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8. 거울

미기야는 라우드와 함께 D 시의 어느 여고에 도착했다. 교문을 지키고 있는 수위에게 괴담수사대라는 것과 동아리 부실 건으로 연락을 받고 왔다는 것을 말하자, 수위는 학교 안으로 안내해주면서 교무실이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수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녹음이 우거진 길을 걸어가니 금방 본관 건물에 도착했다. 수업중인지 건물은 조용한 분위기였고, 실습실마다 학생들이 한창 실습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본관 건물을 둘러보던 두 사람은 교무실을 찾았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열자, 문간에 있던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남자가 둘을 맞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최성현 선생님을 찾아 왔습니다. ”
“최성현 선생은 지금 수업중인데… 들어와서 잠깐 기다리세요. ”
“그럼 실례합니다. ”

두 사람이 교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곧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학생들이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울 무렵, 동그란 안경을 낀 남자가 교무실로 들어왔다.

“최 선생, 손님 오셨어. ”

젊은 남자는 두 사람을 맞아 준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가리키는 곳을 보더니,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자신을 소개하며 교과서를 책상으로 내려놓은 그는, 여기서는 이야기를 제대로 나누기 힘들다며 두 사람과 함께 본관 뒤편에 있는 산책로로 나왔다.

“동아리 부실 건으로 연락을 주셨던데, 정확히 무슨 일인가요? ”
“제가 담당하고 있는 동아리는 댄스동아리인데, 최근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

성현은 댄스 동아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꽤 오랫동안 댄스 동아리를 담당하면서 부실이나 부원들을 관리하고 있었고, 그러던 와중에 최근에 이상한 일이 생겼는데 아무리 봐도 괴담수사대에서 와야 할 것 같아서 연락을 드렸다고 했다.

“처음에는 대회를 앞두고 연습하기 싫어서 그런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

댄스 동아리는 교내 축제에서 다른 학교의 댄스 동아리와 연합에서 공연하거나, 이따금 고등학생들이 참가하는 댄스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그 동안 대회에서 받았던 상도 꽤 많아서 1학년들이 댄스 동아리에 가입하려고 줄을 설 정도였다.

다음 달에 있을 댄스 대회를 준비하던 와중, 동아리 내에서는 에이스로 불리며 후배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선배들에게도 예쁨받던 학생 한 명이 전신 거울이 이상하다는 얘기를 했다. 처음에는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피곤한 모양이니 일찍 가서 쉬라면서 돌려보냈지만, 다음날도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며칠동안 계속 똑같은 얘기를 하는데다가, 온 몸에 이상하게도 멍이나 상처 자국이 많이 보였지만 그 학생이 원체 활발한 성격이다보니 친구들과 놀다가 다쳤겠거니 했다. 그러던 와중에, 연습하다가 다리를 다쳤는데 현장에 같이 있었던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니 도저히 다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같이 연습하던 학생들 얘기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다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도 그랬고요. 아무리 그래도 두 다리로 멀쩡하게 서 있던 사람이, 가만히 서 있다가 다리를 접질린다는 게 말이 안 되더라고요. ”
“보통 서있다가 접질리는 경우는 없죠… 부실에 한번 가볼 수 있나요? 그 학생이 다친지는 얼마나 됐죠? ”
“어제 저녁에 연습하다가 다쳤습니다. ”
“그럼 영상이 남아있을거예요. 라우드 씨, 가서 영상부터 확인해주세요. ”

두 사람은 성현과 함께 본관 지하에 있는 댄스동아리 부실로 갔다. 지하여서 그런 탓인지, 무거운 공기가 감도는 와중에 라우드는 영상을 확인했다. 까무잡잡하고 활기차보이는 학생이 가운데에 서 있었고 다른 학생들도 그 주변에서 대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멀쩡하게 서 있었던 학생이 넘어졌다. 누군가 위에서 찍어누른 듯한 모습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잡아줄 새도 없이, 순식간에 넘어진 학생은 양 발목을 감싸고 문지르고 있었다.

“누군가 위에서 찍어누른 것 같은… 확실히 여기 뭔가 있는 것 같아요. ”
“이 곳은 다른 지하실보다 더 공기가 묵직한 감이 있는 것 같네요. 선생님, 그 학생이 말한 거울이 어떤 건가요? ”
“저 거울이었습니다. ”

학생들이 연습하면서 거울을 통해 동작을 확인할 목적으로 설치한 거울이었다. 테두리 없이 벽에 가로로 죽 늘어져서 붙은 거울 중, 성현이 가리킨 것은 정 가운데에 있는 거울이었다. 정 가운데에 있는 거울은, 다른 거울들과 형태나 비추고 있는 것은 다르지 않았지만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거울을 떼가면 학생들이 연습을 못 하겠죠? ”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근데 그렇다고 부적을 붙일 수도 없고… ”
“라우드 씨, 일단 파이로 씨를 불러주세요. 저는 학생들과 얘기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 혹시 동아리 학생들을 좀 만나볼 수 있을까요? ”
“네, 지금 점심시간이라 다들 밥 먹고 교실에 있을겁니다. ”

미기야가 댄스 동아리 학생들을 만나러 갈 동안, 라우드는 파이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학교로 와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파이로가 올 동안 부실을 둘러보던 라우드는, 아까까지 없었던 여자 하나를 발견했다. 긴 머리를 틀어올려 묶은, 하얀 얼굴을 가진 여학생이었다.

“응? 너도 여기 학생이니? ”
“…… ”

여학생은 대답 대신 거울을 가리킨 다음,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후후, 여고는 언제 와도 시끌시끌하구나. ”
“아, 시끄럽고… 여기가 그 부실이냐? ”
“파이로! 애시도 같이 왔어? ”
“뭐 재밌는 거라도 발견한 모양인지 같이 가자고 하던데. 저 거울이구만? ”
“아, 어… ”

함께 도착한 애시는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 애시가 거울 끝에서부터 반대쪽 끝까지 이동할 동안 파이로는 거울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애시가 가운데 거울에 도착하자, 아까 봤던 여학생이 다시 보였다.

“앗, 저 학생은…? ”

아까 봤던것과 달리, 온 몸이 뒤틀리고 피투성이인 채였다. 깨끗하던 교복은 갈가리 찢겨져 있었고,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대로 애시가 그 여학생을 데리고 밖으로 나오자, 거울 속에 있던 여학생은 아까 봤던 멀끔한 모습으로 거울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까 그 모습은 대체… ”
“이 아이가 거울 속에 있었거든. ”
“거울 속에요…? ”

마침 탐문 조사를 갔던 미기야도 돌아왔다. 그 역시 부실에 없었던 낯선 여학생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애시가 거울 속에서 꺼낸 여학생이라는 것과, 거울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온 몸이 뒤틀린 상태로 있었다는 것까지 들은 그는, 여학생이 누구인지 알 것 같다며 선생님을 불러와야겠다고 했다. 이 얘기는 선생님도 함께 들어야 한다는 것과 함께.

라우드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성현을 불렀다. 마침 수업이 없었던 성현은 금방 동아리 부실로 왔지만, 성현의 눈에는 그 여학생이 보이지 않는지 미기야가 가리킨 곳에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선생님께서도 알고 계셨을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동아리에서 자살한 학생이 한 명 있습니다. 강유리 학생이라고, 아시나요? ”
“강유리…? 아, 그 친구… 올해 2학년인데, 클럽 활동을 하다가 동아리에 들어왔었습니다. 처음에는 부실에서 종종 보였었는데, 요즘 통 안 보이길래 물어봤더니 동아리를 나갔다는 얘기만 들어서… ”
“동아리를 나갔어도 수업 중간중간 만났을 거 아냐. 지나다니면서라던가… ”
“저는 문과 담당이고 그 친구는 이과라 만날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

낯선 사람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거울 속에서 나온 여학생은 흠칫 놀랐다. 하지만 미기야는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어제 부상당한 소은영 학생과 강유리 학생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알고 계셨나요? ”
“아뇨… 그냥 둘이 좀 어색한 줄 알았습니다. ”
“다른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니, 소은영 학생이 강유리 학생을 많이 괴롭힌 모양이더군요. 1학년 학생들한테 인사도 하지 말고 대화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고… 3학년 학생 얘기를 들어보면 처음에는 사이가 좋았었는데, 학교 축제에서 센터를 뺏긴 이후로 급격히 사이가 악화되었다고 했습니다. ”
“센터를 뺏겼다고 애를 기수열외를 시켜? ”
“소은영 학생은 강유리 학생이 오기 전까지 줄곧 센터를 차지했었거든요. ”
“아, 그러고보니 다친 학생이 에이스였다고 했던 것 같은데… ”
“잠깐… 기수열외 말고도 뭔가 더 있었을 것 같은데. ”
“신발을 찢어놓거나 압정을 넣어두기도 하고, 일부러 자기것만 빼고 동아리에 간식을 돌리거나 하지도 않은 것을 했다고 모함하기도 했다는군요. ”
“들은 게 이 정도면 실제로는 더했을걸. …니가 말해봐. 이 선생은 니가 안보이는 모양이지만, 적어도 니가 왜 죽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 ”

파이로는 낯선 여학생을 가리키며 왜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거울과 자신을 가리킨 이유도 함께.

“원래 무대에서 센터는 한 명이 서는 게 원칙인데, 은영이나 저나 막상막하인 것 같다면서 선생님이 올 축제에는 둘이 같이 센터에 서는 게 어떻겠냐고 했었어요. 저는 찬성했었고… 그 때 은영이가 끝까지 반대해서 결국 투표까지 갔었고, 그 때 제가 한 표 차이로 이겨서 센터에 섰었죠. 그 뒤로는, 들으신 대로예요. ”
“그 때 너 찍은 애들은 괜찮냐? ”
“저한테 투표한 애들을 색출하려고 물어보고 다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선생님께 불려가서 혼난 뒤로 따로 그런 적은 없다고 들었어요. ”
“이 선생이 혼내지 않았으면 끝까지 찾아냈을거고, 그러면 걔들도 보복을 당했을 수 있다는 얘긴데… 그럼 너는 왜 거울에 들어간거냐? 걔가 죽었으면 했어? ”
“저한테 했던 모든 짓들을 되돌려주고 싶었어요. 소영 선배한테 제가 욕했다고 거짓말하고… 1학년 애들 시켜서 신발 찢고… 압정 넣어두고… 일부러 저 빼고 간식 돌리고… 우리 반까지 와서 저 욕하고 그랬어요, 걔가… ”
“선생님께 말씀드릴 생각은 안 했었니? ”
“학교단에서 그런거 말해봐야 쉬쉬하고 넘어가는 게 보통이라, 얘기 잘 안 해. 이러다가 폭력사태 터지고 피 보고 기사 터지면 그제서야 학교측에서도 부랴부랴 처벌 들어가는거지… ”
“잠깐 실례. ”

그 때였다.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여자가 부실로 들어와, 유리의 손에 무언가를 채웠다. 검은색과 하얀색이 반반 그려진, 놀이공원의 자유이용권 같은 것이었다.

“이 학생, 꽤 오랫동안 찾고 있었는데 너희들이 찾아줬구나. 이거, 감사인사를 해야 하나… ”
“누… 누구세요? ”
“너희들은 아직 만날 일 없는 사람. 특히 너는, 내가 마중나올 일은 없겠지. 자, 강유리씨. 넌 죽었어, 네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지… 널 이렇게 만든 사람은 스틱스에 등록되었고, 난 너를 명계로 데려가기 위해 찾고 있었어. ”
“!!”
“여기서 날뛰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정말 죽을지도 모르니 얌전히 따라오도록. ”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여자는, 수사대원 전원과 파이로에게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유리를 데리고 부실을 나갔다. 성현은 동아리 부원이었던 학생이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받고, 그 상황을 막지 못했던 것 때문에 망연했다.

“말하지 않으면 인간들은 몰라. 선생, 네 잘못이 아니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도록. ”
“하지만, 제가 좀 더 빨리 알아챘더라면… ”
“죽은 학생도 너 원망 안했어. 근데 니가 스스로를 책망하면 어쩌자는거냐. 다음부터 이런 일 없도록 조심하면 그걸로 된거다. 너무 미안해하지 말고. ”

학교룰 나와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파이로는 세베루스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혹시 누구인지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 딜 씨를 만나셨군요. 그 분이 좀… 돌려서 말하시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긴 하죠. 저승사자니까 파이로씨는 일단 만날 일이 없는 게 맞고, 다른 분들도 수명은 아직 많이 남았으니 만날 일은 없을거예요. ‘
“아… 그럼 세베루스 씨, 스틱스가 뭔가요? 그 딜이라는 사람이 죽은 학생을 데려가면서, 그 학생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 스틱스에 등록되었다…고 했는데… ”
‘스틱스는 자살자에게 원인을 제공한 사람… 그러니까 자살자를 죽음으로 몰아 간 사람들이 등록되는 명부예요. 저도 아는 것은 거기까지가 전부긴 하지만… ‘
“자살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이 등록되는 명부…? ”
‘네, 가끔 명계 업무를 보다 보면 스틱스에 등재된 사람을 체크하긴 하더라고요.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