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도 평소처럼 아침 식사가 배급되었다.
“9시 20분까지 식사를 마치고 나오도록. ”
9시 20분까지 나오라는 말을 남긴 진행 요원은, 네 명분의 식사를 넣어주고 카트를 끌고 가 버렸다. 아침 식사로 온 것은 불고기 덮밥 도시락이었다. 반찬으로는 배추김치와 호박전, 그리고 무말랭이 무침이 들어있었고 도시락과 함께 따뜻한 된장국이 왔다.
“매일 빵만 나오는 건 아닌 모양이네요. ”
“그러게요. ”
아침을 먹고 쓰레기를 갈무리할 무렵, 진행 요원들이 사람들을 불렀다.
“집합 10분 전이다! 나올 때 각자 구슬 주머니 챙겨서 나오도록! 쓰레기는 한 곳에 모아두면 라운드가 진행될 동안 진행 요원들이 청소할테니, 양치질만 하고 나와! ”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양치질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어제보다 사람이 반은 줄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금방 모였다.
“하나, 둘, 셋… 100명 전부 모였지? 그럼 카드 받고 어제처럼 두 줄로 서. ”
카드 박스를 받은 사람들은 색깔별로 두 줄로 섰다. 그도 카드 박스를 받고 줄을 섰다.
“자기야, 우리 같은 색이다. ”
“이번 경기도 꼭 이겨서 만나자. ”
“응! ”
반대쪽 줄에 커플이 섰다. 아마도 같은 색의 카드 박스를 받은 모양인지, 들떠있는 상태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판데모니움 로열 제 2라운드를 시작하겠습니다! 선수들은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주세요! ”
장내 안내 방송이 들리자, 진행 요원들은 두 줄로 선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경기장 안에는 테이블 50개가 있었고, 태이블에는 커다란 판이 놓여있었다. 나무로 만든 판에는 작은 구멍 여섯개가 두 줄로 마주보게 뚫려있었고, 그 옆에는 기다란 홈이 파여있었다.
“5번 테이블, 전원 착석! ”
그리고 어제 봤던 둥근 구체가 공중에 떠 있는 채로 두 사람을 맞았다.
“보자… 7번하고 55번이네? 둘 다, 구슬 주머니를 줘. 이번 경기에는 구슬이 필요해. 판돈으로 쓴다거나 하지는 않을거니까 안심하고. 남은 구슬은 내가 보관하고 있다가 승자에게 줄게. ”
두 사람이 구슬 주머니를 내밀자, 구슬 주머니에서 구슬이 네 개씩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여섯 개의 작은 홈으로 각자의 구슬들이 들어갔다.
“판데모니움 로열 2라운드는 폭탄 만칼라입니다! 그럼, 규칙을 설명해줄게. 만칼라라는 보드게임 알지? ”
“처음 들어봅니다. ”
“들어본 적은 있는데… ”
“너희들은 턴이 돌아오면, 이 안에 있는 구슬을 움직이면 돼. 통을 하나 골라서 옆으로 하나씩 넣는거지. 각자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긴 홈이 보관통이 될 거야. 만약 마지막으로 구슬을 넣은 위치가 보관통이면 한번 더 할 수 있어. 그리고 비어있는 작은 통에 마지막으로 구슬이 들어가게 되면 맞은편에 있는 구슬들을 전부 가져올 수 있지. 이렇게 해서 어느 한 쪽의 작은 통이 빌 때까지 진행하는거야. ”
“아아… ”
“그리고! 폭탄 만칼라라고 했지? 이 48개의 구슬 중 하나는 폭탄이 되는거야. 그래서 보관통에 있는 구슬의 수에 상관 없이 ‘폭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는거야. 너희들은 어떤 구슬이 폭탄일 지 모르고, 나만 알 수 있어. 대신에, 둘 다 턴을 마칠 때 내가 폭탄이 어디에 있는 지 정도는 알려줄게. 그럼, 선을 정하자. ”
허공에서 동전이 나왔다. 한쪽 면은 검정색, 다른 한쪽 면은 붉은색으로 칠해진 동전이었다.
“동전을 던져! ”
그는 동전을 집어들고 손으로 튕겼다. 그리고 떨어진 동전을 확인해보니, 붉은색이 위로 와 있었다.
“55번이 선이야. ”
맞은편에 앉은 여자가 구슬을 옮기고, 그 역시 구슬을 옮겼다.
“7번은 한번 더 해. 마지막 구슬이 보관통으로 왔어. ”
“아, 네. ”
어떤 구슬이 폭탄 구슬일지는 모른다. 그저 자기 구슬이 폭탄 구슬이 아니기를 빌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구슬 중 폭탄이 있다면 어떤 구슬일지 생각하면서, 가장 왼쪽에 있는 구슬을 옮겼다.
“좋아, 턴은 끝났어. 폭탄은 55번에게 있어. ”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폭탄이 자기에게 있다는 말에 적잖이 놀란 듯 했다.
“꽤 어려보이는데…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
“저요? 저 내년이면 스물이예요. ”
“내년에 스물? 그럼 지금 고3이예요? ”
“네. ”
맞은편에 앉은 여자 역시, 한참을 고민하더니 구슬을 보관통으로 옮겼다.
“그런데 왜 여기에… ”
“끌려왔어요. 날개에 붕대를 감은 여자한테… ”
“저런… 한참 공부할 나이인데… ”
“공부 안 하고 좋죠. 그래도 부모님은 보고싶네요… 마지막까지 절 믿어줬었는데… ”
“…… ”
“이 와중에 실례. 폭탄은 7번으로 왔어. ”
그는 자기 자리로 넘어왔다는 말을 듣고, 여자가 마지막으로 넘긴 구슬 두 개를 확인했다. 아마도 이 중에 폭탄이 있는 모양이다.
“아저씨는 몇 살이예요? ”
“나…? 서른 하나. ”
“그럼 회사 다녀요? ”
“다녔었는데, 얼마 전에 잘렸어. ”
“…… ”
“폭탄은 아직 7번에 있어. ”
방금 들어온 구슬들을 갈무리했기 때문에, 폭탄은 아직 그에게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들어온 구슬들을 하나로 모은 후로는, 다른 통에 있는 구슬을 옮기기만 할 뿐 마지막에 들어온 구슬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대학 가면 남자친구 생긴다고 했는데, 진짜예요? ”
“사귈 사람은 사귀던데… 그게 나라는 보장은 없어. ”
“어른들은 거짓말쟁이야… ”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사람들 만나라고… 희망 심어주려고 그런거겠지. 고3이면 한참 수험생일거고… ”
구슬 두 개중 하나가 폭탄이다. 그렇다는 건 이 두 개가 그의 보관통으로 오면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구슬이 어느정도 모이자, 통에서 구슬을 집어 하나하나 넣었다. 그리고 보관통을 지나, 구슬은 맞은 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폭탄은 55번으로 갔어. ”
각자의 보관통에는 구슬이 꽤 모여있었다. 이제 저 쪽으로 넘어간 구슬의 움직임과 진행자의 말을 분석해보면, 어떤 게 폭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가고 싶은 대학은 있었어? ”
“1학년때는 다들 S대, O대, H대 아니면 거들떠도 안 봤었는데… 요즘은 뭐, 그냥 오라는 데 있으면 거기로 간다는 애들도 있고 그래요. ”
“나때도 그랬지… S대, O대, H대밖에 몰랐었는데, 슬슬 자기 성적이 어디쯤인지 깨닫고 나서는… ”
“저는 그래도 상위권이라 좀만 더 열심히 하면 O대나 H대는 노려볼 만 하다고 했었어요. ”
“꽤 공부를 잘 했던 모양이네. ”
“그래도 반에서 5등 안에는 들었거든요… 언니가 O대 다니고 있으니까 저는 O대에 가고 싶어요. ”
S대나 H대, O대를 지망할 정도인데다가 담임 선생님이 권할 정도면, 모범생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끌려왔다고?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폭탄은 아직 55번에 있어. ”
그녀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그는 구슬의 행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두 개의 구슬이 한 통에 모였고, 다시 각각의 통으로 간다. 그리고 결국 긴 통으로 둘 중 하나가 들어갔다.
“H대나 O대에 원서 써 보라고 할 정도면 모범생이네. ”
“뭐… 그런 셈이죠… ”
멋적은 듯, 그녀는 구슬을 마저 옮겼다. 어느덧 보관통에 구슬이 거의 다 차가고 있었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은 구슬 하나만 옮기면 게임이 끝난다.
“게임 끝! 최종적으로 폭탄은 55번에 있어. ”
“……! ”
“승자는 7번이야. ”
만칼라 통에 있던 구슬과, 그녀의 구슬 주머니에 있던 구슬까지 그의 손으로 들어왔다. 자신이 패배했다는 걸 알고, 울 듯한 눈으로 그를 한 번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못 하겠죠…? ”
“여기 그렇게 빡빡한 데 아냐.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있다면, 유서 정도는 쓰게 해 줄 수 있어. ”
“저, 마지막으로 할 얘기가 있어요… ”
“잠깐 기다리면 진행 도와주는 아저씨가 올거야. 아저씨한테 내가 얘기해둘게. ”
동그란 구체가 진행 요원을 부르자, 진행 요원은 금방 왔다. 동그란 구체가 그녀가 패배한 것과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있다고 전하자 진행 요원은 그녀를 데리고 어딘가로 갔다. 남아있던 그는, 구체의 축하를 받으며 경기장 밑으로 내려왔다. 카드를 반납하고 새 숙소로 돌아가니, 두 명의 여자와 한 남자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
“7번입니다. ”
“반가워요, 저는 53번이예요. ”
“저는 81번이고, 여기는 90번이예요. ”
“맞다, 90번님, 어제 같이 있었다는 커플은 다른 방으로 갔어요? ”
“아마 그럴거예요. 어휴, 그 커플들 정말 어찌다 꼴불견이었는지… 하루종일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
“커플이라… 오전에 같은 카드 뽑았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설마 그 사람들은 아니겠죠? ”
“그 사람들 맞는 것 같은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