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떠도는 소문이 하나 있었다.
자정이 넘어가고 대중교통이 끊길 무렵이 되면 움직이는 택시들 중, 운전기사가 없는 택시가 있다는 것이다. 운전기사만 없을 뿐, 택시는 손님을 태워주고 택시비를 받는 것은 하고 있었으며, 운전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길이든 운전을 능숙하게 한다. 즉 무인 택시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었다.
“무인 택시 소문, 진짜일까? ”
“에이, 설마… ”
“하지만, 어제 옆 부서 사람이 그 택시를 봤다는데? ”
“술에 취해서 착각한 모양이지. 애초에 운전자가 없이 차가 어떻게 돌아가겠어? ”
처음에 사람들은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그 택시에 탔다는 사람도, 봤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처음에 인터넷에 글이 올라올 때는 거짓말이라고 치부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밤거리를 달리는 수수꼐끼의 무인 택시를 보았다.
“오너도 그 소문 들으셨나요? ”
“응? 무슨 소문? ”
“수수께끼의 무인 택시요. 택시 기사도 없는데 손님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이동하고, 택시비를 받는대요. 타 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마치 베테랑 운전사가 모는 것 같더라니까요? ”
“그게 정말이야? ”
“네, 어제 아버지가 회식하고 퇴근하다 그 택시를 타고 오셨거든요.. ”
현의 아버지도 수수께끼의 그 택시를 다고 집으로 왔다고 한다. 정말 존재하는 택시였구나, 미기야는 흠칫 놀랐다.
“괴이의 소행일까요? 하지만 사람에게 우호적인 괴이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아무래도 유령 아니면 괴이의 소행인 것 같아요. ”
“하긴, 사람이 없는데 운전도 하고 택시비까지 받다니… 그런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지. ”
그 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초로의 남자가 들어왔다. 희끗희끗해보이는 머리는 가르마를 타게 빗어 넘겼고, 아직 초봄인 날씨에도 겨울 점퍼를 입고 있었다. 입고 있는 점퍼는 꽤 낡아 보였다.
“어서 오세요. ”
“여기가 혹시… 괴담수사대인가요? ”
“네. ”
“부탁 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
현이 자리를 내 주자, 남자는 그 자리에 앉았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얘기를 꺼냈다.
“수수께끼의 무인 택시는… 사실 저희 회사의 택시입니다. 이 친구가 이제 그만 편히 잠들었으면 합니다… ”
“…네? 그 택시가…? ”
“네… 사실은, 그 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사람이…… 오래 전 뻉소니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후로 그 친구가 몰던 택시도 주인을 잃고 차고지에 서 있었죠. ”
그러던 어느 날, 뺑소니로 주인을 잃고 홀로 서 있던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택시가 왜 이러는지 영문을 몰랐다. 하지만 분명 보관함에 뒀던 차키가 차에 꽂혀 있었다. 분명 다른 기사들은 운행을 나간 터라 차키를 만질 사람이 본인 외에는 없었던 터였다.
“그 친구가 죽은 후로는 사납금도 한 사람분이 덜 들어와야 하는데, 그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한 이후로 사납금이 평소처럼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때, 혹시 세상에 미련이 남은 그 친구가 아직도 택시를 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
“그렇다면 아직도 이승에 남아서 일을 하고 있는거군요… ”
“네.. 저는 이제 그 친구가 편히 쉬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도와주세요. ”
남자는 미기야의 손을 꼭 잡고 연신 허리를 숙였다. 미기야는 회사에 찾아가기로 하고 약속을 잡은 후, 남자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뭔 일이여? ”
“파이로 씨, 혹시 수수께끼의 무인 택시에 대해 아세요? ”
“아, 알지. 사람도 없는데 운전도 하고 요금도 받는다며? 그 녀석,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미련이 많은 모양이지… ”
“파이로 씨는, 유령이 택시를 모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
“응. 차주가 이미 고인이면 100%. ”
“안그래도 그 택시 건으로, 택시 회사에서 의뢰가 들어왔는데… 그 택시를 몰던 분이 뺑소니 사고로 돌아가셨대요. 사장님은 그 분이 이제 저승에서 편히 쉬기를 바라셔서 여기로 오셨고요. ”
“…역시… ”
파이로는 먹던 캔음료를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승에 미련이 얼마나 남았으면, 죽어서도 못 가고 일을 하고 있나…
“얼마나 큰 미련이 남았으면 죽어서도… ”
“아마 뺑소니범에게 복수하려고 남았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겠지. 회사에 갈 때 같이 가자. 그 운전사 한번 만나보고 싶네. ”
“네. ”
그 날 저녁, 미기야와 파이로는 회사로 향했다.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은 회사는 한 켠의 사무실 외에는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한 켠에 외롭게 서 있는 은색 택시가 보였다.
“넌 사장님이랑 얘기 나눠봐. 난 저 기사님이랑 얘기 좀 해 보게. ”
“네? ”
파이로가 가리킨 택시는 주인이 사망했음에도, 마치 누군가 지속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는것처럼 상태가 멀쩡해보였다. 오늘도 운행 전에 반질반질 광이라도 내려는지, 걸레가 허공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아… 네. ”
파이로는 택시 가까이에 다가갔다. 걸레는 여전히 택시를 반들반들하게 닦고 있었다.
“이야, 택시가 엄청나게 꺠끗하네요. 이거이거, 이 정도면 파리가 앉았다가 미끄러지겠는데요? ”
“그렇죠? 항상 운행 나가기 전에 반질반질하게 닦고 있으니까요. ”
그녀가 말을 붙이자, 허공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를 보아하니 중년의 남자인 것 같았다.
“매번 이렇게 닦으려면 힘들텐데, 정말 성실하시네요. ”
“허허- 그렇죠. 택시를 반들반들하게 닦으면, 기분이 좋답니다. ”
“그런데 기사님, 어째서 저 편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에 계시는 거예요? 기사님은 이제 여기에 머무를 수 없는 몸인데… ”
“휴우… 사실 나도 이미 알고 있다우… 내가 모는 택시가 무인 택시로 소문난 것도 알고 있지… 하지만, 다음 달까지는 여기에 머무르고 싶어요. 못난 애비가 돼서,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 결혼식은 보고 가고 싶거든… ”
“따님이 결혼하세요? ”
“그럼, 다음 달에 결혼해. ”
“기사님이 이렇게까지 아낄 정도면 정말 소중한가봐요. ”
“그럼~ 여기 지갑 속에… 어이쿠, 지갑이 없군… 아무튼, 정말 세상에서 예쁜 딸이라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내가 죽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행복해하면서 결혼 준비를 했겠지요. 안그래도 없는 살림에 나 보낸다고 비용이 많이 들었을텐데, 조금이라도 보태주고 가려고. ”
결혼을 앞둔 딸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슬퍼할까봐, 그리고 딸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 그는 여전히 이승에서 택시를 몰고 있었다.
“저도 기사님과 동류이지만, 저는 기사님을 억지로 저승으로 보내려고 온 건 아니예요. 단지 사장님께서 기사님이 계속 일하고 계신 걸 마음 아파하셔서 온 것 뿐… ”
“허허, 나도 알아요. 사장님이 많이 놀라셨을거야… 안그래도 요즘 연로하셔서 건강 관리도 하셔야 하는데… 죄송하다고, 다음달까지만 부탁한다고 전해줘요. 안 그래도, 2주 후에는 그만 둘 참이었다고… ”
“알겠어요. ”
파이로는 기사와 얘기를 나눈 후, 미기야가 있는 사무실로 갔다.
“아, 얘기중이었냐. ”
“기사님은 만나셨어요? ”
“응. 아, 이 분이 사장님이신가…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그 친구는 만나보셨나요? ”
“네. 일단 사장님을 놀래켜서 죄송하고, 2주 후에는 그만두신다고 전해달라고 하시더군요. 따님이 다음달에 결혼을 한대요. ”
“아아… 그 친구, 딸내미를 엄청 아꼈지요… 막내딸이거든. 사고 당하기 전에도 정말 딸을 아꼈고, 결혼한다고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자랑할 정도였어요…… ”
“아무튼 강제로 손 쓰지 마시고, 2주정도만 기다리시면 될 거예요. ”
“감사합니다… ”
택시 회사를 나서면서, 파이로는 어딘가 씁쓸한 표정이었다. 사고로 죽어서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의 결혼식을 위해 이승에 남아있다니… 지금까지 그녀가 만나왔던 유령과는 다른 존재였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왔던 유령들과는 다르군… 가족을 위해 남아있다니…… 보통 저런 상황이 되면, 자신을 죽인 범인을 찾아 배회하게 되거든. ”
“뭐… 그렇긴 하죠. ”
“씁쓸하군… 살아있었을 때 꽤 손꼽아 기다렸을텐데… ”
2주 후, 미기야와 파이로는 택시 회사 사장님의 부탁으로 회사를 찾아갔다. 낮이라 그런지, 다른 기사들도 보였다.
“안녕하세요, 괴담수사대입니다. ”
“아… 어서 와요. ”
“그 기사님은… 여전히 여기 계신가요? ”
“아니, 아니… 안 그래도 어제 이걸 남기고 갔어요… ”
남자가 건넨 것은 쪽지였다. 쪽지에는 ‘놀라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사장님. 전 이제 우리 딸 결혼하는 것만 보고 가겠습니다. -형태’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파이로에게 말했던 그대로, 회사를 그만 뒀던 것이다.
“이걸 받아주세요. 그 친구가 그 동안 내 왔던 돈입니다… 아마 꽤 두둑할테죠… 그 친구가 죽은 후로 들어온 돈은 제가 받지 않고 모아뒀습니다. ”
“!!”
커다란 서류봉투 안에는 지폐와 동전들이 꽤 많이 들어 있었다. 양이 꽤 되는지, 묵직한 봉투였다. 지금까지 모아뒀던 사납금이라고 했다. 소문이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걸 보면, 그는 여기서 꽤 여러 달 일 한 모양이었다.
“어유, 꽤 묵직하네요. ”
“그 친구… 그렇게 간 후로 여기서 꽤 오래 일했습니다. 이걸 그 친구 가족에게 전해주세요… 여기로 찾아가시면 됩니다. ”
“알겠습니다. ”
미기야와 파이로는 남자에게서 돈이 든 봉투와 주소가 적힌 쪽지를 받아들었다. 주소에 적힌 그 곳은 길고양이들이 돌아다니는 꽤 낡은 주택가였다.
“계십니까? ”
“…누구…? ”
“안녕하세요, 괴담수사대에서 왔습니다. 혹시 유형태씨 댁이신가요? ”
“맞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몇달 전에 사고로 죽었는데…? ”
“아아, 저희는 그 분에게 볼일이 있는 게 아니예요. 전해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
“그러시군요… 잠시만 들어오세요. ”
집 안에서 나온 중년의 여자는 두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원래부터 낡았던건지, 최근 관리를 못 해서 낡아진건지 알 수 없는 좁은 집이었다. 그녀는 두 사람을 앉히고, 물잔을 내 왔다.
“이걸 받아주세요. ”
“이게 뭔가요? ”
미기야가 봉투를 내밀자, 여자는 봉투를 열어봤다. 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한 그녀는 눌란 눈치였다.
“이 돈은… 뭔가요? ”
“이 댁 막내따님이 결혼을 한다고 들었어요. 이건 따님께 드리는 그 분의 마지막 선물이예요. ”
“그이의… 선물이요? ”
“네. ”
“그 사람, 따님의 결혼식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계속 회사에서 일을 했었어요. 최근에 떠도는 무인 택시에 관한 소문의 주인공이 그 사람이 따님을 위해 몰던 택시였죠. 택시 회사에서는 그 분이 이제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저희도 그 때 처음 만나뵙고 얘기를 들었던 거예요. ”
“아아… 여보…… 그 사람, 혜연이를 굉장히 아꼈답니다… 이번에 결혼할 사람을 데려왔을 때도, 세상에 둘도 없이 행복한 신부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었죠… 그런데 그렇게 가 버려서 혜연이가 많이 슬퍼했어요… ”
그녀의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형태 씨는 이 돈을 따님의 결혼 자금에 보태고 싶으시다고 하셨어요. 부디 남편…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이 돈을 보태주세요. ”
“엄마, 저 왔… 응? ”
마침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혜연도 두 사람을 목격했다. 가운데에 놓인 봉투와 울고 있는 엄마.
“엄마, 왜 그래? ”
“혜연아… 은행 가서 이 돈 저금해… 흐윽- ”
“엄마? 이게 뭔데? ”
“혹시 유혜연 씨 되시나요? 아버님이 유형태씨 맞죠? ”
“네, 제가 유혜연인데요…? 누구세요? ”
“저희는 괴담수사대에서 나왔어요. 아버님께서 이 돈을 혜연 씨가 결혼하는 데 보탰으면 한다고 해서 전해주러 왔고요… ”
“아빠가요? ”
“네. 아버님이 많이 미안해 하셨어요… 혜연 씨 결혼하는 것 보고 편히 가신다고 하셨죠… ”
“아빠… ”
“이건 아버님의 선물이예요. 혜연 씨가 행복해졌으면 한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
두 사람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그도 그럴 것이, 여전히 아버지가 여기에 남아서 두 사람을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딸의 결혼을 위해서.
“아빠… ”
“아버님이 혜연 씨 칭찬을 아주 많아 하셨어요. 다음 주에 결혼식도 보러 오신다고 하셨고요. 혜연 씨, 그 날은 꼭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신부가 되길 바래요. ”
파이로는 말없이 혜연의 손을 꼭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