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눈을 떠 보면 낯선 문자가 와 있었다. 발신자도 명확하지 않은 수수깨끼의 문자는, 발신자가 누구인지도 밝힐 수도 없을 뿐더러 번호를 바꾸거나 핸드폰읋 해지해도 어떻게 해서든 문자가 날아왔다. 즉, 정상적인 경로로 보내지는 문자가 아니었다. 거기다가 문자는 괴상한, 마치 문자가 깨져버린… 혹은 키보드를 아무렇게나 누른 듯한 것이어서 내용 자체를 읽을 수도 없었다. 물론, 처음에 온 문자만이 그랬다. 이후로 오는 문자들은 점차 사람이 읽을 수 있는 문자로 오기 시작했다.
이 문자를 받는 이가 누구인지, 보내는 이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다만, 문자를 받은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니터 뒤에서 누군가를 조롱하고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려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것…
“휴우, 요즘 이상한 문자 떄문에 다들 난리군. ”
“이상한 문자? ”
“응. 몇몇 사람들이 이상한 문자를 받았는데, 그 문자는 글자도 죄다 깨진 것 같고 완전 엉망인데다가 누가 보내는지 알 수도 없고, 번호를 바꾸거나 핸드폰을 정지시켜도 문자가 온다는거야. 대체 어떤 녀석이 그런 짓을 하는지 원… ”
“글쎄, 핸드폰으로 그런 문자가 무작위로 가는 거라면… 괴이의 짓일 수도 있겠지. ”
괴담수사대에서도 예의 그 문자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자를 받고 있는 어느 누구도 괴담수사대로 의뢰를 하러 오지는 않았다. 그 문자를 받은 사람이 의뢰를 하러 왔다가, 사무실 앞에서 피를 토하고 죽어있는 것을 파이로가 목격했던 것으로 보아, 정확히는 의뢰를 하러 올 수 없는 억지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파이로, 저번에 사무실 문 앞에 쓰러져 있던 사람은… ”
“이미 죽은 지 반나절은 된 모양이던데… 아, 그 녀석… 이런 걸 들고 있긴 했어. ”
파이로가 내민 것은, 사무실 앞에서 쓰러져 죽은 사람이 들고 있던 종이 뭉치였다. 그 동안 왔던 수수께끼의 문자를 정리해 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알 수 없는 문자들의 나열로 오던 문자가, 점차 읽을 수 있는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윽고 하나의 문자 메시지로서 기능하기 시작한다.
키츠네는 파이로가 건네 준 서류 뭉치를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발신인은 누구인지도 모르고, 보내는 사람의 이름에는 그냥 ‘Rimen(이면)’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문자가 깨져 가는 부분은 대충 넘겨서 읽고,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부분부터 읽기 시작했다. 문자는, 누군가에게 내리는 지시문과 그것을 이행했음을 확인하는 문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건 대체… ”
“발신인이 뭔가에게 지시를 내리고, 그것을 이행했음을 확인하는 문자들로 이루어져 있어. 지시라고 해봤자 별 것 없지만… ”
“이건 괴이의 짓이 아니야. 다른 누군가가 저지르는 범죄지… 괴이들은 문자를 보낼 수는 있어도, 문자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나 지금 뭘 하는지에는 관심이 없어. 그 녀석들은 그냥 문자를 타고 ‘돌아다니는’ 그 자체를 즐기거든. 그런데 이건… ”
“아무래도 우리 쪽에서 나서봐야겠지? ”
“아무래도가 아니고 그래야 할 각인데. ”
파이로가 수수께끼의 문자에 대해 조사할 동안, 수수께끼의 문자는 점점 더 확산되기 시작했다.
“어, 미영아. 너 요즘 전화 안 되던데, 성적 떨어졌다고 엄마가 폰 정지시켰냐? ”
“아니… 요즘 이상한 문자가 와서, 내가 정지시켜 달라고 했어. ”
“이상한 문자…? ”
“응. 이거 봐봐. ”
핸드폰에는 글자가 깨져버린 듯 한 이상한 문자들이 보였다. 하루 걸러 하나씩 꼬박꼬박 문자가 왔지만, 발신인 란에는 번호같은 것도 없이 Rimen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내가 이것때문에 저번주에 정지시켰거든. 그런데 계속해서 이 문자가 와. 그리고 요즘은… ”
글자가 깨져가던 문자들이 이제는 단어, 그리고 문장을 이루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 가지를 지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행 완료라는 문자까지.
“뭐야, 이거…? 설마… ”
“뭐야, 너 이거 알아? ”
“요즘 소문으로 떠도는 거 있잖아. 이런 문자… 너 말고도 이전에 받은 사람들 많을걸? 이것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대. ”
“죽은 사람이 있다고? ”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죽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 들었어. 아직까지 나한테는 그런 거 온 적도 없고… ”
수수께끼의 문자를 받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미영의 주변에도 그런 문자를 받는 사람이 우후죽순이었다. 아직까지 그녀의 주변에서는 없었지만 죽은 사람도 있다니, 정말 끔찍하다. 과연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을까, 그것도 궁금했지만 그녀는 Rimen에게서 문자로 날아온 지시를 이행해야만 했다.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크리스탈 보이즈의 기사에 악플을 달라는 지시 아닌 지시.
“대체 왜 내가 이걸 해야 하는 거야… 하- 무슨 잘못을 했다고… ”
한편, 파이로는 애시와 함께 수수께끼의 문자에 대해 조사중이었다. 파이로와 달리 핸드폰 속에서 이것저것 조회해 볼 수 있는 애시라면 뭔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애시 역시 발신인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 했다. 애시조차 알지 못 하는 발신인이라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단 말인가. 파이로가 머리를 싸매고 있을 무렵, 그녀의 눈앞에 이클립스가 나타났다.
“아, 그 녀석은 오늘도 비번? ”
“동물 관련된 의뢰가 안 들어와서. ”
“흐-음… 그런가… ”
“코우기 건으로 온 거면, 우리가 그 녀석이랑 같이 뛸 때 부를게. ”
“그 편이 낫겠네… 이건 뭐야? ”
이클립스는 책상에 놓인 종이 뭉치를 집어들어 읽었다.
“요즘 수수꼐끼의 문자를 받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 문자에 대해서 여기로 의뢰를 하러 왔다가 죽은 녀석이 있어. 게다가 이 분자, 애시조차 발신인이 누구인지 파악할 수 없고… ”
“문자가 깨져서 알 수 없겠는데… ”
“처음에는 그랬는데, 뒤로 갈 수록 제대로 된 문자가 오던데. 이거 봐. ”
“어, 그러네. 보자… ㅇㅇㅇ의 기사에 악플을 다세요, ㅇㅇㅇ@ㅇㅇㅇ.ㅇㅇㅇ에게 죽어라고 메일을 보내세요.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에게 죽어라고 문자를 보내세요… 뭐야, 이거? ”
“키츠네 말로는, 단순 괴이의 짓은 아닌 것 같다는데 대관절 뭐가 뭔지 모르겠단 말이지… ”
“애시가 발신인을 못 찾는다는 건… 보낸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얘기 아냐? ”
“이 세상에 없다고? ”
“응. 요컨대, 주소는 존재하지만 조회가 되지 않는 것 말이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애시가 나를 먹어치우지 못 하는 이유도, 내 하반신이 허수 공간에 있기 떄문이거든. ”
“그럼 발신인을 아예 못 찾는 거냐… ”
“발신인 말고, 발신지를 찾아. 조회가 되지 않다 뿐이지, 주소 자체는 존재할 거 아냐. ”
“발신지라… 알겠어. ”
이클립스가 돌아간 후, 파이로는 애시에게 이클립스의 말을 전했다. 발신인이 아닌 발신지를 찾으라는 말을.
“발신인이 아닌 발신지? ”
“그 녀석 말로는, 보낸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 그러니까, 보내는 지역은 존재하지만 조회가 되지 않는?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데? ”
“으음… 문자가 시작되는 장소라면… 좋아, 한번 해 보자. ”
애시는 다시 핸드폰 안으로 들어가, 문자의 발신지를 찾았다.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나도 애시는 나오지 않아서, 파이로는 핸드폰을 책상에 두고 과자를 사러 나갔다. 잠시 후 비닐봉지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가던 파이로는, 창백한 얼굴의 여자를 만났다. 이마에 작은 뿔 두 쌍이 난, 까만 머리를 흩날리고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존재 자체가 이질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여기 볼일 있수? ”
“아, 너 혹시 여기 살아? ”
“그런데. ”
“거기 애시 리스트로베라라고 있지? ”
“어. ”
“걔가 불러서 왔는데, 문 여는 법을 모른다네. ”
“그러냐… ”
파이로가 그녀와 함꼐 사무실로 들어서자, 애시는 그녀를 반겼다. 역시 아는 사이인 모양이군, 파이로가 과자 봉지를 뜯어 하나를 집어 먹으려던 찰나.
“발신지 찾았어. ”
“정말? ”
“응. 일단 발신지는 G 사거리 근처야. ”
“G 사거리라… ”
그 곳은 몇주 전, 어떤 사람이 자살을 했던 곳이었다. 그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나갔던 파이로는 사건 현장을 그녀의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투신자살이었다. 뛰어 내려버린 사람을 둘러 싸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길 잠시, 경찰이 와서 현장을 감식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람은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사망… 투신자살을 선택한 사람은 얼마 전 컴백했다던 여가수였다.
“…그럼 이 녀석은 대체 누구야? ”
“뭐야, 너 내 얘기 안 했냐… ”
“둘이 같이 들어올 줄 몰랐지. 이 쪽은 파이로, 괴담수사대에서 지내고 있어. 혼불을 사용하지… 그리고 이쪽은 라이시엔. 리치야. ”
“리치? 그럼 너도 나랑 같은 부류인 건가? ”
“뭐, 그런 셈이지. 혼불은 못 쓰지만. ”
“리치가 혼불까지 쓰면 그건 사기 아니냐… ”
“뭐, 잡담은 이만 하고… 그럼, 그 문자가 발신된 곳은 G 사거리의 빌딩이라는 거지? ”
“응. 문제는 발신자를 찾을 수 없다는 거지만… 그래서 라이시엔을 부른 거야. 라이시엔은 죽은 자에게만 먹히는 주술을 사용하거든. 즉, 발신자가 살아있는 사람이거나 괴이라면 라이시엔의 주술이 먹히지 않겠지만 죽은 사람…원귀나 원한같은 거라면 라이시엔의 주술이 먹힐 수도 있다는 얘기지. ”
“그런가… 좋아, 일단 현장으로 가 보자. ”
미영에게 오는 문자는 여전히, 하루에 하나씩 오고 있었다. 게다가 문자는 마치 진화라도 하듯, 문자가 보내는 지시사항의 정도도 더해지고 있었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어떤 내용을 보내라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신체를 자르고, 타인을 상처입히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요즘 미영이가 안 보인다… 연락도 안 되고. ”
“어, 걔 무슨 문자때문에 핸드폰 정지했다던데. 너 몰랐어? ”
“정말? ”
“정지한지 꽤 됐어. 그래도 학원은 꼬박꼬박 나오던 애가 웬일이래… ”
급기야는 학원에 며칠 째 나오지도 않자, 걱정이 된 친구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학원에서 미영의 집 연락처를 받아 전화했다. 한참동안 신호음이 가더니, 수화기 너머로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거기 혹시 미영이네 집인가요? ”
“네, 그런데요. ”
“안녕하세요, 저 미영이 친구 채희인데… 요즘 미영이가 학원에 안 나와서, 걱정 돼서 전화 드렸어요. ”
“그렇…구나… ”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한참동안 침묵이 이어지더니, 이내 다시 통화를 이어간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지금 미영이가 몸이 좀 아파서, 학원에 나갈 수가 없거든… 미영이한테 친구가 전화 했었다고 전해줄게. ”
“감사합니다~ ”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병까지 난 건지, 그녀는 영문을 몰랐다. 혹시 그 수수께끼의 문자 때문인걸까, 만약 그렇다면 단순히 아픈 정도는 아닐 테지만, 그녀로서는 이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벌써 학원에 안 나온 지 사흘 째, 그녀로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 지 걱정하기만 할 뿐, 그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파이로는 애시, 라이시엔과 함께 문자의 발신지인 G 사거리의 대형 건물로 왔다. 사건이 있은 지도 벌써 몇 주, 사건 현장은 없어져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의 핏자국만이, 이 곳에서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인가… 하지만 발신지가 이 곳인거지, 발신자가 누구인지는 몰라. ”
“그걸 이제 찾을 거야. ”
라이시엔은 주머니에서 하얀 종이를 꺼냈다. 마치 정교하게 하나하나 잘랐을 법한 종이는, 사각형으로 보이는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것을 몸체로, 길다란 꼬리같은 것이 늘어서 있는 종이가, 라이시엔의 주문 한 마디에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
“근처에 뭔가 있어. ”
종이는 빠른 속도로 건물 옥상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라이시엔이 다시 날개 모양으로 자른 종이를 꺼내자, 그녀의 모몸이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파이로의 손을 잡고 길다란 종이가 있는 옥상으로 날아 갔다. 미칠듯한 속도로 올라갔던 종이는 무언가를 단단히 휘감고 있었다.
“!!”
“대체 여긴 어떻게 뚫고 들어온 거야? 보통 건물 옥상은 폐건물이 아니면 막혀 있을 텐데? …그나저나 어째서 살아있는 인간을 휘감고 있는 거냐, 이거? ”
“음… 인간을 잡아 챌 리가 없는데. 아무래도 이 인간, 뭔가에 씌인 것 같다. ”
그녀의 말 대로였다. 종이를 어떻게 해서든 잘라보려고 애쓰면서, 그녀는 옥상 가로 다가가고 있었다. 마치 일부러 떨어지려는 것처럼. 그리고 종이는 그런 인간을 반대쪽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라이시엔이 똑같은 종이를 하나 더 꺼내자, 그것은 이미 사람을 휘감은 종이와 합세해 이미 휘감긴 사람을 완전히 이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 종이는, 인간이 아닌 것이 자를 수 없다. 하물며 인간의 몸을 빌린다 한들, 네 녀석이 언데드라면 자를 수 없는 건 당연지사. 순순히 그 안에서 나오지 않으면, 잡아서 태워버린다. ”
여전히 종이를 잡아 찢으려는 인간에게, 라이시엔이 일갈했다. 그러자 그것은 종이를 찢으려고 시도하는 걸 멈추고, 셋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목뼈롤 꺾어버릴 듯한 기세였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죽여버리고 말 기세였다. 그것은 팔다리를 나사처럼 비틀고, 목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미쳐 날뛰고 있었다.
같은 시각, 미영의 엄마는 미영이 갑자기 사라져 경찰에 신고를 하려던 찰나였다. 전화기를 책상에 올려둔 채로, 그리고 그 옆에는 편지가 하나 더 있었다. 펼쳐 보니, ‘난 널 믿었는데, 넌 날 그 하잘것 없는 손가락으로 죽였어. 이제 니 차례야. ‘라는 말만 적혀 있었다. 미영의 엄마는 그 편지를 들고 괴담수사대로 갔다.
사무실에 들어선 미영의 엄마는, 편지와 미영의 핸드폰을 보여 주고 미기야에게 미영을 찾아 달라는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미기야는 파이로에게 연락해, 파이로와 대치 중인 인간이 미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그 길로 파이로가 있는 건물로 향했다. 미기야가 건물 입구에서 올랴다 보니, 까만 형채가 온 몸을 이리저리 뒤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까만 형체를 휘감은 하얀 무언가도 보였다.
“어, 우리 쪽에서 사람이 온 것 같은데. ”
“그런가. …저 종이들은 내가 멀어지면 저 녀석을 붙들고 있을 수 없어. 일단 건물의 꼭대기 층으로 올라오게 해. ”
“아, 어. ”
파이로는 미기야에게 일단 건물 꼭대기 층으로 올라오게 지시한 다음, 가윗날로 옥상 문을 잠근 자물쇠를 부숴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본 것은, 막 건물 입구를 올라온 미기야가 아닌 여러 명의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10~20대는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마치 좀비마냥 무리지어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 뒤로 미기야가 보였다.
“대체 이게 무슨… 이 사람들, 다 뭐예요? ”
“나도 궁금하다. 니가 좀비 부리는 줄 알았지. ”
“전 그 쪽으로는 젬병이라서요. ”
무리지어 올라온 사람들 역시 옥상으로 향했다. 마치 레밍처럼 줄지러 뛰어내리려는 듯 했다.
“이건 저것들로 막기엔 역부족인데… 어쩔 수 없군. 라흐무- ”
그녀의 뒤에, 까만 종이가 생겨났다. 사람의 얼굴 하나 정도는 되어 보이는 종이에는 눈과 입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길다란 꼬리는 네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한 갈래에는 손 모양의 종이가 붙어 있었다. 나머지는 연의 꼬리처럼 공중에서 파도치듯 휘날리고 있었다.
“네, 주인님. ”
그리고 그것은 나오자마자 라이시엔을 주인님이라 칭했다.
“식신…인가? ”
“비슷해. 난 음양술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이 녀석이 나와 있으면, 종이를 단순 조종하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가능하거든… 저렇게 떼거지로 몰려오다니, 무슨 조종이라도 받은 건가… ”
“주인님, 저게 대체… ”
“저기 감긴 녀석은 뭐가 들어갔고, 저기 뛰어내리려는 녀석들은 조종 당하는 중. 아마도 저 녀석이 숙주인 것 같아.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저 녀석을 죽이겠다고 발버둥을 치네. ”
“심각하네요. ”
“둘이 얘기 나눌 시간이 없어. 저것들 좀 어떻게 해 봐. ”
“아아, 알았어. ”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까부터 미영을 휘감고 있던 종이가 스르륵 풀렸다. 그리고 우르르 옥상 끝으로 몰려가는 사람들을 휘감기 시작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지만, 맨 앞에서 선두로 향하던 사람을 휘감자 줄줄이 움직임을 멈추고 그 자리에 정지해버렸다. 동시에 그녀는, 아까부터 온 몸을 이리저리 비틀언 미영을 멈추기 위해 라흐무를 시켜 긴 꼬리로 아예 미영을 칭칭 감아버렸다.
“자의식 자체가 없어진 모양이네. …저 녀석 말고는. ”
“대체 뭔 원한이 쌓이면 저렇게 되는 거냐? ”
“…가만, 저 사람이 혹시 이 핸드폰의 주인이라면… ”
“핸드폰? ”
“네. 아까, 자기 따님이 갑자기 전화기와 편지를 두고 실종됐다고 하면서 찾아달라던 분이 계셨거든요. ”
“…편지? ”
“네. ”
파이로는 미기야에게서 편지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이내 미간을 찌푸리고 편지를 구깃구깃 구겨버린 그녀는, 라이시엔에게 라흐무를 물릴 것을 요청하고 미영의 머리에 혼불을 갖다 붙였다. 마치 마른 장작처럼, 혼불이 순식간에 온 몸으로 퍼져 나갔다. 혼불은 미영의 몸을 태우는 것 뿐 아니라, 옥상으로 뛰어 내리려던 다른 사람들도 같이 태우고 있었다.
“손모가지 때문에 죽었다고 사람 목숨을 이따위로 취급해도 된다고 생각하냐? 유령이라고 함부로 사람 죽이면 중죄인 거 모르냐, 이 멍청아? ”
“네가 뭔데 날 방해해! 니가 내 맘을 알아? 친구라고 믿었던 게 날 일진으로 만들고, 거기에 동조해서 날 이렇게 죽음으로 몰고 갔는데!!! ”
“그래서 몇주 전에 자살했지. ”
“…… ”
“그리고 이 녀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 싹~ 씻었지? ”
미영의 몸에 깃든 무언가가 흠칫, 놀랐다.
“그거, 이놈들의 전형적인 패턴 아니냐, Rimen. ”
“!!”
파이로는 단번에 그녀가 Rimen이라는 것을 맞출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 게다가 사람들을 이 곳으로 몰고 올 정도의 엄청난 원한.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이다.
“왜, 아주 배틀로얄이라도 하지 그랬냐? 우리 쪽으로 의뢰하러 오는 사람들마다 다 죽이면, 니 뜻대로 복수할 수 있을 줄 알았냐? 근데 어쩌냐. 쟤네 엄마가 실종됐다고 의뢰했더라. ”
“…… ”
“애초에 발신자가 있을 리가 없지, 니가 죽은 사람이니. 하지만 발신지가 이 곳임은 확실하지… 통신이 돼야 문자를 보낼 거 아냐. 그래서, 하나하나 찾기 위해 신상도 싹 털고, 끼리끼리 욕하게 시킨 기분이 어때? 신상 터는 것도 범죄인 건 알고? ”
“네녀석이…! ”
“저거 어떻게 갱생의 여지가 없다. ”
그녀가 구깃구깃 구겼던 편지지를 라이터로 태워버리자, 미영의 안에 깃든 것이 비명을 질렀다. 마치 귀청을 찢는 듯한 비명의 끝에, 편지가 까만 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혼불도 사그라들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한 무리의 사람들은, 그대로 눈을 뜨지 못 했다.
“저 녀석, 몇주 전에 여기서 자살했었어. …아마도 악플 때문이었겠지… 일진설이 나돌고 나서, 엄청난 악플에 시달렸으니까. 근데 그렇다고 유령이 사람 죽이면 그것도 불법인 거 알라나 모르지? ”
“몇주씩이나 이런 곳에… 아차, 구급대를 불러야 해요! ”
“구급대는 불러도 소용 없어. …녀석은, 피를 보지 않았을 뿐… 복수는 성공한 것 같네. ”
“…… ”
“저 아이도, 저 녀석들도. 전부 생기가 없어. 어쨌든, 사람을 부르긴 해야겠지만… ”
미기야가 구급대에 연락할 동안, 파이로는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코 아래에 손가락을 대 봤지만 숨은 전혀 쉬지 않았다. 적어도 잠깐 의식을 잃은 정도라면 느껴져야 할 맥박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이건… ”
“부검을 해 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그 녀석은 의식을 잠식하면서 영혼을 싸그리 없애버렸던 걸 지도 몰라. 아마, 우리가 여기로 오지 않았으면 단체로 자살했다고 뉴스에 떴겠지. ”
“…… ”
경찰과 구조대원이 올라와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들것에 실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미영의 상태는 훨씬 처참했다. 손발은 물론 온 몸의 관절이 다 빠져버려서 전신에 부목을 대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다 할 외상 흔적은 없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쓰러져 있던 다른 사람들도 손가락의 관절이 다 빠져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