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XVI. 탐욕의 그릇

「원죄를 지은 일곱 제물이 모이면, 죄의 근원을 소환하리라. 」

파이로가 간식을 사러 잠깐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사무실에는 정훈이 30대 초반은 되어 보이는 남자와 함께 와 있었다. 음악을 듣고 있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미기야나 맞은 편의 두 사람을 보면 아무래도 뭔가 심각한 이야기인 듯 했다.

“무슨 일이래? ”
“실종 사건이 있었나봐. ”
“실종 사건? ”
“왜, 얼마전에 뒷광고 논란때문에 나락 갔던 네튜버 하나 있었잖아. ”
“아, 그랬지. 체포될때도 가관이어서 기억하고 있었거든. 뒷광고인거 다 까발려졌는데도 끝까지 내돈내산 맞다고 우겼잖아. 그 전에도 먹방 관련해서 논란 좀 있었고… ”

얼마 전, 뒷광고 논란으로 시끌시끌했던 네튜버가 하나 있었다. 채널명은 ‘글루의 식생활’, 채널 주인은 ‘글루’. 처음에는 먹방을 올려서 구독자들을 끌어모았지만, 점차 채널이 커져가면서 다양한 제안들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것때문인지 이따금 다이어트 보조제 등의 PPL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것이 PPL이었지만 PPL임을 알리지 얂고 진행한 ‘뒷광고’였다. 글루는 광고 표시를 넣으려고 했지만 회사 측에서 그렇게 하지 못 하도록 했다며 무마하려고 했지만, 사건을 접한 회사측에서 우리는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면서 계약서를 공개하며 선수를 쳐 버려 말 그대로 나락행 열차를 타버렸다.

뒷광고 논란과 함께 편집자의 폭로로 그녀의 모든 것이 까발려졌다. 영상에서는 라면 10봉지를 한꺼번에 먹고, 후식으로 밥까지 말아먹은 것으로 나왔지만 사실은 먹고 뱉었다는 것, 그리고 모든 먹방이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는 것, 또한 이걸 편집하고 영상을 올리는 것 관련으로 갑질이 있었던 것과 전 편집자는 그것때문에 정신과에 다니게 되어 그만두었지만 치료비는 고사하고 월급도 제때 주지 않았다는 것까지. 그 외에도 몇개가 더 폭로되었고, 글루의 구독자는 물론 광고를 계약했던 회사들까지 줄줄이 계약을 해지했다. 보통 네튜버에게 논란이 생겨도 소위 ‘실드를 친다’고 하는 구독자들이 하나둘 있게 마련이었지만, 글루의 경우에는 워낙 악랄한데다 논란이 거센 탓인지 글루를 보호하려는 구독자도 없었다.

“폭로영상 나오고 반응 장난 아니었잖아, 그 네튜버. 그 다음에 만티코어가 100만 구독자 기념 Q&A 하면서 얘기했는데, 만티코어한테도 PPL이랑 합방 제안이 들어왔었는데 만티코어가 그 사람은 뭔가 뒤가 구릴 것 같아서 거절했대. ”
“아, 그래? ”
“어. 거절하고 나서 바로 논란 터진 것 같던데… 마물이다보니 뭔가 감이 좋아서 거절했나봐.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얌전히 조사받는 거 아니었어? ”
“뒷광고에 공동구매 사기 의혹까지 있어서 조사를 해야 하는데, 실종됐대. ”
“실종됐다고? ”
“응. 오늘 조사받아야 하는 날인데 안 와서 집으로 갔더니, 말끔히 사라졌다나… ”

글루의 논란은 단순 뒷광고나 거짓 먹방이 아니라, 공동구매 사기 의혹까지 있었고 관련 조사를 정훈의 경찰서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담당 경찰관이 정훈의 후배였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오전에 조사를 마치고 입건 여부를 결정하는 단계였지만 출석을 하지 않은 것이다. 전화를 해도 꺼져있다고 나와서 자택으로 가 봤더니, 누군가 납치라도 한 건지 집 안이 난장판인 상태로 텅 빈 집만이 있었다고.

“그럼 지금은 실종 사건에 대한 수사를 해야 하는 건가요? ”
“그래야죠, 아직 조사 시작도 안 했는데 사라졌으니… ”

정훈이 후배 형사와 함께 돌아간 후, 미기야는 파이로와 라우드를 글루의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글루의 집에 들어섰다. 한쪽에는 촬영용 스튜디오로 쓰는 방이 있었고, 방 안에는 촬영용 카메라와 조명이 있었다. 다른 방은 침실이었는지 침대와 옷장이 놓여있었고, 침대는 자다가 일어나서 실종된 듯 어수선했다. 부엌에는 어제 야식으로 먹은 모양인지, 미처 버리지 못 한 컵라면 용기가 놓여있었다.

“만약 정말로 도망친거라면, 왜 도망쳤을까? ”
“글쎄… 공동구매 사기 관련해서 의혹이 진짜였던 거 아닐까? 그게 진짜고 스케일도 꽤 크다면 100% 은팔찌에 교도소행이니 두려워서 내뺐나보지. 그런데, 진짜로 내뺄 요량이었다면 뭔가 낌새가 있었을거고… 잠적할 요량이었으면 침대를 저렇게 해 두고 내빼진 않았을 것 같은데? ”
“그런가… 일단 침대쪽 영상부터 확인할게. ”
“오냐. ”

라우드가 침대에 손을 올리자, 영상이 보였다. 글루가 사라진 지는 2~3일정도 된 모양인지, 2~3일동안은 덩그러니 침대가 놓여 있는 영상이 보였다. 그리고 나흘 전으로 돌아가자, 샤워를 마치고 잠들려고 침대에 누웠던 글루의 영상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잠을 청하던 그녀는 무언가에 놀란 듯 일어났고, 가면을 쓴 남자가 누워있던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나갔다. 그녀는 발버둥쳤지만 허사였고, 핸드폰은 책상 위에 놓아둔 터라 신고도 하지 못 했다.

“뭔가 보여? ”
“나흘 전에 자다가 납치됐어. ”
“납치됐다고? 범인은 누군데? ”
“그게…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었어. ”
“가면? ”
“응. 눈구멍만 뚫려 있는 하얀 가면. ”
“가면이라… 복장은? ”
“검정색 맨투맨. 아마 글루의 반응으로 보건대, 밤중에 집에 침입해서 데려간 것 같아. ”
“대담한 놈이네… 원한 범죄같은건가…? ”

파이로는 글루의 옆집을 찾아가 나흘 전의 일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지만, 한 집은 공실이었고 한 집은 그 날 공교롭게도 출장을 가 다른 곳에 있었다. 건물을 경비하던 경비원에게도 물어봤지만, 흰 가면을 쓴 남자는 본 적 없었다고 했다.

사무실에 돌아온 라우드는 미기야에게 글루의 집에서 확인한 영상 이야기를 했다.

“가면을 쓴 사람이 납치했다… 나흘 전에요? ”
“네. 검정색 맨투맨을 입었고, 눈구멍만 뚫려 있는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어요. ”
“저녁에 집에 침입해서 납치하다니… 대체 목적이 뭐였을까요…? 주변 사람들은 뭔가 본 게 없다고 하던가요? ”
“파이로가 물어봤는데, 옆집 사람은 그 때 출장을 가서 없었고 경비원은 가면을 쓴 남자를 본 적 없다고 했어요. ”
“경비원이 보지 못 했다면, 공동현관 비밀번호까지 알아냈거나 다른 경로로 침입했을 수도 있겠네요. ”

그녀는 조사를 받기 나흘 전에 검정색 맨투맨을 입은 흰 가면의 남자에게 납치되었다. 하필이면 그녀의 이웃집도 공실이거나 집을 비운 상태였고, 경비원도 하얀 가면을 쓴 남자는 본 적 없다고 했었다. 가면 외에 특징이라고 해 봐야 검정색 맨투맨뿐이었지만, 검정색 맨투맨으로 사람을 특정하기는 힘들었다.

“이거, 꽤나 난제가 되겠네요. ”
“그러게. 뭘 잡든가 해야 목적이라도 알 텐데… ”

그 시각, 글루를 납치한 하얀 가면의 남자는 글루를 의자에 단단히 결박했다.

“원죄를 지은 일곱 제물… 첫 번째 제물은 탐욕의 그릇… ”
“읍- ”

입에 재갈을 물린 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남자는 톱을 들었다.

「탐욕의 죄를 지은 자의 뼈를 모아, 그릇으로서 피를 받으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