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1. 갇혀버린 영웅

느긋한 오후,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낯선 여자가 들어왔다. 긴 머리에 하얀 코트가 세련되보이는 인상을 주는 중년의 여성이었지만, 그녀의 낯빛은 좋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
“여기가 혹시… 괴담수사대인가요? ”
“네. 제가 오너인 유키나미 미기야입니다. ”
“부탁입니다, 제 남편을… 도와주세요. ”
“남편분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
“집에서 나오지 못 하고 있어요… 일도 그만두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서, 까만 그림자같은 게 자꾸 어른거린다고… 아무리 밖으로 데리고 나오려고 해도 움직이질 않아요… ”
“까만… 그림자요? ”

중년 여성의 남편은 얼마 전 있었던 F시의 오피스텔 화재에서 살아남은 소방관이었다. 그 때, 화마는 그의 동료들 뿐 아니라 그 오피스텔에 있던 수많은 생명을 집어삼켰다. 분명 그의 주변을 맴도는 까만 그림자도 그것들 중 하나이리라.

“그 안에 계신 지는 얼마나 된 건가요? ”
“그 사건 이후로 계속 집에서 나오지 못 하고 있어요…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한 번 댁으로 찾아가봐도 괜찮을까요? ”
“네, 괜찮습니다. ”
“그럼 나중에 연락을 드리고 방문할테니 연락처 하나만 남겨주세요. ”
“알겠습니다. ”

여자는 포스트잇에 연락처를 적고 돌아갔다.

“파이로 씨. ”
“응? ”
“혹시 예전에 라플라스가 줬던 아티팩트 가지고 계세요? ”
“아티팩트? 하나는 라플라스가 회수해갔고 하나는… 아, 이거 말하는거냐? ”

파이로는 품 속에서 회중시계 하나를 꺼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 시계는, 인간이 사용할 만한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화재가 일어났던 때로 돌아가서 알아보려고? ”
“네. 그 그림자의 정체가 뭔지… ”
“그럼 그냥 가서 알아보지 그래. ”
“가서 물어본다고 알게 될 것 같지도 않고…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 눈으로 보고싶어요. ”
“하여튼… 옛다. 그게 몇개월 전이더라… 아아, 오늘로 딱 9개월 전이네. 시간 맞춰놨으니까 그 태엽만 돌리면 과거로 돌아갈거야. ”
“네, 알겠습니다. ”

시계를 건네받은 미기야가 태엽을 돌리자, 9개월 전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 때는 가짜 뱀공주 일을 처리할 때라 몇 명만 사무실을 지키고 나머지는 일본에 있을 때였다.

“사무실이 휑하군… 아, 그 떄는 일본에 있었나… 참, 그 오피스텔로 가야지. ”

그는 이 날짜에 화재가 일어났던 오피스텔로 향했다. 아마 불이 난 시간은 저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가면, 딱 저녁 시간에 맞춰 도착하겠지…

저녁, 그는 화재 현장에 도착했다. 붉은 화마가 건물을 집어삼킬 듯 태우고 있었다. 건물이고 생명이고 화마가 집어삼키려는 와중에도,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고자 소방관들은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밖에서는 호스로 물을 뿌리면서, 안으로 몇 명의 대원들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방열복을 입고 들어갔다.

“저 분인가…? ”

아침에 찾아왔던 의뢰인의 지갑 속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다른 대원들보다 앞장서 화재 현장으로 들어갔던 소방관이었다. 연락처를 적을 때 얼핏 봤지만, 꽤 강인한 인상의 남자여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자 분투했고, 제일 먼저 화마가 우글거리는 현장으로 들어갔다. 그 역시 그를 따라 들어갔다.

“후우… 열기가 장난이 아니군… ”

건물 내부는 플라스틱은 물론 철근마저 녹아버릴 정도로 엄청난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연 연기와 엄청난 열기, 그리고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건물 잔해들… 미기야가 그를 따라 갔을 때, 그 사이에서 그는 생존자를 수색중이었다.

그 때였다.

-살려줘요!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내 타닥타닥 타 들어가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가 보니, 어린아이가 있었다.

“!!”

-도와주세요! 엄마가 안 일어나요!

그 옆에는 이미 숨을 거둔 여자도 함께였다. 아마 이 여자가 아이의 엄마인 모양이었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된 엄마를 일으키려고 애쓰면서 힘겹게 누군가를 부르고 있는 아이를 보니, 미기야는 아까 그 소방관을 여기로 불러오고 싶었다. 하지만 시계의 소유주가 아닌 미기야는 과거에 관여할 수 없어, 누군가를 부르거나 아이를 구하지 못한 채 아이의 목숨이 사그러드는 걸 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 아이가… ”

현장을 빠져나오고 몇시간 후, 불은 다 꺼졌으나 생존자는 없었다. 화마는 그 건물에 있던 사람들로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을 구하러 온 소방관들마저 집어삼켰고,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것은 한 명의 소방관이었다.

“파이로 씨라면 그 아이를 구할 수도 있었을텐데…… ”

다시 현재, 그가 돌아온 현장은 빈 터로 남아있었다. 그는 한동안 멍하니 빈터를 보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는 파이로와 야나기가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여기 시계요. ”
“뭐야, 너 왜 이렇게 기운이 없냐? 녀석의 정체는 알아 낸 거야? ”

시계를 건네받은 파이로는 가위 손잡이에 시계줄을 걸었다.

“네… 그 때 그 소방관이 미처 구하지 못 했던… …파이로 씨, 파이로 씨가 그 시계를 사용해 과거로 돌아가면… 그 아이를 구할 수 있을까요? ”
“일단은 내가 소유주니까 가능은 할걸. …가만, 무슨 말이야? 구할 수 있냐니? ”
“현장에 아이가 있었어요… 아이가 도와달라고 몇 번이나 소리쳤는데 그는 결국 듣지 못 했고, 결국 그 아이는…… ”
“…… 그렇게 된 건가… 그래서 살아남은 건 그 소방관뿐이었군. ”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나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때마다 과거로 가서 그걸 바꾸는 건 불가능해. 네녀석도 알고 있겠지, 과거가 바뀌면 미래에도 영향을 준다는 건. ”
“그건 알고 있죠… ”
“그리고 누군가가 죽는 걸 막겠다고 일일이 과거에 관여했다간, 명계에서 우릴 먼저 죽이려 들 게 분명해… 나도 그 아이가 죽은 일에 대해서는 유감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생사에 관여된 것은 웬만하면 그냥 두는 게 좋아. 생사는 우리가 관여할 수 없는, 생각보다 큰 영역이니 말이야… ”
“그럼 어떻게 하죠…? ”
“일단 그 녀석을 찾아가서 달래는 수밖엔 없어. 이미 죽어버린 이상 소속은 명계에 있고, 그걸 과거로 가서 막는다고 해도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우리는 단지 과거로 가서 그 아이를 구하면 되는거지만, 명계에서는 이미 죽어서 서류 처리까지 끝낸 사자의 사망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되버려서 엄청 꼬이거든. …그 아이를 구하는 댓가로 니가 죽을 수도 있어. ”
“…… ”

다음날, 미기야는 어제 찾아왔던 여자에게 연락을 했고, 오후에 집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우후후, 검은 그림자를 찾아 가는거야? ”
“네. …과거로 가서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네요. ”
“그야 당연하지. 생사는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인간의 수명도, 운명도 정해져 있는데 그걸 흐트러뜨리면 안 되는거야. ”
“파이로 씨도 비슷한 말을 하셨는데요. ”
“명계에 반은 몸담고 있는 녀석이니, 나보다는 잘 알겠지. ”

집에 도착하자, 여자가 미기야와 애시를 맞았다. 집안은 대체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딱 한 군데만 문이 굳게 닫힌 채였다. 어딘가 이질감을 주고 있었다.

“저 방에 계신건가요? ”
“네… ”
“알겠습니다. ”

미기야는 문 앞으로 다가가 가볍게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미기야가 과거로 돌아가 봤던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과거에 한사람이라도 더 구하고자 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거의 폐인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누구…세요? ”
“괴담수사대입니다. 당신을 도와주려고 왔어요. ”
“…저를요? ”
“네, 부인께서 부탁하셨답니다. 검은 그림자같은 게 자꾸 보인다고… ”
“마, 마, 맞아요… 제가 어딘가로 가려고만 하면 꼭…… 옆에 어른거려요…… 아무리 저리 가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아요… ”
“걱정 마세요, 저도 당신과 같은 걸 보고 있으니까요. ”

확실히 남자의 말대로, 그의 주변에는 검은 그림자같은 게 있었다. 감은 종이로 사람 모양을 그려서 오려낸 것 같은 모양이었다. 어린아이와 비슷한 크기. 그는 현장에서 도움을 구하다 죽어간 그 아이를 떠올렸다.

“…… 얘야. 이 분은 너를 도와주기 싫어서 지나쳤던 게 아냐… 듣지 못 했던거야, 단지… 네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거란다. ”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지, 그림자가 미기야 쪽으로 다가왔다.

“네가 거기에서 죽게 된 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이 분을 괴롭히면 안 돼. 이 분은… 아마 이 분도, 많이 미안해할거야… ”

-형, 저도 알아요…

그림자가 미기야에게 말을 건넸다. 그것은 이윽고 점점 형체가 뚜렷해지더니, 그 때 그 아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너는…? ”
“저는… 엄마가 일어나지 않아서 도와달라고 했는데… 너무 뜨거웠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서… 그래서 저도 이렇게 되 버렸지만, 그 후로 아저씨가 미안해하실까봐… 미안해하지 말라고 계속 옆에 있었던 건데, 그래서 아저씨가 무서워하실 줄은 몰랐어요. ”
“…… ”
“아저씨는 용감한 소방관이고… 엄마가 소방관은 불이 나면 우리를 구하러 달려와주는 용감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도 아저씨같은 소방관이 되고 싶었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

아이는 가볍게 웃어보였다.

“아저씨, 이제 일어나요. 아저씨는 용감한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위험하면 도와줘야죠. 아저씨 친구들이 아저씨가 이렇게 지내는 거 알면 엄청 슬퍼하실거예요… ”
“…… 동료들이…… ”

그 때 죽었던 동료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을 떠올리자 눈에 눈물이 고여 하염없이 흐른다.

“아저씨를 위로하려고 했던 건데, 이렇게 되서 미안해요. 아저씨를 괴롭히려던 건 아니었는데… ”

아이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후, 사라졌다.

“…… 원한 때문이 아니었구나…… ”
“어른스러운 아이네… 안타깝구나… ”
“아아… 맞아, 내 동료들 몫까지 열심히 하자고 해 놓고…… …괴담수사대라고 하셨죠? ”
“네… ”
“감사합니다… 덕분에…… 덕분에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됐어요… ”

그는 눈물을 닦고 말을 이었다,

“현장에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얘기를 듣고, 사는게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그렇게 있는 걸 하늘에 있는 동료들이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들 몫까지 열심히 일하기로 했었죠… 그러다가 그 아이 이야기를 듣게 된 겁니다… 그 때 내가 도와달라는 소리를 듣고 도우러 갔었다면 그 아이만은 살릴 수 있었을텐데… 다시 일하면서도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괜찮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

그는 미기야의 손을 부여잡고 연신 감사 인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