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9. Hide and seek(하)

파이로와 네 사람 앞에, 그 여자가 나타났다.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여자. 그녀의 눈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 녀석이 그 녀석인 모양이군. “
“참가자… 어라, 참가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인데? “
“그야, 이 몸은 이미 죽었으니까. “

벌건 대낮에 돌아다니는 죽은 자라니, 그녀는 파이로를 꽤 흥미롭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 녀석인 것 같은데… 얼굴만 봐도 딱 알겠구만. “
“죽은 사람까지 알 정도면, 꽤 유명해진 거죠? 이거 재미있는걸~ “
“지금 네녀석하고 장난 칠 때가 아니지. 이 녀석들의 목숨이 위험하거든, 너 때문에. “
“어라?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거야? 정말 재밌네~ “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까르르 웃고는, 그 자리에서 뒤돌아 가 버렸다.

“이상한 녀석일세. “
“저러다가 언제 돌변할 지 몰라요…… “
“일단 저 녀석이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인 지는 알 거 같네. 일단 저 녀석의 얼굴은 확인했으니, 난 사무실로 돌아간다. 당분간은 몸 사려라. “
“네. “

사무실로 돌아간 파이로는 미기야에게 아까 만났던 여자에 대해 얘기했다. 자신에게 참가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는 것과, 자신이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갑자기 까르르 웃다니 가버렸다는 것. 그리고 정말 날개가 있었다는 것까지.

“유령이 날개 달고 다니는 경우는 잘 없는데, 그건 대체 뭐지? “
“흐음… 글쎼요… 아, 마침 라우드 씨가 오셨네요. “
“어, 파이로도 왔네. 아무튼, 이게 최대한으로 알아낸 정보긴 한데… 일곱명의 술래잡기라는 거, 실황도 꽤 있고 괴담 블로그에도 실행법이라던가… 올라오긴 했어요. 실황 영상을 찍었던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실패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요… “
“성공한 사람들은 죽어서 우리가 못 만나는 거 아니냐… “
“그럴 수도 있겠군. “

파이로와 라우드가 얘기를 나눌 동안, 미기야는 서류 뭉치를 넘겨보고 있었다. 팔락팔락, 서류 뭉치를 넘겨보던 그는 한 페이지를 유심히 읽고 있었다.

“뭐냐? “
“파이로 씨, 아까 봤던 여자가 이렇게 생겼나요? “
“아아, 어. 드럽게 짜증나는 녀석이었지… “
“……이거, 좀 위험한데요… “
“뭔 소리여? “
“이 여자는 마물이예요. 이 세계의 상식같은 건 통할 리도 없거니와 죽은 자도 아니죠. 유령은 당연히 아니고요… “
“마물…? 죽은 놈도 아니면 내 혼불은 씨알도 안 먹힐텐데, 저걸 무슨 수로 잡지… “

마물, 그것은 아예 유령과는 다른 존재였다. 괴이처럼 살아있는 무언가였지만 대부분이 상급 괴이 이상으로 강해 오래 전에 봉인되었다던가, 하는 존재들이다. 그런 존재가 이런 걸로 소환되다니, 대체 이건 무슨 상황인지 그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걸로 마물이 소환된다면, 대체 그것을 봉인하고 있던 건 어떻게 된 거지?

“마물은 대부분 봉인됐다던데, 저 녀석은 대체 어떻게 빠져나온거지? “
“저도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이클립스 씨가 필요하겠는데요… “
“나? “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오는군. “

마침 사무실에 볼 일이 있었는지, 이클립스가 불쑥 튀어나왔다.

“코우기는 오늘도 비번이야. “
“응? 오늘은 그냥 놀러왔는데? 그건 또 뭐야? “
“일곱 명의 숨바꼭질인가… 거기서 마물을 불러서, 지금 목숨이 위험한 상태란다. “
“마물…? 혹시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해? “
“여기까지 오는 까맣고 긴 머리에, 빨간색 눈. 등에는 날개가 있고 되게 짜증나는 녀석이야. “
“…… “

이클립스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뭐 집히는 거라도 있으세요? “
“그 녀석은 애초에 봉인되지 않았어. …아니, 봉인 자체가 불가능하지. 본거지가 나와 같은 허수 차원이거든. 그 녀석은, 어느 누구도 통제할 수 없어. “
“…… 혹시 이름이라던가, 알고 계세요? “
“아나키나시스. “
“아나키나시스라… 뭐, 좋아. 그 녀석때문에 갈 때는 백업 요원으로 코우기 불러라. “
“네. “

이클립스가 돌아간 후, 파이로는 세베루스에게 연락해 아나키나시스라는 마물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명계에서도 딱히 아는 것은 없는 눈치였다. 게다가 존재를 먹어치우는 애시조차 그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이거 뭘 어떻게 해야 하는거냐… “
“뭔데 그래? “
“의뢰가 들어왔는데, 싸워야 할 녀석이 마물이라. “
“마물? 설마, 아나키나시스인가… “
“아아, 응. 혹시 뭐 아는 거 없어? “
“그 녀석은 내 거미줄로도 안 묶여… 에키드나의 능력으로도 묶어두는 게 아예 불가능하지. “

거미줄로 묶는 것도, 에키드나의 능력으로 굳히는 것도 불가능하다. 파이로는 골치가 아팠다.

한편, 미주는 연우의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가던 중이었다. 병원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가던 그녀는, 지나가던 차에 치일 뻔 했다. 그런 그녀를 구헌 것은 쿠로키였다.

“휴우… 사, 살았다. “
“그렇게 전화기만 보면 위험해요. “
“가, 감사합니다… “
“조심해서 가요~ “

미주를 보내고 사무실로 온 쿠로키는, 건물 입구에서 급하게 어딘가로 가려던 미기야와 마주쳤다.

“의뢰 가시나봐요? “
“네. 의뢰주 중 한 명이 사고를 당해서… “
“저런… “
“아무래도, 마물 짓인 것 같아요. “
“마물이요? “

미기야는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들이 불러낸 것이 마물이었고, 그 마물때문에 목숨이 위험한 사람들 중 하나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도 같이. 그러자 쿠로키는 선뜻 병원으로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미기야와 쿠로키가 병원으로 갈 동안, 파이로는 나머지 두 사람에게 아나키나시스가 나타나지 않을까 지켜보기 위해 학교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서 코우기도 같이 지켜보고 있었다.

“마물…이라는 건 대체 어떤 존재인건가요? “
“나도 자세한 건 모르는데, 일단 죽은 존재는 아냐. 그리고 위험도가 엄청나게 높아서, 대부분 봉인됐어. 지금 일 벌리는 놈 빼고. “
“…… “

한편, 연우를 만나러 병문안을 갔던 미기야와 쿠로키는 연우가 입원한 병실 근처를 서성이는 아나키나시스를 발견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등에 너덜너덜한 날개를 달고 있는 게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저기, 누군가가 있는데요? “
“!!”

아나키나시스는 인기척을 느끼고 둘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기야와 아나키나시스가 대치 아닌 대치를 하고 있을 동안, 쿠로키는 파이로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파이로는 코우기와 함께 아나키나시스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이 때, 막 병원 입구에 도착한 미주는 로비로 들어서 승강기를 잡으려던 찰나였다. 순간 휙, 뒤로 돌아선 아나키나시스는 엘리베이터 쪽을 향해 뛰었다.

“앗, 기다려요! “

쿠로키는 아나키나시스를 쫓아 승강기 쪽으로 갔다. 지금 아나키나시스가 승강기로 달리는 이유는, 설마 다른 타겟이 있기 때문인가? 아나키나시스를 쫓아가면서 쿠로키는 파이로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마물이 승강기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위험해! “

그리고 막 병원 입구로 들어 선 파이로는 승강기에 타려던 미주를 낚아챘고, 승강기는 갑자기 덜컹, 하더니 순식간에 추락했다. 그리고 동시에, 위층에 있었던 아나키나시스가 사라졌다.

“!!”
“다행이다… “
“히익- 이, 이게 어떻게 된… “
“그 녀석, 분명 여기 어딘가에서 널 노리고 있을거야. 네가 여기 타면 바로 추락시킬 셈이었겠지. “
“에이, 그렇게 금방 들켜버리면 재미없는데… “
“!!”

아나키나시스는 영문을 몰라하는 코우기의 뒤에 나타나 셋을 보고 까르르 웃었다. 거 참 더럽게 짜증나는 아가씨로군, 파이로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가윗날을 꺼냈다.

“어머, 그 떄 그 분이구나. 우리 구면이죠? “
“구면이긴 한데. 저거 마물이면 혼불로는 못 지지겠군… “
“살생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
“니가 하는 짓을 보면 되게 설득력 없으시고요. “
“어머, 그런가… “

파이로는 미주를 뒤로 물러나게 하고, 여차하면 공격할 기세로 가윗날을 들었다. 등 뒤에는 마물, 그리고 앞에서는 공격태세인 덕에 가운데에 끼인 코우기는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애초에 윗층에 나타났던 이유도, 타겟 죽이려고 아냐? “
“음… 죽여요? 아~뇨. 아직 아니예요. “
“아직이라는 건 어쨌든 죽일거라는 얘기잖아… “
“음… 그게 그렇게도 되는구나. “
“파이로 씨! “
“어, 미기야. …코우기부터 뺴라. “
“아, 네. “

미기야는 코우기의 팔을 잡아끌어 둘 사이에서 뺐다. 아나키나시스는 그런 미기야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녀석, 아무래도 저 위에 있는 녀석 죽이러 온 거 같은데. 그러다가 이 녀석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니까 그걸 노린 거고… “
“그야, 술래잡기중이니까요? “
“그럼 그 술래잡기라는 건 끝내려면 꼭 다 죽여야되는거냐? “
“음… 꼭 그런 건 아니예요. 애초에 저는 장난만 조금 치는 정도고 말이죠~ 술래잡기는 제가 마음 내킬 떄 끝내면 그만이니까, 저 쪽에서 끝낼 수 없다고 한 거고요. “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말도 있는데요. “
“으음? 하긴, 그렇긴 하겠구나. “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그녀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었다. 그녀의 시선은 미기야와 코우기를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파이로는 아까부터 부긃부글 끓는 분노를 억누르며 계속 아나키나시스를 주시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 녀석을 불러낸 니들도 참…… 운이 좋다고 해야 할 지, 없다고 해야 할 지… 귀신이랑 놀려다가 마물을 불렀으니… 여튼, 참 골치 아프게 됐군… 하지만 이 이상 이 녀석이나 다른 사람들을 해친다면, 이 쪽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거다. 너처럼 재미로 살생하는 녀석이 제일 쓰레기같거든. “
“으음… 좋아요, 술래잡기는 여기서 끝내도록 하죠. …안 그래도, 방금 제 패턴을 들켜버려서 재미없던 찰나였으니까요. “
“…… “
“음. …어이, 미기야. 이 녀석 데리고 병실로 가라. “
“네. “

미기야는 미주를 데리고 반대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연우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갔다. 그리고 아나키나시스는 코우기에게 다가갔다. 막 코우기에게 손을 뻗었던 그녀는, 엄청난 냉기에 놀랐는지 움찔했다.

“!!”
“히익- “
“엄청난 냉기네요. 빙수라던가, 만들 수 있나요? “
“이 녀석 냉기로 빙수 만들면 너 이 다 나간다. “
“……? 음? 정말요? “
“크리오제닉. “
“아아… 저주 받은 인간이구나. “

위층에서는 미주가 연우의 병문안을 갔다. 그녀는 여기까지 오면서 있었던 일과, 병원 로비에서 그녀를 만났던 일을 얘기했다. 그리고 숨바꼭질은 끝났다는 것도 같이…

“그런데, 너희들은 누구예요? 죽은 사람에다가, 저주받은 인간에… 구미호까지 있어요. “
“네녀석과는 딱히 상관 없지. “
“상관은 없지만, 재미있거든요. “
“…… “

코우기에게 흥미가 있는 모양인지, 그녀는 코우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는 괴이, 하나는 마물… 진짜 하느님 맙소사네. “
“사, 사, 살려줘요… “
“저,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 “
“아무 짓이든 할 거 같아… “

그녀는 대답 대신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