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자: 미스테리어스
제목: [투고괴담] 예정된 불행
구독자 ‘bullseye0503’님께서 투고해주신 이야기입니다.
미스테리어스의 괴담집을 즐겨 보는 구독자입니다.
오랜만에 동창회에 갔다가 들은 기묘한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중학생때, 반에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조별 과제도 혼자서 하고,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고, 점심시간이 되면 항상 식사도 혼자 하고 도서실로 사라졌다가 5교시가 시작할 즈음 돌아오던 친구였습니다. 저도 덤터기 쓸까봐 반에서는 다른 아이들처럼 말을 걸지 않았지만, 학교가 끝나고 그 친구와 함께 하교하곤 했죠.
그 친구를 주도적으로 괴롭히던 일당이 네 명 있었습니다. 반에서도 소위 노는 애들로 불리고, 선생님들도 학을 뗐다고 하는 애들이었죠. 요즘 일진들이 괴롭히는 방법이라고 보도되고 있는 건 거의 다 했을겁니다. 바지 벗겨서 수치심 주기, 돈 갈취하기, 때리기, 지우개 던지기, 뒤에서 대놓고 욕하기… 물론 선생님도 이를 알고는 계셨지만 묵인하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한 게 기적이었죠… 다른 애들도 그 네 명이 무서워서 그 친구랑 같이 무언가를 하지 않았고, 저도 학교 안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 뒤로 그 친구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학교가 달랐던데다 수험생이다보니 대학에 가고 나서야 연락이 닿았습니다. 연락이 닿았을 때 그 친구는 S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고 했습니다. 힘든 학창시절을 보낸 만큼 보상받은 기분이라고 하더군요.
그 뒤로 오랜만에 동창회에 갔을 때, 그 친구를 다시 만났습니다. 중학생때는 키도 작고 왜소해보였던 친구가, 키도 시원시원해지고 멀끔해져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가 먼저 인사하면서 얘기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못 알아볼 뻔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만나서 하하호호 웃고 있었지만, 그 친구를 주도적으로 괴롭혔던 네 명(이하 A, B, C, D라고 부르겠습니다)과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죠. 처음에는 일이 생겨서 못 오는건가, 그 친구한테 늦게나마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못 오는건가, 아니면 반 분위기를 흐린 것 때문에 반장이 나오지 말라고 한 건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반장이 나오지 말라고 할 거면 주도적으로 괴롭혔던 날라리 네 명에게 연락을 했을테고, 선생님에게는 그런 연락을 할 리가 없잖습니까.
그래서 술도 좀 들어간 김에 반장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반장은 오히려 걔들이랑은 연락이 끊겨서 연락이고 자시고 하지도 못 했다고 하는겁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반 아이들 모두 졸업하고 나서 A, B, C, D와 약속이나 한 듯 연락을 끊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나마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한 친구 몇 명도 고등학교 2학년 이후로는 아예 연락을 끊었고요. A, B, C, D는 취업반이었고 그 친구들은 진학반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그때까지는 단순히 연락을 못 받아서 못 나오는건가, 했는데 그 뒤로 그나마 고등학교에 가서도 연락하던 애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A, B, C, D와 선생님은 애초에 동창회가 있다고 연락을 했어도 나올 수가 없는 상태였던겁니다. 네명은 이 세상에 없었고, 한명은 아직 살아는 있지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니까요. A, B, C, D가 그렇게 된 원인은 사고였습니다. 거기다가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이유도 사고사였고요. 거기다가 A, B, C, D가 사고를 당한 나이는 전부 25세였습니다.
네명은 성적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받아주지 않아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출석일수도 간신히 채울 정도이니, 말 다했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공부와는 담을 쌓은 네명은 반강제로 취업반에 들어갔어야 했고, 학교 수업도 제대로 듣지 않는 녀석들이 취업을 제대로 할 리 없었습니다. 그 학교, 그 학년 내에서는 유일하게 취업하지 못한 채 졸업했다고 하네요. 선생님들도 우리 학교의 수치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집안 형편이 그나마 나았던 B, C, D와 달리 A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신체검사를 받고 군대로 갔습니다. 그 뒤 일용직을 전전하면서 일하다가 타일 공사쪽으로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역하고 타일 공사쪽으로 일하던 A가 사고로 죽은 건, 공사 현장에서였습니다. 현장 위층에서는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고, 아래층에서는 타일 공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안전모를 착용했어야 했는데 A는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위층에서 떨어지는 철제 공구에 머리를 맞아 그대로 죽었다고 합니다.
B, C, D는 A가 군대를 가고 1년 후에 군대를 갔습니다. 전역한 후에도 A와 연락을 주고받던 B, C와 달리 D는 대학을 간다고 연락이 한동안 없었고요. 졸업하고 군대 전역하고 공부를 시작해서, D는 스물 다섯에 늦깎이 신입생이 되었습니다. B는 군대 전역 후 음식점에서 일을 해서 매니저급이 되어 있었고, C는 중소기업에 들어가 영업일을 하고 있었죠.
D가 늦깎이 대학생이 된 기념으로 넷은 다 같이 모여서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A는 그 때 일때문에 못 가게 되어서 셋이 가기로 했고, 그 때 여행을 가다가 졸음운전을 한 화물차와 충돌해서 사고가 나게 되었습니다. 화물차는 상대적으로 무사했지만, 워낙 화물차가 컸던 탓에 부딪혔던 차… 그러니까 세 명이 타고 있었던 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찌그러져 있었고, 그나마 뒷좌석에 타고 있었던 D는 온전히 꺼냈지만 뇌사 상태에 빠졌고, B, C는 충격의 여파로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앞좌석에 타고 있었던 둘은 온 몸이 만신창이였던 데다가 신체 일부가 조각났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반장이 동창회때문에 연락했을 때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다고 합니다. 자세한 사인은 듣지 못 했지만, 사고로 돌아가셨고 현재는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반장이 혼자서 인사를 갔다 왔다고만 했습니다.
A, B, C, D가 사고로 죽은 날은, 같은 날이었습니다. 반장의 얘기로는, 그 넷이 사고사로 죽은 날 선생님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친구와 헤어지기 전, 저에게 했던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A, B, C, D와 선생님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안다는 얘기였습니다. 제가 무슨 말인지 묻자 그 친구는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네 명의 괴롭힘이 너무 심했던데다가 선생님까지 방치하다시피 하자, 이러다가는 괴롭힘이 끝날 것 같지 않아 그 친구는 안 좋은 선택을 하려고 어느 폐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답니다.
유서를 내려놓고 뛰어내리려던 친구는, 어디선가 쏘아보는 듯한 시선을 느꼈습니다. 시선이 느껴진 방향에는, 한 눈에 보기에도 사람은 아닌 것 같은 여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말하기를, 검정색 크레파스마냥 새까만 머리에 딸기처럼 붉은 눈을 가진, 피투성이가 된 흰 옷을 입은 창백한 여자였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를 빤히 쳐다보던 여자는, 뛰어내리려던 그 친구에게 ‘그 녀석들을 죽여줬으면 좋겠지?’ 라고 물었습니다. 대놓고 괴롭히는 네 명은 물론이고, 자신이 이런 상황임에도 방치하는 선생님이 미웠던 그 친구는 무엇이든 할테니 그 다섯명을 죽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까르르 웃으며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죽지만 말아달라, 그래야 나중에 그 녀석들이 죽는 걸 보면서 비웃어줄 수 있지 않겠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다섯 사람 중 하나라도 가장 행복할 시기에, 그 다섯명을 한날 한시에 죽여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네명과 선생님이 같은 날 사고사를 당한 이유는 그 여자의 소행일거라면서, D가 늦깎이 신입생이 된 지금이 제일 행복할 시기일테니 다섯명이 같은 날 사고로 죽은거라는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 때문인지, 이상하게 여자친구가 안 생긴다고 합니다. 소개팅을 나가려고 하면 파투가 나거나 갑자기 일이 생기고, 어쩌다 여자친구를 사귀더라도 여자쪽 잘못으로 인해 금방 헤어지게 된다고 하네요.
폐건물에 있다는 그 여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째서 그 친구의 소원을 들어준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