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 포포포- 포포포~ ”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여자가, 그의 옆을 지나쳐 가고 있었다. 하얀 원피르세 하얀 모자를 쓴, 어딘지 모르게 창백해보이는 여자였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마치 읊조리듯 그녀는 포포포, 하는 소리를 남기고 갔다.
‘저렇게 큰 여자가 있었나? 모델인가? ‘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날 이후로, 수수께끼의 여자는 그가 있는 곳 어디든 나타나서 창문을 통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수수께끼의 여자를 쫓아달라고 오신 거죠? ”
“네… 요즘은 그 여자 떄문에, 창문을 아예 볼 수가 없어요. 제가 어디에 있든 창문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어요… 창문이 없는 곳은 갑갑해서 싫지만, 요즘은 집을 창문이 없는 곳으로 구했어요… ”
“으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 여자는 언제 나타나나요? ”
“제가 있는 곳이면 언제든지 보입니다. ”
“…… 그런 것 같네요… ”
미기야가 창가를 보자, 낯선 여자가 보였다. 여기는 건물 2층이라 사람이 들여다보거나 할 수 없는 높이였지만, 그녀는 그런 것쯤은 문제가 없다는 듯 사무실 안을 보고 있었다. 바람에 긴 머리가 날리는 모양이 마치 끊어진 전깃줄이 매달린 것 같았다.
“…… 저렇게 매일 들여다 봐서 죽을 것 같아요… ”
“저 녀석, 보자보자 하니 짜증나네… 네녀석, 대체 뭘 달고 다니는거냐? ”
아까부터 신경쓰였는지 창 밖에 서 있는 여자를 노려보던 파이로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나, 참… 신경 쓰여서 치즈스틱을 먹을 수가 없구만… 가만, 저렇게 큰 여자가 있어? 여기는 건물 2층이라 웬만한 인간은 저렇게 들여다볼 수가 없어. ”
“그렇긴 하네요… 여기, 2층이었죠… 의뢰자분의 댁도 2층이었다고 하셨죠? ”
“네… 전에 살던 집은요. ”
“…… 네녀석, 팔척 귀신에게 홀린 거냐… 저 녀석, 처음 만났을 때 포포포거렸지? ”
“네, 맞아요! ”
“팔척 귀신이야. …저 녀석, 어디 봉인해놨다더니 지장이 깨진 모양이군… 그렇다고 해도 이런 곳까지 돌아다니다니… ”
창 밖에서 여전히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를 본 파이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거 지금 당장은 해결 못 해. ”
“네? ”
“네놈, 대체 어쩌다 저런 녀석을 만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 저녁까지는 기다려. ”
“파이로 씨, 대체 어쩌시려고요? ”
“부적이랑 소금 좀 구해 와라. 그리고 키츠네 불러. ”
“아, 알겠습니다… ”
남자가 사무실을 나서자, 창 밖에 서 있던 여자도 그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가 걷는 방향으로, 그를 따라 여자도 같이 걷기 시작했다. 남자가 돌아가자마자 미기야는 바로 키츠네에게 연락했다.
“키츠네 씨, 의뢰인 떄문에 그러는데… 사무실로 잠깐 와 주실 수 있으세요? ”
‘무슨 일인데 그래? ‘
“의뢰인이 팔척 귀신에 홀린 모양이예요. ”
‘팔척 귀신? 그 녀석, 괴이는 아니지 않냐…? ‘
“저도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파이로 씨가 연락해보라고 하셔서… ”
‘파이로가? 알았어, 금방 갈게. ‘
잠시 후 키츠네가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파이로는 병에 소금을 담고 있었다. 소금을 담은 파이로는 병을 코르크 마개로 막았다.
“어, 왔냐? ”
“어. 미기야 전화 받고 왔어. 근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잠깐만- 미기야가 지금 부적 쓰고 있거든. 말 그대로, 팔척 귀신에게 홀린 녀석이 나타났어. 그 녀석이 어딜 가든 팔척 귀신이 창문으로 들여다 보는 통에 못 살겠다고 왔더만. 그 녀석이 여기 있는 내내 밖에서 창문으로 들여다 보다가 갔어. ”
“그렇군… ”
“저녁에 팔척 귀신을 쫓으러 갈 건데, 네가 가서 결계를 쳐야 돼. 미기야는 부적은 쓸 줄 알지만 결계를 못 치거든. ”
“아하… 알겠어. ”
저녁, 미기야와 파이로는 의뢰인의 집에 도착했다. 뒤이어 키츠네도 쿠로키와 같이 도착했다.
“저기 저 귀신이 팔척 귀신인가봐요.. ”
“그런 듯… ”
“되게 크네요… ”
의뢰인의 집으로 들어 가자마자, 파이로는 키츠네에게 집 중앙에 결계를 칠 것을 부탁하고 남자에게 미기야가 쓴 부적과 소금을 건넸다.
“내일 해가 뜰 때까지는 절대 이 밖으로 나가면 안 돼. 만약 해가 뜨기 전에 나간다면 우리도 네 안전을 장담할 수 없어. ”
“알겠습니다. ”
“어느 누구도 너를 부를 일은 없으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 부적 꼭 가지고 있고. ”
“네. ”
파이로가 밖으로 나가보니, 쿠로키가 팔척 귀신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둘이 벌써 친해진거유? ”
“아하하, 네. ”
“아직도 구미호가 있다니, 신기하네요. 그것도 흑여우 구미호라니… 그나저나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
“사실은- 여기 사는 남자가 당신을 쫓아달라고 의뢰를 했답니다.. 당신이 창문으로 하루종일 들여다보는 바람에 죽을 것 같다고… ”
“아, 그런 건가… 딱히 해를 끼칠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저 녀석이 걱정돼서… ”
“걱정? ”
“네. 저 녀석에게 뭔가 들러붙어 있더라고요. 까만 그림자 같았는데… 계속 손을 뻗고 있었어요. 마치 매달릴 것처럼… ”
“!!”
“그런 게 한두개가 아니라 여러개였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걸 쫓아낼 수는 없었고… 걱정은 되고 해서 그냥 쭉 지켜봤던거죠. 하지만 당신들을 만난 걸 보면 다행일지도 몰라요. 당신들, 괴담수사대죠? 일전에 뱀공주 사건을 해결했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
“오래 되긴 했지만, 해걸은 했지… 잠깐, 그럼 이 녀석 말대로라면 지금 저 녀석, 더 위험한 상태가 될 수도 있는건가? ”
“키츠네의 결계 안에 있으면 괜찮을거예요. 하지만 저 결계는 일회용이라… ”
“부적도 일회용인데… 큰일이군. ”
파이로는 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연락을 받고 온 히다리는, 도착하자마자 무언가를 느꼈는지 움찔했다, 그녀의 뒤를 따라서 도착한 것은, 요 전에 만났던 백사의 저주를 실행해 준다는 여자였다.
“둘이 왜 같이 와? ”
“오다 만났는데? 역시, 내 예상대로 상당히 오염된 놈들이 들러붙은 모양이야… ”
“…… 심각한데… ”
“일단 미기야가 써 준 부적도 있고, 키츠네가 쳐 놓은 결계도 있어서 괜찮아. ..가만, 결계에 놈들이랑 그 녀석이 같이 있잖아. 내가 내일 해 뜰 때까지는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
“그런 거 따질 때냐… 인간은 어찌됐든 그 결계를 통과할 수 있고, 인간이 아닌 것은 통과를 못 하는 거야? ”
“그런 건 아닌데… 그 안에 있으면 일단 쪽도 못 쓰긴 할거야. ”
둘이 어떻게 할 지 얘기를 나눌 동안, 히다리는 여전히 남자가 있는 방 쪽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방 안에서 불빛이 번쩍, 하더니 사라졌다. 파이로와 히다리가 달려 가 보니, 남자가 쓰러져 있었고 그 발 밑에는 검은 연기같은 것이 자욱했다.
“히다리! 어서! ”
“…응. ”
히다리가 붕대로 검은 안개를 결박하고 있을 동안, 파이로는 남자를 결계 밖으로 끌어냈다.
“히다리, 그거 풀어! 싹 태워버릴거니까. ”
“…응. ”
히다리가 붕대를 풂과 동시에, 파이로는 결계 안을 혼불로 태워버렸다. 검은 안개같은 것이 요동치더니 잠잠해지자, 파이로는 남자를 들쳐 업고 밖으로 나왔다.
“!!”
“결국 이렇게 된 것인가… ”
“히다리가 결박할 동안, 이 녀석 끌어내고 결계째 혼불로 태웠어. 미기야가 부적을 써 줘서 망정이지… ”
“…아까 그 번쩍하던 건 부적 때문에 그런거였어? ”
“응. 좀 가벼운 걸로 쓴 모양이지만… ”
“흐음… 어찌됐건 혼불로 태워서 정화가 됐다면 다행이죠. 다만 왜 그런 게 들어붙어 있었는지가 걱정이네요… ”
“들러붙은 숫자도 너무 많았어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형체까지 사라진 걸 보면 꽤 오랫동안 붙어있었던건가… ”
“자세한 건 나중에 알아보도록 하지. 지금 당장 알아볼 수는 없으니까… ”
파이로는 결계가 사라지기를 기다린 다음, 남자를 집으로 데려갔다.
“어… 어라? 뭐가 어떻게…… ”
“팔척 귀신은 더 이상 네 곁으로 오지 않을 거야. 그보다 네녀석… 뭐 이렇게 붙어있는 게 많냐? ”
“…네? ”
“그 녀석이 널 따라다녔던 이유도, 뭔가 붙어있던 게 많아서 그랬던 거야. 네녀석이 걱정돼서 쭉 따라다녔던 거라고. 네녀석에게 붙어있었던 건 떨어트렸지만, 귀신이 걱정돼서 따라다닐 정도면 심각하군… 그래도 부적 덕분에 산 걸 다행으로 알아. ”
“…… ”
결계가 사라진 바닥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깨끗했다. 하지만 남자가 발을 디디는 순간, 바닥에서 다시 무언가가 올라왔다. 까만 손이었다. 바닥에서 하나가 올라오자마자, 뒤이어 여러 개의 손이 따라 올라왔다.
“!!”
“그렇게 소거를 했는데도… 잠깐. ”
그녀는 남자를 다급히 밖으로 당기면서 미기야를 불렀다. 잠시 후, 미기야가 도착했을 때 본 것은 지상으로 올라온 수많은 손들과 대치중인 두 사람이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
“설명은 나중에. 일단 이 손들부터 처리하자. ”
파이로는 공중을 휘적거리는 손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형태가 온전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손의 크기도 매우 작았다. 그런 손들이 모여서 하나의 손을 이루고 있었다. 하나의 손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무수한 아기의 손이었다. 파이로는 손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건… 아기의 손인가? ……네놈, 대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인거냐! ”
“그, 그…… 그게…… ”
파이로가 손을 가윗날로 꿰뚫은 다름 끌어올리자, 태아의 형상을 한 그림자가 나왔다. 거대한 형상이었지만, 분명 그것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무수히 작은 아기들이었다. 파이로자 그것을 가위로 베어버리고 다시 한 번 혼불로 태워버리자 그림자는 짧은 비명소리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제 나타나지 않는군… 네놈, 대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인 거냐? 이렇게까지 원한을 가지고 나타날 줄은… ”
“…… ”
“속쥐하지 않으면, 그리고 같은 죄를 또 다시 지으면 앞으로도 저런 그림자는 무수히 생길 거다. 어차피 죽어서 치를 죗값, 벌써 치를 필요는 없겠지만… ”
그녀는 미기야와 남자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