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XVI. 그리하여 그 끝은 고통으로 가득할지니

「그들을 현혹시키던 그 악마도 불과 유황의 바다에 던져졌는데 그 곳은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영원 무궁토록 밤낮으로 괴롭힘을 당할 것입니다. (요한의 묵시록 20:10)」

시트로넬의 가위에 찔려 의식을 잃었던 남자는, 어느 열차에서 눈을 떴다. 내부를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열차 안에는 그 외에도 몇 명이 더 타고 있었다.

‘이상하다… 귀가 하나도 아프지 않아…? ’

분명 붉은 달의 악마가 그의 귀를 문자 그대로 잡아 뜯어서 피를 잔뜩 흘렸었는데, 신기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귀가 있는 쪽을 다시 만져보니, 분명 뜯겼던 귀가 다시 붙어있었다.

“눈을 뜨셨군요. 금방 안내 도와드릴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그리고 눈을 뜬 그의 앞에, 정장 차림의 남성이 나타났다. 남성은 그에게 수트 케이스를 하나 건네며, 피가 묻은 옷을 주고 그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다. 대학원 면접 볼 때 빼고는 한번도 입은 적 없었던 정장을 오랜만에 입어보게 됐다. 탈의실에 들어가 정장을 다 갈아입자, 남자는 피가 묻은 옷을 건네받고 다음 칸으로 안내했다.

“어서오세요. ”

다음 칸에서 머리를 만지고, 그 다음으로 식당칸으로 가자 요리가 나왔다. 아빠가 바람나기 전 엄마와 마지막으로 먹었던 경양식 돈까스와, 어릴적 엄마가 자주 사주셨던 컵에 담긴 젤리.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면 남동생과 함께 먹기로 했던 막창 소금구이였다. 직원은 소주도 같이 드리고 싶었지만, 열차 내에서 술은 서비스하지 않는다며 사과하고 사이다 한 캔을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상은 조촐해보였지만, 전부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었다. 폭력작이었던 아빠가 다른 여자를 데려와 엄마라고 부르라며 마구 때리기 전까지, 가족들의 사이는 좋았다. 그리고 그런 가족들의 사이를 깨트린 게 그 여자와 남동생이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을 증오했지만, 지금은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 단지 돌아가신 엄마가 만나고 싶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아마도 그 여자를 데려온 날부터 인생이 잘못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그의 인생에 한줄기 빛이 되었던 게, 바로 아버지의 잔소리를 피해 호수공원에 갔던 날 밤에 봤던 그 여자였다. 미의 여신이 땅으로 내려온다면 이런 얼굴일까 싶은 아름다운 얼굴이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달빛을 받은 그녀의 머리카락도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세상 어느 곳에도, 그녀보다 아름다운 여자는 없었다. 조용히 호숫가를 걷고 있는 그녀를 보면, 마치 지상에 미의 여신이 강림한 것 같았다.

그것이 달의 악마였다는 걸 알게 된 그는, 그녀와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댓가는 갈망하던 그녀의 ‘혐오’였다.

“이 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

식사를 마친 그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다음 칸으로 갔다. 그 곳에서 차를 마시면서 쉬다가 또 다시 다음 칸으로 간 그를 기다리는 것은, 와인으로 머리카락을 만든 것 같은 여자였다. 그녀가 있는 곳은 붉은 국화로 치장된 방이었고, 그녀는 책상에 앉아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낫이 떠다니고 있었다.

“아, 왔군. ”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서류를 다 넘겨본 그녀는, 서류 더미를 책상에 팍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달의 악마를 만나기 위한 의식의 제물로 일곱명을 죽였다라… 만났냐? ”
“네? ”
“그래서 만났냐고. ”
“아뇨… ”
“그렇겠지. 달의 악마는 무엇보다도 다툼과 살생을 제일 싫어하거든. 아이러니한 악마야. 본인을 소환하기 위한 마법진을 그리는데는 목숨 일곱 개가 필요하지만, 그걸 진짜로 실행에 옮기면 차이거든. 그러면 남는 건 뭐냐, 차였다는 비참함과 일곱명을 죽인 것에 대한 벌만 남아. 아무리 죽일만한 쓰레기였다고 해도, 그들의 죄를 심판하는 건 니 일이 아니거든. 우리같은 저승사자가 할 일이지. ”
“…… ”
“너는 다른 죄인들이랑 달라서 특별히 높으신 분이 에스코트를 해 줄거다. ”

열차가 도착하자, 탑승객들이 일제히 열차에서 내렸다. 그 역시 그녀와 함께 열차 밖으로 나왔다. 열차 밖으로 나오자, 붉고 황량한 황야가 넓게 펼쳐진 곳이 나타났다. 몇몇은 열차에서 내린 사람을 데려가고, 몇몇은 열차에서 짐을 내리고 있었다. 열차에서 내린 짐과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중앙의 밝은 구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다 내린거지? 그럼 나도 슬슬 계층으로 돌아가야겠다. ”
“아, 백설공주님. 이쪽이 그 사람입니다. ”
“아아, 달의 악마를 만나기 위해 의식을 치렀다는? 알았어, 가는 길에 최심부로 데려다줄게. ”
“그럼 부탁드립니다. ”

백설공주라 불린 여자는, 까만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기르고 있었다. 동화 속에 나오는 백설공주가 이렇게 생겼을까 싶을 정도로 하얀 얼굴에, 입술에는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파란색 코트 밑으로는 꽉 끼는 청바지가 보였고, 그 밑으로는 굽이 대단히 높아 보이는 힐을 신고 있었다.

“따라와. ”
“아, 네. ”

그는 백설공주의 뒤를 따라 밝은 구멍으로 들어갔다. 구멍으로 들어서면서부터,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기는 그나마 약한 계층이니까, 벌써 겁먹으면 안돼. ”
“…… ”
“그래, 달의 악마를 만나겠다고 소환 의식을 치뤘다고? 하긴, 달의 악마가 예쁘긴 해. 나도 몇번 본 적은 있는데,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까. 그 샘 많던 눈의 여왕이 유일하게 자신보다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것도 달의 악마고. ”

계단을 계속해서 내려가다 보니, 휴게실로 보이는 공간이 보였다. 휴게실에서 물 한 잔씩을 마시고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하면, 아까보다 더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애써 무시하고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가니, 1계층이라고 쓰여진 표지판이 보였다.

“다 왔다, 여기가 내가 일하는 1계층이야. 여기~ ”
“관리자님 오셨습니까? ”

백설공주가 어딘가로 손짓하자, 직원들이 바로 달려와 그녀를 맞았다. 그녀는 쇼핑백 몇 개를 건네며 사무실에 가져다 두라는 얘기를 하고, 계속해서 그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계속해서 벽에 촛불이 있는 캄캄한 통로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자, 거대한 해골 위에 앉은 여자가 두 사람을 맞았다.

“최심부로 가는 손님인가? ”
“네. 달의 악마를 만나기 위해 소환 의식을 했다네요. ”
“그런가… 만나지는 못 했겠지. 안으로 들어가도 좋아. ”

그녀를 지나쳐 거대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원룸 하나를 통으로 옮겨둔 것 같은 방이 하나 나왔다. 방은 비상구로 보이는 문과 가재도구, 화장실, 부엌까지 있어서 마치 원룸 하나를 그대로 옮겨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바닥은 투명했고, 그 밑으로 누군가 거대한 괴물에게 쫓기는 게 보였다.

“여기가 네가 지낼 최심부야. 곧 너를 맞이할 손님도 올 거고. ”
“손님이요…? ”

비상구로 보이는 문이 열리고, 피로 얼룩진 천을 전신에 감은 여자가 들어왔다.

“멀쩡해보이는데, 이런 걸 진짜 나 줘도 돼? 개미 하나도 못 죽일 거 같이 생겼는데… ”
“달의 악마를 만나기 위해 소환 의식을 치렀던 사람이야. ”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응? 귀에 뜯긴 흔적이 있네? 쌍둥이 언니라도 만난건가? ”
“그런가보지. 나도 못 만났다는 얘기만 들어서 잘은 몰라. 뭐, 그럼 난 에스코트 다 했으니까 간다. 그 녀석은 니가 구워먹든 삶아먹든 맘대로 해. ”

백설공주가 방 밖으로 나가자, 전신에 천을 감은 여자는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달의 악마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손 네 개, 혀, 눈, 그리고 머리, 심장, 피가 필요하지? ”
“……! ”
“사람은 손이 두 개라 아쉽네. 대신 발이라도 잘라야지… 괜찮아, 머리가 떨어져도 움직일 수 있게 해 줄게. 나, 그런 쪽으로는 꽤 일가견 있거든. 그리고 최대한 오래 갖고 놀려면, 어쩔 수 없단다. ”

전신에 천을 감은 여자는 새로운 장난감이 생겨 싱글싱글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살벌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를 지나는 사람은 슬픔의 도시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영원한 비탄으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망자에 이른다.
정의는 지고하신 주를 움직이시어,
신의 권능과 최고의 지성과
원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들었다.
나보다 앞서는 피조물이란
영원한 것 뿐이며 나 영원히 서 있으리.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 <신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