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5. 바닷물

“저, 실례합니다… 어제 연락드렸던 사람인데… ”

푹푹 찌는 여름, 한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바닥을 보며 무언가를 찾듯이 들어오는 것은 건장해보이는 청년이었다.

“어서오세요. 어제 말씀은 대충 들었습니다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
“그게… ”
“뭐냐, 왜 바닥에 소금이 떨어져 있어? ”

잠깐 밖에 나갔던 파이로는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에 소금을 밟았다. 소금은 김치 할 때 야채를 절이기 위해 뿌리는 굵은 소금부터 꽃소금까지, 입자의 크기가 다양했다. 바닥에는 소금과 함께 남자가 걸어온 길을 따라 물도 몇 방울 떨어져 있어 물청소를 해야 했다.

“저 물때문에 오신건가요? ”
“네. 제가 걸을때마다 바닥에 소금과 물이 떨어져서… ”
“언제부터 그런 일이 생기기 시작한건가요? ”
“2~3주 전부터요. ”
“물이 항상 떨어지나요? ”
“씻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떨어져요. 그래서 집 안에서도 움직이다 보면 바닥이 소금 천지가 되고… 밖에 나갈때도 그래서 대중교통은 타지도 못 해요. 자리에 앉아서 이동만 해도 의자가 소금 천지에 푹 젖어버려서 다른 사람들은 앉지도 못 하거든요. ”

파이로는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을 찍어 맛보았다. 그러자 당장이라도 물을 마셔야 할 정도로 짠 맛이 느껴졌다.

“퉤! 이거 바닷물이구만. 너, 바닷가 간 적 있어? ”
“한달 전에 갔다오긴 했습니다. ”
“한달 전이라… ”
“뭔가 집히는거라도 있으세요? ”
“바닷물이 떨어지는 거 보면 뭔가 있지 않을까 해서. 여행에서 뭔가 있었어? ”
“…… ”

파이로가 여행에 대해 물었지만, 남자는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원인이 뭔지 확실히 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하는 정보라 그래. 바다에 갔던 게 지금 일어나는 현상의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거든. 저 물, 바닷물이야. ”
“바닷물이요? ”
“가서 먹어볼려? 저거 아마 그대로 말려두면 소금기때문에 하얗게 얼룩 남을걸? ”
“…… 사실은… ”

남자는 한참동안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 날은 친구네 커플과 함께 여행을 갔었습니다.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
“여행지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
“실은… ”

그에게는 오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군대도 같은 날 동반입대 할 정도로 친한 친구였고, 두 사람의 여자친구도 서로 친했었다. 그는 여자친구와 200일 겸 여자친구의 생일이었고, 그의 친구 역시 사귄 지 1년째 되는 날이라 같이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제주도로 간 네 사람은, 펜션 하나를 잡은 다음 커플끼리 가고 싶은 여행지를 돌아보고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그와 친구는 서로 여행 취향이 달랐기때문에, 어느 한 쪽에 억지로 맞췄다가 의 상하는것보다 따로 여행하는 걸 선택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첫 날은 순조로웠다. 정확히는, 첫 날 여행할때까지는 순조로웠다. 여행을 마치고 펜션에서 만나 저녁을 먹을때부터, 알게 모르게 꼬이기 시작했다. 친구의 여자친구가 자신은 남자친구보다 그가 더 좋다며, 그와 사귀고 싶다는 얘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술도 취한 김에 농담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자신은 지금 진지하다며 그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했다. 친구에게 말하게 된다면 모처럼 여행을 와서 기분을 잡치게 되는걸테니…

“남자친구가 있는데 다른 남자한테 고백을 한다고? ”
“네. 실은, 친구도 그것때문에 여자친구와 종종 싸우곤 했습니다. 클럽이나 헌팅술집에 갔다가 걸린 적도 몇 번 있었고… ”
“와, 남자에 미쳤구만. ”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그는 친구와 만나 사실을 이야기했다. 첫째날 여자친구가 말했던 것과,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플러팅을 하고 있다는 것, 계속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번호도 차단했지만 계속해서 연락이 온다는 것을. 친구는 오히려 자신이 더 미안하다고 했다.

“그럼 친구는 헤어진거야? ”
“네. ”
“그 뒤로 그 여자 소식은 모르고? ”
“저는 연락을 차단했으니, 알 리가 없죠. ”
“음… ”
“어찌 된 영문인지 알 방도가 하나 있습니다만… ”
“방법이 있다고? ”
“잠시만요. 마침 이 근처에 있으니, 사무실로 오겠다고 합니다. ”

백희가 어딘가로 연락을 하자, 잠시 후 사무실로 누군가가 들어섰다. 눈처럼 하얀 머리에 진녹색의 옷을 입은 수수께끼의 여자였다. 그녀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남자가 남긴 궤적을 보고 있었다.

“바로 오셨군요. ”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거든요. ”

이미 바닷물이 말라 소금기가 남은 바닥을 본 그녀의 눈은 소금기를 따라, 그가 서 있는 바닥으로 왔다. 기현상때문에 괴담수사대에 찾아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바닥에는 소금이 한가득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테이블에 앉을 수 없다고 한 거로군, 미기야는 그제서야 이해했다.

“이 남자때문에 불렀지? ”
“그걸 어떻게… ”
“이 분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니까요. ”

사뿐히 다가온 그녀의 얼굴에는, 마치 별을 담은 듯한 진녹색의 두 눈이 있었다. 남자의 오른손을 잡고 두 눈을 응시한 그녀는, 남자의 이름을 물었다.

“사람들은 그대를 어떻게 부르지요? ”
“오 현입니다. ”

남자가 이름을 말하자, 그녀의 허리에 있던 덩굴에서 붉은 석산 하나가 피었다.

“!!”
“그대는 이 현상으로 고통받기 전, 친구와 여행을 떠났었지요? 그 곳에서 부적절한 제의를 받았고 거절하셨습니다. ”
“맞아요… 친구의 여자친구가 저에게 사귀자고 고백해서, 거절했습니다. ”
“옳은 선택을 하셨습니다. 이미 다른 이와 인연을 이은 상태에서, 인연을 끊지도 않고 새 인연을 엮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지요. 친구분에게는 이 상황을 말씀하셨나요? ”
“처음에는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 와서… 어쩔 수 없이 말하게 되었습니다. ”
“그러셨군요. ”

그녀는 남자가 하는 이야기를 한참동안 담담하게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대는 이 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처음 보는 꽃입니다. ”
“이 꽃은 석산입니다. 다른 말로는 피안화라고도 하지요. 그대에게 붙어있는 그 것은, 죽은 자입니다. ”
“죽은 자…? ”
“그대는 모든 연락을 끊은 뒤로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하신 듯 하지만, 그대에게 좋지 않은 제의를 했던 자는 현재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사자는 명계로 가야 하는 법이나, 이를 거부하고 그대에게 집착하고 떨어지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대를 길동무삼아 명계로 가려 하고 있군요. ”
“그럼 소금과 바닷물이 떨어지는 건 왜 그런겁니까? ”
“마음을 무너트리는 가장 사소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은, 일상을 무너트리는 것이니까요. 바닷물과 소금때문에 앉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잠자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요?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씻는 것 뿐일겁니다. 씻을 때도 바닷물과 소금은 떨어지지만, 물에 씻겨가니까요. ”
“……! ”

연락처를 전부 끊어버려서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친구의 여자친구는 자살한 듯 했다. 한동안 친구가 연락이 안됐던 것도 그것때문이구나. 지나가는 길목에 소금과 바닷물이 떨어졌을 무렵이었겠구나. 그는 생각했다.

“그대는 여자친구가 있군요. 여자친구도 이 상황을 알고 계십니까? ”
“여자친구에게는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안그래도 바쁜데, 신경쓸 일만 더 늘려주는 것 같아서… ”
“여자친구도 걱정하고 있을겁니다. 지금 바로 이 곳으로 부르세요. ”

남자는 여자친구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한참 공부할 시간이었을텐데, 그녀는 바로 괴담수사대 사무실로 왔다.

“자기야! ”
“그대가 연인이군요. ”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
“설명하자면 좀 긴데… 일단 멘탈 잡고 들어. ”

파이로는 남자의 여자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여자친구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된거군요… ”
“응? 너도 뭔가 알고 있어? ”
“사실, 그 사람… 저한테도 지속적으로 연락했었어요. 남자친구랑 헤어지라며… 남자친구가 바람피우고 있다면서 조작된 사진을 보내기도 했고요. 연락이 안 와서 이제 좀 잠잠해졌거니 했는데, 죽어서 이런 민폐를 끼칠 줄은 몰랐네… ”
“너한테도 연락했다고? ”
“응… 말로 해도 들어먹지 않을 것 같아서 연락은 바로 차단해버렸지만. ”

여자친구는 바닥에 떨어져 쌓인 소금을 한 주먹 쥐었다. 그리고 귀신이 붙어있을만한 곳에 냅다 뿌리기 시작했다.

“살아있을 때도 집착하더니 죽어서도 민폐짓이야? 얘는 내 남자친구야, 너한테는 죽어도 못 주니까 당장 꺼져! ”

여자친구가 허공에 소금을 뿌리자 바닷물이 점점 더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않고 계속해서 소금을 주워 허공에 뿌리면서 붙어있는 귀신을 향해 내 남자친구는 못 주니까 당장 사라지라며 소리쳤다. 그러자 격하게 떨어지던 바닷물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이제 되었군요. ”

낯선 여자의 허리에 감겨있던 덩굴에서 붉은 장미가 피었다.

“된…건가요? ”
“한번 걸어보세요. ”

남자가 사무실 이곳저곳을 걸었지만, 소금도 바닷물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자기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
“이제 괜찮아… ”
“두 분께서는 천생연분이시군요. ”

낯선 여자는 두 사람에게 부드럽게 웃어주고는, 인사를 건넨 뒤 돌아갔다. 곧 두 사람도 감사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남은 건 이 소금들을 청소하는 것이군… 그리고 하나 더 있지. ”

파이로가 소금 더미에 혼불을 붙이자,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욕망때문에 다른 사람을 괴롭히더니 죽어서까지 집착할 정도면, 그대로 무간지옥에나 떨어지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