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3. 주인을 스스로 정하는 건물

게시자: 미스테리어스
제목: [투고괴담] 주인을 스스로 정하는 건물

구독자 ‘부릅뜨니숲이었어’님께서 투고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저와 엄마가 갖게 된 건물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엄마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하시던 일을 내려놓고, 소일거리로 독거노인을 찾아가서 말동무도 해 드리고, 도시락도 배달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물론 지금도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고요. 저희가 건물을 받게 된 것은, 엄마가 봉사활동에서 만난 할머니가 그 건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없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와 함께 변호사를 찾아가서 건물 증여에 대한 마무리를 하고 증여세까지 손수 내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은 돈은 할머니의 뜻에 따라 엄마가 봉사하고 있는 단체에 기부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에게서 엄마가 받은 건물은 A구의 번화가 쪽에 있는 꽤나 오래된 건물입니다. 할머니는 논밭을 가지고 있었고, 논밭이 있던 곳이 재개발되었을 때 가지고 있던 논밭을 팔아서 작은 상가 건물을 하나 사셨다고 합니다. 그 건물을 처음 샀을때는 아무것도 없는 허름한 건물이었지만, 할머니께서 매입한 후 대박집이 들어오고, 백화점이나 서점 등 당시에 상당히 유명했던 가게들이 들어와 할머니의 주머니에도 꽤나 두둑한 돈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부동산 주인마저 시세를 조회해보고 깜짝 놀랄 정도로 건물의 가치가 눈에 띄게 훅훅 상승했다고 합니다.

다만, 그 건물에는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로, 이 건물은 건물이 자신을 소유할 사람을 정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할머니가 건물을 매입한 후로 눈에 띄게 건물의 가치가 상승한 것을 본 부동산 주인이 얘기해준건데, 할머니 이전에도 건물을 매입했던 몇몇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건물을 매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헐값에 건물을 팔러 왔다고 합니다. 상가도 들어오지 않고, 관리는 관리대로 해야 해서 돈만 갉아먹는다면서 팔아서 할머니가 건물을 사자마자 제일 먼저 했던 게 건물 청소였다고 하셨을 정도입니다. 지금은 엄마가 할머니 대신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고 계시고, 저도 엄마를 도와서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이 건물은 건물에 입점할 상가도 건물 자신이 정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할머니가 건물주가 된 다음, 처음으로 건물에 입점했던 것은 작은 빵집이었습니다. 지금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명장이 직접 굽는 빵집으로 유명한 그 곳 맞습니다. 지금은 줄 서서 기다리는 곳이지만, 할머니와 처음 계약했을 때는 장사가 잘 안돼서 월세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월세때문에 고민할때마다 단체 주문이 들어오거나 해서 어찌어찌 월세는 낼 수 있게 되었고, 할머니도 월세를 독촉하거나 하신 적은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빵이 맛있다면서 친구나 가족들에게도 종종 권하곤 하셨다고 합니다.

빵집 이전에도 여러 가게들이 들어왔었지만, 건물 상태탓인지 장사가 잘 안 돼서 전부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빵집을 이어서 지금 건물에 입주해 대박집이 된 카페도 마찬가지로, 빵집과 카페 사이에 숱한 가게들이 들어왔었지만 한달도 못 버티고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빵집과 카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한 달은 너끈히 버티는 것 같아서 더 잘 되도록 도와주게 된 거라고 하셨습니다. 이건 할머니의 사견일지도 모르지만, 그 건물은 성실하게 일하는 가게주가 들어오면 도와주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빵집 사장님은 몇십년째 아침 7시에 따끈따끈한 빵을 팔기 위해 새벽부터 준비하고 있고, 카페 사장님도 늘 어떻게 하면 더 맛있고 향이 좋은 커피를 만들지 궁리하는 분이셨습니다. 위층에 있는 파스타집도 파스타면은 사서 쓰는 반면 소스는 직접 만들고 있고, 새벽 6시부터 야채를 손질한다고 주방에 불이 켜져있었습니다. 반면 한달도 못 버티고 나간 가게 중에는 본인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주일에 쉰다는 식당도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식당은 여는 시간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이 건물에 해를 끼치면 좋지 않은 일을 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꽤 오랫동안 폐건물이었던지라 술을 먹고 토를 하거나 쓰레기 무단 투기를 일삼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는데, 술을 먹고 건물 외벽에 토를 했다가 사고로 죽은 사람도 있었는가 하면 쓰레기를 버리고 가려다가 주변에 있던 비닐봉지를 밟고 넘어져서 크게 다친 사람도 있었습니다.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침을 뱉거나 꽁초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은 꼭 담뱃불에 데곤 했습니다. 반대로 건물 앞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웠던 어떤 사람은 돈을 줍거나 면접에서 합격하는 등, 좋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술때문에 이혼했던 아빠와 아빠를 따라갔던 오빠도 엄마가 건물을 증여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었는데, 한량 그 자체를 싫어했던 건물은 두 사람이 우리를 만나지 못 하게 방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매번 건물에서 장사를 하시던 분이 웬 아저씨랑 젊은 양반이 찾아왔다고 해서 인상착의를 물어보면 아빠와 오빠였습니다. 두 사람은 한번만 더 찾아오면 미지급 양육비를 일괄 청구하겠다는 저와 엄마의 엄포를 듣고 지금은 저희를 찾아오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마 아빠는 술에 절어있는 상태라 찾아오고싶어도 올 수도 없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