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9. Avaritia(하)

현장에 갔던 미기야와 라우드는 저녁이 돼서야 사무실로 돌아왔다.

“왔냐? 뭐 소득은 있어? ”
“그게… 영상을 보다가 중간에 끊겼어요. ”
“영상이 끊겨? 시간이 오래 지나서 그런 거 아냐? ”
“그게 아니라, 뚝 잘려버리듯 재생이 갑자기 멈췄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피해자의 유령을 만났는데, 보지 말라는건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데요. ”
“유령이 끊었나보지. 그 뒤에 보면 안 되는 일이라…… ”

파이로는 닥터페퍼를 마시고 있었다.

“파이로 씨는 뭐, 소득 있었어요? ”
“진범의 얼굴을 봤달까. ”
“얼굴을 보셨어요? ”
“응. 진범이 따로 있다는 소문이 학교에 쫙 퍼진 모양이던데… 아무튼, 그것때문에 탐문 수사를 하러 갔다가 봤지 뭐야. 처음에는 진범인 줄 몰랐는데, 그 녀석 지나가는데 크리멘이 웃던데. ”
“크리멘 씨가 웃었다고요? ”
“응. 아마도 그 녀석이 말하는 표식인가 뭔가가 보였던 모양이지. ”

파이로는 닥터페퍼 한 캔을 다 비우고, 또 다시 한 캔을 따고 있었다. 치익, 탄산 가스 빠져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진범은 피해자를 좋아했는데, 피해자한테 임자가 있었대. 그랬는데 고백했다가 차인 후로 스토커처럼 변하더니 이 사단이 났다, 이게 소문으로 떠도는 내용이야. ”
“혹시 그 사람, 키가 크고 까만 머리였나요? ”
“응. 근데 되게 음침하게 생겼던데… 말랐어, 되게. ”
“역시… 그 사람이 범인이었어… ”
“그런데 진범이랑 지금 범인으로 지목된 인간이 무슨 관계인지는 몰라. 거기까지는 잘 모르는 모양이더라고. ”
“그럼 내일 한번 더 가야겠네요. 이번에는 제가 갈게요. ”
“그럼 난 현장으로 가 볼게. ”

다음날. 미기야는 탐문 수사를 위해 강의실로 갔고 파이로는 현장으로 갔다. 현장에 들어선 파이로 역시 피해자의 원혼을 봤다.

“아, 네가 피해자인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다. ”
“제가… 보이세요? ”
“보이다마다. 네녀석과 동류거든. 어제 남자 두 명이 왔다갔었지? 사이코메트리로 영상을 보려다가 중간에 끊겼다고… ”
“보… 보여줄 수 없었어요…… ”
“알아, 뭔지. ”

그녀의 눈이 슬퍼보였다.

“진범의 얼굴도 확인했어. 다만, 수수꼐끼인 게 남아있어서 말이야. 지금 범인으로 지목된 인간과 진범의 관계… 그게 문제야… ”
“저… 사실은… 태휘 선배가 영현 선배를 통해 저한테 고백했었어요… 그러는 과정에서 두 분이 한 번 싸웠던 적도 있다고 했고…… 하지만 저도 그 두 분이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어요. 신입생이라… ”
“그런가… 뭐, 아는 대로 말해준 것 같아서 고맙군. 수사에 협조해 줘서 고맙다. 그럼, 성불해라. ”
“고마워요… ”

그녀는 눈물을 한 방울 남기고 사라졌다.

그 시각…

“꺄아악- ”
“얼마나 힘들게… 내가 겨우 입을 막았는데… 왜? 너도 민영이 곁으로 보내줄까? ”
“서, 서, 선배- 살려주세요! ”

파이로는 운동장으로 나왔다가 어제 만났던 학생이 끌려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녀는 가윗날을 꺼내 한 손에 든 다음 남자에게 달려갔다.

“!!”
“네놈,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구만. ”
“넌 뭐야? 방해하지 말고 저리 사라져! ”
“괴담수사대다. 어이, 괜찮아? ”
“하아, 하아… 네… ”
“어서 가. 이 녀석은 내가 처리하지. ”
“하지만… ”
“어서! ”

여자를 보낸 그녀는, 가윗날을 남자의 목까지 들이댔다.

“진범 곽태휘. 비밀이라는 건 없어,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니가 알고 있는 이상… 니가 범인으로 내보낸 영현이라는 학생이 현장에 없었다는 증거도 나왔거든. 그래서 재수사중인데, 네녀석의 얼굴을 봐 버렸지 뭐야? ”
“!!”
“한번만 더 목격자 살해 위협 하면, 체포되기 전에 저승으로 보내버린다? 알아들었으면 사라져. ”
“히익- ”

남자는 무언가에 데인 듯 화들짝 놀라더니, 후다닥 뛰어가버렸다.

“뭐가 뭔지 모르겠군. 미기야는 잘 하고 있으려나… ”
“어이, 이봐. ”
“아, 깜짝이야. ”

파이로의 뒤에는 어느새 나타난 크리멘이 서 있었다.

“그나저나 너… 어제 저 녀석 보고 웃은 게, 진범이라 그런거였냐? ”
“응. 크큭… 지금도 목격자들 입 막으려고 돈 갖다 바치고, 밥 사준다고 꼬시고 하지만 글쎄다… 이제 먹히든가, 죽든가, 체포당하든가 셋 중 하나밖에 안 남은 것 같다. ”
“저런 놈은 어비스로 보내기도 아깝지 않냐? ”
“무슨 소리. 저런 녀석이 무간지옥으로 가면 그게 더 낭비야. ”
“하긴, 어비스로 떨어지면 여기로 올 일은 없으니… ”

그 날 저녁, 탐문 수사를 끝낸 미기야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파이로는 먼저 돌아와서 닥터페퍼를 마시고 있었다.

“아, 파이로 씨. 일찍 오셨네요? ”
“어. 뭐 좀 알아왔냐? ”
“사건의 어귀가 대충 맞아가는 것 같아요. ”
“오호… 이 쪽도 마찬가지. ”
“유령을 만나신건가요? ”
“응. 진범하고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이, 한번 싸운 적 있었다던데. ”
“아아, 그거요? 꽤 복잡하게 엉켜있던데… ”

민영이 입학한 해에, 영현과 태휘는 복학을 했다.
민영과 같은 수업을 듣는 영현 역시 처음에는 민영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남자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단념했다. 대신 영현은 그녀에게 있어서 좋은 선배이자 연애의 조언자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태휘는 반대였다. 남자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도 민영에게 고백을 했고, 결국은 차였다. 그 후로 민영이 그를 피하자, 그는 점점 스토커가 되어 갔다. 아니,누가 보더라도 미쳐간다는 게 눈에 보였다.

태휘와 영현이 싸운 것은 태휘가 고백했다가 차인 날이었다. 그는 민영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고백을 했고, 영현은 그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다가 언성이 높아지고, 말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된 것이었다. 그 날은 과 대표가 말려줘서 싸움이 겨우 끝났지만, 그 후로 두 사람의 사이에는 골이 매우 싶어졌다. 사건이 있기 전까지도, 태휘는 뒤에서 영현의 험담을 하고 다녔다.

“남친이 있는데도 고백했다… 그 자체도 문제지만 글쎄요. 진범이 남자친구를 죽여버리겠다…는 말까지 했던 것 같은데요. ”
“미친 녀석이구만. 그래서, 단순히 사이가 안 좋아서 뒤집어씌운거야? ”
“그건 아니예요. ”

태휘가 영현에게 뒤집어 씌운 이유는 단순히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만은 아니었다. 태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아버지의 회사를 몰려 받을 예정이었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오점을 남기지 말 것.

그런 것 떄문에 그는 수업은 빠지면서도 학점은 잘 받기 위해 컨닝을 하면서 입막음을 하기도 하고, 시험 문제를 뺴돌리려고 하다 경고를 받기도 했다. 그는 영현에게 복역하고 나오면 일자리를 제공해 주는 조건으로 자기 대신 범인으로 지목될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 어차피 진짜 줄 생각도 아니었을걸? ”
“그렇긴 해요… 두 사람, 사이가 안 좋았다니… ”
“그럼 진범이 그랬다는 증거는 뭔데? ”
“어귀가 안 맞았다던 증거를 하나하나 맞춰보면 되겠죠. 지문이라던가… ”
“아니, 무작정 잡아가라고 할 수는 없잖아. ”
“그것도 그러네요. 형사님께는 진범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으니 한번 조사 해 보라고만 할게요. ”
“응. 그리고 그 녀석 잡히면, 살인미수 추가해라. 어제 나한테 제보했던 학생 죽이려고 하더라. ”
“…… ”

입막음을 위해 살인까지 불사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잡혀가기 전에 크리멘에게 먹힐 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미기야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아, 형사님? ”
‘미기야 씨, 진범을 잡았습니다. 전에 조사해보라고 하셨던 그 녀석이 진범이었어요. ‘
“정말요? ”
‘네. ‘

다행히도 진범은 잡혔다.

“다행히 잡혔네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대요. ”
“뭐냐? ”
“죄를 부인한다던데요… 증거를 들이밀어도 조작된거라고 하고… ”
“…… 애쉬. ”
“응? ”
“크리멘 불러. ”
“…왜? ”
“진범이 죄를 부정한다… 포식할 준비 하라고 해. ”
“…… ”

애쉬의 연락을 받은 크리멘이 경찰서에 도착했다. 그리고 미기야와 파이로 역시 경찰서에 도착했다. 경찰서에 들어선 파이로는 태휘를 발견했다.

“얘 살인미수도 추가해. 목격자 죽이려고 했어. ”
“정말? ”
“어. ”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뭘 믿고 나를 진범으로 몰아? ”
“크리멘. ”
“응. ”

크리멘의 뒤에 둥둥 떠 있던 손이 태휘의 머리를 통과했다. 한동안 머리가 아픈지 머리를 꼭 쥐고 있던 태휘는, 푹, 고꾸라졌다.

“너의 죄를 뉘우치는가? ”
“…… ”
“너는 한 사람의 인격체를 그저 자기가 가질 수 없다는 이유로 죽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까지 한 데다가 목격자를 죽이려고 했지. ”
“…… ”
“아니면, 먹히든가. ”
“갖고싶어… 갖고싶어… 남자친구라도 죽일거야… 혼자 남겨서 가질거야… 그리고 내가 가질거야… 갖고싶어… 갖고싶은 걸 갖는 게 뭐가 나빠? 왜? ”
“뼛속까지 미쳤군. ”

그리고 다음 순간.

“!!”

크리멘의 손이 태휘의 머리를 한 번 통과하자, 그는 얌전해졌다.

“형이 다 끝나건 어쩄건, 네녀석의 남은 수명은 3년이다. 그럼, 이만. ”

크리멘은 질렸는지 밖으로 나가버렸다. 파이로와 미기야도 그녀를 쫓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밖으로 나온 파이로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흐윽… 민영아…… 오빠가 미안해…… 미안해…… 형을 말렸어야 했는데…… ”
“…… ”
“저 사람이 영현이라는 사람인가봐. ”
“그런가봐요… ”
“…… 어이. 넌 나쁘지 않아. 네가 잘못한 것은 없다… 그 아이, 널 원망하고 있지는 않아. 정말로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면, 죄를 뒤집어쓰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말았어야지. ”
“……? ”
“가 봐. 그 아이에게 인사라도 가야지.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지 않겠냐. ”

파이로는 주저앉아 우는 영현의 등을 토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