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조교님 어디 가셨어요 ?”
“장비 쓰는 것 때문에 잠깐 나가셨는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
“실험 노트 때문에 물어볼 게 있어서요. “
오래 전, 대학원생 하나가 자살했던 C 대학교의 어느 실험실. 그 뒤로 같은 과는 물론 같은 과 교수들 사이에서도 한창 화제였던 곳이었다. 죽은 학생을 비웃고 기만한 교수는, 가해자가 자신의 지인이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품고 있었다. 결국, 죽은 자만 억울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대학원생을 구하는 것은 힘들어졌다. 그러던 와중에, 연구하는 분야에 관심이 있다며 새로 들어온 대학원생이 장현수였다. 실험실 고참도 그렇고, 그의 사수도 그렇고 오랜만에 새로 들어 온 사람이 반가웠고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싶었다. 수려한 외모로 학생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된 그는, 실험실의 막내이자 실험 수업의 조교였다. 학생들은 그를 ‘잘생긴 조교’라고 부르곤 했다.
“네, 리더. 아아… 죽은 학생 이야기요? 실험실 식구들에게는 금기어나 마찬가지던데요? 그 가해자라는 사람은 완전히 비웃고 있고, 교수는 그 사람 얘기도 못 꺼내게 단속하는 눈치예요. “
“그럼 다른 대학원 사람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
“원체 시간이 없어서, 그건 여울이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새로 사람이 얼마나 안 들어왔는지, 막내라고 잡일에 조교까지 시켜서… “
“알겠습니다. 마침 여을씨도 같은 학교니까, 그 쪽으로 연락해볼게요. “
그는 장비를 쓰러 나간 김에,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알아낼 수 없는 것은 없었다. 죽은 학생에 대한 이야기는 실험실 내에서 금지였고, 그 학생의 이름은 금기어였다. 처음으로 그가 실험 재료를 담아둘 용도로 받은 상자에 우악스럽게 그어졌던 네임펜 자국도, 멀쩡한 박스인데 굳이 네임펜으로 그어가면서 버리던 것도 죽은 학생의 이름이 적혀있기 때문이었다.
교수에게 그 학생의 이야기를 꺼내면 윽박지르고, 가해자는 죽은 사람을 비웃고 있었다. 실험실 내에는 죽은 사람의 흔적이 있었지만 억지로 지운 듯한 느낌이 가득했다. 죽은 사람이 실험했던 것부터, 실험노트나 기록까지.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상자같은 자질구레한 일회용품에 적혀 있는 이름은 있지만 이름의 주인은 실험실을 나가고 없는 경우도 있었다.
“여울 씨, 혹시 죽은 학생의 친구는 만나봤어요? “
“네. 죽은 학생의 사인과 원인에 대해서 들었어요. 그런데 현수는 뭐 하는데 조사가 힘들대요? “
“오랜만에 막내가 들어왔다고 아주 갈아넣는 모양이더라고요. 잡일에 조교일까지… “
현수와 여울이 실험실에 관해 조사하기 몇주 전, 도희를 찾아 온 사람이 있었다. 자신을 C 대학교 연구실에서 자살한 학생의 엄마라고 한 사람은, 그녀에게 의뢰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했다. 괴담수사대를 통해 딸이 자살했다는 것, 살아있는 동안 크나큰 마음의 고통을 앓았던 것, 그것 때문에 마음의 병이 깊어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는 딸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 고통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죽음을 비웃는 가해자들에게 똑같은 복수를 해 주고자 도희를 찾아왔다.
“리더, 혹시 우리도 가야 할까…? “
“아직 그럴 필요는 없어. 다만 실험실이기 때문에 휘하에 있는 바퀴벌레들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이라 현수씨나 여울씨가 연락할 때 말고는 정보를 수집할 수 없을 뿐이고… “
“하지만…. 부러먹히는 마당에 뭘 더 어떻게 하겠어, 지금도 짬 내서 연락한다며. 거기다가 부하들도 투입할 수 없고… “
“그것도 그래. 여울씨도 알아보는 데는 한계가 있고… 그렇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뜬금없이 중, 고등학생이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긴 그렇잖아, 그래서 명분이 생길 떄까지 기다리는거야. “
“명분이라… 그러네. 가서 물어보려고 해도, 아는 게 있어야지… “
당장 조사원을 투입할 명분이 없었던 상황이라, 일단 도희는 당분간 현수와 여울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현수에게는 실험 조교로 들어가니까, 학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이나 실험실에 대한 반응들도 추가로 알아봐달라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여울에게도 추가로 학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들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리더, 저 현수입니다. “
“아, 현수씨. 어떻게 됐어요? “
“수업 듣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자살한 학생의 이야기가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어요. 원래도 학생들 부려먹기로 유명한 교수였는데, 그 사건까지 겹쳐서 대학원에 들어가려는 학생이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한동안은 제 사수가 박사과정 중인데도 조교 일을 했었고요. “
“원래도 평판이 안 좋은 교수였군요. “
“그런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
“제 방침 아시죠? 가장 무서워 하는 방법으로 무너뜨리는 거… 이번에는 재기할 기회가 있음에도 다시는 일어나지 못 하게 할 거예요. 현수씨, 실험실에 대한 평판은 이만하고, 교수에게 아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들이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도 알아봐주세요. 그래야 미래를 투입할 수 있어요. “
“알겠습니다. “
그 시간, 여울은 현수의 실험실로 갔다.
“실례합니다, 현수 있어요? “
“현수 잠깐 나갔어요. “
“아… 오래 걸리나요? “
“아뇨, 금방 올 거예요. “
“그럼, 현수 오면 누나가 요 앞에서 잠깐 기다린다고 전해주세요. “
“네. “
실험실 앞에서 기다리면서 여울은 실험실 내부 구조를 파악했다. 특성상 내부로 변신해서 진입할 수는 없지만, 사람의 모습으로는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현수를 기다린다는 명분도 있겠다, 실험실 내부 구조를 파악했고 이내 죽은 학생의 자리가 있던 곳을 찾았다.
“어, 누나. “
“어, 현수야. 어디 갔다 와? “
“교수님 심부름. 근데 어쩐 일이야? “
“아, 노트 전해주려고… 너 수업 듣는 학생이 내 후밴데, 그 친구가 오늘 사정이 있어서 제출하러 못 오게 됐다고 하더라고. “
현수는 여울이 건넨 노트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여울이 돌아가자, 현수는 교수에게 펜 다발을 건네고 자리로 돌아가 노트를 펼쳤다. 노트에는 포스트잇이 붙어있었고, 포스트잇에는 ‘지금 현수씨가 앉은 자리가 죽은 학생 자리예요, 아마 그 자리에 미처 못 치운 게 있을거예요. ‘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그는 메모를 읽은 다음 쓰레기통에 버렸다.
“무슨 메모야? “
“아, 수업 듣는 학생이 사정이 있어서 누나 편에 노트를 제출했거든요. 뭐, 사정이 있어서 직접 제출 못 하니까 양해 바란다는 얘기죠. “
“아… “
현수는 실험실에서 지내면서 교수의 아내와 아이들도 만났다. 가끔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족들이 찾아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곤 했고, 교수가 부재중일 때는 현수가 아이들과 잠깐 놀아 주기도 했다. 아이들도 현수를 따랐고, 그는 아이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도희의 지령대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대해 알아냈다.
“미래야, 드디어 네가 할 일이 생겼다. “
“뭔데, 뭔데? 교수 인터뷰? 나, 안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
“인터뷰는 아니고… 학생으로 잠입하는거야. 그 교수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현수 씨가 알아냈어. “
“인터뷰는 아닌가… 아쉽네. “
“잠입하기 전에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게 있어. 죽은 사람은 마음의 병이 있었지만 그 교수는 그걸 부정하며 죽은 학생 탓을 했지. 그리고 죽은 학생의 어머니는 학생이 죽기 전까지 마음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는지 몰랐어. 그걸 똑같이 돌려줄거야. “
“하지만, 난 누구 괴롭히는 데는 재주 없는데… “
“미래가 직접 괴롭히지 않아도 돼. “
“직접 괴롭히지 않는다라… 알겠어. “
미래는 교수의 아들들이 다니는 학교에 잠입했다. 태영이 보호자로, 미래는 전학생으로 잠입했다. 아이들은 쌍둥이였고 중학교 2학년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중학교 2학년으로 잠입했다. 전학오자마자 미래는 일약 스타였다. 중학생답지 않은 풋풋한 외모에 화장하지 않더라도 뽀얀 피부, 거기다가 귀티가 나는 보호자까지.
미래는 전학을 오자마자, 같은 반 모두와 두루 이야기를 나눴다. 그 중에는 교수의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개중에는 자기들끼리 무리를 이룬 아이들도 있었고, 혼자인 아이들도 있었다. 학교가 끝난 후, 미래는 아직 교실에 남아있던 학생 무리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매점으로 데려가 간식을 하나씩 사 주면서, 교수의 아이들에 대해 물었다.
“아, 걔네 둘? 아빠가 C 대학교 교수래. 근데 교수라는 얘기는 들었지. 근데 한번도 본 적은 없어. “
“정말? 한번도 학교에 안 왔어? “
“학부모 상담이 있을 떄도 엄마만 왔더라. 다들 부모님이 오셨는데 걔네는 엄마만 왔어. “
“난 그 날 담임한테 혼나고 부모님한테 또 혼난 것만 기억난다. “
“근데 C 대학교 대학원에서 사람 죽지 않았냐? 결국 자살했다고 뉴스에 났던데. “
“맞아, 사람 하나 죽었어. 근데 걔네가 걔네 아빠한테 그거 진짜냐고 물어봤더니 정색빨았대. “
“진짜? “
“응. “
“근데 그게 정색할 일이냐? 솔직히 뉴스에서 봐서 궁금하면 물어볼 수도 있는거지, 반응 되게 이상하다. “
C 대학교에서 자살한 학생의 이야기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알음알음 퍼져갔다. 교수의 아이들이 교수에게 물어봤더니 정색하면서 화를 내더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미래는 그 교수가 어째서 정색하고 화를 냈는 지 알고 있었지만, 다른 학생들은 아니었다. 그저 정색하고 화를 내는 통에 더 못 물어봤다더라, 그게 전부였다.
미래는 교수의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반 내에서 그들이 어떤 평판을 가지고 있는 지를 조사했다. 동시에 조별 활동때문에 알게 된 그들의 연락처를 도희에게 건넸다. 그리고 도희는 그 연락처를 바탕으로 무서운 속도로 아이들의 정보를 캐냈다. 그리고 아이들의 SNS도 확인했다. SNS는 여느 중학생이 쓸 법한 글들로 채워져 있었다.
“반에서 애들 평판은 어때? “
“학부모 면담이 있을 때도 교수는 안 오고 그 아내만 왔대. 그거 말고는 그렇게 좋거나 나쁜 편은 아니었어. “
“반에서 평판은 중간이구나… “
“자기들도 아버지처럼 훌륭한 교수가 되고 싶어하더라. 근데 훌륭한 교수가 아니잖아, 걔네 아빠. “
“아버지처럼 훌륭한 교수가 되고 싶어한다라… 그러게, 이미 훌륭한 교수와는 거리가 먼 작자인데. 참, SNS를 조사해봤는데 이 아이들을 알게 모르게 괴롭히는 애들이 있더라. “
“아, 맞아. 다른 반 애들인데, 쉬는시간에 찾아와서 괴롭히고 가더라. “
교수의 아이들은 반에서는 평판이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른 반에서 그 아이들을 괴롭히러 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괴롭힘이라고 해 봐야 그냥 지나가면서 놀리는 정도였고, 괴롭히러 오는 아이들이 소문난 일진 패거리라 아이들도 나서지 못 하고 방관하고 있었다. 미래는 그 아이들에게 맞서는 척 하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갔고, 매점으로 패거리를 데려갔다.
“자, 자. 일단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먹을 거 하나씩 골라봐. “
“엉? 뭐냐? “
“설명은 먹으면서 해 줄게. 내가 살테니까 먹고 싶은 거 다 골라! “
미심쩍은 듯 했지만, 미래가 산다는 말에 패거리들은 먹을 거리를 골랐다. 값을 지불한 미래는 패거리를 데리고 매점 옆 벤치로 가, 자신은 신고를 한다거나 할 생각은 없고 그냥 궁금할 뿐이라며, 반 아이들 사이에서는 평범한 쌍둥이인데, 유독 이들이 괴롭히러 오는 것이 궁금했다면서 교수의 아이들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는 지 물었다.
“걔들, 완전 밥맛이야. 나 걔네랑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아빠가 C 대학교 교수라고 완전 띠껍게 대하고 그랬어. “
“진짜? 반 애들은 그런 얘기 안 했는데…? “
“넌 전학 온 지 얼마 안 돼서 모르겠지만, 걔네 아빠가 화학 전공인가… 그래서 과학 점수 잘 나온다고 애들 다 무시하고 다녀서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애들은 다 걔네 안 좋게 봐. 1학년때 그거때문에 애들이 괴롭히고 그래서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애들하고는 아예 다른 반으로 헤쳐버렸고. “
“그래서 걔네랑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애들은 제일 가까워야 옆반? 아니면 다른 층으로 가 있거나 그래. “
교수의 아이들을 괴롭히던 패거리는, 1학년때 같은 반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교수의 아이들이 아버지가 교수라며 잘난척이 심했고, 시험만 쳤다 하면 자기들이 만점이라며 같은 반 아이들을 무시하곤 했다는 얘기를 했다. 1학년 때 괴롭힘이 심해서, 같은 반 아이들이 최소한 방관하거나 괴롭히는 정도였고 그래서 그 때 같은반이었던 아이들과는 전부 다른 반으로 찢어져 있었다. 그런데다가 괴롭힘을 1년동안 당한 탓인지 2학년이 되어서는 의기소침해져서, 반에서 평판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나 걔네 아빠랑 담임이랑 만나는 거 봤는데. “
“담임이랑 걔네 아빠랑? 학교에 면담하러 온 거 아냐? “
“아냐, 학교 밖에서 봤어. 나 그날 교내봉사 걸려서 늦게 가는데 편의점에서 얘기 나누고 있더라. 뭐 사는 척 하면서 살짝 들어봤는데 잘 부탁드립니다 어쩌고 하던데. “
“실화냐? 설마 시험지 유출같은 건 아니겠지? “
“처음부터 들은 건 아니라 뭔지는 모르겠고, 걔네 아빠는 우리 애들 잘 부탁한다고 하면서 뭐 부탁하는 것 같았고 담임은 계속 거절했어. “
“걔네 진짜 뭐 있는 거 아냐? 솔직히 이상하잖아, 하나정도는 같은 반이었던 애들이 섞여야 정상인데 하나도 안 섞이고 죄다 뿔뿔이 흩어진 것도 그렇고. “
“듣고보니 뭔가 이상하네, 그거. “
한편, 대학원에서 조교를 하던 현수는 교수에게 아들들의 과외를 해 줄 수 있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리고 실험실 박사로부터는 여울에게 남자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회의 겸 사무실에 돌아온 현수는 이를 도희와 여울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여울은 박사 얘기가 나오자 정색하고 쳐다보았다.
“그 박사, 현수 씨 나갔을 떄 봤던 남자죠? “
“어,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
“현수씨 기다리는 내내 슬쩍슬쩍 쳐다보더라고요. 뭔가 기분나빴어요. 그때 스키니진 입고 있었는데 다리쪽만 계속 보더라고요. “
“그나저나 과외요? 과외비는 준대요? “
“돈이 아니라 박사 졸업을 미끼로 제의하더라고요. 아이들 과외만 해 주면 기한 채우면 졸업 시켜준다고… “
도희는 무언가 생각하고 있었다. 교수가 무언가를 제안했는데, 담임선생님은 거절했다. 그럴만한 게 뭐가 있을까? 거기다가 한 명이라도 같은 반이 될 법한데, 같은 반이었던 애들이 전부 다른 반으로 갈라져버렸다고? 뭔가 이상했다.
“혹시 교수가 아들들 과외 말고 다른 일로 얘기한 건 없었습니까? “
“미래가 한 얘기 들으니까 생각난건데, 아들들 성적때문에 담임 선생님한테 과외 좀 해 줄 수 있겠느냐고 했는데 거절당했다고 그 선생님 욕하던데요. “
“오빠, 애들이 들었다는 게 그건가봐. 걔네랑 1학년떄 같은 반이었던 애가 편의점에서 교수가 뭐 제안하는 걸 들었는데, 담임선생님한테 뭘 부탁하는 것 같았고 선생님이 그걸 거절했대. “
“현직 교사는 겸업 금지라, 그건 당연히 거절해야 맞는 거예요. 생각보다 문제가 많은 인간이었군요… 그건 별개로 하더라도, 슬슬 작전은 시작해도 될 것 같네요. 현수씨, 논문은 어느 단계까지 와 있나요? “
“다음달 안에는 게재하려고 보냈대요. “
“좋아요. “
도희는 현수에게 이제 현수가 할 일은 끝났다며 대학원에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나오기 전에 자리에 있던 죽은 학생의 흔적을 찾아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괴담수사대에 요쳥해서 죽은 학생의 일기장을 확보했고, 과외 건은 괴담수사대로 맡길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
“지금같은 세상에서, 인간 하나 무너뜨리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죠. “
도희는 죽은 학생의 일기장과 현수가 갈무리해 온 그녀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읽었다. 실험실에 있으면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괴롭힘을 당했으며, 어떤 말을 들었는지까지 전부 확인했다. C 대학교에서 자살한 학생이 죽기 전까지 무슨 일을 겪었고, 어떤 기분이었으며, 그들이 죽은 자를 어떻게 기만했는지까지.
“벌써 수 주가 흘렀군… 잊혀지기 좋은 시간이지. 역으로 말하자면, 끌어올리기에도 좋은 시간이고. “
그녀는 일단 비슷한 연구를 하는 교수가 같은 주제로 이미 논문을 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논문과 실험 과정도 유사하고 결과도 유사하며, 제출한 논문에서 서론과 결론을 수정한 것 외에는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논문 저자에게 메일로 이 사실을 보냈다. 동시에 죽은 학생에 대한 자료를 갈무리해 최대한 빨리 기사를 써 달라는 당부와 함께 알고 지내는 기자에게 보냈다. 그리고 기사가 나오자 기사를 SNS 및 C 대학교 커뮤니티에 올렸다.
죽은 학생에 대한 이야기는 일파만파 퍼져 갔다. 자살한 학생이 죽기 전까지 느꼈던 고통과 깊어져 갔던 마음의 병, 그리고 지도자라는 교수가 한 말, 그 밑에서 고참으로 있으면서 그녀를 기만한 사람, 그리고 죽은 학생의 어머니가 오열했다는 것까지. 그녀는 기사만 올렸을 뿐인데, 이야기는 점점 커져 살이 붙어갔다.
교수의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도 그 이야기가 퍼졌다. 그리고 교수의 아이들을 괴롭히는 패거리들의 귀에도 그 사실이 들어갔다. 아빠가 교수라고 그렇게 잘난척 하고 다녔는데, 그 아빠가 사람 하나 죽이고 기만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에게는 그 사실이 충격이었지만, 괴롭히는 패거리들에게는 좋은 핑계거리였다. 패거리들은 점점 더 집요하게 아이들을 괴롭혀 갔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말리지 않고 방관하고 있었다.
교수의 아이들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자신이 기만했던 죽은 학생처럼, 그 아이들도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을 안타까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교수가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내와는 진작 이혼하고, 사랑하는 두 아이들마저 잃은 교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논문도 표절 논란때문에 게재가 취소되었고, 학교 측에서는 이를 빌미로 내보낼 생각이었다.
죽은 학생을 기만하고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람 역시 뭇매를 맞았다. 여울이 현수를 만나러 갔을 떄 겪었던 것들을 얘기하자, 여학생들은 그 사람이 자신도 그렇게 쳐다봤다며 동조했다. 노트를 내러 갈 때, 그 남자가 밖에 있으면서 누군가 보았다고. 남학생 혼자 오거나 여학생과 남학생이 같이 오면 아무것도 안 했지만, 여학생 혼자 제출하러 오거나 여학생끼리 오면 작업을 걸곤 했다고.
물론 그런 걸로 학위는 박탈되지 않았고, 그는 여전히 박사였다. 하지만 ‘그 교수’의 밑에 있었던 가해자였고, 여학생들을 어떻게 대했는지가 알려진 시점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서 잠잠해지길 비는 수밖에 없었다. 잠잠해지면, 적당히 취업해야지. 그 녀석이 약해서 죽은 거니까 난 상관 없는거야.
“찾았다~ “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검은 머리의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그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고키부리에게서 들었어. 죄를 지른 맛있는 고기가 있다는 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