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4. 정산

아침부터,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컴퓨터 본체 하나를 들고 괴담수사대를 찾아왔다. 그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테이블에 본체를 내려놓고, 오른쪽 어꺠를 두어번 주물러준 다음 어제 연락했던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아, 그 T 바이오에서 오신다는 분이시군요. 상황은 직원을 통해서 전해들었습니다. 이게 그 컴퓨터인가요? ”

컴퓨터는 어디에나 있을법한 검정색 데스크탑이었다. 사무실에 남는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를 연결하고 부팅해보니 이렇다 할 것 없이 평범한 사무용 PC였다. 마치 포맷하고 새로 세팅이라도 해 둔 것처럼, PC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일할 때 필요할법한 프로그램 몇 가지가 사내 메신저와 함께 깔려있었다. 랜선을 연결해봐도 별다른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보기에는 평범한 PC같은데요… ”
“그런가요? 사무실에서는 지금 이 컴퓨터가 켜지지 않을 시간인데 말이죠… ”

어제 연락했을 때, 그는 괴담수사대가 여섯시까지인 건 알겠지만 도저히 회사의 업무량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통사정해 저녁에 간신히 약속을 잡은 상태였다. 시계는 지금 일곱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남자가 어제 했던 말대로라면 컴퓨터는 지금 켜지지 않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이 컴퓨터, 여기가 사무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
“장소를 지각한다고요? ”
“음… 정확히는, 본체가 아니라 본체에 붙은 뭔가가 지각하고 있는거겠지. 이 컴퓨터에 연구실 최군인가 하는 녀석이 붙어있는 것 같다며. 그럼 그 녀석이 여기가 사무실이 아니라는 걸 지각하고 있는 거 아냐? ”

연구실 최군.

본체를 들고 온 남자는 연구실 최군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은 죽었지만 한때 그와 함께 일했던 사원이었기 때문이다. 일처리도 꼼꼼하게 잘 했고, 열의 넘치는 신입사원이었던 최군이 회사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 말라가는 것을, 그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회사 체육대회날, 잠깐 담배 한 대 태우고 온다던 최군이 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것까지 전부.

최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던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던 그는, 뒤에서 최군의 유가족이 회사를 상대로 싸우는 것을 도왔다. 도왔다고 해봐야 익명으로 증언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 덕분에 최군의 유가족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보상금을 받았다. 나중에 회사에서 익명으로 투서를 던진 사람을 색출하려 했지만 최군이 자신을 도와준 은혜라도 갚으려고 했던 것인지 무산되었고, 그는 여전히 최군에 대한 미안함을 안은 채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최군은… 참 열의가 넘치는 친구였죠. 갓 출근하자마자 저에게 뭔가 도울 것은 없는지 물어보기도 했고… 다른 친구들과 달리 모르는 게 있으면 제깍제깍 물어보곤 했습니다. ”

연구실 최군은 다른 부서에서도 유명 인사였다. 곤란한 일이 있으면 곧잘 도와주었고, 생산 팀에서 원료를 나를 때도 나서서 도와주곤 했었다. 최군 덕분에 그 까칠하다는 생산 팀에서도 연구 팀에게만은 호의적이었다. 매일 출근하면서 연구실의 문을 열고, 퇴근하면서 연구실의 문을 닫는다.

그런 최군을 회사에서 고깝게 보지 않았던 것은, 회사의 고위직들이 입바른 소리 잘 하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회사에 불만이 있느냐는 입바른 질문에 최군이 곧이곧대로 말한 것 때문에 홍 부장이 겉으로는 너털웃음을 지으면서도 목석같은 표정을 지었던 그 날.

그 날 이후로 연구팀 홍 부장은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최군을 혼내곤 했다. 실험을 왜 그렇게 하느냐, 결과가 왜 이렇게 나왔느냐로 혼내는 것은 물론이고 성격을 트집잡기도 했다. 하루는 최군이 아파서 조퇴한다는 말에 니가 왜 아프냐며 되려 호통을 치고, 심한 감기임에도 조퇴도 못 하게 했다. 조부모님이 돌아가셨을때도 할머니는 왜 그 때 돌아가시고 난리냐며 최군이 혼나야만 했다.

“그 회사는 사내 정치 위주로 돌아가냐? ”
“그렇지 않다고는 못 하겠네요. 항상 승진이 빠른 사원들을 보면 부서장한테 아부 잘 하는 사람들이니… 홍 부장도 대표한테 아부해서 부장 자리 단 거고요. ”
“상당히 썩었어… 그 정도면 멀쩡할 리가 없지. ”

그 때, 컴퓨터에 텍스트 파일이 생겼다. 파일명은 ‘여긴’이었다.

“컴퓨터에 갑자기 파일이 생겼는데요…? ”
“아마 최군이 할 말이 있는 모양이네요. 최군은 새로 온 사람들과 소통할때도 텍스트 파일로 소통하곤 했습니다. ”
“소통을 텍스트 파일로 한다는 견, 우리도 여기에 입력을 하면 된다는건가… ”

텍스트 파일을 열어보니, 여긴 어디냐는 질문이 적혀있었다. 미기야는 여기가 어디이고, 누가 이 본체를 여기까지 들고왔는지를 텍스트 파일에 적고 저장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텍스트 창에 실시간으로 무언가가 써지고 있었다. 아무도 키보드에 손대지 않은 채였는데, 누군가가 키보드로 치는것처럼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최군, 여기 있는거야? 내 말 들려? ”

키보드가 바삐 움직이면서 화면에 장문의 글이 써졌다. 그 곳에는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대접을 받았고, 왜 그런 선택을 했고, 왜 이 컴퓨터에 붙어있는지에 대한 글이 쓰여 있었다. 최군은 글 말미에, 강 팀장님께 괜한 일을 시킨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무래도 말소리가 들리지는 않는 것 같네요… ”
“하지만 분명 키보드가 움직였는데… ”
“어떤 형태로 붙어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밖에 나와서 키보드를 조작하고 있는 건 아냐. 마우스는 움직이지 않고 있고… ”

최군이 쓴 장문의 글을 읽은 파이로는, 곧 컴퓨터에 최군이 붙어있는 이유를 납득했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에게 쌓인 원한도 원한이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누군가가 또 자신처럼 이 회사에서 말라죽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는 자신이 깃든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 들어오는 사원들이 홍 부장의 불호령을 무사히 넘겼구나… 최군 덕분에… ”
“다른 사람들이 자기처럼 되지 말라고 붙어있는 경우는 또 처음 보네요. 이것도 일종의 저주인걸까요…? ”
“음… 저주라고 보기는 좀 애매한데? 아마 저주하기 위해 붙어있었더라면 벌써 누구 하나는 죽었겠지. 이 컴퓨터를 안 쓰면 되는 거 아냐? ”
“그게… 이 컴퓨터를 창고에 갖다둔 날 대표랑 홍 부장이 사고를 당했어요. 하나는 차가 갑자기 급발진해서 죽을 뻔 하고, 다른 하나는 차에 치일 뻔 하고… ”
“…… ”

파이로는 대답 대신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고 다시 키보드가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화면에 무언가가 빠르게 출력되기 시작했다. 최군은 대표랑 홍 부장을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이 맞다며, 그 사람들이 어떻게든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강 팀장님도 빨리 이직하셨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꼐, 정말 무간지옥이 있다면 대표와 홍 부장이 거기에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무간지옥이라… 그래, 사람 하나 말려죽었으면 떨어지겠지. 근데 너도 같이 가고 싶진 않겠지. ”

파이로는 중얼거리면서 본체에 부적을 붙였다. 그러자 무언가가 본체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컴퓨터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던 연구실 최군이었다. 수더분한 머리에 강에 빠져 죽었을 적 모습 그대로였다.

“강 팀장님…! ”
“최군…! ”
“니가 연구실 최군이냐? …뭐, 텍스트 파일로 설명했듯 여기는 괴담수사대다. 그리고 이 사람은 널 여기서 풀어주려고 온 거야. ”
“그건 알고 있지만… 전 아직 갈 수 없어요. 절 이렇게 만들고 가족들 가슴에 대못까지 박은 홍 부장… 그리고 대표…… 두 사람이 무간지옥으로 떨어지는 걸, 제 눈으로 똑똑히 보고 갈거예요. ”
“너도 같이 떨어지게? ”

파이로는 본체로 들어가려는 최군을 붙잡았다.

“……! ”
“그래, 그 둘은 너를 말려죽인 것 말고도 죄가 많으니 무간지옥에 간다 치자. 아니, 100% 갈거다. 저승 법정에서 그정도면 아예 무간지옥 인력으로 굴려먹을수도 있거든. 그럼 너는? 갈 떄 됐는데 안 가고 공무집행 방해죄로 그 유구한 세월을 뻐팅기는 너는 안 갈 것 같냐? 그 둘이 지옥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건 그 둘을 헌생에서 더 이상 만나기 싫다는 의미 아냐? 근데 지옥에서 둘을 만나려고? ”
“하지만…! ”
“괜찮아, 이대로 보낸다고는 안 해. 그러니까 명계 가서 팝콘이나 튀겨, 아주 많~이. ”

파이로는 강 팀장에게 본체는 들고 돌아가도 된다고 말하고, 최군을 마침 지나가던 저승사자 편에 보냈다. 그리고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를 대충 갈무리했다. 그리고 파이로가 저녁을 고를 동안, 미기야는 강 팀장이 돌아가고 나서야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팝콘을 튀기다니, 그게 무슨 말이예요? 우리가 최군한테 뭘 해줄 수 있는 건 없잖아요. 직접 그 둘을 죽이거나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
“물론 내 손에 피를 묻힌다고는 안해. 인생은 기브 앤 테이크야. 뭔가 하나를 얻으려면 뭔가 하나를 잃어야 하지. 물건의 가치에 상응하는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것처럼. ”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그렇겠죠. 근데 그게 이거랑 무슨 관련이 있는거예요? ”
“자세히 설명하자면 좀 복잡한데… 너, 재무제표라고 알지? ”
“신문에서 몇 번 본 적은 있어요. 회계 정산 어쩌고 하면서 나오던데… ”
“재무제표라는 건, 회사의 가치를 판단하기 위한 척도가 되기도 해. 얼마나 벌었고 얼마나 잃었는가를 표로 알려주는 거지만, 그 표는 사실 많은 것을 결정하기 위한 척도가 되거든. 뭐, 예를 들자면… 이 회사에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런 거. ”
“…… ”
“지금도 판데모니움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인생의 재무제표를 매기는 녀석이 있어. 그 녀석은, 사람의 선행과 악행, 그 외의 다른 것들을 계산해 인생의 가치를 평가해주지. 선행을 많이 저지른 사람은 수익이, 악행을 많이 저지는 자는 빚이 많다… 쉽게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가치를 매기는 거야. 선행을 저지른 사람은 가치가 플러스 되는 거고,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가치가 마이너스가 되는 거지. ”

파이로는 저녁을 골랐는지 배달 앱을 켜고 주문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인생의 가치가 마이너스인 사람에게 빚 받으러 다니는 걸 좋아하지. 어떤 방식으로 받는건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그 빚을 할부가 아니라 일시불로 받아. ”
“일시불…? ”
“그 동안 저질러온 악행에 대한 벌이 한번에 밀려온다… 그렇게 생각하면 편해. ”

다음날, 강 팀장이 출근했을 때, 회사가 시끌시끌했다.

“좋은 아침. ”
“아, 팀장님. ”
“밖에 무슨 일 있어? 사람들 몰려있던데… ”
“팀장님, 기사 못 보셨어요? ”

직원이 반문하자, 그제서야 강 팀장도 인터넷을 확인했다. 실시간 검색어는 온통 T 바이오 관련된 것 뿐이었지만 연관 검색어는 그리 좋은 어감은 아니었다. T 바이오 상장폐지, T 바이오 직원 자살, T 바이오 갑질… 관련된 기사들도 꾸역꾸역 나오고 있었다. 평소에 이런 검색어 하나라도 올라가면 역정내던 대표는 온데간데 없었고, 이 시간쯤 담배피고 느긋하게 들어와야 할 홍 부장도 보이지 않았다.

“검색어가 이 꼴인데 대표가 웬일로 잠잠하대? ”
“대표님 홍 부장님이랑 경찰서 끌려가신 거 같던데요? ”
“경찰서? ”
“네. 그동안 노동법 위반한거에 최군한테 폭언한것… 다른 직원들 성추행한거… 분식회계에 비리까지 누가 다 찔렀나봐요. 아침에 형사들 와서 사무실 엎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

강 팀장도 알음알음 들어왔던 비리와 분식회계는 물론이고 직원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날렸던 것, 여직원들 성추행에 최군을 죽게 했던 것까지 전부 누군가가 제보한 모양이었다. 신문에서는 연일 T 바이오에 대한 기사가 나왔고, 곧 있을 주주총회에서도 언급될 판이었다.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하기엔 이미 증거가 꽤 많이 나온 상황이었고, 그 동안 노동법을 위반했던것까지 전부 걸렸다.

“저희는 어떻게 되는걸까요…? ”
“글쎼… ”

아마도, 이것은 마지막까지 사원들을 지켜주며 남아있던 최군의 마지막 선물은 아니었을까, 강 팀장은 생각했다.

“최군, 마지막까지 이런 선물을 줄 줄은 몰랐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