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알아내셨나요? ”
“이걸 봐. ”
파이로는 빈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피해자가 죽은 장소였다.
“첫번째 피해자는 D 로터리에서 죽었어. 그리고 그 다음은 A동의 어느 골목. 그리고 세번째 피해자는 E 로터리, 네번째 피해자는 B동… 이런 식으로 여덟 번째 피해자까지 나왔지. 즉, 홀수 번째 피해자는 로터리, 짝수 번째 피해자는 그 동네의 어느 골목에서 죽었어. 이걸 바탕으로 그 다음 피해자가 죽었을 위치를 예측해보면… ”
“H 로터리? ”
“정답. …사건은 모두 자정에 발생했다. 아마 곧, H 로터리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날 것 같군… 하지만 그게 언제일 지는 모르겠어. ”
“흠… 잠깐만요, 로터리에서 피해자가 생겼을 때는 음력으로 15일, 30일이었고 골목에서 피해자가 생겼을 때는 음력으로 7일, 22일이었어요. ”
미기야는 달력을 한참 넘겨보더니, 일주일 후의 날짜를 가리켰다.
“이 날, H 로터리에서 자정에 다름 피해자가 발생할거예요. 그 전에 우리가 막아야 해요. ”
“좋아. 가지. ”
“어이, 형사한테도 연락해둬. ”
“네. ”
며칠 후, 미기야가 말한 그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미기야의 말대로라면 이 날 자정에, H 로터리에서 피해자가 생긴다. 그렇다는 말은, 그 전에 그 곳에 가 있으면 녀석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여기서 H 로터리까지 가는 데 시간이 꽤 걸릴텐데…? ”
“아마 3~4시간정도 걸릴걸요? ”
“형사는 어떻게 한대? ”
“사무실로 데리러 오겠다고 하셨어요. ”
“음… 그럼 나이트메어는 미기야랑 같이 와, 내가 먼저 가서 동태를 살펴보고 있을게. 너는 형태가 있어서 벽에 못 들어갈 거 아냐. ”
“그렇지. 대신에 이 녀석을 데려가. ”
나이트메어가 허공에 손짓을 하자, 까만 박쥐가 튀어나왔다. 보통의 박쥐와 달리 머리에 뿔이 있는, 그리고 거꾸로 앉지 않는 박쥐였다. 박쥐는 허공을 몇 바퀴 돌더니 파이로의 머리 위에 앉았다.
“우리가 도착할 때가 되면 다른 박쥐가 먼저 네가 있는 곳으로 도착할거야. 너는 파이로를 따라가, 가서 같이 동태를 살펴보고 네 동료가 오면 파이로에게 알려줘. ”
“뀨. ”
“파이로 씨는 지금 출발인가요? 그럼 저도 같이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
“세베루스 씨도요? 알겠습니다. ”
파이로와 세베루스는 한참을 걸어 H 로터리에 도착했다. 아직까지 몇몇 건물에 불이 켜져 있고, 사람들도 다니고 있었다. 둘은 도착하자마자 근처 벽으로 들어가, 사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둘을 따라 날아온 박쥐는 근처 가로등에 앉아 있었다.
“그나저나 이번 피해자는 누구일지, 그건 잘 모르겠네요… ”
“그건 아마도 자정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
“흠… 어떤 녀석일지 한 번 보죠… ”
자정까지 기다리고 있었지만, 특별한 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심심해진 파이로가 막 벽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쉿, 저기 왔습니다. ”
아까까지만 해도 가로등에 앉아있던 박쥐가 끼익거리며 공중을 불안한 듯 맴돌고 있었다. 저건 동료를 만났을 때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파이로는 본능적으로 나가려던 것을 멈추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꺄아악! ”
곧이어 가로등 밑으로 여자가 뛰어왔다. 그리고 그뒤를, 낯선 남자가 뒤쫓아왔다. 달리다가 구두 굽이 부러졌는지 여자가 그 자리에 주저앉자, 남자는 여자를 붙잡았다. 그리고 막 주사기를 꽂으려던 찰나.
-챙
파이로는 가윗날을 꺼내 주사기를 정확히 튕겨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빛나던 주사기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리고 동시에 세베루스는 남자를 단단히 결박했다.
“잡았다, 오르페우스. ”
“!!”
“여기 있었군요. 당신이 오르페우스인가요? ”
“잠깐, 일단 여자분의 신변부터. ”
파이로는 여자와 남자 사이를 가윗날로 가로막고 여자를 빠져나오게 했다. 여자가 빠져나온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파이로는 땅에 꽂았던 가윗날을 남자를 향해 겨누었다.
“뀨이! ”
그리고 공중을 맴돌던 박쥐가 동료가 왔음을 표시했다.
곧이어 하얀 자동차가 멈추더니, 차 안에서 미기야와 라우드가 먼저 내렸다. 뒤이어 정훈과 현, 나이트메어도 같이 내렸다.
“라우드, 얘가 네가 봤다던 그 녀석 맞냐? ”
“맞아요! 저 남자였어요! ”
“형사! 넌 저기 있는 주사기를! ”
“정훈 씨, 저 쪽이예요! ”
“이 녀석, 산 채로 잡아야되는거지? ”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
“좋아… ”
파이로는 가윗날을 고쳐들었다. 다시 주사위를 주우려던 남자를 밀쳐낸 다음, 정훈이 주사기를 주운 것을 확인한 그녀는 밀쳐냈던 남자 쪽으로 돌진해 그대로 밀어 넘어뜨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남자의 위로 올라간 그녀는, 움직이지 못하게 단단히 잡고 있었다.
“좋아. …이거 뭐 수갑같은 거 못 채우나… ”
“뭐… 어쨌든 용의자니까요. ”
“이거 놔! ”
“오르페우스. 당신을 연쇄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
“크으으… 안돼- 오르페우스! ”
파이로에게 잡힌 남자는 오르페우스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그녀가 단단히 잡고 있는 탓에, 발버둥치기만 할 뿐 빠져나가지는 못했다.
“……? 뭐지? 네가 아니었나…? ”
“안돼, 난 오빠를… 오빠를 살려야……! 오빠- ”
“정훈 씨, 위험해요! ”
어디선가 하얀 연기가 피어나 정훈을 향해 덤벼들었다. 동시에 현은 그 하얀 연기를 향해 칼날을 세우고 덤벼들었다. 정훈히 한 발 물러나자, 파이로는 현의 검 끝이 혼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푸른 불길이 일더니, 하얀 연기와 스치자마자 연기가 불타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완료. ”
“오… 오빠! ”
“잠깐… 이 분, 분명 남자 아니었나요…? 오빠라니, 뭐가 어떻게 된 거죠? ”
“세베루스 씨, 혹시 반혼의 주술을 할 때 쓰는 이름이 술자의 이름인가요? 아니면 불러들이는 영혼의 이름인가요? ”
“보통은… 불러들이는 영혼의 이름을 쓰죠. 그래야 불러들이고자 하는 영혼이 알아듣고 올테니까요. ”
“…… 그렇다는 건… 이 안에 있는 건, 여자의 영혼이라는 얘긴데… ”
갑자기 복잡해졌다. 그 안에 있는 게 여자의 영혼이라니? 대체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걸까?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이 안에 있는 게 여자의 영혼이라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얘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네요… 나이트메어 씨, 일단 왼쪽 가슴을 확인해주세요. ”
“네. ”
정훈에게 잡힌 남자는 허탈한지 계속 울부짖고 있었다. 나이트메어는 그런 남자에게 다가가 옷 안쪽을 봤다. 왼쪽 가슴에, 예전에 봤었던 피안화의 문양이 있었다.
“문양이 있어요. ”
“…… ”
“무슨 상황인지 대충 이해가 가네요… ”
“일단 진정부터 시킨 다음에 얘기하죠. ”
나이트메어는 여전히 울부짖고 있는 남자의 이마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리고 힘없이 기절했던 남자는, 잠시 후 눈을 떴다. 그 사이 정훈은 남자의 손에 수갑을 채워 둔 상태였다.
“좋아요. 그럼 이제 몇 가지 질문을 시작하죠… 당신의 이름은? ”
“…… ”
“본명을 밝힐 수 없다면, 가명이나 별명이라도 좋으니 가르쳐주세요. ”
“에우리디케… ”
그녀… 아니, 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연인을 잃은 탓일까.
“좋아요, 에우리디케. …당신의 심장 근처에서 문양을 확인했습니다. 당신은 반혼의 주술을 사용한 것이죠? ”
“흐윽… 흐윽…… ”
“이봐, 그렇게 울기만 하면 곤란해. ”
“뚝. 자, 울지 말고 천천히 얘기해보세요. 당신에게 이 몸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
남자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그것은…… 우리 오빠였어요…… ”
에우리디케, 그러니까 그 남자의 이야기는 그러했다.
예전에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사귀는 사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으며, 싹싹했던 두 사람을 양가 부모님도 꽤 좋아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자가 있었으니, 에우리디케의 사촌 오빠였다. 에우리디케의 결혼 소식을 들은 후로 그녀의 사촌 오빠는 그녀와 오르페우스를 갈라놓기 위해 온갖가지 술수를 다 썼다. 오르페우스를 헐뜯는가 하면, 일부러 바람 피는 것처럼 연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깊어져갔다.
그리고 사촌 오빠는 급기야 에우리디케를 덮치기에 이르렀고, 저항하던 에우리디케는 결국 음독 자살을 해 버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에우리디케의 부모님은 분노해 사촌 오빠를 다시는 집에 찾아오지 못 하게 만들었다.
오르페우스는 슬펐다. 여자친구를 다시 살리고 싶었다. 하루라도 좋으니 작별 인사라도 했으면 좋겠다. 나의 에우리디케, 이렇게 보지도 못 하고 가버렸구나. 그는 간절히 사랑했던 이를 살릴 수 있기를 바랬고, 그러다가 오컬트에 심취하게 됐다.
그 후로 그가 선택했던 방법이 바로 반혼의 주술이었다. 그는 이 주술을 실행하기 위해 처음으로 손에 피를 묻혔다.
“그리고 주술은 성공해서… 저는 여기로 오게 됐어요… 하지만…… ”
“…… ”
주술은 성공해서 에우리디케는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에우리디케의 몸은 화장을 한 후였고, 결국 그는 자신이 죽인 여자의 몸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에우리디케의 영혼은 그 몸과 맞지 않았다. 결국 에우리디케는 본의아니게 사랑했던 연인의 몸을 빌려 세상에 나오게 됐던 것이다.
“그럼 그 뒤로 오르페우스는…… ”
“그 뒤로도, 오빠는 저의 곁에 있었어요… ”
그 뒤로도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의 곁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에우리디케는, 그런 오르페우스를 볼 때마다 미안했다. 내가 오빠의 몸을 차지했기 때문에, 서로 재회는 했지만 재회하기 전보다 못한 상황이 되었다.
오르페우스는, 지금 네가 나의 몸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차라리 여자의 몸으로 들어가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까지 일련의 살인사건을 일으키고 주술을 써 오르페우스를 살리려고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마다 주술은 실패했다. 오르페우스에게 맞는 몸을 찾기란 힘들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오르페우스를 이 상태로 둘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오르페우스가 명계로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기에.
“…… 그런거라면 차라리 인형에라도 깃들게 하는 게 나았을것을… ”
“하지만 전…… 그리고 오빠는…… ”
“…… 에우리디케… 오르페우스를 만나려고 했다 하더라도, 당신이 한 행동은 그릇된 것입니다… 아마 오르페우스 역시 처음으로 당신을 살리기 위해 살인을 하면서, 매우 후회했을겁니다. ”
“…… ”
“혼불로 태워진 영혼은 더는 이승에 있을 수 없습니다. 에우리디케, 당신이 죗값을 치르고 명계로 돌아가는 날 오르페우스의 혼도 반갑게 맞아줄겁니다. 그 때까지 당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을 받고, 편안히 잠드시길 바랍니다. ”
“…… ”
남자는 말이 없었다.
“돌아가죠. ”
“네.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무실 식구들은 발걸음을 옮겼다. 정훈 역시 남자를 데리고 서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