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5. 불가침 영역에는 이유가 있나니

A시 외곽에는, 대학생들이 MT를 오거나 친구들이 놀러오기 좋은 펜션 촌이 있었다. 그 마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마을에 모인 젊은 남녀는, 펜션에 짐을 풀자마자 펜션 앞에 흐르는 강으로 뛰어들어 수영을 하거나, 저녁 준비를 하거나, 싸 온 음식들을 정리하거나 하며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저녁은 삼겹살? ”
“콜! 맥주도 깔까? 병따개는 있어? ”
“응, 나 있어. 소주도 있고… 이만 올라와라, 저녁 먹자. ”
“응. ”

불판 바베큐에 삼겹살을 올리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꼐 고기가 맛있게 익어간다. 내가 굽네 네가 굽네 장난스레 옥신각신하며 고기를 구울 무렵, 한 쪽에서는 아침에 사 온 야채와 쌈장을 놓고 나무젓가락을 나눠 주고 있었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자 먹기 좋게 자른 다음, 종이접시에 담아 내기가 무섭게 고기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곁들여 먹으려고 사 온 맥주와 소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캬~ 역시, 펜션에서 먹는 게 꿀맛이야. ”
“진짜? ”
“뭐, 그런 것도 있고… 우리 절친들하고 와서 그런 것도 있고 ”
“그건 인정. ”
“다들 꼭 졸업하고 취업까지 LTE로 하자! 건배! ”
“건배! ”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서, 여전히 고기를 굽고 있는 남자 열에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도 있었다. 남자가 고기를 구워서 접시에 담아오면, 여자는 그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빈 접시를 가져다 두고 있었다. 그러느라 여자도, 남자도 둘 다 고기는 한 점도 못 먹은 상태였다.

“쟤네는 아직도 고기 굽냐… 야, 화영! 빨리 너도 와서 먹어. ”
“잠깐만~ 순호랑 같이 갈게. ”
“하여튼… ”
“내가 저 둘이 잘 되면, 축의금 여섯자리 낸다. ”
“오, 진짜지? 내가 적어둔다. ”

취기가 올라가며 너스레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워 가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한밤중이 되었다. 이떄다 십었는지 모기가 날아들자, 학생들은 모기를 피해 술과 고기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왔다. 모기가 들어오지 못 하게 방충망을 닫고 있었지만, 술을 너무 마셔서 열이 올라 있었던 이들에게 방충망이란 모기를 막아주며 바람도 같이 막아주는 것에 불과했다.

“하, 덥다… 진짜 모기 짜증나… ”
“그러게… 아직 봄인데도 모기가 많네… ”
“야야, 우리 좀 시원한 데로 가서 먹을래? ”
“시원한 데…? ”
“응. 오다가 봤는데, 저 쪽에 건물 하나 있던데. 사람 없으면, 거기서 먹자. 모깃불 피우고 먹으면 되겠지. ”

평소같았으면 누군가는 말렸겠지만, 그날따라 술에 거하게 취한 이들은 펜션으로 오는 길에 봤던 낡은 건물로 가기로 했다. 만장일치로, 삼삼오오 모여서 누구는 술을 들고 누구는 고기를 들고, 누구는 라이터를 챙겼다. 그리고 낡은 건물에 도착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이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뭐지, 여기 가정집이었나… ”
“그런가봐. ”
“누가 오면 어떡하지…? ”
“이 시간에 누가 오냐? 그리고 누가 오면 주인이 있는 집인 줄 몰랐다고 하면 돼지… ”
“맞아, 맞아. 자, 마시자! ”

한층 거나하게 취한 학생들은 빈 집에서 소주를 들이키고 즐겁게 게임을 했다. 한켠에서는 접시에 올려 둔 모기향이 타고 있었고, 한 쪽에서는 벌써 취했는지 잠든 사람도 몇 명인가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그 집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것 역시…

“여기가 혹시, 괴담수사대인가요? ”

아침부터 한 여자가 사무실을 박차고 들어왔다. 앞뒤 안 가리고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막 커피를 마시려던 미기야에게 다가갔다.

“아침부터 무슨 일로…… ”
“제발 제 동생을 살려주세요! ”
“네? ”
“동생이 죽을 수 있대요… 여기가 아니면 제 동생을 구할 수 없대요… 제발 제 동생을 살려주세요… ”
“저기… 일단 무슨 일인지 말씀을 해 주셔야 저희가 도와드리는데요…… ”

여자를 겨루 진정시킨 미기야는, 여자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제 동생이 동기들하고 우정 여행을 갔다 온 후로 이상해졌어요. 처음에는 잠꼬대를 심하게 하길래 많이 피곤했나 했는데, 갈수록 잠꼬대가 더 심해지더라고요… ”
“뭐라고 하던가요? ”
“살려달라고… 계속 그렇게 잠꼬대를 했어요. 한동안 좀 잠잠한가 싶더니…… ”

한동안 잠꼬대가 잠잠하다 싶더니, 그녀의 동생은 한밤중에 갑자기 거실로 뛰쳐나갔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깬 그녀가 거실로 나가자, 그는 허공에 대고 연신 잘못을 빌고 있었다. 제발 살려달라괴, 잘못했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허공에 빌고 있는 그를 말려보려고도 하고, 깨워보려고도 했지만 허사였다. 급기야는 그러다가 혼절을 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가르쳐주지도 않고… 갑자기 혼절해서, 엄마가 아는 분께 갔더니 여기로 가 보라고 해서…… ”
“동생분은 지금 괜찮으신가요? 저희가 한 번 만나봐야 할 것 같은데… ”
“지금은 좀 진정됐어요… ”
“그렇군요… 지금 같이 가시죠. ”

미기야가 여자와 함께 집에 갔다 올 동안, 파이로는 출근해서 소파에 드러누워 있었다.

“하암… 얘는 아침 댓바람부터 어디 갔냐… ”
“아침부터 의뢰인이 와서 나갔다고 하던데? ”
“의뢰인? ”
“응. 뭐가 급한지, 오자마자 동생 좀 살려달라고 하더라니까… ”
“뭔 일이래… ”

오후쯤, 여자와 함께 갔던 미기야가 돌아왔다. 그는 파이로가 출근한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뭐냐? ”
“네? ”
“의뢰인 왔었다며. ”
“아… 그게… 왜 전에 데스 애더씨가 폐건물에 계실 때… 그 의뢰 생각나시죠? ”
“아아, 어. 비슷한 거? ”
“네… 아니, 이번에는 훨씬 심각한 문제예요… ”
“?????? ”

미기야는 파이로에게 여자의 남동생에게서 들었던 것을 그대로 얘기했다.

“뭐? 걔네 미쳤대? 아니 술이 올라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델 함부로 들어가? ”
“??”
“…아니지… 이건 그 마을 인간들도 문제지. 애초에 그런 곳에 들어가는 걸 방지하지도 않고 이런 사단이 나게 만들었으니… ”
“뭔데 그래? ”
“우정여행 갔다가 술머고 폐가에서 깽판치고 놀았는데, 그 건물이 주인 있는 건물이었던거지. 그것도 엄청 많은 주인과 객식구가 있었던… 일제강점기에 병원이었던 곳이라는 얘기도 있어. ”
“그런 데를 잘도 들어가는군. ”
“모르고 들어갔을 수도 있지. 문제는 그게 아니야… 단순히 들어간 정도로 그 녀석들이 화가 나진 않았을 거란 말이지. 그 정도로 죽일 거다 이러면서 쫓아왔겠냐고. …아침에 왔던 녀석의 동생이, 그 집에서 뭔갈 만졌거나 부셨던 게 분명해. ”
“사자의 물건에는 손 대는 거 아니지. ”
“이거 생각보다 골치 아픈데… ”

주인과 객식구, 그러니까 원혼들이 많은 건물에서 단순히 놀고 먹은 것을 떠나 그 안에 있던 무언가에 손을 댔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안에 있는 원혼들이 이렇게까지 할 리가 없었다. 단순히 들어간 것 뿐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잠꼬대를 하다가 혼절할 정도로 심각한 건 그 남자 하나뿐이었다.

“대체 뭘 어떻게 손을 댄 건지, 원… 이따 한번 현장에 가 봐야겠어. …일단 그 녀석이랑 걔 친구들 다 내일 사무실로 오라고 해. ”
“네. ”

파이로는 문제의 선물을 찾아갔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건물이었지만 이 시대의 건물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양식도 전통 양식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근처에는 출입 금지 표시나 안내판같은 것도 없었다. 안에서는 엄청난 한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어쩐지 꺼림칙했지만, 그녀는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건물 안에 들어건 그녀는 그 안에 머물고 있는 무수히 많은 영혼들을 보았다. 마치 안개처럼 떠 다니는 그것들은, 파이오를 주시하기만 할 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엄청나군. ”

먹고 마신 흔적은 여실히 남아 있었다. 시켄트 파편과 함께 술병과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녀는 혀를 쯧, 차곤 쓰레기와 술병을 주워다가 건물 밖에 버렸다. 그러자 그녀를 주시하고 있던 영혼들도 경계를 푼 듯, 시선이 누그러졌다.

“어이. 너희들, 이 곳의 주인이지? 여기서 먹고 놀던 녀석들 중 하나를 찾아간 이유를 알려주지 않겠어? ”

영혼들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대신, 안개와 같이 퍼져 있던 영혼들이 모여 커다란 손 모양이 되었다. 커다란 손이 가리키는 곳에는, 옆어진 쌀독과 깨진 거울이 보였다.

“유령들의 밥을 인간이 손대다니… ”

그녀는 쌀독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쌀독 역시 깨져서 어떻게 주워 담을 수단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옆에 나뒹굴고 있는 깨진 거울을 집어들었다. 작은 조각들도 있었지만, 얼추 큰 조각도 보였다. 그녀는 큰 조각을 얼추 틀에 끼웠다.

“이거, 거울도 쌀도 새로 받아야겠구만… ”

다음 날. 그 건물에서 먹고 놀았던 사람들이 사무실로 모였다.

“저건 왜 묶어갖고 왔어? 또 혼절했냐? ”
“네… ”
“좋아. 너희들은 일종의 주거침입죄를 어긴 거다. 그 건물은 이미 주인이 있는 건물이야. 그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그 곳에 머무르고 있는 원혼들이지… 그리고 너. ”

그녀는 아침부터 혼절했는지 겨우 기운을 차린 남자를 가리켰다.

“너는 주거침입죄에 기물파손죄 추가. 술을 얼마나 퍼먹었는 지 모르겠지만, 네놈이 집주인의 물건을 제대로 부셔먹었다. ”
“…네? ”
“거기서 쌀독 부셔먹고 거울 깨먹었잖아. ”
“쌀독…? 야, 이순호… 그 쌀, 폐건물에 있던 거였어? ”
“아니, 반은 우리가 가져온거고… 모자라 보여서 한 컵…… ”
“야, 이 미친놈아. 귀신들 먹는 쌀을 인간이 탐해? 거기다가 귀신의 물건까지 깨부셔? 넌 그냥 제삿날 받아놔라. ”

파이로는 어이가 없는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너희들은 악몽만 꾸고 끝난 걸 다행으로 알아. 어제는 꿈 안 꿨지? ”
“네… ”
“저도… ”
“니놈들이 먹고 어질러 둔 쓰레기들만 버렸어도, 니들은 여기 올 일 없었어. 어디 가서 니들이 먹은 쓰레기는 니들이 버려야지, 거기가 쓰레기통이야? 현지인들도 관리 안 하는데 거길 걔네가 치우랴? 내가 가서 쓰레기 다 치워주고 왔다. ”
“죄송합니다… ”
“다음부터는 폐건물같은 데 함부로 들어가지 마. 이번 일 때문에 녀석들이 얼씨구나 하고 몰려들 게 뻔하니까. 니들은 가봐. 이 녀석 빼고. ”

파이로는 여전히 기력이 없는 순호를 가리켰다.

“넌 진짜 제삿날 받아놔야되는데, 니놈 가족을 봐서 어떻게든 해 주는거다. 넌 이 시간 이후로 폐건물에 발만 들여도 제삿날 받는다 생각하고 살아. ”
“…… ”

파이로는 나무 상자를 꺼내 백희를 불렀다. 마침 동백 기름으로 단장하던 백희가 거울 안에서 나와 본 것은, 기력이 없는지 손발이 묶여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순호와 그를 보며 일갈하는 파이로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
“이 녀석이 남의 집에 들어가서 어질러 놓은 걸로도 모자라서, 쌀독과 거울을 깨먹었어. 주거침입 플러스 기물파손이지… 오늘도 혼절해서 실려갔던 모양인지 수족을 묶었더라고. ”
“아…….. 어쩌다 그런 짓을 하셨습니까. 당신의 등 뒤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죄는 그 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
“그 뿐 아니라고? ”
“주거침입에 기물파손, 게다가 영혼을 상대로 사기까지 치시다니요. 절교 안 당하면 다행이겠군요. ”
“…이건 또 뭔 소리여. ”

폐건물에 들어가서 깽판치고 안에 있던 물건을 부순 것도 모자라서, 사기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파이로는 순호를 다그쳤다.

“속일 게 없어서 귀신을 속여? 당장 안 불어? ”
“그게… ”
“숨기는 게 있으면, 저희도 살려줄 수 없습니다. 이 분은 이미 심기를 많이 거슬리신 것 같으니까요. ”
“사실… 악몽을 꿨었는데… 그 꿈을 친구한테 팔아서…… ”
“역시 그랬군요. ”

파이로는 안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의 집 들어가서 꺵판에 물건 다 부수고 친구까지 팔아넘겼으니, 너는 정말 답이 없구나… 가서 새 쌀독이랑 거울 가져다두고 용서를 빌어도 모자랄 판에 죄목을 하나 더 늘렸으니… ”
“제, 제가 동생 대신에 용서를 빌면… ”
“이미 늦었습니다. 둘이킬 수 없습니다… 이 분을 꽉 짓누르곤, 가만 두지 않겠다는 듯 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영혼들이 먹을 쌀을 훔쳐 자신이 먹다니요. ”
“가지가지 한다, 정말… ”
“어떻게든 해 보긴 하겠습니다만, 힘들 수도 있습니다. ”

백희는 순호의 등 위레 웅크리듯 앉은 영혼에게 다가갔다.

“본디 인간이라는 게 어리석은 존재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우리를 볼 수 없고, 우리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들어가지 못 하게 막지 않은 사람들의 잘못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물론 물건을 부수고, 당신의 밥을 훔친 데다가 속이기까지 한 것은 중죄이지만… 쌀독과 거울을 새로 마련해 드릴테니, 이만 용서해 주시지요. ”
“…… ”
“쓰레기도 다른 분이 전부 치우고 왔습니다. 남은 건 쌀독과 거울, 그리고 먹을 것이 아닙니까? 이 분께서 그것들을 마련해 드릴 테니 용서해달라고 하시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

백희는 순호의 등에 붙어있는 영혼과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곤, 다 끝났는지 순호의 등을 쓰다듬었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
“뭔데? ”
“이 분이 깨먹은 쌀독과 거울을 새 것으로 갖다 두어 주시면 용서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먹을 것도 마련을 해 주신다면요. ”
“먹을 거…? 아, 얘가 쌀도 먹었지… 어이, 너. ”

파이로는 순호의 누나를 불렀다.

“일단 영혼은 떨어졌지만, 아직 완전히 용서받은 상태는 아니야. 잠깐 달래 놓은 상태인거지… 이 녀석에게 붙어있던 건 일단 떨어진 상태지만, 진정시키려면 니가 해야 할 일이 있어. ”
“뭔가요…? ”
“첫째, 이 녀석이 깨먹은 쌀독과 거울을 새 것으로 사 줄 것. 쌀독은 이 녀석이 깨먹은 도자기로 사면 되고, 안에 쌀도 최대한 벌레먹죄 않은 걸로 잡곡 섞지 말고 넣어. 둘째, 이 녀석이 유령이 먹을 쌀을 훔쳐다 밥을 했으니까 보상의 의미로 너희가 음식을 해다가 줘. 성묘 지내듯이 과일이랑 전, 술같은 걸만 마련해서 가면 돼. 그리고 마지막. ”

그녀는 순호를 바라보았다.

“네놈은 다시는 폐건물에 들어가지 마라. 한번만 더 들어가서 깽판치고 씌여서 돌아오면, 그 때는 어느 누구도 손을 못 써. 즉, 그 날이 니 제삿날이야. ”
“네… ”
“일단 이 정도. 약속은 꼭 이행하도록. ”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