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7. 집착이 가져온 업

여기는 대학가의 어느 술집. 술집 특유의 어둑어둑하면서도 밝은 조명 아래, 아직 손님이 없을 시간임에도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D대학 전자공학과의 신입생 환영회 겸 개강총회였다. 아르바이트생은 테이블에서 주문한 술잔과 술, 안주를 가져다주고, 테이블에서는 술과 안주를 받아 잔을 돌린다. 그렇게 왁자지껄하던 사이, 한 사람이 더 들어왔다. 공대생들의 패션이라며 우스갯소리가 도는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검정 백팩을 멘 남자였다.

“현진이 왔어? “
“현진 선배 오셨습니까? “
“말 편히 해. “

신입생들과 얘기를 나누던 여자 한 명이 신입생들에게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를 소개했다. 전자공학과 15학번, 최현진 선배라며. 현진은 신입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빈 자리에 앉았다. 술집은 신입생 환영회때문에 왁짜지껄했다. 환영회 분위기도 좋았다. 그런데 몇시간 후…

“형, 그만 좀 하세요. “
“희연아, 이 쪽으로 와. 나랑 바꾸자. “
“어디가~ 여기 있어! “
“희연아, 여기 수저! 잔도 가져가고. 형, 제 수저랑 잔 좀 주세요. “
“응, 여기. “

술김에 현진은 희연에게 들이댔다. 사실 들이댔다는 말도 최대한 격식을 갖춘 표현이었지, 껄떡댄다는 말이 딱 맞았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자기가 고등학교 일진이었고 학생때 애들 좀 때렸다는 애기부터 시작해서, 여기 있는 선배들은 다 자기 밑에 있으니까 누가 괴롭히면 말하라는 둥, 이런저런 허세를 부리며 희연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억지로 끌어안기도 했다. 보다못한 남자 후배가 희연과 자리를 바꾸자, 현진은 희연의 옆자리에 있는 신입생에게 강압적으로 자리를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이것도 말이 부탁이었지, 사실 반협박이었다.

“후… 대체 현진이형은 누가 오라고 한 거예요? “
“14학번 선배들이 그래도 선배니까 부르라는데… “
“근데 그 덕분에 환영회 일찍 파해서 선배들은 오지도 못 했잖아요. “
“그건 그래. “
“형, 저 안그래도 집 가는 길에 경원선배한테 연락 받았는데… “
“경원이형이? 뭐라셨는데? “
“현진이형이 희연이한테 한 거 얘기 듣더니, 아직도 지 버릇 개 못 줬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니들 선배니까 부르라고 했던 건데 괜히 미안하게 됐다고 하셨어요. 다른 16학번들한테도 미안하다고 전해달라셨어요. “

신입생 환영회때문에 D 대학교 전자공학과는 난리였다. 신입생들에게는 쉬쉬하고 있었지만, 현진의 만행은 환영회에 참석했던 16, 17, 18학번을 넘어서 환영회에 오지도 않았던 13, 12학번 선배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물론 13, 12학번을 통해 들은 11, 10학번 선배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선배들의 반응 역시 하나같이 제 버릇 아직도 개 못 줬냐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신입생 환영회 현장에 있었던 현수 역시 그 현장을 봤고, 그 때 희연과 자리를 바꿨던 사람이 현수였다.

“희연아, 괜찮아? 그 뒤로 현진이형이 껄떡대고 그런 건 없지? “.
“네. 그런데 선배… 저 불안해요. 수업때 만나면 어쩌죠? 저, 진짜 현진선배 만날까봐 불안해서 학교 못 다니겠어요… “
“니 맘 이해한다. 불안하지… 나같아도 그랬을거야… 솔직히 현진이형이 한두번 그런 것도 아니고… 그래서 여자 후배들은 들어왔다가 대부분 반수하거나 편입해서 나갔거든. 아마 선배들도 이해해줄거야. “
“고마워요, 선배… “

결국 희연은 과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학교를 옮기기 위해 반수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동기와 선배들도 알음알음 그 날의 일을 알고 있었기떄문에 희연을 말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선배들은 희연에게 그 날 일에 대해 사과했다. 물론, 희연이 반수해서 나간다는 얘기는 현진의 귀에도 들어갔다.

“야, 너 희연이랑 동기지? 걔네 집 어딘지 알아? “
“아뇨… “
“니 친구들 중에도 아는 사람 없어? “
“없을걸요…? “

현진이 희연의 주소를 캐고 다닌다는 얘기는 곧 과 사람들의 귀에 들어갔다. 신입생들은 멀리서 현진과 비슷한 사람만 보여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고, 현진의 후배들도 마찬가지였다.

“하, 진짜 저걸 어떻게 해야 되냐… “
“진짜 미안하다. 우리가 그래도 선배니까 부르라고 했지… 그때는 자기도 마음 고처먹었다고 과 활동 잘 해보겠다고 했었거든. 그래서 믿었던건데… 후배 성추행도 모자라서 뒤를 캐고 다녀? “
“걔 14 애들이 부르라고 했어? 현수 얘기 들어보니까 18애들 신입생일때도 뒷말 꽤 나왔던데? 전에도 환영회 가면 여자 신입생 옆에 앉아서 성추행하면서 허세부리고 그랬잖아. 싫어하니까 집주소 캐서 계속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고. 걔가 그것때문에 1학년 강의 재수강하고, 청강까지 하는거야. 걔때문에 나간 15학번 동기도 있어. “
“전 그 때 군대가서 몰랐는데… 며칠 전에 환영회안데 자기도 가면 안되냐고 해서 제가 지금까지 너 사고친 걸 생각하라고 했더니, 그 때는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믿고 걔도 부르라고 한 건데… “
“벌써 몇 년째야, 이게… 차라리 호랑이가 샐러드를 먹는 게 빠르겠다. “

선배들도 신입생의 고충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불러서 따로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딱히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현수는 사무실에 돌아와 이 사실을 도희에게 얘기했다.

“음… 현수씨, 그 사람 어느 학교 출신이예요? “
“F 고등학교요. “
“F 고등학교… 그렇다면 저희가 찾는 그 분이 맞긴 맞는 것 같네요. 거기다가 몇년째 그래왔던 걸 보면 아주 심각해요. “
“의뢰자도 같은 대학 같은 과인 것 같은데… 빨리 접선부터 할까요? “
“네, 일단 의뢰자랑 접선부터 해 주세요. “

다음날, 학교에서 과 선배를 만난 현수는 의뢰자에 대해 물었다. 다행히도 선배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듯 했지만, 쉽사리 알려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는지 왜 그 사람을 찾는지 현수에게 물었고, 현수는 사촌누나가 고등학교 친구였는데 연락이 끊겨서 찾고 있었다며 대충 둘러댔다. 선배는 의뢰자의 연락처를 알려주면서, 지금은 졸업 학기라 수업이 별로 없을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현수는 의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강지원씨 되시죠? “
‘네, 그런데… 누구세요? ‘
“안녕하세요, 고키부리 사무실입니다. 잠시 시간 괜찮으실까 해서 연락 드렸습니다. “
‘시간은 되는데… 현진이랑 마주칠까봐 학교에서 만나는 건 좀 그래서요… ‘
“저희 사무실 건물로 오세요. 거기 1층에 카페가 있습니다. 저도 마침 수업은 다 끝났으니 그 쪽으로 가겠습니다. “
‘네, 그럼 거기서 만나요. ‘

현수는 사무실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지원을 만났다. 지원을 만난 현수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있었던 일과 그 후의 일을 이야기하며, 혹시 고등학교에서도 이런 비슷한 짓을 했는지 물었다. 그리고 지원은 고등학교가 남녀 분반이긴 한데, 그런 일을 당했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고 했다. 남녀 분반이어도 학교 축제나 체육대회, 방과 후에는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고등학교는 초등학교처럼 담임선생님이 반에 상주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걔때문에 후배 하나가 또 나갔어요? “
“네. 선배들 얘기 들어보면 현진선배 입학한 해부터 그런 일이 있었대요. 그래서 휴복학도 밥먹듯이 했다고 하고… 선배들 말로는 이제 휴학 한도도 다 썼을거라고 하던데요… “
“그럴 줄 알았어…. 설마 걔일거라고 생각은 못 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거든요. 동기를 성추행해서 동기가 나갔다고… 그 뒤로는 후배한테 그랬나보네요. “
“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 선배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

현진은 희연을 쫓아다니려고 했지만, 후배들이 생각보다 협조적이지 않았다. 집 주소도 알려주지 않고, 수업때마다 슬슬 피하기나 하니, 단체로 불러다가 기합이라도 줘야겠다. 그는 후배들 단톡방에 오후 5시까지 집합하라며 메시지를 보냈고, 한 후배가 이를 제보한 덕분에 선배들의 귀에 들어갔다. 경원은 더는 못 참겠다며 자신을 20학번 단체방에 초대해달라고 했고, 단체방에 들어오자마자 경원은 현진에게 쏘아붙였다.

“집합? 니가 뭔데 집합을 거냐? 선배면 다야? “
“형, 그게… “
“너 나한테 환영회 불러달라고 하면서는 정신 차렸다며, 새끼야. “
“아니, 그게… 애들이 자꾸 저 슬슬 피하고 그래서… “
“니가 무슨 짓을 했는데, 애들이 안 피하는 게 이상한거지. “
“…… “
“어떻게 너때문에 15학번 이후로는 한학기마다 한 명은 나가냐? 그것도 여자애들마다? 나가는 애들한테 물어보니까 니가 성추행한것도 모자라서 튕기지 말라는 개소리 싸질러가면서 따라다녔다며? “
“…… “
“새끼야, 14학번들은 니 그 정신차렸다는 말 믿고 너 부르라고 했다가 얘네들한테 죄인됐어. 애들한테 미안해도 모자랄 마당에 뭐? 뒤를 캐? 집합을 걸어? 너 20학번 애들한테도 그런 거 10학번 선배들 귀에도 들어갔어. “

현수도 단체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전해들었다. 현수는 희연을 찾아가서 환영회 이루호 현진이 접근해왔는지 물었고, 희연은 동기들이 그것때문에 연락했다고 말했다. 동기들에게 자꾸 자기 집을 물어보는데 뭔가 심상치 않다며, 자취방을 빨리 정리하고 본가로 내려가라는것이었다. 그리고 희연은 뭔가 쎼함을 느끼고 이미 자취방을 정리하고 본가로 내려가 있었다.

‘근데 무슨 일인데요? 갑자기 그 사람 이야기는 왜요? ‘
“그 사람, 니네 동기들이 자기 슬슬 피한다고 집합 걸었다가 경원선배한테 혼나는 중이야. “
‘어쩐지, 서준이가 빨리 본가로 내려가라고 연락했더라니… ‘

그 시각, 도희는 지원을 만났다. 도희는 사무실로 찾아 온 지원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면서, 현진을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는지 물었다. 후배들 집합까지 걸려다가 한학번 위 선배에게 걸려서 제대로 역풍을 맞았다는것까지 들은 지원은,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했다. 그리고, 이내 뭔가 결심한 눈으로 도희를 바라보았다.

“대학에 발도 못 붙이게 해 주세요. 공대를 졸업해서 꿈을 이루고 싶은 애들도 있었을텐데, 그 꿈을 현진이가 짖밟은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걔도 겪어봐야 해요, 자기 꿈이 짓밟히는 게 어떤 건지… 자기 캠퍼스 라이프가 짓밟힌다는 게 어떤 건지. “
“알겠습니다. “

도희는 현수를 통해 희연의 연락처를 알아냈고, 희연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밝힌 후, 희연에게 아직 자퇴 수속은 밟지 않았는지 물었다. 아직 퇴사 수속은 안 했지만 서류는 작성했다는 얘기를 들은 도희는, 도와줄테니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약속 장소를 사무실 밑 카페로 잡고, 도희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날, 도희는 희연을 만났다. 희연은 서류 봉투를 들고 카페로 왔고, 도희는 태영과 함게 카페에 와 있었다. 도희는 희연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제 연락드렸던 사람입니다. “
“안녕하세요. “
“자퇴 수속을 하러 가실 때, 저희가 도울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
“도울 일…? “
“지금 희연씨를 찾겠다고 현진이라는 사람이 눈에 불을 켜고 있거든요. 며칠 전에는 희연씨 집주소를 안 알려줬다는 이유로 동기분들 집합까지 걸었다죠. 이런 상황에서 혼자 갔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최악이예요. 자퇴서를 제출하러 가실 때, 이 분과 함께 거세요. 적어도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마주치더라도 허튼 짓은 못 할 겁니다. “

희연은 태영과 함께 서류를 제출하러 학교에 갔다. 오랜만일 것도 없지, 거의 3~4주만에 오는거니. 그녀는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서류를 제출하러 갔다. 동기나 선배들과 만나고 자시고 할 여유는, 현진이 이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한은 없었다.

“희연아! “
“……! “

하필이면 이럴 때 마주치다니, 희연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긴장했다. 그것을 알아챈 태영은 먼저 현진에게 누구냐며 선수를 쳤다. 그리고 현진이 과 선배라고 대답하자, 태영은 저 사람이 너를 그렇게 살뜰히 챙겨주더냐고 희연에게 묻고는, 챙겨준 건 고맙지만 너무 과해서 딸이 부담스러워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이사 핑계를 대며 희연을 데리고 서류를 제출하러 갔다.

희연이 본가로 내려간다는 것을 알아낸 현진은 동기들에게 희연의 본가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지만, 동기들은 모른다고 답했다. 다른 후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신입생 환영회에서 만나자마자 반수를 결정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진은 만나는 후배들마나 추궁하고 다녔고, 결국 이에 대해서 뒷말이 나올수밖에 없었다. 그는 후배의 뒤나 캐고 다니면서 학점 관리도 안 한다는 선배로 낙인찍혔다.

“근데 선배, 15학번 선배들은 대부분 졸업하지 않았어요? 왜 현진이형은 아직 3학년이예요? “
“너도 걔의 악명은 익히 들어서 알겠지… 걔 동기들마나 껄떡대서 자퇴시키고 그 해는 휴학하면서 도망갔거든. 그리고 다음학기에 또 복학한다고 꼼수썼다가 똑같은 일 저지르고 휴학하고… 걔의 마수를 피한 건 16이랑 17애들밖에 없어. “
“그거 원칙상 안되는 거 아니예요? “
“어차피 걔는 전역하고 18한테 껄떡대다가 역풍맞은 후로는 계속 휴학이었어. 말로만 복학한다고 해놓고 환영회 나오는거고. “

후배들 사이에서 뒷말은 나왔지만, 그렇다고 학교에서 출학을 하지 않는 이상은 계속 봐야 한다. 사실상 휴학이라고 해놓고 강의를 청강하는 수준이라,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알음알음 얘기는 나왔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물론 현진이 그 뒤로 희연을 찾아 갈 도리는 없었지만, 현진의 동기들에게 본가를 아느냐고 계속 물어볼 터였다. 그리고 내년 신입생 환영회에 찾아와 또 후배들에게 껄떡댈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몇주 후, 현수에게 전화가 왔다. 발신인은 희연이었다. 현수가 전화를 받았을 때, 희연은 울고 있었다. 울면서 제발 도와달라고 하는 희연을 진정시킨 현수가 무슨 일인지 묻자, 희연은 어떻게 연락처를 알아냈는지 현진이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 온다고 했다. 문자건 전화건 하루가 멀다하고 오는데, 경찰에서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기 전까지 움직여줄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거 심각하네… 희연아, 너 일단 번호 바꿔. 번호 바꾸고 동기들한테 알리지 마. “
‘네, 선배님… ‘

현수는 경원에게 연락해, 현진이 희연의 번호를 어떻게든 알아냈다는 것과 계속 연락을 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때문에 어제 희연이 울면서 전화했다는 것도 말했다. 동시에 동기들에게도 희연이 겪은 일을 얘기하고 연락처를 알려준 적 있는 지 물었다. 다른 동기들은 소름돋는다는 반응이었고, 그 중 한명이 뭔가 찝찝하다면서 얘기를 꺼냈다. 잠깐 핸드폰을 내려놓고 화장실에 갔었는데, 어느새 암호가 풀려있고 그걸 현진이 만졌다는 것, 그리고 자기가 돌아오자 뭐에 놀란 듯 후다닥 도망쳤다는 것을.

“설마 니 폰 본 거 아냐? “
“그런가봐… 실행했던 앱 목록들 보니까 전화번호부가 제일 앞에 나와있고, 희연이 연락처가 열려있었어. “
“너 그거 경찰에 신고해야 되는 거 아냐? 핸드폰은 니 사유재산이잖아. “
“이런걸로 신고가 될까…? “

현수는 문득, 이렇게 가다가는 희연이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주에 보고를 하면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가급적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핸드폰을 몰래 훔쳐봐서 연락처를 알아낸 다음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있고, 그 애가 울면서 전화했다는 것도 말했다.

“네? 그 정도인가요? “
“네. 진지하게 핸드폰 주인한테 경찰에 신고하라는 얘기까지 했어요. “
“그런걸로 신고한다고 해도, 경찰이 받아줄 지 모르겠네요… 그거랑 별개로, 슬슬 움직이긴 할거예요. 그것 말고도 그 현진이라는 사람이 한 건 하려다 들통난 게 있었거든요. “

도희는 USB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
“전에 태영씨가 희연씨와 함께 서류를 제출하러 갔을 때, 처리가 잘 안 됐다고 했죠? 그 원인을 알아냈거든요. 누군가 시스템에 침입한 흔적이 보였어요. “
“!!”
“수사해보면 확실해지겠지만, 아마도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하나뿐이죠. 거기다가 희연 씨 본가 주소를 알아내겠다는 일념때문인지 부스러기도 엄청 남겨서 말이죠… “

학교는 이내 발칵 뒤집혔다. 재학생 하나가 학사정보 시스템을 해킹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외부의 소행일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침입하면서 남겼던 여러 흔적들을 종합해본 결과는 현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학사정보를 해킹하려던 목적은 역시나 희연의 본가 주소를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이를 들은 같은 과 후배들은 물론 선배, 동기들까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다른 과 학우들도 그동안의 만행과 해킹하려던 목적을 듣고 혀를 내둘렀다.

비록 목적이었던 희연의 본가 주소를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어찌되었건 해킹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때문에 업무가 마비되었었다. 학교측에서는 학교의 재산에 심각한 위해를 끼친 현진을 출학조치했고, 현진은 더 이상 그 학교의 학생일 수 없었다.

“어떻게 들어간 학교인데… 뭐 괜찮아, 다른 학교로 들어가면… “

현진이 지망하려던 학교들은, 출학된 자들은 입학 서류조차 낼 수 없는 곳이었다. 다른 곳에 입학한다고 해도, 출학된 이유가 기사로 퍼진 이상 그에게 찍혀버린 낙인을 지울 수는 없었다.

“역시, 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지.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 인성이 쓰레기면 소용 없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