닌 적 있어? ”
“네. 정신과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게 유일하게 실험실을 나갈 수 있는 길이라고 좋아했는데… ”
“…… ”

그 때, 미기야에게 전화가 왔다. 발신인은 라우드였다. 라우드가 약에 대해 조사해 본 결과, 그 약 중에 항우울제가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신경 차단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부정맥 약이었다.

“우울증 약…? 그럼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거잖아. ”
“…… 그것도 관계자들이 몰랐던건가? ”
“아뇨, 은하가 병원에 다니는 이유를 거기 교수님 뺴고 다 아세요. 교수님은 정신질환 자체를 믿지 않으신다고, 걔가 일부러 말을 안 했어요. ”
“흠…… ”
“….. 내 생각에는… 걘 우울증 증상도 있었던데다가 지속적인 스트레스, 괴롭힘이 겹쳐서 힘든 상태였을거야. 거기다가 트라우마를 건드려버린 녀석이 그녀의 죽음을 초래한 거겠지…… 그리고 그녀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하는 이유는 딱 하나. 자기 실험실의 안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기의 안위를 위해서겠지. ”
“…… ”
“그 녀석의 일기장을 읽어봤어. 처음에는 열의도 넘치고 좋았는데… 갈수록 스트레스와 따돌림, 그리고 푸념을 할 데가 없다는 것 때문에 힘들어했지. 거기다가 그 교수, 곧 뉴스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거든. ”
“맞아요, 저도 들었어요. ”
“아무래도 단순 자살은 아닌 것 같군. ”
“……괴담수사대라고 하셨죠…? 제 친구의 원한을 풀어주세요… 이대로 가다간 제 친구가 이상한 사람이 될 거예요… 그러면 죽어서도 편히 쉴 수 없을거고…… ”
“지금 당장 밝히는 건 힘들어.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돼 있어… 일단 경찰에게는 내가 영수증과 일기장을 증거로 제출할게. ”
“…… ”

현장으로 돌아간 야나기는 정훈에게 영수증 파일과 일기장을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
“오늘 죽은 사람의 책상에서 발견된 일기장. 그리고 이건 파일. 안에는 영수증과 처방전이 들어있었어. ”
“영수증…? ”
“처방전도 같이 있는 걸 봐선 병원 영수증인 모양이지… 요컨대, 단순한 자살도 아니고 관계자들이 평가한 것과 정 반대였다는 얘기야. 그건 증거야. 일기장도 한번 읽어봐. ”

그리고 야나기와 미기야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일기장에는 대체 무슨 내용이 쓰여져 있었나요? ”
“…… 여기까지 살아있었던 것도 용할 정도였지… 경악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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