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낡은 폐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
“하아… ”
휘갈겨 적은 유서를 내려놓고 옥상으로 올라왔지만,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스토킹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너무 힘겨워서 죽으면 끝날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이유로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는 없었다.
“그래, 여기서 떨어지면… 더 이상 그 사람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돼… ”
마침내 결심이 섰는지 그녀는 떨어지려고 했지만, 떨어질 수 없었다. 몸을 그대로 얼려놓은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 ”
“생명은 소중히 해야 하는거예요. ”
폐건물이라, 이 시간에 일부러 찾아올 만한 사람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녀를 붙잡고 있는 그것을 사람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얼핏 보기에는 사람같았지만, 붉은 안광 여러 개가 보였다. 뿐만 아니라, 가로등 불빛에 가느다란 실이 보였다.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먼, 무언가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 쓴 존재같았다.
“…음? ”
무언가는 그녀의 발치에 놓여있던 유서를 집어들고 찬찬히 읽었다.
“스토킹이라는 건 뭔가요? ”
“…… ”
“으음… 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괴로운 모양이군요. 그럼 그대는, 이 스토킹이라는 것만 어떻게 할 수 있으면 상관 없는건가요? ”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아니, 제발 어떻게든 해 주세요… 그 사람만 제 주변에서 치워주신다면, 뭐든 할게요. 대가로 뭐든 지불할테니- ”
그녀는 자신을 붙들고 있는 무언가에게 애원했다. 아마도, 인간이 아니라면 그녀를 쭉 괴롭히고 있는 스토커로부터 그너를 해방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스토커를 없애버리든, 그녀를 없애버리든,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방법으로든.
“대가로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아도 좋아요. 모든 것은 그대를 괴롭히고 있는 사람이 지불할테니까… ”
“…네? ”
“이 곳을 떠나거든, 메피스토 상담소를 찾아가세요. 아마 당신을 도와줄 수 있을거예요. ”
무언가의 전언을 들은 그녀는, 다음날 메피스토 상담소에 상담글을 올렸다. 그리고 메피스토 상담소로부터 사흘 후 자정에 동네 공원으로 가 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메피스토는, 자정에 공원에 가면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있을거라면서, 그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리고 그녀는 사흘 후 자정이 되기를 기다려, 공원으로 갔다.
“……! ”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공원에,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있었다. 도자기처럼 새하얗고,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어떤 그림으로도 감히 그려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까만 옷을 입고, 공원 벤치 한쪽에 앉아있었다.
“저, 저기- ”
“아, 메피스토가 말했던 게 너였냐? ”
보기만 해도 뚫려버릴 것 같이 붉은 눈이 이 쪽을 보고 있었다.
“누가 너를 스토킹하는거야? ”
“예전에 대학원 세미나에서 한 번 만났던 선배예요. 저는 그 분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몰랐는데… ”
“남자? ”
“네. ”
“남자면 확실하게 처리할 방법은 있지. 그 스토커한테, 사흘 후 자정에 여기서 만나자고 해. 그러면, 그 녀석은 너한테서 확실히 떨어져 나갈거야. ”
“여기서 만나자고요? 저는 그 사람이랑 만나고 싶지 않은데… ”
“너는 나오지 않아도 돼. 그냥 여기로 불러내기만 하면, 다~ 알아서 해결될거야. ”
붉은 눈의 여자가 말한 대로, 그녀는 사흘 후에 동네 공원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 지금까지 연락을 피하기만 했던, 기다리던 사람의 연락이라 그런지 그는 근쾌히 수락했다. 정말 이걸로 된 걸까, 그녀는 불안했지만 붉은 눈의 여자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사흘 후, 그녀의 연락을 받은 남자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 시각에 만나자고 불러내는 것 정도는,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자신의 구애가 드디어 성과를 이루었구나, 그뿐이었다. 몇 분 정도 늦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
그녀를 기다리던 그는, 빛나는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를 보았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어떤 그림으로도 감히 그려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조용히 걷고 있는 여자를 보면, 몇분 전까지만 해도 기다리고 있었던 그녀는 안중에도 없을 정도였다. 그녀의 바람대로, 그는 그녀에게서 떨어져나갔다. 대신 공원에서 만났던 빛나는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빛나는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대체 그녀는 누구인지,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는지. 하지만 어느 누구도 빛나는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아아, 어떡하지, 한참동안 그녀를 만날 방법을 알아보고 있던 그에게 발신인을 알 수 없는 메일이 왔다.
‘그녀를 만나고 싶다면, 달의 악마에 대해 알아보면 돼. ’
단 한 줄의 메일이었지만, 그가 찾고 있는 여자에 대한 정보가 담겨져 있다는 걸로 충분했다. 보통이라면 발신인이 없기 때문에 메일을 읽기도 전에 지웠겠지만, 그에게 있어서 그녀에 대한 정보가 적혔다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상관 없었다.
“달의 악마… 달의 악마라… ”
달의 악마에 대해 조사한 끝에, 그는 달의 악마를 다시 만나는 법을 찾았다. 식사도 잊어버릴 정도의 집념으로, 그는 달의 악마를 만나기 위해 필요한 것까지 알아내고 말았다. 하지만 그로서는 달의 악마를 소환할 제물을 어떻게 해야 할 지가 난제였다. 아무리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해도, 사람을 죽이는 건 범죄다. 하지만 그녀를 다시 만나지 못 하면, 그는 미쳐서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러던 찰나에, 그는 먹방 네튜버였던 글루가 뒷광고 논란으로 조사를 받을 예정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글루의 식생활, 한번쯤은 들어본 적 있었지만 구독은 하고 있지 않았다. 가끔 커뮤니티를 통해 접하긴 했지만, 저걸 진짜 다 먹을 수 있는건가 생각할 뿐이었다. 아마도, 달의 악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논란때문에 문제가 터졌구나, 라고 생각하고 넘겼겠지만 지금의 그는 달랐다.
‘뒷광고에 갑질까지… 정말 상종도 못 할 녀석이잖아. 이런 녀석이라면, 한두명 정도는 죽더라도 죽어도 싼 녀석이라고 생각하겠지? ’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그는 글루를 제물로 쓰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범행 현장에서 목격담을 없애기 위해 가면을 만들고, 범행을 할 때 입을 옷을 준비하고, 그녀를 납치하기 위한 계획을 짰다. 그것은, 오로지 그의 마음을 오롯이 뺏어간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기다려, 꼭 다시 만나고 말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