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2. 꽃다발

“안녕하세요… 전에 연락드렸던 사람인데… “

아침부터 젊은 여자가 사무실을 찾았다. 20대 중후반쯤 되어보이는 여자는 어깨까지 오는 머리를 반묶음으로 묶었고, 연한 노란색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인사를 건네는 그녀는,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아, 어제 연락하셨던 분이군요. 이 쪽으로 앉으세요. “

현은 여자를 테이블로 안내하고 꽃다발을 건네받았다. 꽃다발에는 하얀 튤립과 분홍빛 프리지어 한 송이가 포장되어있었고, 하얀 포장지와 분홍 포장지로 감싼 꽃은 하얀 리본으로 묶여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결혼식 부케로 나올법한 꽃다발이었지만,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젊은 여자가 테이블에 앉아 잠시 기다리니, 사무실을 정리하던 미기야가 나왔다. 그는 젊은 여자를 반갑게 맞아주고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하얀 튤립과 프리지어가 있는, 아름답지만 어딘가 꺼림칙한 꽃다발이었다.

“말씀하셨던 꽃다발이 이 꽃다발인가요? “
“네… 남자친구가 선물로 준 꽃다발인데, 그 뒤로 가위에 눌리거나 크게 다칠뻔한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사고를 당한 적도 있었고요… “
“사고요? “
“네. 길을 걷는데 머리 위로 뭐가 떨어진 적도 있었고, 제 코앞에서 차가 급발진해서 저를 칠 뻔한 적도 있었어요. 출근하다가 버스 엔진에서 불이 나서 지각한 적도 있었고요… 저번 주 주말에는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수술에 들어갔어요. “
“음… “

꽃다발을 받아들고 미기야가 뭔가를 생각할 무렵, 슈퍼에 장을 보러 간다던 파이로가 돌아왔다. 파이로 역시 꽃다발에서 뭔가 꺼림칙한 걸 느낀 듯 했다.

“이 꽃다발, 뭔가 있어… “
“깜짝이야… 파이로 씨, 언제 오셨어요? “
“아까. “
“그나저나… 파이로씨가 보시기에도 뭔가 있는 것 같죠? 뭔지는 모르겠지만… “
“그래보여. 이 꽃다발 언제 받은거야? “
“저저번주였나… 100일 기념으로 받은거예요. “
“저저번주면 사이코메트리는 힘들겠네… “

파이로가 키츠네에게 연락할동안, 미기야는 꽃다발에 부적을 써 붙였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이 일이 해결될때까지 꽃다발을 저희가 맡아도 되겠습니까? 뭔가 꺼림칙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종합해보자면, 손님과도 떨어트려놓는 쪽이 좋을 것 같습니다. 꽃다발은 최대한 다치지 않는 쪽으로 처리하겠습니다. “
“으음… 남자친구에게 받은거긴 하지만… 그래도 떨어트려놓는 쪽이 좋다면, 어쩔 수 없죠… “

미기야는 젊은 여자에게 연락처를 건넸다. 연락처를 받아 든 젊은 여자는 돌아갔고, 파이로는 라우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꽃다발의 사이코메트리를 부탁했다. 꽃다발을 받은 지 일주일이 지나서 출처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꽃다발에 있는 무언가의 형태를 발견했다.

“뭔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드레스가 찢어졌어. 베일은 없고… 드레스 곳곳에 피가 묻어있는 여자였어. “
“피투성이 드레스를 입은 여자라… 결혼식 도중에 사망한건가…? “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되게 화난 것 같아 보여. “

라우드는 파이로에게 다시 꽃다발을 건넸다. 꽃다발을 다시 건네받은 파이로는 마침 사무실에 도착한 키츠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라우드에게서 넘겨받은 꽃다발을 건넸다. 꽃다발을 받아 든 키츠네가 리본 중앙에 침을 꽂자, 꽃다발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어디지? 아까 그 인간은 어디에 간 거지? “
“오… 뭔지는 모르겠지만, 꽃다발이 말을 한다… “
“이 침을 꽂고 있는 동안은, 물건… 정확히는 물건에 깃든것이 말을 할 수 있거든. 좋아, 내 말이 들려? 여기는 괴담수사대다. 네가 찾는 인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엔 없어. “
“괴담수사대라고? “
“남자친구에게서 너를 건네받고 난 뒤, 이상한 일을 겪은 여자가 이 곳에 너를 맡겼어. 드레스는 왜 찢어진거고, 피는 왜 묻어있는거지? “
“결혼식 도중에 죽었으니까. “

꽃다발의 주인은 자신을 결혼식 도중에 죽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결혼식 당일,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랑과 함께 식장에서 사랑의 서약을 했다. 식을 무사히 마치고 신혼여행을 가려던 그녀와 신랑은, 불행히도 교통사고를 당했다. 졸음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넘은 고속버스에 치여 차는 완전히 뒤집혀버리고, 신랑은 살아남았지만 신부는 죽었다. 살아남은 신랑은 신부를 보내주면서 결혼식 당일 입었던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혔다.

“그렇다는 건, 웨딩드레스는 수의라는 거고… 그 여자를 괴롭힌 이유는, 단순히 커플이 질투나서냐? 그런거라면 명계에서 신랑을 기다리다가 나중에 만나면 될텐데… “
“신혼여행을 가다가 죽긴 했지만 나도 신혼이고, 우리 신랑은 지금도 나를 애도하느라 좋은 사람이 나타나도 만나지도 못 하고 있어… “
“그렇다는 건 질투때문은 아니라는건데… “
“그럼 왜 그 여자를 괴롭히는거야? 질투하는것도 아닌데 꽃다발을 받은 사람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까지 사고에 휘말리게 하다니… 그건 중죄라고. “
“난 이 꽃다발이 내 것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이건 나를 묘지에 안장한 후, 신랑이 내 묘지에 바친 부케야. 결혼식날 들었던 부케지… “
“…… “
“꽃다발 안에 갇힌 몸이라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말한다고 저쪽에서 들을 수도 있는 게 아니라 깝깝했지… 그래서 주변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꽃다발을 버리지 않을까 해서 사고를 일으켰던거야. “

꽃다발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키츠네는 꽃다발에 박혔던 침을 뺐다. 침이 박혀있던 자리에 리본에 미세하게 구멍이 나긴 했지만, 별로 티는 나지 않았다. 파이로는 꽃다발을 꽃병에 꽂아두고, 미기야에게 아침에 왔던 젊은 여자의 연락처를 물었다.

“그런데, 연락처는 왜요? “
“저 꽃다발, 임자 있는 꽃다발이거든. 그 임자가 사자고. “
“……! “

파이로는 젊은 여자에게 전화해 괴담수사대라는 것을 밝히고, 꽃다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과 자세한 설명은 면대면으로 해 줄테니 남자친구와 함께 사무실에 올 것을 전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사무실에 올 동안, 미기야에게 꽃다발에 얽힌 이야기를 했다.

30분 후, 아침에 왔었던 젊은 여자는 또래로 보이는 남자와 함께 괴담수사대 사무실로 왔다. 파이로와 미기야는 두 사람을 맞았지만, 꽃다발은 돌려주지 않았다. 대신 꽃다발에 주인이 있다는 것과 주인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그럼 죽은 사람의 꽃다발이… “
“자. 그래서 말인데… “

파이로는 함께 온 남자를 가리켰다.

“너,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해야 한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귀신은 못 속인다는 말 알지? “
“네…? 그게 무슨… “
“일단 너한테 물어볼게. “

젊은 여자를 가리킨 파이로는, 꽃다발을 받은 날짜와 어디서 받았는지, 그리고 함께 온 남자가 그 전날 뭘 했는지를 물었다. 젊은 여자가 질문에 대답하자,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파이로는 함께 온 남자에게 물었다.

“전날 어디 갔었어? “
“할머니 묘지에 갔다가 오는 길에 꽃가게에 들렀어요. “

함께 온 남자가 대답하자, 튤립 한 송이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다음 질문. 너, 그 꽃다발 100일 기념 선물로 줬다고 했지? 비용은 얼마정도 나왔어? “
“…… “

함께 온 남자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러는 와중에, 꽃다발의 튤립 한 송이가 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
“시끄럽고… 마지막 질문이다. 원래 있던 꽃다발 어쨌어? “
“뭐, 뭘 어째요! 이 사람이 보자보자하니까…! “
“저, 저기… 꽃이…! “

꽃다발의 하얀 튤립이 전부 핏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남자가 지금까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모양이었다.

“내가 아까 말했지, 사람은 속일 수 있을 지 몰라도 귀신은 못 속여. 꽃다발의 주인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했지? 원래 꽃다발의 주인이 저기 있어. 그런데 인간들은 원래 귀신들이랑 말을 못 해, 무당이거나 영안이 있거나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게 아니면. “
“그럼… 사고를 일으킨 건 원한때문인건가요? “
“네가 불길한 물건이라고 생각해서 꽃다발을 버리길 바랬거든. 돌려달라고 말해도 네가 듣질 못 하니까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어. “
“…… “

핏빛으로 물들었던 꽃다발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파이로는 꽃다발을 풀고, 꽃다발 사이에 있던 프리지어 한 송이에 리본을 묶어서 건넸다.

“니 남자친구가 100일 기념으로 준 꽃 중, 온전히 자기 돈으로 산 건 이 프리지어 한 송이 뿐인거지. 하얀 튤립들은 아까도 봤듯 주인이 있는 꽃이고. 원래 부케였던 것을 풀어헤쳤을테니 원상복귀는 플로리스트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겠고… 넌 왜 주인이 있는 꽃에 손을 댔냐? 여자친구가 죽기를 바랬어? 아니면 얘가 백일 선물 닦달하던? “
“그, 그게… 무덤 앞에 놓여있어서 주인이 없는 건 줄 알고… 괜찮겠지 싶어서… “
“이 빡대가리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주인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누가 묘지 앞에 있는 꽃을 애인한테 갖다 바쳐, 잡귀가 붙었을 지 어떻게 알고. “
“…… “
“넌 집에서 제사지내면 절하다말고 제삿상에 있는 전 집어먹냐? 어디 여행가다가 당산나무 사당 이런데다 제사상 올려두면 그거 주인 없는거니까 집어먹겠다 아주? “

파이로는 함꼐 온 남자에게 쏘아붙였다. 이내 다 쏘아붙였는지, 그녀는 젊은 여자에게 물었다.

“너, 이 빡대가리 계속 만날거냐? “
“……”
“뭐, 그건 당장 대답해주지 않아도 상관은 없어. 만나고 안 만나고는 니 자유니까… 근데 이거 하나는 명심해라. 이 빡대가리가 죽은 사람 꽃다발을 엉망으로 만들고 도둑질한 덕분에 너도 죽을뻔했고, 네 어머니가 수술대에 올랐어. 이 꽃이 무덤에 바쳐진거라 이정도지, 어디 당산나무에 바쳤던거면 동티나서 너 여기 니 발로 오지도 못해. 목숨이나 붙어있으면 다행이지. “

너에게 돌려줄 것은 프리지어 한 송이뿐이라는 말과 함께, 파이로는 두 남녀를 보냈다. 그리고 두 남녀가 돌아간 후, 파이로는 튤립에 혼불을 붙였다. 튤립에 혼불이 옮겨붙는가 싶더니, 줄기부터 불에 붙은것처럼 타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유감이지만 무덤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니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거기다가 부케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건 플로리스트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거든. “

꽃송이로 불이 옮겨붙을 무렵, 바람이 불어왔다. 파이로가 불이 붙은 꽃을 놓자, 꽃은 불에 타면서 바람을 따라 날아갔다. 재 하나 없이 바람을 따라 날아가던 튤립은 말씀히 사라졌다.

“꽃은 주인을 무사히 찾아갔겠죠? “
“뭐, 그렇지. 직접 가지고 올라갔으니까. “
“그나저나 무덤에 있는 꽃을 애인한테 선물하는 인간이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
“나도 마찬가지다. 정말 인간들은 상상을 초월할 때가 있단말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