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1. Die Tuberose

“응, 오빠~ 응? 어디긴, 친구랑 공부하러 갔었다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클럽을 내가 왜 가? 에이~ 오빠는… ……뭐? SNS에 영상이 올라왔다고? 에이, 설마… 그거 나 아닐거야. 응, 응… 끊어~ ”

겉으로는 연인과 통화를 하는 다정한 여자인 것 같지만, 통화를 마친 그녀는 이내 하얗게 굳어버린 표정으로 SNS를 확인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스크롤을 쭉 해 나가자, 어제 그녀가 클럽에서 춤을 추는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누가 대체 이런 짓을…? ‘

영상 속의 그녀는 확실히 친구와 공부하러 도서관에 갈 복장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연애중인 사람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없는 낯 뜨거운 짓까지 감행하다니. 그건 그녀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영상을 눌러본 그녀는, 이윽고 영상 밑에 올라 온 글을 읽자마자 서늘한 한기를 느끼며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와~ 남의 남자 뻇어가더니 클럽에서 이러고 노는거야? 역시 너답다. ㅎㅎ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들이 자기 못 만나줘서 안달인 줄 아는건가? ‘

누구지? 대체 누구야? 그녀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잉- 진동이 느껴저핸드폰을 본 그녀는, 깜짝 놀라 핸드폰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너 이번에 성적 잘 나온 거, 조교랑 하룻밤 자서 그런거라는 소문 벌써 과에 쫙 퍼졌더라. 남친들이 알게 된다면… ‘

천하의 팜므파탈을 자부하는 이성은, 그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과는 물론 친구들이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의 친구들까지 전부 사귀고 있었다. 그 정도는 문어발을 넘어서, 한 번에 30명의 남자들과 연락을 할 정도였다. 그쯤 돼면 약속은 어떻게 피해서 잡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게다가, 그렇게 사귄 남자들 중에는 여자친구가 있었던 사람도 있어서, 이미 그녀에 대한 평판은 좋지 않았다.

“너지? 니가 이 문자 보냈지? ”
“다짜고짜 무슨 말이야? ”

아침부터 식식거리는 얼굴로 강의실에 들어선 그녀는, 책상에 막 자리를 잡은 여자를 찾아갔다. 그녀 역시 얼마 전, 성은에게 사귀기 직전까지 간 남자를 뻈겼기에 그녀가 생각하기에 가장 유력한 범죄자였다. 하지만 성은의 핸드폰을 본 그녀의 반응은 달랐다.

“이 문자, 니가 보낸거냐고! ”
“야, 이성은. 니가 임자 있는 남자 뻇은 게 한두번이야? 그리고 난 너한테 걔 뻇기고 나서 니 번호 지웠거든? 못 믿겠으면 확인해보든가. ”

그녀의 전화번호부를 확인한 성은은 핸드폰을 돌려주곤 사과 한 마디도 없이 강의실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문자는 그렇다 치고, 대체 그 영상은 누가 올린거지?

“어, 오빠. 응~ 아니. 아직… 응? 정말? 학교 앞이야? 응, 응~ 금방 갈게~ ”

남자친구가 밥을 사 주러 왔다는 말에 한달음에 학교로 달려가던 그녀는, 낯선 여자와 마주쳤다. 새하얀 머리를 올려묶은 붉은 눈의 여자는 남자친구와 무언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더니, 금방 사라졌다.

“어, 오빠! ”
“아, 성은아. ”
“미안~ 많이 늦었지? ”
“아냐, 나도 방금 왔어. ”
“근데 오빠, 아까 그 여자는 누구야? ”
“아까…? 아, 너 찾아 온 것 같던데… 이거 전해달라고 하더라. ”
“……? ”

남자친구가 건네 준 것은 튜베로즈가 그려진 손수건이었다. 검은 바탕에 하얀 튜베로즈는 하얗다 못해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손수건…? ”
“응, 너한테 전해주라고 하더니 그냥 사라져버렸네… 아무튼, 오늘은 점심 뭐 먹을래? ”
“오늘은… 저기압이니까 파스타! ”
“알았어, 알았어… 가자! ”

어제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고, 그녀는 파스타를 먹고 있었다. 부드러운 크림 파스타에 또르티야 피자! 바삭바삭한 피자를 꿀에 찍어 먹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오후 수업 늦는 거 아냐? ”
“괜찮아~ 나 3시까지 공강이야. ”
“그래? 그럼 커피나 한 잔 할까? 오빠가 살게. ”
“정말? 고마워~ ”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간 성은은 아메리카노와 케이크 하나를 시켰다. 막 주문한 음료가 나올 무렵… 모처럼만의 카페 데이트로 기분이 좋아진 성은과 달리, 남자친구는 어딘가 공기가 무거웠다.

“오빠! 여기 커피. ”
“아, 고마워. ”
“…… 오빠, 무슨 일 있어? ”
“…… 성은아. ”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 헤어지자. ”
“뭐…? ”
“헤어지자고. ”
“가… 갑자기 왜 그래…? ”
“…… ”

그는 대답 대신 핸드폰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성은이 어제 다른 남자와 클럽에서 술을 마시는 사진이 찍혀 있었다.

“이… 이게…… ”
“어제 도서관 간다고 하지 않았어? 도서관에서 이런 옷을 입고 이런 야광봉을 쓰나? ”
“그… 그게…… 오, 오빠… 이, 이거 나 아냐… 나랑 똑같은 사람이야… 나 어제 진짜 도서관에 있었어… ”
“…… 그뿐이 아냐. SNS에 동영상 올라온 것도 봤어. 그리고 이 귀걸이… 이거 내가 100일 기념으로 특별히 주문한 거잖아. 나만 사랑한다더니 거짓말 하고 클럽에서 놀아나는 여자를 어떻게 믿어? ”
“그, 그…… 오, 오빠… 그, 그건…… ”
“헤어지자. ”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그는, 그녀가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한다기에 마중을 나갈 참이었다. 막 나가려던 찰나, 그에게 문자로 그녀가 클럽에 있는 사진이 전송된 것이다. 발신번호는 없었지만, 사진 속 여자는 누가 봐도 성은이었다. 문자를 보낸 이는, 성은이 그 동안 자신을 속이고 클럽에 갔던 일과 다른 남자와 데이트 한 증거들을 보내왔고, 이를 본 그는 그녀와 헤어질 것을 결심했다.

싸늘하게 돌아선 그를 뒤로 하고, 그녀는 학교로 돌아왔다.

“하… 이대로 보내면 안 되는데…… ”

그리고 핸드폰을 잡은 그녀는 빠르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날 저녁.

“아아~ 피곤해… 지연쓰! 오늘 클럽 안 갈래? ”
“안돼, 나 내일 교양 시험이야. ”
“교양이면 공부 대충 하고 놀자. ”
“야, 너 지금 한가하게 클럽 찾고 다닐 때가 아니거든? 정신 차려 이성은. ”
“그게 무슨 말이야? ”
“너 이번에 시험 성적 잘 나온 거, 조교랑 자서 그런거라고 소문 쫙 퍼졌어. 그 조교 결국 그것때문에 대학원 때려치고 나갔고. ”
“?!?!”
“안 좋은 소문에 이미지 관리도 꽝인데 클럽이 문제냐? 정신 차리세요, 이성은씨. ”

그 소문이 정말이었구나. 사색이 된 그녀의 앞에, 점심에 만났던 수수께끼의 여자가 나타났다.

“모험을 즐기는 자는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특히나 사랑을 가지고 모험을 즐기는 자라면. ”

그녀가 뜻 모를 말을 남기고 사라졌을 무렵, 핸드폰 진동이 요란하게 울렸다. 받아보니 친구였다.

“어, 재희쓰. 무슨 일이야? ”
‘야, 됐고 지금 빨리 SNS 들어가봐, 난리났어. ‘
“난리? 아아, 남자친구 마음 돌리려고 거짓 쪼~금 섞었습니다. ”
‘그것때문이 아냐! 아무튼 빨리 확인해봐! ‘
“알았어, 끊어. ”

전화를 끊고 SNS에 접속해보니, 알림이 수십개가 와 있었다. 훗, 그야 내 픽션이 잘 됐으니까 그렇지, 라고 생각하고 알림을 확인했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댓글에는 그녀를 향한 비난만이 가득했다.

‘이 사람 문어발 걸치면서 남자친구 놓치기 싫으면 이런대요. ㅇㅇ 페이지에서 봤음. ‘
‘ㅋㅋㅋㅋㅋㅋ 이런 사람은 평생 혼자 살아야돼 ㅋㅋㅋㅋㅋㅋ ‘
‘저번에 클럽 동영상에도 떴던 사람 아닌가? ‘
‘와 ㅋㅋㅋㅋㅋㅋㅋㅋ 소설도 쓰려면 적당히 써 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동영상에 나왔으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온통 비난 일색인 댓글을 읽던 그녀는 마지막 댓글을 읽고 또 다시 하얗게 질렸다.

‘쟤 일부러 임자 있는 남자만 사귀면서 저런다니까? 나 쟤랑 아는 사람인데 과에서 쟤 평한 안 좋고 성적 조금만 잘 나와도 조교랑 잤다는 소문 퍼짐. 근데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임자 있는 남자 꼬시고 클럽 다니는 거 보면 정신 차리긴 글렀음. 심지어 쟤한테 남자 뺏기고 자살한 사람도 있대. ‘

누가 자살한거지? 그녀는 너무나도 많은 남자를 뻇어와서 이제는 누가 원한을 가지고 있는지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설마 원한때문에 이러는걸까? 그녀는 미안함보다도 분노가 앞섰다.

“자기가 잘못 해서 남친 뻇겨놓고 이제 와서 왜 이러는데? 애초에 니가 남친 관리를 잘 했으면 됐잖아! 원한 같은 소리 하네. ”
“응, 너야말로. ”

그녀의 앞에, 아까의 낯선 여자가 나타났다.

“네녀석이 누굴 죽게 만들었는지 가르쳐줄까? 하도 많아서 기억도 못 하고 뉘우치지도 못 하겠지? 너때문에 교수는 스캔들 나서 정직당하고 그 와이프는 자살했는데. 하긴… 너같은 녀석이 뭘 알겠니. ”
“넌 뭔데 나한테 뭐라는거야? 세상에 한번이라도 바람 펴 본 적 없는 사람 나와보라고 해! 한번이라도 임자 있는 사람 욕심 내 본 적 없는 사람 나와보라고 하리고! ”
“욕심은 낼 수 있지만 임자가 있다면 포기해야 하는 게 맞아. 그게 상식이고 도리야. 너처럼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모험하면서 인간을 파멸에 빠뜨리는 건, 팜므파탈 따위가 아니라 색욕에 미친 거지… 아니, 이쯤 되면 즐기고 있는 걸지도? 그래도 이번엔 인간 하나 구해서 다행이지. ”
“……지금까지 니가 그런거였지? 동영상이랑 사진? ”

그녀는 길길이 날뛰기 직전인 성은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리석은 인간. 튜베로즈가 그려진 손수건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해? 그건 워험한 쾌락이야. 딱 너 같은 아이를 말하는거지… 그래, 사진은 내가 맞아. 하지만 동영상을 올린 건 내가 아냐. 물론 네 자신도 기억 못 하겠지, 누구에게 어떤 원한을 샀는가… ”
“시끄러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
“뉘우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군… 뭐, 이미 네가 저지른 잘못들은 만천하에 퍼지고 있지만. ”
“시끄럽다고 했잖아! ”

성은이 낯선 여자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녀는 낯선 여자를 통과해 버렸다. 어어, 하던 찰나, 그녀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무모하구나. 저세상에서 영원히 후회하도록 하렴… 참회는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
“!! 사, 사, 살려줘…! ”

필사적으로 도망치면서 핸드폰을 뒤적거리던 그녀는 주소록을 뒤적이며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모든 만행을 알아버린 그녀의 남자친구들과, 그녀에게서 원한을 사 번호를 지우거나 없앤 이들이 팔할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친구들은 시험기간이라 공부한다고 핸드폰을 아예 꺼 놓았다.

“모험도, 사랑도… 적당해야 하는 법이란다. 상식과 도리를 어기는 시점에서 그건 인간이 아니라 짐승인거지. 그럼, 이만. ”

차가운 가윗날이 그녀를 찌르자, 따뜻한 피가 도로 위로 흘렀다. 거리에는 숨이 끊어져가는 그녀와, 액정 한 쪽이 꺠져버린 핸드폰만이 있었고, 가로등이 홀로 그녀를 비출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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