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글쎄… 이번 판만 잘 돼면 몇십, 아니 몇백배로 돌려준대도 그러네? 내 말 못 믿어? 아니 글쎄, 그러니까 좀만 더 빌려주면… ”
추레한 차림의 중년 남성이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꾀죄죄해보이는 옷에 면도도 하는둥 마는둥인지 텁수룩한 수염은 보기만 해도 까끌까끌해보였다. 머리는 정돈한 지 오래된 모양인지 상당히 너저분했고, 얼굴도 씻는둥 마는둥인지 개기름이 번들번들했다. 안경 너머의 눈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허무함을 비춰주는 것 같았다. 전화 너머의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려는 모양인지 애걸복걸 했지만, 전화 너머의 상대는 그에게 그 동안 빌려주고 못 받은 돈이 꽤 큰 액수였는지 연신 거절하고 있었다.
그는 도박에 미쳐 가족들을 저버렸다. 처음에는 집안의 가재도구들을 팔고, 딸의 등록금이며 집의 보증금마저 도박 자금으로 쓰더니, 급기야는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벌렸다. 그런 그가 예전처럼 착실한 가장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그의 가족들은 지금 그와 연락을 끊었고, 주변 사람들 역시 그에게서 전화가 오면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금전 문제에 대한 언급은 삼갈 것을 먼저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도박에 미쳐 있었다. 큰 한 방을 노리는 눈, 하지만 그 눈에 남은 빛은 하나도 없었다.
“쳇, 다들 속고만 살았나 그래… 곧 갚아준다니까. 나 김혁이가! 이거 한 방만 딱 돼면… ”
오늘도 돈을 빌리는 데 실패했는지 그는 수중에 남은 돈 100만원을 가지고 도박장으로 갔다. 말이 도박장이지,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 되는 곳이라 꽤 후미진 곳에 있었다. 이름 없는 산 속 낡은 폐가를 개조해서 만든 도박장에서는 포커며 화투같은 것들을 즐길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고, 그 곳에는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대부분은 주부 아니면 그와 같은 또래였다.
“여- 혁이. 오늘도 왔어? ”
혁이 들어서자마자 그를 알아본 중년의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 그 역시 혁과 마찬가지로 도박에 미쳐버린 가장 중 하나였다. 원래는 애연가였지만 요즘은 담배값도 아껴서 판돈에 넣는건지, 종종 혁에게 담배를 빌리러 올 떄가 있었다. 그런 그가 웬일로 새 담뱃갑을 뜯어 라이터로 불을 붙이며 인사를 건넸다.
“너 오늘 한건 했냐? 웬 담배여? ”
“오늘 한 건 해서 거하게 마시고, 간만에 새삥으로 하나 깠다. 크으~ 이 얼마만에 들이키는 내 담배 연기냐… ”
오늘따라 담배 맛이 달콤하게 느껴지는지, 그는 담배 연기를 한숨 깊이 빨아들였다가 다시 훅, 내뿜었다. 좁은 도박장 안이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가, 어느새 연기가 사라진다. 그가 들이쉬고 내쉴때마다 담배 연기가 마치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나저나 판돈은 많이 가져왔능가, 혁이? ”
“실패여. 곧 크게 한 방 먹여서 갚아주겠다는데 믿지를 못해들… ”
“뭣하면 예물이라도 팔아서 하지 그래? ”
“그것도 진작에 생각해봤지… 근데 이놈의 마누라가 들고 날랐다. 뭐 어쩌겠냐, 이거라도 걸어야지… ”
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주머니에 있던 백만원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거라도 없으면 도박을 멈출까, 싶을 정도로 그에게는 절실한 돈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격 상, 입고 있는 옷이라도 맡겨서 전당포에 돈을 빌리러 오겠지. 동료들은 그를 알고 있었다, 얼마나 도박에 미친 사람인지를.
“패 돌리더라고. ”
“아따~ 쪼매 기달려라잉. 혁이부터 받고~ ”
오늘도 늘 그래왔던것처럼 카드 패를 돌린다. 각자가 받은 패를 보고 판돈을 결정한다. 혁 역시 넘겨받은 패를 확인했다. 그리고 씩, 웃더니 갑자기 테이블 위로 손을 뻗는다.
“난 이 돈, 전부 올인할라네. ”
“아따, 뭐 좋은 패라도 들었는갑다. ”
“조심해라, 너 이거 잃으면 다시는 이 판에 못 옹게. ”
“그럴 일은 없을것이여. 내가 여기 있는 돈 전부 따갈랑게. ”
“아따, 자신감 넘치네잉. 그럼 시작하더라고. ”
다른 사람들이 패를 내려놓을수록 일그러지는 얼굴과 달리, 그는 패를 내려놓고 카드를 확인할때마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몇 번을 그렇게 하고 난 후, 혁은 환희에 찬 얼굴로 카드패를 전부 내려놓았다.
“자! 아까 말했지? 이 판돈 전부 내 것이라고? 난 잠깐 볼일 좀 보고 올게 좀 기다려. ”
“아따, 저 치가 오늘 웬일이래… 아무튼 알겄다. 어여 볼일 보고 와라. ”
지금 수중에 넣은 돈만 몇천은 되는 것 같았다. 다 갚지는 못하더라도 몇몇 사람들에게서 빌린 돈을 갚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그는 그 동안 돈을 빌렸던 사람들 중 몇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고 빌렸던 돈을 제대로 이자까지 쳐서 주었다. 반 정도를 갚고 나서도, 수중에는 이백만원이 남아 있었다.
‘이 정도면 됐어. 몇 판만 더 돌리면 금방 갚을 수 있어. 그럼 가족들도 만나고… ‘
그리고 그런 그를 지켜보는 그림자가 있었다.
“혁이 야는 볼일 보러 간다더니 왜 이렇게 오래 걸린다냐? ”
“글쎄. 뭐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오는 모양이지. ”
“나 왔다. ”
볼일을 보러 나간다던 혁이 한참동안 소식이 없다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 동안 빚졌던 돈을 갚고 왔다는 얘기는 하지 않고, 그는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앉았다.
“술이라도 한잔 걸치고 오는가? ”
“아니. ”
“그럼 워딜 댕겨오는데 이렇게 오래 걸려? ”
“그럴 일이 있어. ”
“우리가 알면 안 되는가? ”
“그게… 쫌 거시기~하다. 자, 자. 빨리 다음 판 하자고. ”
그 날도 하루종일 그는 도박을 했다. 그리고 어쨰서인지 하는 도박마다 잘 돼가기 시작해, 그 날 하루동안 번 판돈만 수억원은 될 것 같았다. 아니, 수많은 지폐들을 보면 어림잡아 그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그는, 집 앞에 상자가 놓여있는 걸 발견했다.
“이게 뭐지? ”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는 라이터가 있었다. 라이터에는 글록시니아가 그려져 있었다. 보랏빛 꽃이 검은 라이터와 잘 어울리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라이터를 찰칵, 켜 보자 불꽃이 환하게 붙었다.
“이야, 오늘은 도박도 잘 되더니 라이터까지 얻었구만. ”
곧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빼 입에 물고, 상자 안에 있던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공짜로 얻은 라이터여서 그런지 더 잘 붙는 것 같았다. 그는 주머니 속의 라이터를 버리고 새 라이터를 챙긴 다음,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은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지 너저분했고, 벽에는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집 안을 감돌았다. 음식물 썩는 냄새, 그리고 파리 날리는 소리, 벽에는 바퀴벌레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음식물에는 곰팡이까지 피어 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꼴이 말이 아니었던 것은, 그가 도박에 빠지고 가족들이 집을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후우… ”
한숨을 푹, 쉬고 찬장을 뒤져보자 라면 하나가 남아있었다. 부인과 아이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집을 나간 후로, 그는 종종 끼니를 거르거나 라면으로 때우는 일이 잦았다. 가끔은 아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이 그리웠지만,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 뭘 하고 지내는지 연락만이라도 닿았으면 좋으련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라면이 끓어 넘치기 직전이 됐다. 그는 라면 받침 대용으로 쓸 낡은 책 한 권을 가져와 받쳐 놓고, 냄비를 책 위에 올렸다. 그리고 막 끓어서 김이 올라오는 라면을 후루룩, 집어먹었다. 조만간 라면을 사야 할 터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는 라면 쯤은 한 박스 쟁여둘 돈이 있었다.
“돈이 많으면 뭐 해, 아무도 없는데… 에이, 술이나 한 잔 해야지. ”
라면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를 느꼈는지, 그는 동네 수퍼로 가 소주 두어 병과 안주거리를 집어 들고 계산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소주 한 병을 까고, 안주거리로 사 온 오징어채를 뜯어 먹었다. 분명 이상하리만치 도박은 잘 풀려서 판돈도 많이 벌고, 빚도 어느정도 갚았건만 이상하리만치 소주가 쓰다.
“술이 쓰군… 여보, 마누라. 나 이제 돈 많이 벌었어… 이제 빚 갚고 뭐 하고 하면, 예전처럼 번듯한 집에서 떵떵거리면서 살게 해 줄게… ”
술에 취해 잠이 드는지도 모르게 잠들었던 그는,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눈을 떴다. 적막한 집 안에는 어제 먹다 남긴 라면국물과 마시다 남은 소주, 먹다 남은 안주가 나뒹굴고 있었다. 와이프가 좀 깨워주면 좋으련만… 하지만 지금 그의 곁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청소 안 된 집에 살판난 듯 돌아다니는 바퀴벌레가 있을 뿐이었다. 소파에서 대충 잠들었던 그는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다시 도박장으로 향했다.
“최씨! 나 왔어! ”
하지만 도박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너무 일찍 왔나? 그는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 홀로 담배를 태우기로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만지작거렸던 카드도, 화투도 오늘은 만지기가 싫었다. 다만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온다면 또 도박을 하겠지. 이런 자신이 싫을 떄도 있었지만, 도박은 그런 그를 마치 낟알로 참새를 유인하듯 유인했다. 그는 그 함정에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었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도박장이었던 곳을 둘러보니 휑하다. 폐가를 그대로 도박장으로 써서 그런지 군데군데 먼지가 끼어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다들 늦는군, 담배를 태우며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는 혁의 앞에 낯선 여자가 나타났다. 창백한 얼굴에 올려 묶은 하얀 머리, 그리고 붉은 눈을 가진 여자였다.
“누구슈? 새로 온 사람인가? ”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일까, 그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단지 이 적막한 상황이 싫어서, 누구라도 붙들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녀는 그런 그를 보고, 담배냄새에 질색이라도 하듯 물러났다.
“윽, 지독하군… 가족들이 오래 전에 저버리고 간 모양이지. ”
“그렇다네… 마누라도 자식들도 전부 나를 저버렸지… 이 개같은 도박떄문에…… 후우- ”
“저버린 게 아니라 니가 죽였어. ”
“무슨 말이야? 내가 왜 마누라를 죽여? ”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 혁을 내려보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마누라는 니가 죽이지 않았어. 직접적으론 그랬지. 니 딸도… 하지만 니가 도박하느라 날려먹은 돈 갚느라 뼈빠지게 일하다가 과로사 했어. 니 딸도 등록금 버느라고 알바 두세개 뛰면서 공부하느라 과로사했지. …그 지경이 되도록 너를 찾지 않은 건, 힘들게 벌어서 빚 갚아야 할 돈 니가 다 도박으로 날려먹을까봐였어. 그 동안 네 주변 사람들이 돈을 빌려줬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다 니 마누라가 갚아서 그런 거야. ”
순간 머리가 무언가로 얻어맞은 것처럼 쿵, 했다. 마누라가 죽었다고? 딸도? 과로사로…? 심지어 자신이 탕진한 돈을 갚으려고 일만 하다가…
“그럼 지금까지 빌려주지 않았던 건…… 마누라는 언제 죽은거지…? ”
“죽은 지 몇 달 됐어. 아마 너떄문에 둘 다 편히 잠들지는 못 했을거다. ”
“…… ”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하염없이. 마누라를 죽인 것도, 딸자식을 죽인 것도 나떄문이었다. 내가 도박만 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 아니, 한 가족으로서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일찍 손을 뗐더라면 적어도 과로사 하는 일은 없었으리라.
“그리고 난 널 죽이러 왔어. 터무니없는 욕심때문에 가족들을 죽게 만든 널. ”
낯선 여자는 눈앞에서 가윗날을 들이밀었다.
“…… 마누라와 자식들도 없는데 혼자서 살아남겠다니, 그건 욕심이지… 그것도 내 과오로 죽여놓고 나 혼자 떵떵거리며 사는 건 욕심이야… 그런데 죽기 전에 한 가지 소원이 있는데… 들어줄려? ”
“뭔데? ”
“와이프와 딸의 무덤에 가서 마지막 인사라도 하게 해 줘. 아마 나는 편히 죽지 못 할거야… 가족들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아마 지옥으로 떨어질게지… 그 전에, 마누라와 딸에게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 그래. ”
“뭐… 어려운 일은 아니지. ”
그녀는 들이밀었던 가윗날을 거두고 그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한참동안 산길을 따라 어딘가로 걷다 쉬기를 반복한 끝에, 그는 자신의 고향에 도착했다. 낯익은 풍경이 그를 반겨주고 있었다. 어릴 적 자랐던 집과 이름 없는 동산, 그리고 그 곳에 있는 무덤 두 개.
“네 아내와 딸은 여기에 묻혀 있어. ”
두 사람의 무덤을 본 혁은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왜 여기에 있는거요, 내가 이렇게 왔는데… 그는 무덤 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좀만 더 일찍 손을 뗐더라면 이럴 일은 없었는데. 후회 해 봤지만 이미 늦었다. 한참을 목놓아 울던 그는 주머니에서 이제껏 고이 가지고 있던 돈 이백만원을 꺼내 두 사람의 무덤 앞에 놓았다.
“늦었지만 이걸로 저승길에서는 실컷 먹고 실컷 쉬어. 여보, 그 동안 미안했어… 딸아, 미안하다… 못난 애비를, 못난 가장을 둬서 고생만 하다 가는구나… ”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