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행색이 남루해보이는 여자가 고키부리 사무실을 찾았다. 머리는 빗는다고 빗었지만 군데군데 잔머리가 삐져나와 있었고, 옷은 언제 산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낡아서 수선한 티가 났다. 그녀는 사무실에 들어서, 도희를 발견했다.
생각보다 나이가 제법 어려보였는지, 그녀는 도희를 보고 정말 저 사람이 해결사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당신이 고키부리씨군요. “
“아아, 전에 사이트 통해서 상담하고 싶다고 하셨던 분이군요. 이 쪽에 앉으세요. “
도희는 테이블을 치우고 여자를 그 쪽에 앉게 했다. 여자가 자리에 앉자, 그녀는 시원한 물 두 잔을 가져와 하나는 그녀의 앞에, 하나는 자신의 앞에 놓았다.
“무슨 일로 저희 사무실을 찾아오고 싶으셨는지요? “
“고키부리씨는 뭐든지 가능한 해결사라고 하셨죠…? “
“네. “
“그렇다면 누군가를 멀리 떨어트리는 것도 가능한가요? “
“멀리 떨어트린다…? “
도희는 여자의 질문을 금방 이해했다. 아마도 이 여자는 누군가에게서 떨어지고 싶은 모양이지. 하지만 그 누군가는 이 여자를 끝까지 쫓아오는 모양이고, 그것때문에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겠군. 그리고 그녀는 다시 물었다.
“멀리 떨어트린다는 건, 말 그대로 당신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다시는 접근을 안 하게끔 하면 되는건가요? “
“맞아요, 죽이든, 다른 곳으로 보내든, 평생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 있어서… “
“어떤 사람이죠? “
“남편이요… 정확히는 전 남편… “
그녀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대학에서 CC로 만난 두 사람은,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정도 기반이 잡혀갈 무렵 결혼을 했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 귀여운 아이도 생겼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도 있고, 나와 그를 닮은 귀여운 아이도 있으니 그녀는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그는 의처증이 심했다. 그녀를 항상 의심하고, 바람을 피운다며 폭행했다. 친정에서 걱정할까봐, 그리고 그래도 아이 아빠라고 그녀는 묵묵히 참고 있었다. 그의 폭력을 견디면서, 그녀는 아이를 위해 버텼다. 그렇게 버티다가, 우연히 그녀의 남동생이 이 일을 알게 되었다. 남동생이 친정에 알려서, 그녀가 계속해서 폭력을 견뎌냈다는 사실을 그녀의 부모님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녀의 시댁에서도 알게 되었다.
친정에서는 그녀를 이혼시키려고 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게 둘 수는 없다, 너는 하나뿐인 내 소중한 딸이야. 이렇게 남편한테 맞고 지내라고 널 금이야 옥이야 기른 게 아니야. 그녀 역시 이혼에 동의했다. 싱글맘으로 사는 것이, 지금보다 나을거라는 주변 사람들의 위로도 있었다. 시댁에서도 친정에 자기 아들이 한 짓을 사과하면서 두 사람이 이혼하는 것에 동의했다. 물론, 접근금지 신청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이혼했다는 사실을 잊은 듯 했다. 매일같이 그녀가 있는 친정까지 찾아와 난동을 부리고, 매일같이 협박 문자와 무언 전화를 남겼다. 그녀가 번호를 바꿔도, 이사를 가도 귀신같이 알아내서 찾아오고, 연락했다. 친정집도 몇 번이나 옮겨야 했고, 장을 보러 가거나 병원에 갈 때도 조심해야 할 정도였다. 매일매일이 살얼음판같은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 그녀는, 말라가고 있었다.
“접근금지 그거 어기면 형사처벌까지도 갈텐데… “
“경찰도 몇 번 불렀어요. 하지만 소용 없었죠… 차라리 그 사람이 죽었으면 하고 바랄때가 많았어요… 너도 죽고 나도 죽자 싶었지만 아이떄문에 그럴 수는 없었어요… “
“저희는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접근하지 못 하게 해드릴 수는 있죠. 집 근처는 물론이고 연락도 안 오게 해 드릴테니, 제가 시키는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
“어떤…거요? “
“댁은 어디시죠? 부모님이랑 같이 살고 계신가요? “
“지금은 친정에서 나와서 따로 살고 있어요. 친정에서 살때는 그 사람이 자꾸 찾아와서… “
“이사를 가세요. 이사를 가시는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가시고, 주민등록초본이랑 등본 열람제한 거세요. “
여자를 돌려보내면서, 도희는 권속인 바퀴벌레 하나를 붙였다. 지금도 여자를 쫓아다닌다면, 적어도 얼굴은 빨리 익히겠지. 그리고 그녀의 짐작대로, 전 남편은 그녀가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건물 입구에서 그녀를 맞았다.
“자기야… “
“!!”
남자는 그녀를 한 번 보고, 고개를 들어 그녀가 나온 건물의 간판들을 확인했다.
“사무실…? 여기서 뭐 했어? 딴놈 만났어? “
“내가 누구를 만나던,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 이혼했잖아! “
“이혼…? 누구 맘대로? 그래, 이렇게 된 거 같이 죽자… 그래… 같이 죽자! “
남자는 품에 숨겼던 칼을 꺼내 그녀의 앞에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 칼을 휘두르려던 찰나, 어디선가 커다란 가윗날이 나타나 남자와 여자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파이로가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 뭐야, 미쳤어? “
“미친건 내가 아니라 너같은데? 대낮에 건물 입구에서 칼부림을 한다고? 그럼 내가 너 죽여도 돼? “
“!!”
파이로가 가윗날을 들이밀자, 남자는 칼을 떨어트리고 도망갔다. 여자에게 무언가 말하려던 파이로는 여자의 뒤를 따라오던 바퀴벌레를 보고 고키부리 사무실로 갔다. 그리고 도희에게 건물 입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대낮부터 같이 죽자고 칼부림을 하더라니까, 세상에… “
“그랬단 말이죠? “
“어떻게 떼 놓을 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꽤 독한 방법을 써야 할 거다. “
“…… “
파이로가 돌아간 후, 그녀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사하던 바퀴벌레에게 남자를 따라갈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바퀴벌레는 남자의 뒤를 따라가면서, 그의 집까지 따라들어갔다.
바퀴벌레를 통해 본 그의 집은 심각하게 더러웠다. 그의 용모도 어떻게 저런 남자가 결혼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의심암귀에 빠져 아내까지 잃은 그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어보이는 추레한 사람이었다. 현관에서 둘러보면, 신축 아파트인지 인테리어 자체는 깨끗했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옷가지들, 아무렇게나 놓인 양말, 그리고 널브러진 겉옷과 고지서들이 거슬릴 정도였다.
하지만 부엌으로 가 보면 이혼한 뒤로는 청소조차 안 된 모양인지, 벌레들이 득시글거리고 먹을 것은 없었다. 퀴퀴한 냄새는 음식물 쓰레기가 풍기는 냄새였다. 방에는 결혼 사진이 있었다. 커다란 액자에 걸린 사진 속 두 사람은 웃고 있었지만, 지금은 두 사람이 아니었다. 침실도 청소 한 번을 안 한 티가 그대로 났다. 다른 방도 사정은 마찬가지였고, 옷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말 잃을 게 없는 집이군… “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희는 고민했다.
“태영 씨, 아무것도 잃을 것 없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무슨 일인데요? “
“의처증떄문에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해서 이혼당한 남자가, 아내를 매일같이 찾아오고 협박 문자를 보내거나 무언 전화까지 걸고 있는 상황이예요. 아까 낮에는 괴담수사대원 한 명이 칼부림 하는 것도 봤다더군요… “
“접근금지 신청은 따로 안 했다고 하던가요? “
“접근금지 신청까지 한 상태라고 합니다. “
“법적 조치마저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잃을 게 없다라… “
뭔가를 고민하던 태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신문을 보고 뭔가 생각난 듯 손가락을 딱, 튕겼다.
“인간들이 살면서 절대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살인이나 절도같은 범죄도 아닌데, 인간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때문이거든요. “
“범죄는 아닌데, 인간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게 있다…? “
“이걸 보세요. “
태영이 가리킨 곳에는 도박 중독으로 자살한 사람에 대한 기사가 쓰여 있었다. 도희는 그 기사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기사의 주인공은 처음에는 호기심에 카지노에 들어갔지만, 점점 도박에 미쳐 자신의 명의로 된 물건들을 팔아넘기고, 사채까지 끌어 쓰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분명 살인이나 절도와 같은 죄는 아니지만, 사람을 파멸시킬 수 있는 그것은 바로 ‘도박’이었다.
“도박에 빠지면 주변에서 사람이 죽어도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무섭다는군요. “
“흠… 하지만 주변에 도박 전문가도 없는데, 무슨 수로 끌어들이죠? “
“그건 저에게 맡겨주세요. 이래뵈도 다양한 곳에서 정보원으로 일하다보니 뒷세계와도 연이 좀 있습니다. “
태영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누군가와 약속을 잡은 그는 인근 술집으로 갔다. 태영이 적당한 안주와 술을 주문하자, 잠시 후 중년의 남성이 가게로 들어왔다. 흰 머리를 염색한 티가 나는, 가르마를 탄 머리를 하고 멀끔히 차려 입은 남자는, 태영을 금방 알아보고 테이블로 갔다.
“장태영이~ 오랜만이야~ “
“도철이~ 하는 일은 잘 되어가? “
“그럼~ 잘 나가고 있지. 나중에 양주 하나 쏜다! “
“허허, 이거 고맙군. “
“그런데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건가? “
“부탁이 하나 있어서 말이지. 자네, 회사에 빈 자리 있는가? 내가 사람 하나 소개시켜줄게, “
도철은 태영이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술집에는 듣는 귀가 많아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을 뿐이었다. 보는 눈이 많을 때, 그는 도철의 도박장을 ‘회사’라고 불렀다. 그가 이렇게 얘기한다는 건, 새로운 돈줄을 찾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는 목소리를 거의 도철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낮추어 얘기했다.
“자기 와이프 하나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야. 아마 잃을 게 없으니까 처음에는 주저하겠지만 금방 본전 찾으려고 할 걸? “
“그래? 아주 좋은 인재구만. “
도철과 헤어진 후, 태영은 도희에게 보고했다.
“호오, 도박장 운영자가 곧 접근한다고요? “
“잃을 게 없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보상이 주어지면 더 목을 메게 되거든요. 아마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
그의 말대로였다.
도철은 도박장을 운영하는데 도움을 주는 뒷세계에, 새로운 타겟을 찾았다는 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곧 새로운 타겟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고, 그의 집 근처에 도박장 하나를 차렸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당구장같아 보였고 들어서면 당구장이 있었지만, 당구장 지하에 도박장이 있는 형태였다.
그리고 당구장인 줄 알고 들어섰던 그녀의 전 남편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이들은 그를 붙잡기 위해 미끼를 던졌다. 처음에는 보통, 호기심으로 적은 돈을 걸게 된다. 그리고 적은 돈에는 미끼로 답해주며 적당히 추임새도 넣어주면, 대부분은 더 큰 돈을 걸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큰 돈을 걸기 시작했을 때부터 서서히 돈을 잃어가게 된다.
“이야, 이 신참 운도 좋아~ 처음 들어와서 이렇게 쑥쑥 다 따가면 우리는 뭐 먹고 사나? “
“오빠, 지금 이렇게 운 빡 들어왔을 때 끝까지 가봐야 하는 거 알지? “
“야야, 아서라 아서. 그러다가 이사람 건물 하나 올리겠다. “
그리고 그는 추임새에 넘어가 미끼를 물고, 본격적으로 커다란 판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진 돈으로만 해 볼 요량이었지만, 돈을 점점 잃게 되면서 차도, 집도 전부 팔게 되었다. 도박장에서 먹고 자면서, 급기야는 사채까지 쓰기 시작했다. 물론, 도박을 하느라 아내와 아이에 대한 것은 뒷전이었다. 가끔 아내 생각이 나긴 했지만, 이것만 따면 가야지. 그 생각이 그를 붙잡았다.
“고키부리씨, 덕분에 요즘은 그 사람이 보이질 않아서 마음 놓고 다닐 수 있게 됐어요. “
“다행입니다. 처음 사무실에 찾아온 날, 칼부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거든요… “
“대금은 조만간 지불할게요, 이제 이사도 끝냈고 직장도 다니고 있으니 금방금방 돈이 모일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