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손님이 오셨어요. ”
딸랑, 사무실 문에 달아 둔 풍경 소리가 울리면서 젊은 남성이 들어 왔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맞은 편에 보이는 둥근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이내 막 출근한 미기야를 발견하곤 의자에서 일어나서 인사를 건넸다. 하얀 와이셔츠 위에 검정색 정장 조끼를 입고 같은 색의 바지를 매치한, 검정 뿔테 안경을 쓴 어딘지 모르게 지적이고 세련돼 보이는 남성이었다. 그의 발치에는 검은 색 가방이 놓여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십니까? ”
“제 친구를 좀 살려주세요. ”
“……? ”
그는 서류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그리고 종이 뭉치를 받아 들고 읽은 미기야는 흠칫, 놀랐다. 그 곳은 얼마 전 F시에서 관리하기로 했다던 어느 폐건물에 대한 자료였기 때문이다.
“친구분이… 여기에 가셨다고요? ”
“네… 아마 들어서 아시겠지만, 이 폐병원을 탐험하겠다고 나섰던 사람들이 전부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녀석은 그 사건에 대해 취재하겠다고 이 건물로 향했고, 그 후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
“여기를 취재하겠다고 가셨던 동기가 뭐였나요? 여기는 웬만하면 잘 안 가려고 하는 심령 스팟인데… ”
“제 친구녀석은, 그런 곳을 찾아 다니길 좋아하는 좀 유별난 녀석이죠… 취재가 아니었어도 실종 사건이 터졌던 곳이라고 하니,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 하던 눈치였지만… 거기다가 실종 사건까지 생겨서, 위에서도 그 건물을 한번 취재해 볼 사람을 찾더군요. ”
“…… ”
F시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폐건물은, 과거에 상가였던 곳이다. 하지만 어느 날 부터인가, 그 곳에 입주해 있있던 가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건물은 폐건물이 되었다. 건물주가 어디에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건물의 관리는 개인에서 한 시로 주체가 넘어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렇게 번영했던 상가의 가게들이 어째서 갑자기 우르르 나가게 됬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건물주가 중간에 바뀌었다던가, 횡포를 부렸다던가, 곧 헐릴 예정이라던가…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너도나도 나가는 모양새라 그 자리가 수맥이라도 왕창 흐르는 모양이라던가, 터가 공동묘지였다던가 하는 소문도 부지기수였다.
물론 그 건물이 폐건물이 된 진상은 아무도 모른다.
“일단 친구분이 걱정되더라도 그 곳에는 가급적 가지 마세요. 사람이 실종되서 전부 사라진다는 건,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을지언정 위험한 곳이니까… ”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
남자가 돌아간 후, 미기야는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 새 출근한 파이로는 남자가 두고 간 폐건물에 대한 자료들을 읽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어딘가에 바쁘게 연락하는가 싶더니, 밖으로 나간 그녀는 에키드나와 함께 돌아왔다.
“어, 파이로는 이런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게로군. ”
“너, 이 건물에 대해 알아? ”
“아아, 꽤 오래 전 폐건물이 되었다던? ”
“응. 아무래도, 이 쪽으로 실종자 중 하나를 찾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온 것 같아. ”
“으음… 그런가…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대신 이 쪽으로 어떻게든 알 것 같은 녀석을 하나 소개해 줄게. …그런데, 누가 오너야? 저 녀석이지? ”
“아아, 어. ”
에키드나는 미기야에게 다가가 책상을 손으로 살짝 두드렸다. 무언가를 한참 생각하던 미기야가 고개를 들자, 그녀는 씩 웃고는 말을 건넸다. 빨려들어갈 것 같은 호박색의 눈이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 인간. 너, 이 의뢰 들어 줄 생각이야? ”
“아무래도 의뢰니까 들어주긴 해야 할텐데, 조금 막막해서요. ”
“호오, 그렇군… 만약 들어 줄 용의가 있다면 이 쪽으로 그래도 도움이 될 만한 녀석을 소개해 줄게. ”
“정말요? 그럼 저야 감사하죠. ”
“좋아, 그럼 들어 줄 용의가 있다는 거지? 잠시만. ”
에키드나가 어딘가로 연락을 하자, 잠시 후 낯선 여자가 나타났다. 까맣고 긴 머리에 마치 보랏빛 장갑을 낀 듯한 여자는, 에키드나를 보고 반가운 듯 인사를 건넸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이마에는 마치 공과 같은, 그녀의 눈과 같은 무언가가 두 쌍이나 더 달려 있었다. 게다가 장갑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실제로 그녀의 수족이었다.
“아, 무라사키. 이쪽이 괴담수사대의 오너야. ”
“처음 뵙겠습니다, 무라사키라고 합니다. ”
“오너, 이 쪽은 무라사키야. 거미 요괴지. 이래뵈도 폐건물 쪽으로는 꽤 박식해. ”
“그렇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유키나미 미기야입니다. ”
마치 거미의 다리를 맨손으로 만지는 듯한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수족은 거미의 팔다리인 모양이지.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
“F시에서 관리하고 있는 폐건물에 대해 알아? 거기에 들어갔다가 실종된 사람들 중에, 이 녀석에게 의뢰를 한 사람의 지인이 있대. ”
“F시에서 관리하는 폐건물이라면… 혹시, F 상가? ”
“응. ”
“그 건물 상가였다가 폐건물 돼지 않았어? 아마 거기 입점해 있던 상가들이 5년 전부터인가 한꺼번에 죄다 빠져나가고 건물주도 생사 불명이라 지금 시에서 관리하는 것일 거야. ”
“…혹시 부동산 전문가세요? ”
“하하, 아뇨 아뇨. 단지 거처를 찾기 위해서 폐건물을 이곳저곳 탐색하다 보면, 거기에 관련된 소문들을 많이 모으기 마련이거든요… 그 건물에서 거주할까도 생각했었는데, 그 건물은 왠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멈칫했지요. …결국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죠. ”
마치 부동산 전문가라도 되는 건지, 그녀는 그 폐건물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것들은 물론 건물의 현재 상태이며, 그렇게 된 시기이며, 모든 것들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라면, 이번 의뢰를 해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건물에 뭐가 있는지는 본 적 없지? ”
“네.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뭐, 사자인 당신이라면 다르겠지만, 우리같이 살아있는 자들은 들어갔다간 죽을 것만 같은 느낌 있잖아요? 웬지, 여기에서 도망쳐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아마도, 뭔가 강력한 존재가 있는 모양이예요. ”
“소문처럼 거기 터가 묘지였다던가…? ”
“단순히 묘지였던 정도가 아니예요. 거기에 뭔가 더 겹쳐져서 시너지를 이루는 것 같은 형태죠. 일단 정찰 겸 해서 한 번 들러보실 생각이라면, 이 쪽이 먼저 가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
무라사키는 파이로를 가리켰다.
“나? ”
“네. 그쪽은 이미 한 번 죽은 몸이니, 두 번 죽을 리는 없겠죠. ”
“…역시 요괴는 요괴로군, 내가 사자인 걸 한번에 알아차리다니… ”
“이 정도는 기본이죠. 꽤 오래 살았으니까요. 혹시 나중에 그 폐건물로 가게 되면, 저에게도 연락 한 번 주세요. ”
무라사키는 미기야에게 연락처를 건네 주고 에키드나와 함꼐 가 버렸다.
“음… 그 녀석의 말대로라면, 너는 몰라도 아마 나는 안전하겠군. 뭔진 모르겠지만 죽은 것에게까지 영향을 주지는 않을 테니, 내가 일단은 그 쪽으로 한 번 다녀 올게. ”
“그럼, 부탁해요. ”
파이로는 예의 그 폐건물로 가기 위헤 F시로 향했다. 한참 F시로 가던 도중에 세베루스를 만난 그녀는, 세베루스와 함께 그 폐건물에 동행하기로 했다. 실종자들이 이승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데, 명계로 오지 않아서 그녀도 찾아갈 참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도착한 F상가는, 간판은 달려 있었지만 도색이나 건물의 꼴을 보자면 누가 봐도 폐건물이었다.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마저도 휑하니 썰렁한데다가, F시가 꽤 번화한 곳임에도 그 건물 주변에는 유독 아무것도 없었다. 보통은 이런 콘크리트 바닥이어도 오래 되어서 틈이 벌어지고 흙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하다못해 잡초라도 자랄 텐데 그런 것조차 없다.
“여기… 웬지 살아있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 같은데요… ”
“그래서, 무라사키 씨가 당신을 먼저 보낸 것일 지도 몰라요. 당신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저도 그렇지만… 그래서 거리낌 없이 이 건물을 드나들 수 있죠. ”
“그렇긴 한데, 딱히 오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
그 말 그대로, 주변에 하다못해 잡초 한 포기도 없는 곳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번, 폐건물을 봐 왔지만 적어도 여태까지 봐 왔던 건물들은 주변에 잡초와 벌레는 매우 가득했다. 그런데 F상가는 잡초는 고사하고 지나가던 새들도 이 건물 위만큼은 비껴서 날아가는 데다가, 안에 시체가 있었다면 분명 꼬여 있었을 파리나 날벌레 떼 조차 보이지 않았다.
부서진 문짝을 열고 들어가니,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건물 밖은 분명 낮이었는데, 건물 안에서 밖을 봤을 때는 칠흑처럼 캄캄한 하늘만이 보였다. 거기다가 전파가 잡히지 않아서 인터넷은 고사하고 통화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저나가 잡히지 않으니 달력과 시계 마저 맞지를 앉는 건지, 날짜와 시간마저 달랐다.
“어라… 분명 밖은 낮이었죠? ”
“그러네요. …전파도 잡히질 않고 있어요. ”
“음… ”
파이로는 핸드폰 화면을 캡쳐했다.
“무라사키에게 보여주면, 뭔가 알 지도 몰라요. 이번에 그 녀석이 제가 먼저 여기에 와 보는 게 좋을 거라고 했거든요. ”
“으음, 그렇군요… 이 건물은 지하 1층에 지상 5층으로 총 6층이라, 둘러보려면 꽤 걸리겠는걸요… 혹시 모르니 안에 있는 것들은 건드리지 마세요. ”
“네. ”
세베루스는 지하와 짝수 층을, 파이로는 홀수 층을 둘러보기로 하고 흩어졌다. 1층 상가에 들어선 파이로는 빈 상가 안을 이곳저곳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게가 있었다는 것도 근처에 떨어져 있는 간판으로나 알 수 있을 정도였고, 유리로 된 창이나 문같은 건 군데군데 깨져 있었다. 그 안에는 의자나 식탁과 같은 집기류들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이 돌탑은 뭐야? ‘
건물 안에는 여기에 있을 리가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산을 오를 때나 자주 보던 돌무더기였다. 누군가가 일부러 쌓아놓은 건지, 각 층의 군데군데 동무더기가 보였다. 파이로는 이것도 핸드폰으로 몇 개 찍어 두었다.
그 다음, 그녀는 반대쪽 상가를 더 둘러보고 3층으로 올라갔다. 그 곳도 황량하기는 마찬가지였던 데다 낯선 돌무더기 같은 것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1층과 달리, 그 곳에는 알 수 없는 천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쪽에는 한때 사람이었던 무언가가 보였다.
“더럽게 악취미로군, 이런 거 모으나… ”
아마도, 실종된 사람들 중 일부가 이렇게 된 모양이군. 그녀는 다른 방을 더 둘러보기 전에 그 곳도 사진으로 기록했다. 5층도 마찬가지로, 무언가의 잔해와 돌무더기들이 한가득 있었다. 조사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 온 그녀는, 아까부터 내려와 있었던 세베루스와 만났다.
“뭐 좀 발견하셨나요? ”
“온통 돌무더기 투성이예요. 게다가 3층과 5층에는 이런 것들이 잔뜩… ”
“저도 4층에서 그런 것들을 발견했어요. ”
세베루스가 보여준 것은, 4층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뼈같은 것을 천으로 이어 만든 듯한, 사람 모양의 인형 같은 것이 잔뜩 있었다. 크기가 비슷한 것들도 여러 개 있었고, 조금 작은 것들도 있었다. 무언가로 천장에 매달아 둔 것 같은, 기괴한 모양의 장식이었다.
“대체 이건… ”
“아무래도, 무라사키 씨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요. ”
“…… 그런 것 같네요. 일단 사무실로 가서 무라사키 씨를 만나죠. ”
두 사람은 폐건물을 나왔다. 아까 건물 안에서 봤던 것과 달리, 창 밖은 여전히 낮이었다. 하지만 전화기는 여전히 전파가 닿지 않았을 뿐더러, 날짜나 시간 등은 여전히 제멋대로였다.
“안에 있는 녀석이 장난이라도 치는 모양인가… ”
“잠시만요. ”
잠시 눈을 감은 세베루스는, 이내 눈을 떴다. 그리고 파이로에게 전화기에 있는 사진들을 전부 지울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건물 내부의 무언가가 두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 주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세베루스의 말대로, 두 사람이 핸드폰에 있는 흔적을 전부 지우자 그제서야 핸드폰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지금이 밤이었던가요… ”
“저녁 일곱 시면 밤 맞아요. 일단 사무실로 가죠. ”
두 사람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미기야는 막 저녁을 시켜 먹으려던 참이었다. 그는 파이로와 같이 온 세베루스에게 인사를 건네고, 이리저리 쌓여 있는 배달 메뉴펀에서 저녁거리를 고르고 있었다.
“네 명 분 시켜, 무라사키도 불러야 돼. ”
“…네? ”
“그 건물, 뭔가 이상했거든… 세베루스 씨는 가다가 만났고. 자세한 건 무라사키까지 오면 설명해 줄 테니 일단 무라사키부터 불러. ”
“아, 네. ”
파이로가 무라사키에게 전화를 걸자, 이내 그녀가 사무실로 왔다. 파이로는 오자마자 그녀에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우리는 다 골랐는데, 넌 뭐 먹을려? ”
“음… 전 불고기덮밥으로 해 주세요. ”
“오케이. 미기야, 정식 셋에 불고기덮밥 하나. ”
“네~ ”
주문을 마친 미기야가 테이블에 앉았다.
“건물은 다녀오셨나요? ”
“갔다 오기는 갔다 왔지. 참, 이 쪽은 세베루스 씨야. 명계에서 근무중인데, F상가에 가다가 만났어. ”
“그렇군요. 무라사키라고 합니다. 그런데, 명계에서 근무중인 분이 어쨰서 여기에 오셨나요? ”
“최근에 이승에서 없어진데다 명계에서조차 서류 처리가 되지 않은 인간들이 있어요. 알아보니 그 인간들의 마지막 행선지가 F상가라고 해서, 한 번 가 보려던 찰나였어요. ”
“그러시군요… ”
파이로는 무라사키에게 건물에 들어갔을 때의 일과 그 안에서 본 것들을 전부 얘기했다. 수수꼐끼의 돌무더기와, 갑자기 바뀌어 버린 날짜며 시간이며, 사진을 지우지 않았더니 그 기현상이 건물을 나갈떄까지 계속일어났었던 것. 게다가 다른 폐건물과 달리 살아있는 것들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던 것과 세베루스가 봤언 인간 모양의 무언가까지. 그리고 그녀는 뭔가 짚이는 데가 있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그 건물에 제가 아는 녀석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
“뭔가요? ”
“그 녀석이 있는 곳에서, 무언가를 수색하는 건 조금 힘들어요. 왜냐하면, 그 녀석이 있는 곳은 그 녀석의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죠… ”
마침 주문한 음식이 오자, 네 사람은 이야기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각자 주문했던 메뉴를 받아들었다. 덮밥을 받아 수저로 몇 번 비빈 무라사키는, 밥을 한 숟가락 퍼서 입에 넣고 우물거였다. 그리고 밥이 어느 정도 넘어갔을 무렵,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저와 같은 동류인 녀석 중에는,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 한해서 조작이 가능한 녀석이 있어요. 그 녀석의 이름은 데스 애더, 즉 죽음을 가져오는 자… 우리와 달리 인간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아요. 그 녀석이 언제부터 이 상가에 발을 들이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녀석이 거처를 그 곳으로 정한 후 그 곳에 입점했던 상인들이 전부 나가게 됐을 확률도 있죠. ”
“그럼 그 녀석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요? ”
“아예 없어요. 존재를 먹어치우는 녀석이 온다 하더라도, 그 녀석이 공간을 조작해버리면 그걸로 끝이니까… ”
“그럼 그 건물의 돌무더기나 파편은… ”
“제가 전에, 당신이 먼저 가 보는 게 좋을 거라고 했었던 거 기억 하시죠? 거기다가 두 분이 그 건물의 밖으로 갔을 때, 살아있는 것들이 죄다 비껴가는 것 같았다고도 했고요… 다른 건물과 달리 잡초가 없었던 것도 있고… 그건 그 녀석이 그 건물 안 뿐 아니라, 바깥의 일정 범위까지 거미줄을 쳤기 때문이에요. ”
“그럼 영역이 더 커지게 되면… ”
“아마 무고한 사람들도 죽을 수 있겠죠. ”
무라사키는 단무지를 와그작, 씹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마 제가 여기 오지 않았고, 그래서 오너가 먼저 갔더라면 두 분처럼 멀쩡히 나오지는 못했을거예요. 그 녀석의 거미줄은 거처 전체에 깔려 있어서, 살아있는 것이 발을 들이기만 해도 민감하게 반응하거든요. 세베루스 씨가 봤던 그 인형의 재료는… 사실, 인간의 뼈예요. 그 녀석이 먹다 남긴 인간의 뼈죠… ”
“…… ”
“하지만 죽은 자라면 명계에 와야 정상인데, 그 사람들은 완전히 생사가 불명이었어. ”
“데스 애더에게 잡히면, 그 혼조차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버려요. 아마 세베루스씨가 봤던 인형의 재료는 실종된 사람들일 거예요. 그리고 그들의 혼은 그 안에 있을 거고요… 아마 그 녀석이 놓아주지 않는 이상 계속이요. 그러니까, 죽었으되 죽지 않은 상태가 되는 거죠. ”
“인간을 싫어한다면서 어째서 인간들이 잔뜩 있는 상가에 발을 들였을까요…? ”
“그것도 이상하네요… ”
“그럼 그 안에 있던 돌무더기는 뭐야? ”
“일종의 덫이죠. 거미줄에 걸린 것이, 허투로 걸린 것일 떄도 있고 먹이일 때도 있어서 거미들은 그것을 거미줄을 흔들어서 구분해요. 하지만 그 녀석의 방식은 조금 다르죠. 거미줄 주변을 지나는 자라면, 살아있다 고는 해도 기척이 금방 사라질 테지만 제 발로 거처 안에 발을 들였다면 돌무더기들 중 하나 정도는 건드리게 되어 있거든요. ”
“그런가… ”
파이로와 세베루스는, 들어가서 둘러볼 떄부터 안에 있는 어떤 것에도 손대지 않기로 했었다. 만약 파이로나 세베루스가 돌무더기에 손을 댔다면, 아마도 이 시간에 여기에 있기는 힘들었을 듯 하다.
“그럼 파훼법 같은 건 전혀 없는 건가요? ”
“그 건물 안을 수색하려면 데스 애더의 거미줄을 전부 끊고 거처에서 내보내는 수밖에는 없어요. 거미줄을 끊지 않고 그대로 들어 갔다간 살아있는 자들은 죽을 거고,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 녀석의 능력때문에 안에서는 제대로 된 것을 인식하기가 힘들어요. ”
“거미줄을 끊는다라…… 그럼 어떻게 하면 그 가미줄을 끊을 수 있나요? ”
“그 녀석도 어쨌든 요괴니까, 부적같은 것에 약하죠. ”
“파이로 씨가 불을 붙이면 되겠네요. ”
“안타깝지만, 데스 애더의 거미줄은 혼불같은 것으로는 끊어지지 않아요. 오히려 더 튼튼해지죠… ”
보통의 거미줄은 불에 타는데다가 매우 가늘고 약해서 빗자루로도 끊어낼 수 있지만, 거미 요괴의 거미줄은 다르다. 그것을 끊어낼 수 있는 것은 부적 뿐인데다가, 죽은 자의 혼불로는 오히려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것.
“미기야, 부적 좀 써 놔라. ….지하부터 지상까지 붙이려면 한 백몇장은 써야겠구만… ”
“혹시 당신이 부적술사신가요? ”
“네, 제가 부적을 좀 씁니다. …그런데 그 정도 분량은 단시간에 쓰기는 힘들어요… 종이도 모자라고. ”
“일단 그렇게 많은 양은 필요 없어요. 건물 전체를 도배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거미줄을 끊을 거니까요. 일단, 그 곳에 가게 되면 건물 바깥의 거미줄부터 끊어낸 다음 안으로 들어가서 각 층별로 끊어낼 거예요. 그러면 그 녀석도 거처에서 나올 거고요. ”
“좋아, 그럼 시작하자. 부적 몇 장 쓸 수 있냐? ”
“음… 백몇장은 안 돼도 스무 장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네요. ”
“어이, 그 정도면 충분하지? ”
“네. ”
“좋아. 내일 그 건물로 가서, 거미줄을 전부 끊어버리자. ”
다음날, 파이로는 미기야와 무라사키를 데리고 F상가 앞으로 갔다. 여전히 주변에는 살아있는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라사키는 건물 주변을 휘 둘러보곤, 돌멩이를 집어들어 땅바닥에 표시를 했다.
“제가 표시한 부분이 거미줄이 이어진 부분이예요. 일단 이 부분을 먼저 끊어야 당신이 들어갈 수 있어요. 부적은 이렇게 쓰시면 돼요. ”
미기야는 무라사키가 표시한 부분에, 무라사키가 가르쳐 준 문양을 돌멩이로 적었다. 그러자 무언가 실이 틱, 하고 끊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제 느꼈던 알 수 없는 위화감은 줄어들었다.
“휴우… 이제 들어가자. ”
“이 건물은 지하부터 지상까지 총 6층이예요. 일단 이 곳에 거미줄이 이어져 있다면 지하에는 따로 줄을 치지 않았을테지만… 혹시 모르니 안으로 들어가면 지하 층부터 둘러봐요. ”
“네. ”
건물 안으로 들어간 세 사람은, 지하로 내려 가는 통로를 찾았다. 군데군데 거미줄이 껴 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지하 주차장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 본 무라사키는 이 곳에 그 녀석의 거미줄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럼 이제 이 층 한정으로는 뭔가를 찾을 수 있는 건가…? ”
“네. 그리고 이 층에 한해서는 데스 애더도 영향을 끼치지 못 할 거예요. ”
“다행이군… ”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니, 어제와 달리 황폐하지만 꽤 정리는 달 되어 있었다. 집기류 하나 없이 빈 곳들 투성이였던데다, 돌무더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돌무더기가 있던 곳에는 군데군데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 이미 죽은 듯 한데… ”
“…… 그럼 의뢰인의 친구분도 죽었을 수 있겠네요… ”
“아마도. ”
“…… 일단 2층으로 올라가죠. ”
그렇게 2층에서 4층까지 차례차례 거미줄을 끊어 가자, 돌무더기가 있던 곳에는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하나같이 어제는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4층까지 거미줄을 다 끊었을 때, 무라사키는 미기야에게 세베루스와 에키드나를 부를 것을 지시한 뒤 5층에 파이로만을 데리고 올라갔다. 5층으로 올라가는 순간, 아까와 달리 어제 봤던 이상 현상이 또 다시 발생했다.
“그런데, 이 층은 왜 거미줄을 끊지 않는거야? ”
“그야, 그래야 데스 애더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녀석을 만나서 어떻게 된 일인지 먼저 들어봐야 할 것 같아서요. 이 층의 거미줄은 그 다음에 끊어도 늦지 않아요. ”
“…… ”
“여기 어디쯤 있을 거예요. 녀석이 실제로 지내는 곳은 거미줄이 마치 방처럼 되어 있거든요. ”
“너도 그렇게 집 짓고 사는거야? ”
“그렇죠, 뭐. …저기 있네요. ”
무라사키가 가리킨 곳은, 대형 음식점이 있었던 자리였다. 꽤 널찍한 공간이었지만 역시나, 집기류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 주변에는 동무더기고 뭐고 없어서 그녀가 어제 그냥 지나쳤었다.
“응? 집 앞에는 의외로 덫이 없네? ”
“그 녀석은 집 근처에 누가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 마침 저기 있네요. ”
무라사키가 가리킨 곳에는 약간 헝클어진 까만 머리를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도 무라사키처럼 수족이 거미의 것이었지만 색깔은 무라사키와 달리 매우 까맸다. 두 사람을 보고 있는 그녀의 동공은 마치 소용돌이 치듯 했고, 그녀의 두 눈은 마치 핏빛으로 물들어버린 듯 붉었다. 까만색 옷을 입고, 그녀는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니가 여기 집 주인이냐? ”
“……무라사키? 당신이 여기는 어떻게 알고…? ”
“당신때문에 사람들이 대량으로 죽어버렸잖아요. 여기서 당신 떄문에 죽어버린 사람들의 지인 중에, 괴담수사대에 의뢰를 한 사람이 있어요. ”
“…… 귀찮게 됐군. 또 인간이라니… ”
“어이, 어이. 난 널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무라사키를 데려 왔겠냐? 그리고 이 몸은 이미 한번 죽은 몸이다. ”
“…… ”
그녀는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것을 내려놓았다. 나무를 깎아 만든 블록 같은 것이었다.
“그것도 뼈는 아니겠지… ”
“뼈다귀 수입엔 취미 없어. 이건 그냥 나무로 만든 주사위야. ”
“그럼 이 층에 널어둔 뼈다귀는 다 뭐야? ”
“남의 집에 불법 침입한 인간들이겠지. ”
“…… 전혀 설득력이 없어…… 수집에 취미 없다며… ”
“응, 수집을 하지 않을 뿐이지 남의 집에 무턱대고 쳐들어오는 침입자는 사양이라 말이지. ”
말이 안 통하는 놈이군. 파이로는 양 쪽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데스 애더 씨. 이 사람은 당신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어요. 오히려 당신이 협조만 잘 해 주신다면, 당신을 도와 줄 수도 있는걸요? 아마, 새 거처를 마련해 주실 수도 있을 걸요? ”
“거처? 정말 거처를 마련해 주는 거야? ”
“음…… ”
거처라는 말에, 뚱한 표정으로 응하던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이 쪽을 바라봤다.
“너 집이 필요한거였냐… ”
“사실, 여기에 거주하려고 줄을 치긴 했지만… 여기 뜻하지 않은 동거인이 있어. 그 인형을 만든 건 동거인의 짓이야. ”
“동거인…? ”
“응. 난 뼈를 모으는 데는 취미가 없다고… ”
“그럼, 그 동거인은 어디에 계세요? ”
“그 녀석, 덫이 있는 곳에만 나타나서 말이야… 잠깐만. ”
그녀가 돌무더기를 쌓아 올리자, 검은 안개같은 것이 피어 올랐다. 사람의 형태를 띠고는 있지만 사람은 아닌 무언가였다. 그것은 마치,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림자와 같았다.
“…동거인…? ”
“응. 뭔가를 기다리는 모양이던데… ”
“대체 저건 뭐죠? 데스 애더 씨는 저것과 얘기를 할 수 있나요? ”
“음… 아, 잠깐만. ”
그녀가 검은 형체를 향해 무어라 말을 건네자, 검은 형체는 사람의 형태로 변했다. 중년의 여자와 같은 형태의 그것은, 상반신은 인간이었지만 하반신은 보이지 않았다. 많이 맞았던 모양인지 그녀의 온 몸은 멍투성이였다.
“당신은 누구신데 이 건물에 계신 거죠? ”
“…내가 보인단 말이죠?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
“부탁을 들어준다면, 명계로 곱게 돌아간다고 약속하면 들어 주지. …아, 니가 지금까지 사람 죽인 만큼 벌은 받겠지만… 그래, 무슨 부탁인데? ”
“이 건물의 건물주를 찾아 주세요. 부탁이예요. ”
“건물주를… 찾아달라고? 이미 실종된 사람을 어떻게 찾아? ”
“…… 또 어디로 날른 모양이군… 우리 남편을 그렇게 등쳐먹고… 내 돈을 그렇게 먹고!! ”
“…날라? 뭐야, 그 놈이 사기라도 친 거야? ”
“그래요… 이 건물은 우리 남편과 나를 등쳐먹은 돈으로 지은 거라고요… ”
“…… 그놈 사기범이었냐… 근데, 굳이 그거 아니어도 이 건물 되게 소문이 안 좋아서 철거될 거 같은데. 굳이 니가 더 움직이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복수에 성공한 셈이 되겠지. ”
중년 여자의 형체는 갑자기 미친 듯이 깔깔 웃었다. 무언가가 해결된 듯, 시원한 웃웃음이었다.
“…뭐여? ”
“속이 너무 시원해. 그래도… 내가 원하는 결말은 아니지만, 너무 속이 시원해. 우리 남편과 나를 등쳐 먹은 이 돈으로 지은 건물이 그렇게 오래 갈 줄 알았나 보지? 나는 지금까지… 지금까지 그 녀석이 다시 돌아오기 만을 기다리면서 이 곳에 있었어. 왜냐하면 그 녀석에게 처절한 복수를 해 주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이 녀석이 들어오게 되면서 상가가 망하고, 사람들도 빠져 나가고, 다시 집세가 들어오지 않게 되니까 건물주 놈이 다시 나앉게 된 거지. 속이 시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날려 먹은 내 돈이 돌아오지는 않아요. ”
“그야 그렇지. ”
“그 녀석은 원래 이 건물을 팔고 다른 곳으로 갈 예정이었어. 그런데 나와 이 녀석이 살게 되면서 흉흉한 소문이 퍼지니까 아무도 안 오게 된 거지. 뼈다귀를 묶어서 만든 그 인형은, 내가 만든 거라우. 더욱더 흉흉한 소문이 퍼져서 아예 이 건물이 부서져 버렸으면 했거든. 그런데 이제 이 건물까지 철거한다고 하니, 속이 다 시원해… ”
“…… 당신,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여기로 끌어들이신 거예요? ”
“우리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어. 흉가 체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 발로 온 것 뿐… 그 사람들을 죽인 게 죄라면, 저승에서 달게 받으리다. 이제 복수에 성공했으니 여한이 없어. ”
“뭐, 죄는 죄지… 어이, 데스 양반. 줄 우리가 끊을까, 니가 집 철거할래? ”
“뭐… 이제 이 곳이 부서진다면, 다른 거주지를 알아봐야겠지. ”
그녀는 미련 없이 거미줄을 끊었다. 그와 동시에 파이로가 본 것은, 목을 매고 죽은 중년 여자의 시체였다. 죽은 지 오래 된 모양인지, 시체는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지 못 했다. 그 주변 돌무더기들은 전부 사망한 사람들이었지만, 딱 한 명… 기절한 듯한 사람이 있었다.
“이 녀석이 그 지인인가… ”
그의 주변에는 가방, 그리고 수첩과 녹음기가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취재하면서 먹을 요량이었는지 샌드위치도 들어 있었다. 쓰러진 지 얼마 안 돼 보였지만, 샌드위치는 부분부분 곰팡이가 슬어 버린 뒤였다. 파이로는 쓰러져 있는 남자를 데리고 건물 바깥으로 나온 다음, 구급차를 불러 남자를 병원으로 옮겼다.
“그럼, 이제 이 녀석의 거처 문제인데 말이지… ”
“거…거처요? ”
“어. 수사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거처를 마련해 주기로 했거든. ”
“으음…… 사무실은 거미줄 치기 썩 좋은 조건이 아닌데요. 그리고 애더 씨가 거기에 줄을 쳐 버리면 손님들이 올 수가 없다구요! ”
“거미줄 안 치면 되잖아. ”
“…줄 안 쳐도 돼요? ”
“저희같은 거미 요괴들은 외진 곳에서 살 때만 줄을 치지, 인간과 어울려 지낼 때는 따로 줄을 치지 않는답니다. ”
“그럼 다행이군…… 당분간은 사무실에서 지내세요… ”
“정말 거처가 생겼다! ”
한숨을 푹 쉬는 미기야와 달리, 데스 애더는 파이로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런데 저 건물주 녀석, 대체 어디로 사라진걸까? ”
“아마 사기죄로 지명수배 돼 있다면 다른데로 도망쳐서 또 범죄를 계획하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
“끔찍하군요. …사망자들 처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
“아아, 일단 애더 씨의 거미줄이 없어져서 명계에서 서류 처리만 하면 될 거예요. …그러니까 위험한 곳에는 발을 들이면 안 된다니까요… ”
“그러게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