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6. 전쟁의 상흔

꽤 무더운 여름이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오늘 복날이니까 치킨이나 먹자고 왁자지껄 떠들어대던 날이었다. 한낮의 햇빛은 매섭게 내리쬘 정도였고, 아스팔트가 아예 익어버릴 지경이었다. 계란을 깨면 그대로 계란 프라이가 될 정도로 아스팔트가 뜨겁게 달아올랐고, 거리는 한산했다.

“누, 누, 누가 좀…! ”

한낮의 거리를, 칼로 난자당한 채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20대 중후반은 되어보이는, 안경을 쓰고 조금 살집이 있어보이는 남자였다. 여기가 거리라는 것도 자각하지 못한건지, 아니면 급하게 뛰쳐나오느라 옷을 갈아입을 여유도 없었는지 집에서 입는 반바지 파자마에 런닝 셔츠 차림이었다. 그의 옷은 피로 붉게 물들어있었고, 얼마나 찔렸는지 거의 쓰러져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도, 도와… 도와줘! ”

그의 뒤를 따라 서슬 퍼런 단검의 날이 보였다. 구리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황동제인지 모를 검날은 피로 붉게 물들어있었다. 손잡이는 진한 갈색의 가죽으로 만든 것 같았고, 꽤 오래 된 단검인 듯 했다. 그 단검을 손에 쥐고, 무언가에 홀린 듯 여리여리해 보이는 여자가 남자를 쫓아 뛰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도와달라 외치는 남자를 따라잡자마자, 있는 힘껏 남자를 찌르려고 팔을 휘둘렀다.

“위험해요! ”

쫓기는 남자를 본 현이 남자를 막아서자, 여자는 현마저 공격하려고 단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목검에 맞아 단검이 땅에 떨어지자, 그제서야 여자는 정신을 차리고 현의 등 뒤에 있는 남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서 달려온건지 모를 정도로 처참한 상태였다.

“야! 정신차려…! 오빠! ”
“현, 무슨 일…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
“라우드 씨, 119 불러주세요! 칼에 난자당했어요! ”
“알았어! ”

라우드가 119를 부르자, 다행히도 구급대는 금방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은 남자를 들것에 싣고 응급처치를 한 다음, 어쩔 줄 몰라하는 여자를 뒤로 하고 떠났다. 남자가 구급차에 실려간 후, 남아있는 것은 어이가 없는지 멍하니 서 있던 여자와 아까 여자가 들고 있었던 단검이었다. 현은 멍하니 서 있는 여자를 다독인 다음 사무실로 데리고 와, 시원한 물 한 잔을 건넸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아까 실려간 사람은 누구고, 그 단검은 대체… ”
“아까 실려간 사람은 친오빠예요. 저는 오빠 방을 청소하려고 들어갔다가 단검을 잠깐 잡았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 보니 오빠가 칼에 난자당해 있었어요… ”
“이 단검 말씀이신가요? ”

아까까지만 해도 피가 잔뜩 묻어있었던 칼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했다.

“맞아요, 그 단검… 오빠가 군용 물건들을 수집하는 게 취미라 가끔 그런 것들을 가져오곤 하는데, 뭐라더라… 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군이 썼던 단검이라던가… 그랬던 것 같아요. ”
“아무래도 이 단검에 뭔가 있는 것 같긴 하네요.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요. 일단 이거 받으세요. ”

현은 여자에게 미기야의 명함을 건네주며, 오빠에게 단검은 괴담수사대에서 맡아둘테니 퇴원하게 되면 사무실에 들러서 찾아가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무사했으면 한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일주일쯤 후, 환자복을 입은 남자가 사무실을 찾았다. 현이 처음 발견했던 일주일 전과 달리, 병원밥이 맛이 없었던 모양인지 살이 조금 빠진 모습이었다. 아직 몸 군데군데 반창고가 붙어있었지만, 다행히 흉터는 남지 않은 듯 했다.

“실례합니다… 여기가 혹시 괴담수사대인가요? ”
“네, 맞습니다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제 단검을 여기서 보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
“아, 전에 실려갔던 그 분이시군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
“아직 상처는 좀 있지만, 괜찮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
“다행이네요. 오너, 단검의 주인이 오셨어요. ”

현이 미기야를 부르자, 안에서 책을 정리하던 미기야가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그는 정리하려던 책 더미를 잠깐 내려놓고 남자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어서 오세요. 단검은 여기 보관해 두었습니다. ”

미기야는 붉은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를 건네받은 남자가 열어보자, 안에는 단검이 들어있었고, 데스 애더의 거미줄로 만든 붉은 염주와 함께 손잡이에 부적이 매여져 있었다.

“어, 이건… ”
“귀한 수집품인 건 알고 있지만, 염주와 부적은 만지지 말아주세요. ”
“예? ”
“손님께서는 며칠 전, 사무실 앞에서 이 검으로 난자당해 큰 부상을 입으셨었죠? 그 때 저희 직원이 손님을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큰일이 났을 거라고, 얘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
“네, 갑자기 여동생이 돌변해서는… ”
“이 검은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
“이베이에서요. 원래 군용 물건들 모으는 게 취미라서… 요즘은 2차 세계 대전에서 쓰였던 군용 단검을 모으는 데 재미가 들렸거든요. 뭐 새로운 매물 있나 둘러보던 차에 마침 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군이 썼던 단검이 나왔길래 직구로 샀었죠. 그게 이 단검이었습니다. ”
“2차 세계 대전에서 실제로 썼던 단검이군요. ”
“네, 원래는 검집도 같이 있어야 하는 건데, 검집이 없다 보니 꽤 싸게 나와서 샀죠. ”

단검은 전쟁에서 쓰였다는 것 치고는 상태가 그렇게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현대의 누군가가 본따서 모형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날도 번쩍번쩍했다. 그는 단검에 대해 설명하면서, 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썼던 단검이고 원래 검집도 함께 들어있는 물건이지만 이 단검은 검집이 없었다며, 당시 나치 독일의 총검술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전에도 지금처럼 누군가가 이 단검으로 손님을 공격한 적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혹은 이 단검때문에 다쳤거나요. ”
“몇 번 있긴 있었죠… 전에는 사촌동생이 절 공격하려고도 했었고… 하루는 아빠가, 하루는 엄마가… 단검을 만지자마자 갑자기 돌변해서 절 공격하는 바람에 다쳤었습니다. 어떤 날은 잘 보관해뒀던 단검이 발등에 떨어져서 다치기도 했고요. ”
“역시, 제 예상이 맞았군요. ”
“근데 생각해보니 좀 이상한 게 있었어요. 분명 칼날에도 피가 묻었을 것 같은데… 아뇨, 분명 묻었었어요… 그런데 어째서인지 칼날이 피를 먹는것처럼, 순식간에 피가 사라졌습니다. ”

미기야는 남자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후, 그에게 단검 손잡이에 부적을 감은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단검에는 주령이 깃들어 있습니다. 다만, 원념이 너무 강해 저희도 정화하는 것은 힘들고 봉인하는 선에서 그쳤을 뿐이니까 염주와 부적은 만지지 말아주세요. ”
“주령이요? ”
“원념이 모여서 형성되는 유령입니다. 아마 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사용했던 검이라면, 이 검을 통해 꽤 많은 사람들의 피를 봤을겁니다. 그 과정에서 모이는 원념들에 의해 츠쿠모가미… 그러니까 물건에 원래 깃들어있던 존재가 변질되어 주령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 소유자의 피를 주기적으로 섭취하는 단검이 된 것이고요. 그래서 손님의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조종해 손님을 공격하게끔 한 것입니다. ”
“……! ”

그는 이베이에서 단검을 발견했을 때를 상기했다. 어쩐지, 다른 나치 독일 군용 단검에 비해 너무 쌌던 데다가 다른 판매자들과 달리 한국으로도 배송이 된다며 먼저 연락을 취했었지. 검집은 없지만 상태는 A급이라며 물건 사진을 보내오고, 어떻게든 팔아 넘기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어딘가 꺼림칙하긴 했지만, 마침 모으는 중이었던데다가 싸게 넘긴다기에 얼씨구나 하고 수락했던 것이다.

“되게 싸게 샀다고 좋아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이 단검을 빨리 넘기려던 목적이었던 것 같네요… 어쩐지, 저쪽에서 먼저 한국으로도 배송 된다면서 이 정도면 A급인데 싸게 주겠다고 먼저 말을 걸었거든요. ”
“아마 이전 소유자도 비슷한 일을 겪었을겁니다. ”
“…… ”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 안에 깃든 주령이 너무 강해 저희 쪽에서도 봉인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가급적 염주와 부적을 단검에서 떼어두지 마세요. ”

미기야는 남자에게 주의를 단단히 주고, 붉은 상자를 건넸다.

“이 다음에 저 봉인을 풀게 되면, 그 때는 저 분이 정말 죽을 지도 모르는데… 큰일이네요. 가급적 단검을 다른 곳에 팔아넘겼으면 하는데… ”
“그 정도예요? ”
“무라사키씨가 아니었더라면 봉인조차도 못 했을거예요. 원념이 너무 강해서 저조차도 어떻게 할 수 없었고, 파이로 씨도 안 계셔서… ”
“꽤 강한 게 들어있었던 모양이네요. …그런데, 저 단검을 다른 사람이 사 가게 되면 그 사람이 봉인을 풀었다가 공격당할지도 모르는 거 아니예요? 차라리 저 상태로 계속 가지고 있는 게 나아보이는데… ”
“……! ”

그리고 며칠 후.

괴담수사대는 E시의 한 주택을 찾았다. 집 안에서 칼부림이 났다는 신고를 듣고 경찰이 갔는데, 그 곳에서 오래 된 것 같아 보이는 단검을 발견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장에 있던 경찰의 말에 의하면, 분명 단검에는 피가 묻어 있었는데 그 피를 칼날이 서서히 먹어치우는 것 같았다고 했다. 피해자는 그 집의 아들 하나였고 중태에 빠졌으며, 나머지는 멀쩡하더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괴담수사대입니다. 그 단검을 볼 수 있을까요? ”
“저 쪽에 있습니다. ”
“……! ”

그 단검은 전에 자신이 염주와 부적으로 봉인했던 단검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봉인은 풀어져 있었고, 염주는 끊어져 있었다. 온통 피투성이인 현장 속에서, 단검은 마치 새 것인 양 놓여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조차 접근할 수 없게 접근 금지 테이프를 붙였음에도 인영이 보였다. 검고 긴 머리에 만족한 듯한 붉은 눈을 가진, 섬뜩해보이는 여자였다.

“!!”
“주령이 실체화될 정도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이 검? ”
“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군이 썼던 단검이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것때문에 원념이 깃들어서 츠쿠모가미가 주령화했어요. 저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무라사키씨의 도움으로 봉인했었는데… ”
“봉인이 깨져있는데… 이거 누가 건드린 것 같은데. 피해자는 무사해? ”
“살아는 있는데, 중태래요. ”
“하… 봉인이 깨진 영문은 당사자가 알 텐데 큰일이네. 일단 급한대로 키츠네랑 무라사키 불러. 저거 단단히 봉인하고, 다시는 피 못 마시게 단검을 아예 우리가 맡아야겠어. ”
“네. ”

미기야가 키츠네와 무라사키에게 연락할 동안, 파이로는 남은 가족들에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었다. 여동생의 말에 의하면 비명 소리가 들려서 가 봤더니 웬 기분나쁜 여자가 오빠를 마구 찌르고 있었다며, 놀라서 자신이 비명을 지르자 그제서야 여자가 난도질을 멈추더라는 것이었다. 파이로가 방에서 봤던 여자의 외모를 대충 설명하자, 여동생은 그 여자가 맞다고 했다. 염주와 부적에 대해 묻자 집에 돌아오자마자 오빠가 단검을 팔려면 사진을 찍어야 해서 잠깐 치웠다는 말과 함께.

“봉인이 깨졌다고요? ”

그리고 현장에 도착한 무라사키와 키츠네도 참혹한 현장을 확인했다. 무라사키는 그렇게 주의를 줬음에도 봉인에 손을 대는거냐며 혀를 쯧, 찼고 키츠네는 대롱여우를 꺼내 주령의 주변에 결계를 그렸다. 결계 탓인지 주령이 옴짝달싹도 못 하게 되자, 무라사키는 다시 데스 애더의 거미줄을 이용해 염주를 만들어 단도에 걸고 부적을 걸었다. 그리고 섬뜩한 여자는 지니가 램프로 빨려들어가듯 단검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졌다.

“이 단검, 아무래도 괴담수사대에서 맡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이 인간이 계속 가지고 있다간 앞으로도 이런 일이 또 생길거예요. ”
“안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

무라사키는 단검을 다시 상자에 담고 뚜껑을 덮은 다음, 미기야에게 건넸다. 현이 가족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할 동안, 키츠네와 무라사키, 미기야는 단검이 든 상자를 들고 현장을 다시 한 번 둘러봤다. 라우드가 영상을 보려다가 멈칫한 이유를 알 것 같은 분위기였다.

“어떻게 이렇게 강한 주령이 깃든 물건을 살 생각을 했지…? ”
“인간들은 그런 걸 못 보니까요. ”
“그래도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은 주워들었을 거 아냐, 이상하게 가격이 싼 물건은 의심해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고. ”
“그것도 그렇네요… 보통 집을 구하거나 다른 물건을 살 때 터무니없이 싼 물건들이 나오면 의심부터 하고 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