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이야기가 있다.
마음에 드는 데다가 꼭 맞는 치마를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피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 며칠동안 괴현상에 시달렸다는 것.
알고 보니, 그 옷의 주인이 원혼이 되어 왔다 갔었다는 것까지.
“이 스웨터, 정말 예쁘다! 자기야, 이거 어때? ”
“어… 응? ”
“이 분홍색 스웨터 말야. 집에 있는 까만 바지랑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 ”
“아아, 응… 어울릴 것 같은데? ”
옷을 쇼핑하러 갔던 여자는 매대에 걸려 있는 분홍색 스웨터를 발견했다. 마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그녀의 눈에만 띄었던 그 스웨터를 말하는 것이다.
가게의 붉은 조명과 어우러져 한층 아름다운 자홍색으로 빛나는 그 스웨터를, 나연은 중고 옷 가게에서 사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그녀는 이상해졌다.
“그러니까, 그 분홍색 스웨터를 사게 된 후부터 여자친구 분이 이상해지셨다…는 얘기죠? ”
“네… 집에 찾아가도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질 않고 있어요.. 살 때는 그렇게 예뻐라 했던 스웨터는 밖에 내다 버렸고… 계속 누군가가 문을 두들긴다고 하는데, 저는 아무 것도 못 봤어요. 정신과 진단도 권유해보긴 했는데 아예 나갈 생각을 하질 않아서… ”
“흐음… 스웨터를 사기 전에는 어땠나요? ”
“뭐, 그냥 평범한 친구였죠. …그리고 제 눈에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였고요. 옷 입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 제 옷도 코디 해주는… 참 발랄하고, 그런 친구요. ”
“…… ”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파이로가 끼어들었다.
“혹시 그 스웨터 말인데, 뭔가 피 같은 게 묻어있지는 않았어? ”
“맞다! 그러고 보니, 스웨터가 온통 피투성이였어요. ”
“잘도 그런 옷을 샀군. 그 옷은 살해 당한 자의 옷일 수도 있어. 그 원혼이 하필 이면 그 옷을 산 네 여자친구를 괴롭히고 있는 거지. 어째서 그런 옷을 고른 거냐? ”
“가게 조명이 좀 붉은 빛이라서, 잘 보이지 않았어요. 저도 그 애가 내다 버린 걸 보고 알았죠. ”
“…… 어쨌든 그 옷, 귀신 들린 옷이야. 내다 버리는 것 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어. 아마 옷을 태워버리거나 원한을 풀어주지 않는 이상은 계속 찾아오게 될 거야. ”
“옷을 태워요…? 하지만, 이 근처에서 뭔가를 태웠다간… ”
“법에 걸리겠지. ”
파이로는 미기야가 뭔가를 말하기 전에, 사무실 한 켠의 명함 케이스에 꽂힌 미기야의 명함을 내밀었다.
“이건 이 녀석 명함이다. 여자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고. 내가 오후 쯤 여자친구를 한 번 만나 볼 테니까, 집 주소 좀 가르쳐 줘. ”
“감사합니다. 그 애는 H 사거리 근처의 맨션에서 살고 있어요. ”
“알겠어. ”
남자는 미기야의 명함을 받고 인사를 건넨 후 돌아갔다.
“살해 당한 사람의 옷인데 어떻게 빨래 한 번 안 하고 팔릴 수가… ”
“자세한 내막은 나도 모르지.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옷은 누군가가 여러 번 샀을 거야. 그리고 그렇게 돌고 돌기를 반복… 그 정도 녀석이라면, 아마 옷을 세탁할때마다 세탁기를 고장내거나 하는 방해 공작도 서슴치 않았을걸? ”
“……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
“일단 그 여자의 집으로 간다. 스웨터가 내다 버려져 있다면 옷의 형태를 볼 수 있겠지. 어이, 라우드. 가지. ”
파이로는 라우드를 데리고 여자의 집으로 찾아갔다.
집 근처에만 갔을 뿐인데,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 온다. 그리고 안쪽에서 비명 소리도 들렸다.
“라우드, 너는 저기 있는 분홍색 스웨터를 보고 떠오르는 영상이 있는 지 확인해봐. 나는 여자를 만나볼게. ”
“응. ”
라우드가 문 밖에 있는 스웨터를 주워 들자, 쿵쿵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 틈에 그녀는, 여자친구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
“괴담수사대다. 네 녀석 남자친구의 부탁으로 왔어. ”
“괴담…수사대요? …정말 괴담수사대예요…? ”
“응. 네 남자친구가 오전에 왔다 갔어. ”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열렸다. 안에서는 머리가 부스스한 여자가 나왔다. 잠도 오랫동안 못 잤는지, 다크써클이 턱 밑까지 내려 올 정도인데다가 제대로 먹지도 못 했는지 온 몸이 앙상해졌다. 푸석푸석한 얼굴로 그녀는 파이로를 맞았다.
“라우드, 너는 그 스웨터를 들고 밖에서 기다려. ”
“…? ”
라우드를 스웨터와 함께 밖에 둔 채, 그녀는 집으로 들어왔다. 원래는 꽤 깔끔한 성격인 것 같았지만, 스웨터에 붙어 있는 무언가에 오래 시달렸던 모양인지 집도 상당히 어질러져 있었다. 거실이며 방이며 온통 너저분한 상태였고, 주방은 여기서 뭔가를 해 먹을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해충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무 것도 내 올 필요 없어. 그리고 스웨터를 밖에 있는 녀석이 만지고 있는 이상, 문을 두들기거나 할 일은 없을 거야. 여차하면 내가 저 녀석을 혼내줄게. ”
“정말 감사해요… 그 동안 얼마나 시달렸는지 몰라요…… ”
“대체 어쩌자고 저런 걸 산 거야? 스웨터를 샀을 때는 피투성이인 걸 몰랐다면서? ”
“네… 가게 조명이 붉은 색이라서 안 보였어요. 조금 진하게 뭔가가 보이긴 했지만, 얼룩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죠… 거기다가 한눈에 들어왔는데 너무 예뻐서, 다른 옷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라고요… 그런데 집에 와서 꺼내 보니까, 붉은 얼룩 정도라고 생각했던 건 피였어요… 그것도 그 스웨터 전페를 가득 메운… 그래서 옷을 버렸는데, 그 뒤로 쿵쿵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그리고 잠이 들려고 하면, 어떤 여자가 나타나서 저를 죽을 것처럼 노려보고 사라져요… ”
“…… 그 옷의 주인은 살해 당했을 가능성이 커. …다음부터 중고로 무언가를 살 때 사연이 있는 물건은 조심하는 게 좋아. 스웨터는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
“버릴 수만 있다면 버리고 싶어요… 스웨터를 사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다시는 그 매장에 발도 들이지 않을 거예요. ”
“좋아. 그럼 저 스웨터, 우리가 회수해도 될까? 조사해 볼 게 있어서 말이야. ”
“얼마든지 가져가세요. 다시는 그 여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정말 뭐라도 하고 싶어요… ”
“음… 알겠어. ”
파이로는 밖에 서 있던 라우드를 데리고 사무실로 돌아 왔다.
마침 사무실에 있었던 키츠네는 못 볼 것이라도 본 것 마냥 눈살을 찌푸렸다. 그 옆에 있는 하얀 머리의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야, 너 대체 뭘 가지고 들어온 거야? ”
“으윽, 너 이런 데서 일하고 있었냐? 완전 3D 직종 이었구만… ”
“아니 댁은 누구신데… 둘이 아는 사이야? ”
“아이고, 실례. 내 소개를 잊었군… 나는 장산 범이라고 합니다. ”
“장산 범…? 너 참 대단한 녀석하고 친구 먹었다. ”
넉살 좋게 인사하는 하얀 머리의 여자를 보며, 파이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장산 범이라면, 목소리로 사람을 홀려 잡아먹는다는 요괴다. 그런데 괴이를 사냥하는 녀석이 저런 요괴와 친구라니. 이 녀석, 아무리 요호라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그나저나 그 옷은 어떻게 된 거냐? 뭔가 엄청 불쾌한 느낌이 든다. ”
“아, 이 스웨터… 오전 중에 의뢰자가 찾아왔었어. 이 스웨터를 중고로 구매했는데, 그 뒤로 원혼에게 시달린다고… ”
“이렇게 피가 묻은 걸? ”
“조명이 붉은 색이라 잘 안 보였대. 그 녀석도 집에 도착해서야 안 모양이야. ”
“음… ”
라우드가 들고 있는 스웨터를 유심히 본 장산 범은, 스웨터를 건네 받았다.
“이거, 옷이 찢어져서 기운 흔적이 있는데요? ”
“찢어져요? ”
“여길 보세요. 이 쪽을 뒤집어서 보면, 이렇게 기운 자국이 남아 있어요. 니트나 천 같은 것을 기운 다음에는 이렇게 실을 끼워 놓거든요. 그리고 이 부분은 피가 묻어서 빨갛지만 여기는 분홍색이잖아요? ”
“!!”
“아무래도 이 옷의 주인은 칼에 찔려서 죽은 게 분명해요. 그나저나 원혼에게 시달릴 정도라니, 이 스웨터에 붙은 녀석은 엄청난 녀석임이 분명해요. ”
“…잠깐, 난 이 옷의 주인이 원혼이라고만 했지 칼에 찔렸다 고는 말 안 했는데…? ”
“그 정도는 기본이지요. 생각해보세요, 일단 목이 졸려 죽었다 거나 맞아 죽었다면 이렇게 옷의 색깔이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피범벅이 되지 않아요. 게다가 아직 까지 이 피가 남아있을 정도면 옷의 주인이 빨지도 못 하게 방해했을 거라는 얘기겠죠? 만약 이 옷의 주인이 맞아 죽었다면 신발 자국도 같이 남았겠지만 그런 거 없이 기운 흔적만 있고 앞뒤로 피가 범벅이죠. 인간들이 사용하는 식칼 중에, 분명 날이 이만한 게 있을 거예요. 그런 걸로 찔러서 죽인 거죠. 그리고 이 옷의 주인이 원혼이 되었다는 건, 억울하게 살해당했다는 얘기예요. 옷을 산 사람에게 가서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겠죠. ”
“…맞아요… 이 옷, 주인이 억울하게 살해 당해서… 이 옷을 들고 있는 데, 계속 말을 걸었어요… 억울하다고, 도와 달라고. 그래서 계속 문을 두들겼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
“그나저나 살인 사건이 일어났었다면 이것도 증거로 보관해야 하는 거 아냐? 어째서 피해자의 옷이 이렇게 팔리고 팔리는 거지? ”
“아무래도 단순히 살해만 한 게 아닌 모양이죠. ”
정말 그런 모양이었다.
네 사람의 눈앞에 긴 머리의 여자가 홀연히 나타났다. 피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녀는 말없이 네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녀석이 이 옷의 주인이냐? ”
“…… ”
“그리고 너는 원한을 풀어주기를 바라는거지? ”
“…… ”
여자는 파이로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 무슨 일인데? 사연을 말해봐. ”
그녀는 대답 대신, 적을 것을 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파이로가 사무실 안쪽에서 종이와 펜을 건네주자, 그녀는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제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저는 살해 당했어요. ‘
“!!”
‘저는 얼마 전에 살해 당했어요. 그냥 평범하게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저를 억지로 데려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그래서 싫다고 했는데, 갑자기 찔려서… 정신을 차려 보니 이렇게 돼 있었어요… ‘
“그럼 당신은 어째서 말을 할 수 없게 된 건가요? ”
그녀는 대답 대신 입을 벌렸다.
혀가 있어야 할 곳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혀 뿌리가 보이지 않았다.
“!!”
‘정신을 차리고 뭔가 말을 하려고 했을 때, 입 안이 허전했어요… 제 혀가 없어 진거죠… 그리고 제 스웨터도…… 아니, 옷이 아예 없어져 있었어요… ‘
“…… 이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크리멘 불러야겠는데? 심각하게 악질이야. ”
“어머, 그 분도 여기에 계신 모양이죠. ”
“애시도 있는 마당에 뭐… 아무튼, 네 원한은 우리가 꼭 풀어 줄게. 혹시 너를 죽인 남자의 얼굴을 기억해? ”
여자는 대답 대신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그림을 본 파이로는 경악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연을 도와 달라고 찾아왔던 남자친구의 얼굴과 닮았기 때문이다.
“!!”
“왜 그래? ”
“이 녀석, 예전에 의뢰하러 왔었던 얼굴인데? 내가 옆에서 어째서 그런 걸 샀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고. ”
“뭐? ”
“아마 미기야가 그 녀석 연락처를 알고 있을 지도 모르지. ”
“…가만, 그럼 이 옷을 그 녀석이 팔고 팔고 팔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건가…? ”
‘저는, 그 여자에게는 아무런 원한도 없어요. 단지 그 녀석에게 볼일이 있을 뿐… 그래서, 이렇게 옷에 붙어서 나마 돌아다니면 그 녀석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서 언젠가… 결국 돌아오게 되었지만요… ‘
“…… ”
파이로는 할 말을 잃었다.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제가 유혹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어떤 목소리든 따라할 수 있으니까요. ”
“아, 맞다… 이봐, 말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일단 네 목소리를 들려 줘. 이 녀석, 목소리를 듣기만 하면 어떤 것이든 흉내 낼 수 있으니까. ”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장산 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이게 네 목소리인 거지? ”
‘네! 맞아요! 아마 제가 살아있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었겠죠… ‘
“괜찮아. 네 복수는 우리가 해 줄게. 슬슬 명계로 돌아갈 시간이야. ”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
여자는 스웨터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런데, 그 녀석을 어떻게 유인해내겠다는 거야? ”
“크크, 제가 목소리를 흉내 내서 홀리는 대상은 100% 홀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번 일을 위해서는 한 가지 더 필요한 게 있어요. ”
“뭔데? ”
“그 녀석의 여자친구 목소리예요. 아무래도 그 녀석이 죽였다면, 죽인 사람의 목소리 만으로는 나오지 않을 것 아니겠어요? ”
“그렇군… 뭐, 마침 볼 일도 있고 하니, 나랑 같이 그 여자를 만나러 가자. ”
파이로는 예의 그 여자를 만나러 갔다. 집으로 찾아갔을 때, 그녀는 문을 열고 이전과 달리 꽤 밝은 얼굴로 파이로를 맞았다. 집도 전과 달리 깔끔했고, 머리도 수더분하지 않았다. 예전에 그 남자가 말했던 대로 꽤 귀여운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그 뒤로는 별 일 없었지? ”
“네. 덕분에요.. 정말 감사해요. ”
“아냐, 아냐…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남자친구는 뭐 해? ”
“그게… 요즘 통 연락이 안 되고 있어서요… ”
남자 친구의 얘기가 나오자 그녀의 눈빛이 조금 슬퍼졌다.
“연락이 안 된다고요? ”
“네… 그러니까, 정확히는 괴담수사대에서 다녀 간 후로 연락이 안 되고 있어요.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문자 메시지나 톡도 안 읽어요. ”
“!! 설마 그 녀석이…? 아냐, 그 녀석은 분명 우리와 함께 있었어… ”
“그 녀석…이라뇨? ”
파이로는 옷의 주인에 얽힌 이야기를 나연에게 했다. 처음에는 못 믿는 눈치였던 나연도, 그 여자가 이야기를 적은 종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
“이 사람, 네 남자친구 아냐? ”
“아니에요. 이건 제 남자친구의 쌍둥이 동생이에요. ”
“…쌍둥이? ”
“네… 처음 집에 인사 드리러 갔을 때, 똑같은 얼굴이 보여서 놀랐는데… 쌍둥이였다고 하더라고요. 쌍둥이 동생이 성격이 좀 안 좋아서, 대학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는 나와서 살았다고… 혹시 사무실에 찾아온 남자, 이마에 흉터가 있었나요? ”
“으음… 아아, 있었어. 뭔가로 베인 것 같던데… ”
“그렇다면 제 남자친구가 사무실을 찾아간 게 맞아요. 어렸을 적, 쌍둥이 동생이랑 싸웠다가… 아니, 일방적으로 당한 거죠… 이마를 베어서, 응급실에 실려갔을 정도였거든요… 그 흉터가 뙈 깊어서 남자친구는 앞머리로 가리고 다녀요. ”
“그럼 올백머리같은 건 전혀 할 수 없겠군요? ”
“네. 올백머리를 제안해보긴 했는데, 흉터 때문에 이마를 드러내는 건 싫다고 했었거든요… ”
“…… ”
파이로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이, 미기야. 너 지금 사무실이냐? ”
‘네. ‘
“지금 당장 한 형사한테 연락해. 그 남자가 연락이 안 된다. ”
‘그 남자라뇨? 의뢰 오신 분이요? ‘
“그래. 우리가 한번 다녀갔던 이후로, 연락이 안 된다고 했어. 전화도 안 받고, 문자메시지나 톡도 안 읽는대. ”
‘!!’
전화를 끊은 파이로는 여자를 진정시키고,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단죄자. 나다. ”
‘여, 파이로. ‘
“지금 만날 수 있냐? 급한 일이다. ”
‘어딘데? ‘
“H 사거리 근처. ”
‘나도 마침 그 근처이니, 만나지. ‘
파이로는 시트로넬을 찾아갔다. 시트로넬은 멀리서 파이로와 장산 범이 함께 다가오는 것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무슨 일인데 그래? 그리고 이 녀석은 뭐야? ”
“설명은 나중에. 너 이 얼굴에 올백머리 한 남자 알아? ”
“아아, 이 녀석? 내가 찾고 있는 녀석이야. 혓바닥 수집하기 좋아하는 미친 놈이더라고. ”
“!!”
“너는 왜 이 녀석을 찾는거냐? ”
“이 녀석의 쌍둥이 형이 위험해. ”
“쌍둥이? 쌍둥이가 있었어? ”
“똑같은 얼굴에 앞머리로 이마를 가린 녀석이야. 쌍둥이 동생에게 다쳐서 흉터가 남았거든. ”
때마침 파이로의 전화가 울려 발신인을 확인해보니, 미기야였다.
“뭐냐. ”
‘파이로 씨, 지금 한 형사님과 같이 있어요. 그 남자 분은 며칠 전 실종 신고가 돼 있었던 상태이고… 앞뒤가 좀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조사 중이에요. ‘
“실종 신고? 그거 누가 했냐? 동생이 했대? ”
‘그것까지는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그런데 쌍둥이 동생은 왜요? ‘
“그거 빨리 잡아.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스웨터에 깃들었던 원혼이, 자기를 죽인 놈이 그 쌍둥이 동생 이래. 거기다가 형도 연락이 안 된다? 그러면 누가 범인일 것 같냐? ”
‘그건 아직 단정 짓지 못… 형사님! ‘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전화가 끊겼다. 아니, 끊기지는 않았지만 미기야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옆에서 통화를 듣던 시트로넬도 일이 뭔가 심각함을 깨달았다.
“웬만하면 이 녀석까지는 안 부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군… ”
파이로가 핸드폰 액정을 두드리자, 애시가 튀어나왔다.
“무슨 일? 얘는 또 누구? 어머, 단죄자 씨도 계셨구나… ”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크리멘부터 불러. 미기야가 위험해. ”
“!!”
“아아, 그 녀석도 있으면 같이 오라고 해. ”
“알았어. ”
애시가 사라졌다가 나타났을 때는, 크리멘과 함께 낯선 여자가 튀어나왔다. 까만 머리칼에 노란 눈을 가진, 매력적인 여자였다. 목에 있는 것은 진청색의 뱀 가죽이었고, 혀 역시 뱀의 그것이었다. 정면으로 똑바로 쳐다봤다가는 누구라도 압도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그런 여자였다.
“뭐여. 에키드나까지 부를 정도로 시급한 일인가? ”
“급하니까 불렀지. 크리멘, 지금부터 잘 들어. 니 간식거리가 하나 있다. ”
“간식? 오호, 좋아. 간만의 포식이로군. ”
“이봐, 서두르지 않으면 네 동료가 위험할텐데? ”
“애시, 미기야의 핸드폰 상태는 어때? ”
“아직 켜저 있어. ”
“위치는? ”
“I 사거리 쪽 맨션. ”
“가자. ”
파이로가 일행을 데리고 도착했을 때, 미기야는 다친 정훈을 부축해 밖으로 나왔다.
“무사했냐?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조사 도중에 갑자기 뒤에서 공격해 와서… 형사님이랑 저는 빠져나왔는데, 의뢰인은… ”
“저 집이군? 의뢰인이 어디 있는 지는 찾았고? ”
“네… 다용도실에 묶여 있어요. ”
“…… 너는 아무나 빨리 이리로 오라고 하고 빨리 이 녀석 데리고 병원에 가 봐. 뒤는 우리가 맡지. ”
“그럼 부탁드려요. ”
정훈과 미기야를 보내고, 파이로는 종이에 그려진 얼굴을 에키드나에게 보여주었다.
“애키드나, 이 녀석이야. ”
“오호. 꽤 잘 생긴 얼굴이네? ”
“그 놈이 범인이야. 멀쩡하게 생긴 녀석이 범죄라니… ”
“좋아, 좋아… ”
“크리멘, 에키드나가 이 녀석을 못 움직이게 하면 그 뒤는 너에게 맡긴다. ”
“오케이. ”
“장산, 너는 들어서자마자 그 녀석 먼저 유인해. 의뢰인은 내가 찾는다. ”
“맡겨 주세요. ”
맨션 안으로 돌입하자마자 살벌한 기운이 느껴졌다.
“오빠, 어딨어~ 오빠~ 나야, 나연이~ ”
집 안에서는 미동조차 들리지 않았다.
“오빠~ 나 나연이라니까? ”
“나연…아? ”
저 쪽에서 희미하게,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 보니, 며칠 전 사무실에 찾아왔던 남자가 묶여 있었다. 며칠동안 엄청 맞았는지 온 몸이 멍투성이였다. 게다가 며칠을 굶었는지 모를 정도로,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상태는 괜찮아 보이는데… 뭐냐, 어떻게 된 거야? 니 여친이 얼마나 걱정한 줄 아냐? ”
“모르겠어요… 우리 집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다짜고짜 찾아와선…… ”
“니네 부모님이 알려준 거 아냐? ”
“…… 저, 부모님이 안 계세요… 제가 집을 나온 후로 돌아가셔서… ”
“…… 시간이 없어. 아무래도 이 녀석의 목소리를 따라해야 놈이 나올 모양이다. ”
“그럴 지도 모르겠군요. ”
“그나저나 여길 어떻게 빠져 나간다… ”
집 안 이곳 저곳을 둘러보던 파이로는 다용도실 창문 밖을 통해 밖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음을 발견했다.
“쉿, 넌 지금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이 창문을 통해 빠져 나가. 나가거든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도망쳐. 어서. 밖에 사람이 와 있으니까,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거야. ”
“하지만… ”
“빨리. 니 여친 걱정한다. ”
“아, 알겠어요… ”
그리고 그녀는 바로 남자를 내보낸 후 장산 범에게 남자의 목소리를 따라 해 범인을 찾을 것을 부탁했다.
“동생아~ 어디 있니, 동생아~ ”
그러자 무언가가 계단을 내려 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다다닥, 하고 들린 그 소리는 예의 그 남자와 같은 얼굴을 가졌지만 다른 남자의 소리였다. 녀석을 보자마자, 파이로는 에키드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에키드나, 저 쪽이야! ”
“오호, 꽤 잘 생겼는걸~ 하지만 이런 녀석이라면 한 트럭을 줘도 사양이야. ”
“!!”
“어머, 내 눈을 한번이라도 쳐다보면 움직일 수 없단다~ 애시, 크리멘, 지금이야! ”
“우후후~ 존속살해라니, 그런 건 있을 수 없단다. 어머, 세상에! 이 혓바닥들 봐… 네가 다 모은 거니? 어머어머, 이 녀석 완전 매니악한 취미를 가지고 있네? ”
애시가 그의 눈 앞에 내민 것은, 혀가 잔뜩 들어있는 통이었다. 마치 표본을 만들 듯, 포르말린에 절여 둔 그것이었다. 남자는 손을 뻗어보려고 했으나, 에키드나의 눈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아아, 곧 있으면 경찰이 올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 전에, 내가 네 녀석을 먹어 치워줘야 겠는걸? 좋아, 너는 딱 일년의 말미를 줄게. 그 안에서 실컷 억울해 하다 오렴. ”
몸이 굳히는 게 조금씩 나아진다 싶었더니, 크리멘이 남자를 포식했다. 그 후, 들이닥친 경찰들이 남자를 체포해가는 것을 본 후 다섯은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는 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녀석은? ”
“병원에 데려다 주고 왔어요. 어떻게 된 거예요? ”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이고 혓바닥을 모으는 매니악한 놈이 죽인 사람의 옷을 샀다가 이렇게 말려버렸다… …아무래도 저 녀석, 자기 부모도 제 손으로 죽여버린 모양이지. ”
“응. 저 녀석은 특별히, 아포칼립스행이야. 아마, 그 곳의 주인도 매우 좋아하겠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