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민씨, 혹시 태린씨랑 연락 돼요? “
“아뇨, 저도 며칠째 연락이 닿질 않아서… “
“그래요…? “
이 곳은 작은 회사였다. 사무실도 조촐하고 간판 하나 없는 회사였지만, 사람들도 친절하고 월급도 꽤 괜찮게 나오고 있었다. 정직원 밑으로는 아르바이트도 몇 명 있다고 들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은 한번도 본 적 없었다. 그래도 확실히 좋은 회사가 맞긴 하다.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도 할 수 있고. 저녁에는 다들 가족들과 시간 가지라고 점심에 회식하고, 탕비실에는 커피와 간식이 빵빵했다.
지금까지 이상할만한 것은 없었다. 옆 자리에서 일하던 직원이 며칠째 나오지 않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의 옆자리에서 일하던 태린이 며칠째 나오지 않았지만, 첫 날에는 그저 어디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화도 받지 않고 메시지도 읽지 않는 듯 했지만, 아파서 잠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오늘도 수고했어~ 자, 자. 오늘 불금인데 얼른 들어가. “
“네,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
“사장님, 주말 잘 보내세요. “
“자네들도 주말 잘 보내게. “
모처럼 불금이고 일도 없다고, 오늘은 한 시간이나 일찍 간다. 만세! 쾌재를 부르며 돌아가던 찬민의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일단 받아보기로 한 그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밀고, 전화기를 귀로 가져갔다.
“여보세요? “
“…… “
전화기 너머로는 침묵만이 존재했다. 이거 뭐야, 무언 전화인가?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였다.
“김찬민씨 맞으십니까? “
“네. “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상담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담원과는 달랐다. 대출을 받아라, 카드를 바꿔라, 인터넷을 바꿔라, 전화기를 바꿔라… 이렇게 전화하는 상담원들은 자신의 기분이 어떻든 대개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응하기 마련이지만, 이 전화는 딴판이었다. 오히려 전화하기 싫은데 전화를 하는 티가 팍팍 나는, 어딘가 기운 없는 목소리였다.
“여기는 서울중앙지검의 한수정 검사입니다. 김찬민씨가 사기사건에 연루되셔서… “
저신을 검사라고 말한 수화기 너머의 여자는 뭔가를 주절주절 얘기하기 시작했다. 사기 사건에 연루됐다느니, 조사를 해야 한다느니, 지리멸렬한 말이었지만 그는 어딘가 이상한 억양으로 그 전화가 보이스피싱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런 얄팍한 수로 날 속이려 들면 안되지. 그리고 모처럼 불금인데 태린이나 보러 갈까, 하던 찰나에 전화가 다시 울렸다. 발신인은 태린이었다.
“여보세요? 태린아! 몸은 좀 어때? “
“…… “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작게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기의 주인은 어떻게 된 거지? 태린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 알 수 없는 불안이 엄습해오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가늘게 떨리던 목소리는, 이내 말을 이어갔다.
“태린이… 친구분 되시죠…? 저… 태린이 엄마입니다… “
“아, 네… 어머님… 태린이는 어때요, 많이 아픈가요? “
“저, 그게…… “
그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태린이가 죽었다. 그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함께 일하면서 금요일에는 저녁도 먹고, 우리는 언제 여우같은 색시 만나서 토끼같은 자식도 보나 너스레를 떨던 친구가 죽었다. 그것도 자기 스스로. 그는 태린의 엄마에게 장례식장 위치를 듣고, 같이 다니는 회사 식구들에게도 연락했다. 연락을 받은 회사 식구는 물론이고, 사장님도 놀라는 눈치였다. 함께 점심을 먹고 주말에 뭘 할 지 고민하던 사람들은, 이내 태린의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태린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닙니다. 저희 회사에서 귀한 인재였는데, 이렇게 되서…… “
육개장을 먹고, 늦은 저녁에 찬민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함께 웃던 친구가 갑자기 불귀의 객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영정사진 속 환하게 웃는 태린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항상 그렇게 환하게 웃던 녀석이었는데, 무엇이 너를 그렇게 만든거냐. 임마, 나한테라도 좀 털어놓지 그랬어. 가는 길이라도 섭섭치 않게 잘 가라.
그리고 깜빡 잠이 든 그는 꿈을 꾸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지하철역인 것 같았다. 손목에 무언가를 찬 사람들이 보였다. 일부는 검은 종이같은 것을, 일부는 하얀 종이같은 것을 차고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안내 방송이 들리는가 싶더니 열차 한 대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차장은 줄을 세웠고, 그도 얼떨결에 줄을 서게 되었다. 열차 문 앞에서 표를 체크하던 차장은, 찬민의 손목을 확인하고 왜 여기에 있느냐는 표정으로 그럴 바라보았다.
“이 열차는 티켓이 있아야만 탈 수 있는 열차입니다, 손님. 손님은 티켓이 없으시네요. “
“티켓…이요? “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
“김찬민입니다. “
“김찬민… 김찬민이라… 오늘 열차를 타시는 손님 명단에는 없군요. 손님은 저 쪽으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
차장은 그를 줄 밖으로 나가게 한 다음, 다음 손님을 체크하고 있었다. 유심히 보니, 하얀 띠를 찬 사람은 열차에 태우고, 검은 띠를 찬 사람은 다른 쪽 줄로 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찬민은 티켓이 없으니 줄에서 빠져 있는 상태였다. 이 열차는 뭐지, 나는 왜 티켓이 없지? 멍하니 차장이 표를 체크하는 것을 구경할 무렵,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놔- 난 아직 갈 수 없어! 그 녀석들을… 그 녀석들을 지옥으로 보내고 갈 거야! “
“!!”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누군가를 연행하고 있었다. 남자의 손목에는 하얀 티켓이 채워져 있었지만, 반은 검은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끌려오던 남자는 찬민을 발견하고, 연신 그의 이름을 불렀다.
“태린아! “
“김찬민! 도와줘! 이 사람들이… “
찬민이 세 사람을 향해 다가가자, 두 남자는 태린을 꼭 붙든 채로 경계하듯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어딘지 음침해보이는 검은 머리의 여자가 나타났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그녀의 두 눈에는, 교회의 십자를 거꾸러트린 듯한 모양이 있었다.
“너, 이 녀석이랑 아는 사람이야? “
“네, 네… 그, 그런데요… “
찬민이 대답하자, 그녀는 남자들에게 태린을 풀어주도록 했다.
“하지만… 이 자가 도망가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
“이 역까지 온 이상, 도망치는 건 불가능해. 손목에 티켓도 있으니 도망친들 다시 찾아서 데려오면 그만이지만… 아아, 실례가 많았군. “
그녀는 자신을 로즈마리라고 소개했다. 그는 그녀에게 이 곳이 어디인지, 왜 태린이 이 곳에 와 있는 건지를 물었다. 그녀는 이 곳은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열차를 타러 가는 곳이라고 대답하며, 산 자가 이 곳에 온 것은 보기 드문 경우라는 말을 덧붙였다.
“살아있는 자가 이 곳까지 오는 경우는, 망자가 편안히… 무사히 저승까지 가길 바라면서 배웅하러 오는 것. 예전에야 그런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그런 경우가 잘 없지… 자, 다시 묻겠어. 너는 저기 있는 박태린이라는 자와 어떻게 아는 사이지? “
“직장 동료…기도 하지만, 친구예요. 금요일이라 일찍 퇴근하다가 부고를 전해듣고…… “
“음… 그렇군. 좋아. 거기 너. “
“저… 저요? “
“보아하니 미련이 많이 남은 모양인데 여기서 털고 가. 그러라고 네 친구가 배웅 온 거 같으니까. “
그녀는 태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테린은 찬민을 끌어안고 크게 울었다.
“태린아. 울지 말고 좋은 데 가라… 어머님 슬퍼하시기 전에… “
“찬민아… 그놈들… 그놈들을 대신 찾아 줘…… “
“그놈들이라니? “
“그놈들한테 전화가 왔어… 자기가 검사라고… 내가 사기 사건에 연루됐다고 했어… 바보같이도, 거기에 속아서 내 전재산을 보내버렸어… 동생 수술비인데… “
“임마, 천하의 박태린이 그런걸로 미련 남기면 쓰냐. 동생 수술은 내가 도와줄게. 나랑 너랑 친구니까 네 동생이면 내 동생도 되는 거 아니냐. 그 놈들도 꼭 잡아서 처넣어줄테니까, 편히 가라. “
“정말? “
“당연하지. 그러니까 걱정 마라. “
그가 등을 몇 번 토닥여주자, 태린은 잘 부탁한다는 듯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겨주곤 열차를 타러 갔다.
“음… 손님은 티켓이 반반이군요? 자살하신 분인가 봅니다… 자살하신 분은 저 쪽 승강장으로 가셔서 4호차에 타십시오. “
그는 태린이 열차에 탈 때까지 손을 흔들다가 잠에서 깼다.
‘꿈…? ‘
꿈이라기엔 생생했다. 열차 정류장과 열차, 티켓을 체크하던 차장… 그리고 연행되서 끌려온 친구까지. 친구가 흘렸던 눈물 자국도 그대로였고, 꿈 속에서 보았던 여자가 답례로 준 로즈마리 차도 깔끔하게 포장된 채 그의 머리맡에 놓여져 있었다.
“으으… 꿈은 아닌가 보네… “
집은 어제 들어온 그대로였다. 그는 집을 대충 정리하고, 막 발인을 마치고 돌아온 태린의 어머니를 찾아가 꿈 속에서 봤던 것으 그대로 전했다.
“우리 아들이요…? “
“네. 보이스피싱 떄문에 동생의 수술비를 날렸다고 했어요. “
“어쩐지… 며칠 전에, 통화를 꽤 길게 하는 것 같았어요… 뭔가 겁에 질린 듯한 목소리로… 거의 1~2시간정도 통화했던 것 같아요. “
며칠 전, 태린에게도 찬민에게 왔던 전화와 똑같은 전화가 걸려왔었다. 레파토리는 비슷하다. 나는 검사고, 너는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지금부터 전화로 조사를 해서 네가 피해자인지 아닌지 가려낼거다. 그리고 종국에는 개인정보와 금전을 노리는 것이다. 어머니로부터 태린이 남기고 간 전화기를 넘겨받은 그는, 태린에게 전화했던 번호가 며칠 전 자신에게 전화를 했던 번호와 같은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통화 기록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 고키부리 사무실로 갔다. 하지만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주말에는 안 하는 모양이네… “
“거기는 주 5일제라. “
“!!”
사무실 문이 닫힌 것도 잠시, 그는 계단 위에서 내려오던 파이로를 만났다.
“사무실에 볼일 있으면 잠깐 위층에서 얘기나 하고 가. 내가 전해줄게. “
“위층…이요? “
“우리도 주 5일제지만 상주하는 사람이 있거든. “
“그럼 실례합니다. “
얼떨결에 괴담수사대 사무실로 들어서니, 컴퓨터 양 옆으로 서류 더미가 쌓여 있는 책상이 보였다. 책상을 지나 들어서면, 밖과 차단된 별 안으로는 소파와 TV, 그리고 방 몇 개가 있었다. 찬민을 데려 온 여자는 부엌으로 가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뭐야… 손님이냐… “
“밑에쪽 손님. “
소파에 누워 있던 창백한 여자는 찬민을 보고, 몸을 일으켜 다른 방으로 들어갔고, 같이 앉아 있던 검은 장갑을 낀 여자는 테이블을 대충 갈무리했다. 그리고 파이로는 먹을 것과 물잔을 가져왔다.
“무슨 일인데 주말에 사무실을 찾아오냐? 밑에층은 주말에 인터넷으로만 접수 받는데… 급한 거야? “
“급한… 일이긴 하죠… “
“뭔데, 얘기해 봐. 어차피 대신 접수해주려면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알아야 하니까. “
그는 태린이 죽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친해진 친구였는데, 보이스피싱에 낚여서 동생 수술비를 잃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 태린을 보내주고 온 날 꿈에서 봤던 기차역, 열차, 그리고 정장을 입은 사람들에게 연행되다시피 끌려온 태린까지…
“손목에 있던 거, 흰색 검은색 반반이었지? “
“맞아요. “
“그거 자살한 사람이라 그래. 스스로를 죽였으니 그것도 일종의 살인이거든. …뭐, 그래도 보이스피싱떄문에 그렇게 된 거 알면 정상참작은 해 주겠지만… “
“…… “
“어쩔 수 없어, 원래 자살하면 좋은 데 못 가거든… 그래서, 사무실에는 그 녀석들을 찾아달라고 의뢰하는거야, 아니면 찾아서 어떻게든 해 줬으면 하는거야? “
“찾아서 어떻게든… 그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 벌을 내려주세요. “
“좋아. 월요일에 제일 먼저 접수해주지. 아마 전화가 곧 갈거다. “
월요일,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에 타려던 그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수화기 너머로 젊은 여자가 인사를 건네고 고키부리 사무실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의 의뢰를 괴담수사대를 통해 접수했으며, 안타깝게 죽은 친구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보이스피싱으로 친한 친구를 잃었다… 하지만 범인을 어떻게 찾죠? 경찰들도 이런 경우에는 못 찾잖아요. 애초에 길게 통화하는 것도 장소를 이동하면서 기지국이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고… “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찾기 힘들죠. 그래서 특별한 힘이 있어야 해요. “
“특별한 힘…? “
“나타나라. “
도희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눈앞에 나타난 것은 크리멘이었다. 옆에 있던 시트로넬도 함께 온 상태였다.
“오, 사무실 새단장 했나 봐? “
“새단장 한 지 좀 됐지. “
“우리를 여기까지 부른 이유는 뭐지? “
“시트로넬이라면 알고 있겠지, 며칠 전에 자살한 사람? “
“자살자가 한둘이냐… “
“명계행 기차역에서 난동 부렸다가 친구가 달래서 겨우 탑승한 사람은 하나밖에 없어. “
“아아… 그래, 그 사람이라면 알고 있지. 설마, 그것과 관련된 의뢰야? “
“정답. 많은 사람들을 기망하고 개인정보와 돈을 갈취했으며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찾기가 힘들어서 말이지. “
친구가 배웅울 왔던 자살자는 태린을 말하는 것이었다. 심판자인 시트로넬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크리멘은 모르는 눈치였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으로 많은 사람을 기망하고,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죄는 크리멘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애시의 협력이 있다면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
“존재를 없애는 괴이 말이야? “
“응, 괴담수사대에 있으니까 데려온다면 금방 데려올 수는 있거든. …범인에게 전화가 와야겠지만. “
“전화라면 내가 오게끔 할 수 있어. 애시를 보탁해. “
크리멘은 괴담수사대 사무실로 가 애시를 데려왔다. 도희는 영문도 모르고 끌려 온 애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애시는 도희의 전화기로 들어갔다.
전화가 잠잠하다 싶더니 울렸다. 화면에 번호가 뜨자, 파이로를 통해 받은 통화 기록을 확인한 도희는 번호가 같은 것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도희가 속아넘어간 척 통화를 하자, 애시는 그 틈을 타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휴… 속아넘어간 척 연기하는 것도 힘드네… 이거면 된거지? “
“이제 애시가 저 쪽에서 녀석에게 달라붙어 있을 거야. 그리고, 보이스피싱이라면 명계에도 존재하니까 그 쪽에서 곧 전화를 걸겠지. “
“그럼 시트로넬씨가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겠네. “
“전화로 사람 기망하는 놈들은 전화로 죽어야 맞지. 함무라비 법전에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잖아. “
“음, 그거 맞는 말이긴 하네. “
며칠 후…
자신을 검사라 사칭하던 여자는, 또 다른 사람을 속이기 위해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 때, 여자의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
“……씨, 당신은 ……에 연루되셔서… “
뭐야, 내가 자주 쓰던 패턴이잖아, 설마 랜덤으로 걸다가 이 전화기에 걸린 건가? 거기다가 전파 상황도 안 좋은건지, 전화가 부분부분 지지직거리면서 들리지 않았다. 뭔가 비명 소리 같은 게 들린 것도 같은데, 기분 탓인가… 그녀는 전화를 끊고 다시 일을 하려고 했지만, 아까 그 번호로 전화가 다시 왔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
“무슨 일인데? “
“하다하다 나한테도 보이스피싱 전화가 온다, 야. 내가 이 패턴으로 전화를 거는데 속아 넘어가겠니? “
“풋, 누군지는 몰라도 잘못 걸렸구만. “
전화번호를 분명히 차단했는데, 아까 그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를 꺼야 하나, 이걸 어쩌지? 적당히 속아넘어간 척 하고 넘겨버릴까? 자꾸 받지 않으니까 계속 오는 걸 보면 답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전화기를 껐지만, 그럼에도 전화가 오고 있었다.
“이… 이거 뭐야, 왜 이래? “
“전화기… 분명 껐지? “
“분명히 껐어… 그런데 왜 전화가 오지? “
보통 전화가 오면 배경화면이 검정색이다. 하지만 이 전화는 배경이 붉은 색이었다. 핸드폰에 문제가 있나, 매장으로 한 번 가 봐야 하나. 그녀가 망설이는 사이, 전화기가 제 멋대로 움직여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난데없이 스피커폰으로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씨, 당신은 사기 사건에 연루되셔서 조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지만, 전화는 끊어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녀가 했던 말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지지직거리는 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이름 석 자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빨간 배경이 갑자기 팟, 하고 암전되는가 싶더니, 전화가 끊어졌다. 드디어 끝난 건가, 빨리 서비스 센터로 가야지.
그리고 그녀가 전화기를 집어 든 순간, 액정 속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그 손은 지전을 쥔 채였다. 지전을 쥔 손은 무수히 많이 튀어나와 그녀의 주변에 지전을 내려놓고 갔다. 붉은 지전이 그녀의 주변에 하나 둘 쌓여갈 동안, 그녀의 동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건지 자기 일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붉은 지전이 켜켜이 쌓여갈 무렵, 그녀의 눈앞에 붉은 머리의 여자가 나타났다. 마치 새의 깃털로 만든 옷을 입은 것 같은 여자는, 그녀의 손목에 검은 팔찌같은 것을 채웠다. 종이였지만, 어쨰서인지 그녀는 찢을 수 없었다.
“이런, 이런… 급행 열차의 손님이 여기 계셨군. 몸소 마중까지 나오게 하다니, 결례라고 생각 안 하나? “
붉은 머리의 여자가 낫을 치켜들고 그녀의 목을 베자, 환영은 끝났다. 그리고 눈 앞이 감감해지는가 싶더니, 그녀는 꽃으로 치장된 열차에서 깨어났다. 깨어난 그녀를 반긴 것은, 포마드로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남자였다.
“어서 오세요, 손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