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런… 급행열차의 손님이 여기 계셨군. 몸소 마중까지 나오게 하다니, 결례라고 생각 안 하나?
그 말을 끝으로 의식이 흐려지는 가 싶더니, 정신을 차려보면 달리는 열차였다. 마치 하얀 국화로 도배를 해 둔 것마냥 꾸며진 객실에는, 그녀 외에도 여러 사람이 있었다. 주위들 둘러보던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어디선가 포마드로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그녀를 맞았다.
“어서오세요, 손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
“진화라고 합니다. 류진화요. “
“류진화님… 알겠습니다. 어느정도 괜찮아지시면 다음 칸으로 가 보세요. 그 곳에 손님을 위한 옷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옷이요…? “
남자의 말대로 다음 칸으로 가자, 다음 칸에서 그녀를 맞은 남자는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그녀가 이름을 알려주자 그는 옷장을 뒤적였고, 이내 그녀에게 옷걸이에 걸린 옷을 내밀었다. 가죽 태그로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커버 속 옷은 고향에서도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전통 복장이었다. 남자는 옷을 건네주고 탈의실을 안내한 후, 갈아입고 다음 칸으로 가면 머리를 매만질 수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열차는 어딘가에 정차하는 기색도 없이 달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옷을 전해 준 남자는 사라져서 무언가를 물어보려 해도 보이지도 않았고, 여기 있는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도 별 소득은 없어보였다. 결국 그녀는 옷을 들고 탈의실로 가 갈아입었다.
“와, 이거 드라마에서 황후가 입던 옷인데? 한번쯤 입고 싶었던 옷인데… 이렇게나마 입어보게 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
옷을 갈아입고 다음 칸으로 가자, 마치 미용실 같은 공간이 보였다. 벽을 흰 국화가 뒤덮고 있는 것은 앞 칸과 같았다. 옷을 갈아입은 그녀가 그 곳으로 들어서자, 안에서 미용 도구를 정리하던 단정한 머리의 여자가 그녀를 맞았다.
“어서오세요 류진화님 맞으시죠? 이 쪽에 앉으세요. “
여자가 안내한 자리에 앉자, 그녀는 이내 커다란 천을 가져와 목에 둘렀다. 그리고 머리를 만져주는 부드러운 손길과 사각거리는 가위 소리에 잠들었던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거울 속에 그녀가 아닌 언젠가 보았던 사극의 황후가 있는 것을 보았다. 분명 TV로만 동경해오던 모습이었는데, 바로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가 황후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칸으로 가시면, 아마 손님을 위한 식사가 준비되어 있을 겁니다. “
다음 칸으로 이동하자, 카운터에서 중년의 남자가 그녀를 맞았다.
“어서오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
“류진화입니다. “
“류진화씨… 아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중년의 남자가 손짓을 하자, 그릇을 나르던 남자가 다가왔다. 중년의 남자는 그릇을 나르던 젊은 남자에게 무어라 말을 건넸고, 젊은 남자는 재빨리 그릇을 부엌에 반납하고 그녀의 자리를 안내했다. 온통 하얀 꽃으로 치장된 방 중에서도, ‘특실’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가장 고풍스럽게 꾸며 놓은 곳이었다.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황후의 식탁이 이런 느낌일까, 그녀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녀를 안내한 젊은 남자는 그녀에게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면 코스요리가 금방 나올 것이라고 했다.
‘코스 요리? 내가 뭐라고 이런 대접을 다 받지…? ‘
그녀가 자리에 앉자, 이내 전채 요리가 나왔다. 왕실에서나 먹을 법한 식재료에 곁들여서 나온 것은 보이차였다. 차는 원한다면 리필도 가능했다. 전채 요리가 든 접시를 비우자 이내 메인 요리가 든 접시가 카트 한 가득 실려 왔다. 동파육이나 오향장육같은 것부터, 해삼주스에 유린기까지 있었다. 평생 한 번 먹어볼까 말까 한 진귀한 요리들도 있었다. 메인 요리를 다 먹고 후식으로 나온 것은 삼부점이었다. 조리사가 솜씨 좋게 만든 삼부점은, 그 이름대로 젓가락에도, 접시에도 붙지 않고 이에도 붙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보이차를 마시자, 그녀는 그제서야 여기가 어디인지를 떠올렸다.
“손님, 식사는 만족스러우셨나요? “
“네, 최고의 식사였습니다. “
“만족하셨다니 다행이군요. 자, 다음 칸으로 가시면 당신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녀는 다음 칸으로 갔다. 마치 새와도 같은 옷을 입은 남자가 그녀를 맞았다. 이상하게도, 분명히 초면이었음에도 그는 그녀의 이름을 묻지 않아도 알고 있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는 그녀를 열차 가장 끝칸으로 안내했고, 그녀는 열차의 가장 끝 칸으로 들어섰다.
“!!”
“드디어 왔군. “
열차의 끝칸에서 본 것은, 그녀가 의식을 잃기 전에 목격한 붉은 머리의 여자였다. 여자는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기분탓인지, 그녀가 있는 방에 치장된 국화는 전부 붉은색이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그녀는 그 책상에 앉아 있었다. 팔락거리며 읽던 종이를 한 쪽으로 제껴 둔 그녀는, 그녀를 안내한 남자에게 이만 문을 닫고 나가보라고 말했다.
“요즘은 무간지옥으로 넘어 올 인간들이 많단 말이지… 이래서야 형 집행 기준이나 안 올라가면 다행이겠지만. 좋아, 황후 대접을 받은 기분이 어떠신가? 사람들을 기망해 돈 뜯어내고 사람 하나 죽여놓고? “
“그게 무슨 말이예요? 제가 언제… “
“내 앞에서 잡아뗄 생각일랑 안 하는 게 좋을텐데? 여기는 무간지옥행 열차고, 이 몸은 사신이거든. “
“아직 죽을 때도 안 됐는데, 무간지옥이라뇨! 이건 당치도 않아요. 당장 열차를 돌려요! “
“어, 여기 들어오는 사람들은 다 그런 식으로 말해. 자.. 어디서부터 설명해줄까… 일단 지상에서 이 곳으로 온 사람이 다시 발을 들이는 일은 없어. 그리고 남은 수명에 상관 없이, 무간지옥으로 죄 많은 인간들을 데려가는 게 내 일이야. 너의 남은 수명은 적당히 다른 곳에 분배될거다. “
“!!”
“다른 사람들 속여서 돈 벌 때는 몰랐겠지? 네가 어떤 말로를 겪게 될 지. 아아… 그 옷은 선물이라고 생각해 둬. 앞으로 최소 몇만년동안은 그런 호사를 누릴 일이 없을거라서 말이지. “
무간지옥? 난 그저 어리숙한 사람들을 속아넘겼을 뿐인데? 애초에 속은 사람이 바보인거지, 내가 나쁜 건 아니잖아. 그녀는 억울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결정을 바꿀 생각이 없어보였다. 최후의 발악으로, 비녀를 뽑아서 그녀를 공격해보려던 시도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가 그녀를 포박함으로서 무위로 돌아갔다.
“이 녀석, 열차 잘못 탔네.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타나토스님? “
“그냥 판데모니움이나 기어오는 혼돈에게 던져줄 걸 그랬나본데? 검히 사신을 공격하려 들다니. “
“…… “
열차는 어느 새 목적지에 도착한 듯, 멈췄다. 그녀는 무간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항상 이런 식이라며 너스레를 떨고, 그녀를 열차 밖으로 끌어내렸다. 밖으로 나와 보니, 불그스름하고 검은 바닥만이 보이는 곳이 있었다. 열차는 어느 새 탑승객을 내리고 떠났고, 그 열차를 잡아타려던 그녀를 타나토스가 낫으로 막아세웠다. 그리고 멀리서 두 명의 남자가 사람들을 향해 다가왔다. 두 남자는 기다리다 지친 듯한 표정이었다.
“와, 드디어 도착했군… 이 쪽이 새로운 죄수인가? “
“오, 마치 황후와도 같은 자태… 이 사람, 엄청난 중죄인인 모양이지? “
“보이스피싱으로 사람을 기망해 죽였거든. 속은 사람이 자살했어. “
“아데스! “
그녀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던 두 남자는, 그녀의 뒤를 따라 온 남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무간지옥의 가장 깊은 곳으로 데려가라는 타나토스님의 명령이야. 원래 형에 더해서 타나토스님 공격 미수 혐의 추가. “
“가장 깊은 곳? “
“최심부에 던지고 오면 안 될까? 어차피 던져두면 최심부에 떨어질 거 아냐… 잘못해서 우리까지 말려들면… “
“둘 다, 이걸 들고 가면 최심부에서 찍소리도 못할거다. 책임지고 최심부에서 인계하는 거 확인하고 와. “
“어쩔 수 없나… 가자. “
“응. “
열차 밖에서 마중나와 있던 두 남자는 무어라 수군거렸다. 그리고 남자에게서 무언가 뱃지같은 것을 건네받은 두 사람은 진화를 데리고 무간지옥의 최심부로 향했다.
“여, 여기가 어디죠? “
“들어서 알고 있을텐데, 무간지옥이라고. “
“저는 어떻게 되는거죠? “
“최심부로 가게 되는 이상, 온전할 거라는 보장은 못 하겠네… 정신이라도 멀쩡하길 빌어. 몇만년 후에는 그래도 뭘로라도 환생해야 하지 않겠어? “
“…… “
“뭐, 최심부로 가는 이상 그럴 확률은 0이겠지만… “
무간지옥은 그 자체로도 넓은 공간이었다. 이상하게 넓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간간이 비명 소리가 들렸다. 게단을 통해 층계참으로 내려가 보니, 무간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개중에는 남자에게 끌려다니며 계속 칼에 찔리는 여자도 있었다.
“저기 끌려다니는 여자는 저 남자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저 남자를 죽이고 자기도 자살했어. 저 쪽은 술에 취해서 사람을 죽여놓고도 뺑소니 치다가 죽은 사람이고. “
“…… “
“여기는 그래도 약한 편이지, 상층부니까. “
다음 층으로 내려가자,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풍경이 보였다. 역사책에서나 봤던 각종 고문 기구들이 보였고, 그 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도 보였다. 손톱 밑에 바늘을 꽂는 것은, 차라리 피는 안 보니 다행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처참한 곳이었다.
“저기서 고문당하는 사람들은 죄다 연쇄살인마야. 뭐, 저거 말고도 독극물을 억지로 먹인다던가 하는 것도 있지만. “
한층 한층 내려갈수록 처참했다. 급기야는 산 채로 온 몸에 꼬챙이가 꽂히는 벌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이 곳이 지옥인가, 나는 지옥에 온 것인가,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이 저지른 짓을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너는 보이스피싱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했나? 그거, 아주 악랄한 범죄지. 말로 인간을 속이는 것도 모자라 죽게 만들다니… 이번에 죽인 것만 하나지, 실제로는 엄청나게 속여먹었겠네? “
“어디까지나 위에서 시켜서 한 일이고… 저는 모릅니다. “
“여기까지 와서 잡아뗄 생각일랑, 안 하는 게 좋아. 여기는 무간지옥… 네가 했던 모든 것을 꿰뚫고 있으니까. “
계단이 끝나는 곳에는 커다란 문이 있었다. 양쪽에는 붉은 등이 있었고, 문은 검은색이었다. 두 남자가 문을 열자, 내부가 보였다. 내부는 마치 황후의 방처럼 꾸며놓은 공간이 있었다.
“여기가 최심부야. “
“여기가 최심부라고요? 하하, 최심부치고는 별 것 없는데요? “
“과연 그렇게 생각해? 들어가서 귀를 기울여보면, 곧 알게 될텐데. “
그녀가 방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뼈 같은 것을 씹는 소리,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소리, 무언가가 쫓아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게걸스럽게 고기같은 것을 먹는 소리도 들렸다.
“무간지옥의 밑에는 세계가 멸망할때까지 절대 지상으로 나올 수 없는 곳, 어비스가 존재하지. 이 곳은 어비스와 가장 가까운 곳, 그리고 무간지옥에서 가장 모순에 가까운 곳이야. 왜냐하면 최하층이라고 해도 산채로 토막을 낸다던가, 물고문이라던가… 그런 신체적인 고문은 하지 않거든. 그래서 여기에 처음 들어오는 인간들은 안심하게 돼. “
“그… 그럴 리가…… “
“이 밑에서 들리는 소리는, 어비스에 떨어진 죄인이 리바이어던에게 쫓기는 소리야. 리바이어던이 이들을 먹어치우고, 제셍하고, 또 다시 먹어치우고… 어비스는 그런 것이 반복되는 곳이고, 너는 여기서 몇만년동안 그 소리를 들어야 해. 물론, 거기에 익숙해진다면 괜찮긴 하겠지만… 거기서 끝난다면 우리가 최심부에 오는 것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지.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닥에서 붉은 빛이 들어왔다. 커다랗고 둥글고 붉은, 일정하게 다닥다닥 붙은 빛이었다. 그것은 위에 무언가가 있더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입을 쩍 벌리고 올라오려고 했지만 바닥을 뚫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쩍 벌린 입 속 이빨, 그리고 커다란 목구멍에 삼켜지다 만 사람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어비스의 주인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괴물, 리버이어던. 이 녀석을 상대로 몇만년동안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길 바래. 저 녀석은 네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다 꿰뚫고 있거든. “
“그럼, 몇만년 후에나 보자고. 바이바이- “
두 남자는 그녀를 뒤로 하고 다시 무간지옥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
“거기까지 말해주는 건 애초에 금지였어. 전부 알려주는 건 재미없기도 하고… “
두 남자가 돌아간 후, 비명소리와 뼈가 씹히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최대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래, 이 소리에 익숙해지면 돼. 몇만년이면 익숙해지고도 남을거야, 저 괴물도 역시. 익숙해지면 괜찮을거야. 그렇게 방심한 그녀의 앞에, 온 몸을 괴상한 천으로 칭칭 감은 여자가 나타났다. 마치 피가 말라붙은듯한 색의 천으로 전신을 감은, 붉은 눈의 여자는 그녀를 마치 어린아이가 갓 포장을 뜯지 않은 새 장난감 상자를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누, 누, 누구세요? “
이 존재는 위험하다, 그녀의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도망쳐야 한다, 도망쳐야 한다, 도망쳐야 한다,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되뇌이고 있었지만 도망갈 곳이 없었다. 뒤로 천천히 물러났지만, 그것은 곧 그녀를 따라잡고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아악! “
“이번 장난감은 얼마나 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