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5. 벌의 무게

“여기가… 괴담수사대인가요? ”

상당히 초췌해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사무시로 들어섰다. 그리고 남자가 들어섬과 동시에 파이로와 야나기는 코를 막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네, 여기가 괴담수사대입니다만… ”
“부…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
“여기 앉으세요. ”

남자가 테이블에 앉자, 물잔을 건네 미기야가 흠칫 놀랐다. 남자의 주변에는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손이 떠 있었던 것이다. 그 손은 매우 까맣고, 종이로 만든 것처럼 납작하면서 흐늘흐늘거리며 남자의 주변에 떠 있었다.

‘저 손들은 대체…? ‘

한 눈에 보더라도, 남자는 그 손들떄문에 온 것임을 그는 알 수 있었다.

“주변에 보이는 손들 때문에 오신거죠? ”
“여… 역시, 당신에게는 보이는군요! 내가 찾아갔던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미친 사람 취급 했었어요… 하지만 난 미치지 않았어… 그리고 이건 환영 따위가 아니었어…… ”

남자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이 손들 뿐 아니예요. 매일 밤마다, 죽어버리라는 말도 들리고… 피를 흘리며 눈앞에 서 있는 여자도 보여요. 그래서 병원에 가 봤지만… 처음에는 약을 처방해 주던 의사들도 결국은 나를 미친 사람 취급 했어요… 이 손들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요… 제발 어떻게 좀 해 주세요… ”
“알겠습니다.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조사를 끝낸 다음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연락처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
“정말 감사합니다. ”

남자는 메모지에 연락처와 이름을 남기고, 미기야의 연락처를 받곤 연신 인사를 하더니 가 버렸다.

“그나저나… 파이로 씨는 어디 계신거지… ”
“휴우, 겨우 냄새 빠졌네… 야, 그 녀석 갔냐? ”

아직도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 그녀는 손부채질을 하며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평소같았으면 의뢰인 옆에 있었을텐데, 의뢰인을 보자마자 들어가버린 그녀가 의아했는지 미기야가 놀란 투로 물었다.

“으에엑? 왜 거기 들어가 계셨어요? ”
“냄새가 구려서. ”
“…네? ”
“그 녀석, 온통 까만 손 투성이 아니었냐? 그리고 환영이 보인다느니 뭐하니 했던 것 같은데… 아주 고약한 놈들이 꼈군. 저 녀석, 분명 무슨 큰 죄를 지은 게 분명해. ”
“……?!?!”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고는, 아직도 냄새가 나는지 창문을 열었다.

“고약한 놈들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아주 고약한 녀석들이지. 저 녀석이 죽기 전까지는 계속 붙어 있을 모양인데… 저 녀석이 연락처 남겼냐? ”
“네. ”
“잘 됐군… 저 인간에 대해서 일단 조사해봐. 범죄 경력 위주로. ”
“네? ”
“빨리. 그게 저 녀석을 살리는 길이야. ”
“아, 네… ”

파이로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미기야는 남자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파이로는 세베루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세베루스 씨. 오랜만이네요- ”
‘파이로군요.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 ‘
“뭐 여쭤볼 게 이어서 전화했어요. 혹시 남인영이라는 남자를 아시나요? 요번에 이쪽 수사대로 의뢰를 한 사람인데, 주변에 독한 원한령이 잔뜩붙어있었거든요. ”
‘독한 원한령…? 그것도 잔뜩이요? ‘
“네. 사무실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났어요. ”
‘냄새라… ‘
“그래서 말인데, 혹시 살해당한 사람들 중에 이 사람에게 살해당한 사람이 있는 지 알아봐주세요. 웬만하면 이 정도 아니면 그렇게 독한 원한령이 달라붙기도 힘들고, 그 녀석 얘길 들어보면 죽을 때까지는 괴롭힐 모양이던데… ”
‘알겠어요. 결과 나오는 대로 연락할게요. ‘
“네, 부탁드립니다. ”

파이로는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어디 가시게요? ”
“아아, 알아볼 게 좀 있어서. 야나기, 가자. ”
“응. ”

야나기와 함꼐 사무실을 나온 파이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곧 무언가를 따라갔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 눈에는 도로 한복판에 난 까만 선이 보였다.

“발자국까지 남기는 거 보게… ”
“그런데, 이 선은 왜…? ”
“일단 저승에서도 알아보긴 하겠지만, 같은 날짜라고 해도 사망자 수가 많아서 특정 인물에게 살해당한 사람 자체를 찾는 건 오래 걸릴거야. 솔직히 너도 이상하지 않아? 무슨 짓을 했길래 독한 원한령이 하나도 아니고 떼거지로 붙어서 냄새까지 풍기는지? ”
“엑… 그럼 뒷조사라도 하는거야? ”
“미기야에게도 의뢰인의 조사를 의뢰하긴 했지만… 일반인 자격으로 할 수 있는데는 한계가 있어. 우리는 흥신소가 아니거든. 저 녀석의 범죄 경력 위주로 조사해달라고 하긴 했지만, 그와 별개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저 중 한 녀석을 포획해서 심문하는거지. ”
“너 그거 할 수 있겠냐… ”
“저놈들하고 동류이니 가능하겠지. 일단 가보자. ”

한참을 까만 선을 따라가자, 으슥한 골목길이 나왔다. 안쪽은 캄캄해서 선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거대한 손들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저기다. ”

파이로가 가리킨 곳에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손에는 담배꽁초가 들여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팔랑거리는 손과, 작은 약병이 보였다.

“야나기, 넌 저기 보이는 빈 약병을 챙겨. 난 저 녀석을 포획한다. ”
“괜찮겠냐, 너… ”
“여차하면 태워버리지, 뭐… ”
“뭐,좋아. 그럼 시작하자. ”

야나기가 빈 병을 슬쩍할 동안, 파이로는 주변에서 팔랑거리는 손 중 하나를 잡았다. 그리고 손을 잡아당기자, 안 나올 듯 버티고 있던 손이 쑥 풀려나왔다. 그리고 그 손과 함께 나온 것은 헝클어진 긴 머리를 가진 여자의 유령이었다.

“키에에엑- 너, 너도 내가 보이는건가? ”
“쉿. 네녀석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 ”
“……? 뭐지? 너는 저 녀석과 한 패가 아닌거야? ”
“저 녀석이, 주변에 떠돌아다니는 손을 어떻게든 해 달라고 우리 측에 의뢰를 넣었다…만, 이렇게 고약하게 냄새를 풍기는 원한령을 처음이라 말이지. …어라, 네녀석, 냄새가 나지 않는데? ”

의외로 그녀가 데려 온 귀신에게서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건 저 녀석이 풍기는 냄새야. 뭐… 저 녀석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거야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냄새까지 풍길 리는 없잖아. ”
“좋아… 그렇다면 냄새와 네녀석들이 붙어있는 건 별개로군. 그럼 넌 왜 저 남자를 괴롭히는거냐? ”
“그야, 저 녀석이 날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
“이렇게 만들었다…는 건… 너를 죽였다는 얘기? ”
“정답. ”

그녀는 말을 이어 갔다.

그녀는 어느 날, 남자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변을 당했다고 한다. 누군가가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고, 뒤를 돌아보니 그였다. 그래서 도망쳤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은 외진 곳으로 끌려가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나는 저 녀석의 첫 피해자여서 신문에 그렇게 오래 실리지는 않았어… 하지만 내 뒤로도 나와 같은 녀석들이 많았지… ”
“잠시만… 야나기, 병 챙겼어? ”
“응, 여기. ”

야나기가 건넨 것은 영어가 적힌 약병이었다.

“뭐야, 이거… ”
“그건 마약이야. ”
“마약…? ”
“응. 녀석은 우리를 죽인 후 우리의 지갑을 털었고, 그 돈은 전부 이것을 하는데 써 버렸지… ”
“그런가… 너, 시체는 어디 묻혀있냐? ”
“나도 몰라. 모르겠어… ”
“…… ”

그녀에게서 파이로는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피해자를 죽인 것도 모자라서 마약을 사느라 피해자의 지갑을 전부 털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지금 그에게서 보이는 손은 전부 이런 식으로 당한 것인가, 거기다가 시신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마약이라… 이거…… 아무래도 신종 마약인가보네. 뭐, 요즘 신의 눈물이라고 해서 한 번 뉴스에 나온 적은 있었지만… 그나저나 수사에 협조해줘서 고맙다. 그럼, 이만. ”

파이로가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사무실에는 정훈이 와 있었다.

“아, 왔나. ”
“어떻게 됐어요? ”
“원한령 자체에서 냄새는 나지 않았어. 그 녀석의 체취였던 것 같은데? 아니면 담배냄새가 섞여서 고약해졌거나… 그보다 저 녀석의 의뢰, 들어주지 않는 편이 좋아. ”
“……어쨰서요? ”
“원한령 하나를 잡아서 조사해봤는데, 전부 그 녀석에게 살해당한 유령이었어. …요즘 신의 눈물이라고 해서 담배에 묻혀서 피우는 마약 있지? 그 걸 피우는 것 같던데… 야나기, 병을 형사에게 줘. ”
“자. ”

정훈은 빈 병을 건네받았다.

“안에 액체가 좀 남아있는 것 같으니, 성분 분석 해 보세요. ”

정훈이 병을 건네받고 비닐봉투에 넣었다. 그 때 마침, 세베루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파이로 씨. 저 세베루스입니다만. ‘
“아, 세베루스 씨. 알아보셨나요? ”
‘네. 남인영이라는 남자에게서 살해당한 사람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아아, 그거라면 제가 알아냈습니다… 그 녀석에게서 붙어있었던 원한령을 조사했거든요. 그 녀석이 마약을 구매하는 데 쓸 자금을 구하려고 피해자를 살해하고 지갑을 털어왔던 모양이더라고요… ”
‘그렇군요. …가만, 마약을 구매하는 데 쓸 자금을 구하려고 살해했다…는 얘기죠? 그러고보니 이번에 암매장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원한령 목록이 있다고 하는데, 혹시…? ‘
“설마… 그 목록 좀 보내주실 수 있으세요? ”
‘잠시만요. ‘

전화를 끊은 파이로는 세베루스에게서 온 명부를 건넸다.

“형사 양반. 혹시 여기에 적힌 사람들중에 실종신고 된 사람 있어? ”
“음… 보자…… 성분 분석하면서 그것도 한 번 알아볼게요. ”

정훈이 돌아간 후…

“파이로 씨. ”
“뭐냐? ”
“원한령에게서 냄새가 나지 않았다면 대체 그 냄새는 뭐였을까요? ”
“체취+담배냄새가 아닐까. 아까 따라가을 떄도 그 녀석, 담배에 마약 묻혀서 피우는 것 같더만… ”
“흐음…… 그런데 왜 저는 몰랐을까요… ”
“내가 담배냄새에 좀 예민하거든. 혐연가라서 말이야. ”
“…… ”

며칠 후, 미기야의 전화기가 바쁘게 울렸다.

“여보세요? ”
‘사, 사, 살려줘요! 그, 그놈들이 나를…… 으아아악! ‘
“!! 거기 어디세요? ”
‘…… -뚜-‘

전화는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끊어졌다.

“뭐야? ”
“아무래도 의뢰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
“!!”
“야나기, 가자. ”
“응. ”

파이로는 남자의 자취를 쫓아 갔다. 여전히 어제의 그 장소에 손들이 무수히 많이 모여 있었다.

“!!”

하지만 어제와 달랐다.
그 손들은 남자를 끌어당기고 있었고, 그 뒤편에는 까만 구멍같은 것이 보였다. 마치 벽을 뚫고 원래 있었던 것처럼, 통로와도 같았다. 남자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손은 더 세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역시… 독한 것들이군. ”

파이로는 가윗날에 혼불을 붙였다.

“남인영, 네 죄를 기억하나? ”
“죄…라니, 무슨 죄를 말하는거요? ”
“네녀석을 지금 끌어당기는 손은, 네녀석이 그 동안 죽여왔던 사람들의 원한. 네녀석이 마약을 구매할 자금을 마련하려고 저지른 범죄의 업보. 지금 너의 죄를 인정한다면 저 녀석들을 베어 없앨 수 있지만, 네녀석이 너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너는 저 손들에 의해 무간지옥으로 떨어져 네녀석이 죽였던 그 이상으로, 태어나기 전에 죽는 형벌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
“잠깐만요, 파이로 씨… ”
“시끄러. 죄를 지었다면 응당 벌을 받아야 하는 게 맞아. 인간들이 현세에서 죗값을 치르지 않는다면, 사후에 치르는 그 죗값은 더더욱 어마어마하지. 죄의 몇 배에 해당하는 강도로, 몇 백년이나 똑같은 벌을 받으며 뉘우쳐야 한다. …지금이라도 네녀석이 지은 죄를 떠올리고 용서를 빈다면 풀어줄 용의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어. ”
“시끄러워,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거야! 난 그저 돈이 필요했을 뿐이야! 돈을 달라고 해 봤지만 주지 않기에 몇 대 치고 뻇었을 뿐이라고! 그게 뭐가 나빠? 돈이 필요해서 그랬을 뿐인데 어쨰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거지? ”
“…… ”

파이로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혼불을 껐다. 그리고 벽으로 끌려가는 인영을 내려다봤다.

“불쌍한 녀석… ”
“어서 이거나 꺼내줘! 뭐 하는거야!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
“몇백년동안, 네녀석이 죽여왔던 것 그 이상으로 태어나기 전에 죽은 후에 후회하거라. 무간지옥에서 벌 받으면서 뉘우치거라. 네 녀석을 살려둔다면 앞으로 몇 개의 촛불이 꺼질 지 모르겠구나. ”
“!!”
“너희들에 대해서는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해 둔 상태니까 곧 찾을 수 있겠지만, 이 녀석은 자신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무간지옥에 떨어트려. 몇백년이고 몇만년이고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가면서 고통을 알아가고 죄를 뉘우치도록. 그런 후에야 너는 비로소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것이다. 가지. ”

파이로는 미기야와 현을 데리고 물러났다. 그리고 손들이 남자를 더욱 더 거세게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다리가 빨려들어가나 싶더니, 어느새 상반신이 빨려들어가고, 마침내는 목까지 빨려들어간 후 구멍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깨끗한 벽만이 남았다.

“…… 그 무간지옥 얘기는…… ”
“원한령에게 물어봤었지. 이 녀석에게 붙게 된 이유를…… 마약을 구매할 자금을 마련하려고, 저 원한령들을 죽이고 지갑을 털었던 거였어. 심지어 자신의 시신이 어디 묻혔는지도 모른대. ”
“…… ”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알고 뉘우치기만 했어도, 저렇게까지 되는 일은 없었겠지. 녀석들이 붙어있는 시점에서 죄를 뉘우치거나 하지는 않았을테지만. ”

파이로는 돌아서서 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