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어그러짐

「비행한다는 것은 언제나 매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비행하기 위해서는 추락을 감수해야 한다.
추락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임에도 날려고 힘을 다 하는 모습.
나는 그런 비행에서 매력을 느낀다. 」

파이로가 빌려온 책에 적혀있는 구절이었다.
의외로 취미가 독서였던 그녀는, 모처럼 일도 없겠다, 한가해서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다. 그 책은 가토 켄이치라는 사람의 여행기를 쓴 책이라, 인기가 많다고 한다. 빌려가는 사람도 많고 해서,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 홧김에 빌려온 책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꽤 따분했다.

“어, 파이로 씨. 무슨 책 읽으세요? ”
“아, 이거? 보자…… 비행의 매력. 가토 켄이치가 쓴 책이라네. ”
“가토 켄이치…? 그 책 어디서 빌리셨어요? ”
“도서관. 이 책, 인기가 상당한 모양이던데. ”
“아무래도 여행 쪽으로는 상당히 유명한 작가니까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행을 하고, 그걸 묶어서 여행기로 내신 분인데 테마가 상당히 많아요. 그거 다 읽고 저도 한 번 읽어봐도 돼요? ”
“어, 읽어. ”
“감사합니다. ”

가토 켄이치. 그는 꽤 유명한 작가였다.
일본인 출신으로,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다음 여행기를 꽤 많이 냈다고 한다. 국내에도 번역돼서 팔리는 책들이 꽤 있는데, 가토의 여행기는 발매할 때마다 베스트셀러였다. 여행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여행기를 읽으며 여행을 떠나거나, 대리만족을 하곤 했다.

하지만 정작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이자 여행가였던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직 서른 둘,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요절했다. 유명한 작가였던지라 그의 죽음은 한동안 꽤 화제였고, 음모론까지 생길 정도였다.

“어, 이 책은 뭐야? ”
“가토 켄이치가 쓴 책인데요. 도서관에 있길래 빌려왔어요. ”
“오, 그게 도서관에 들어와 있을 떄가 있다니… ”
“꽤 유명한 책인가보네요. ”
“응.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여행을 떠나거나, 대리만족을 하거든. 근데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게 있어. ”
“……? ”
“이 책을 쓴 작가는, 정작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더라. 투신자살이었대. 책도 많이 내고, 인기도 많을텐데 어쨰서 자살했을지는 수수께끼지만… ”
“음… 그런가요… ”

늦은 밤. 가로등 불빛이 빈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잠들어있었지만, 한 남자는 잠들지 못했다. 잠 못 이루는 밤, 그는 맥주 한 캔을 들이키며 창 밖응 보고 있었다.

최상현, 그는 평범한 서른 세 살의 샐러리맨이자 직장인이었다.
통장에는 돈을 꽤 모아두고 있었다. 그것은 원래 결혼 자금으로 썼어야 했지만, 여자친구와 말다툼 끝에 헤어진 후로 그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졌다.

일에 치이느라, 여자친구와 가족들에게 치이느라 자신의 삶은 없었던 것만 같다. 이제는 나의 삶을 찾고 싶다. 그것이 지금 그가 바라는 단 한 가지였다.

‘하아…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다… ‘

마침 모아둔 돈도 있겠다, 여행이나 훌쩍 따나자. 그렇게 결심한 상현은 여자친구가 선물해 준 가토의 여행기를 꺼내 읽었다.

가토 켄이치, 그는 상현의 여자친구가 가장 좋아했던 작가였다. 여행기가 나올때마다 서점으로 달려가 사서 읽거나, 나에게도 가끔 선물해 주곤 했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나면 가토처럼 같이 세계를 여행하자고 약속했던 그녀. 가토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많이 안타까워했던 팬 중 하나였다.

-쾅쾅쾅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책을 읽던 상현은 책갈피를 끼워두고 인터폰을 통해 밖을 내다봤다.

“오빠, 문 좀 열어봐! 내가 잘못했어! ”

최근 말다툼을 하고 헤어진 이유는, 그녀가 상현에게 했던 사소한 말 하나때문이었다. 무심코 나온, ‘오빠네 가족들은 좋은 사람이지만, 가토와 같은 결혼관을 가진 사람에게 시집가고 싶다’는 말이었다.

가토는 평소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는 아내에게 헌신할 것이다. 어차피 나는 부모님도 돌아가셨고, 형제도 없는 천애고아이다. 내가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은 내 외로움을 달래 줄 아내뿐이다.’라고 했었다. 그녀는 그런 얘기를 듣고, 정말 멋지지 않냐며 물었다.

“내가 잘못했다니까! 다시는 그런 말 안 할게! 응? 오빠! ”

사실 그녀는 몇 번, 상현과 가토를 비교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기분이 나빴다. 마치 나에게 헌신해 주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싶지만, 그렇기는 힘들 것 같으니 마지못해 결혼하는 것 처럼 들렸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그는 그녀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됐다.

“돌아가. 우리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했잖아, 이런 식으로 지꾸 찾아오면 곤란해. ”
“오빠! 문 열어봐! 응? 우리 얼굴 보고 얘기해! ”

상현의 말은 아랑곳 않고, 그녀는 계속해서 문을 두들겼다.

“자꾸 이런 식으로 난동부리면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어. ”
“오빠!!! ”

그는 인터폰을 통해 차갑게 말하면서 경찰에게 연락했다. 곧이어 경찰이 도착해 그녀를 끌어내고 있는지, 이거 놓으라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은 아프지만, 정말 그녀와 더 이상은 함께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하아… 정말 왜 이러니, 나한테…… 우린 정말 아냐… ”

상현은 더 이상 책을 읽을 기분이 아니었는지 잠들었다.

그 다음날.
상현이 회사에 출근했을 때, 회사원들이 전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상현씨, 여자친구가 정말 멋지네. ”
“네? ”
“이거 봐봐. ”

상현의 책상 위에는 꽃다발과 박스 하나가 놓여있었다. 꽃다발에 끼워진 카드에는 ‘오빠 미안해! 제발 우리 헤어지는 건 다시 생각해줘!’라고 쓰여있었다.

박스를 들어보니 제법 무거웠다. 그리고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가토의 여행기였다. 역시 너는 가토밖에 안 들어오는구나. 그래서 우리가 안 맞는다는거였는데.

“여자친구가 가토 좋아하나봐? ”
“어, 이거 신간인데! 나 이번 달 월급 나오면 사려고 했던건데… ”
“그럼 이거 가지세요. ”
“상현씨는…? ”
“임마, 여자친구가 준 선물 이렇게 굴리는 거 아냐. ”
“괜찮아요, 저 헤어졌어요. ”
“…… ”

사무실 공기가 무거워졌다. 옆자리 사원은 상현이 건넨 책을 멋적게 받아들어 책꽂이에 올려놓았다.

분명히 헤어졌는데도 그녀는 인식하지 못 하는걸까. 매일같이 상현의 집과 회사로 그녀는 소포를 보내고 있었다. 진저리가 난 그는 집을 옮겼다. 그러자 회사로만 소포가 오고 있었다. 내용물은 전부 가토의 책이었다.

“하아… ”
“상현, 너 오늘도 소포 왔더라. ”
“현태씨, 나 좀 도와줘. ”
“무슨 일인데 그래? ”
“하아…… 얘가 헤어진 걸 인식을 못 하는건지 자꾸 이렇게 소포가 오네… 집에도 오길래 이사갔더니, 그 다음엔 이쪽으로 쭉 보내는거야. ”
“뭐? 집으로도 보냈었어? ”
“응. ”
“그런가… 이따 저녁 먹고 술 한잔 하자. 술 한잔 하면서 얘기합시다. 치맥 콜? ”
“오케이. ”

그 날 저녁, 현태는 상현을 데리고 회사 근처의 술집으로 갔다. 가게 안에 들어선 두 사람은 치킨과 맥주를 주문했고, 손님이 없었던 탓인지 주문함 음식은 금방 나왔다. 상현은 맥주를 한모금 들이켰다.

“근데 너네 커플 왜 헤어진거냐? 진짜 아름답게 연애하던 커플이었잖아. ”
“걔 머릿속에는 온통 가토뿐이었어. 가토, 가토, 가토… 나랑 가토를 비교하더니, 헤어지기 전에는 뭐라고 한 줄 아냐? 나보고 우리 가족들도 좋은 사람이지만, 자기는 가토처럼 아내한테 헌신할 수 있는 사람에게 시집가고 싶다고 하더라. ”
“뭐? 진짜? ”
“어. 그래서 싸우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연애할 때도 이렇게 되면 결혼하고 나서도 그럴 것 같아서 헤어졌어. 신혼여행지도 가토의 여행기를 보고 결정할 정도였다니까… ”
“아니, 여행지를 정하는 건 그렇다 치자…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거야, 그 사람은? ”
“모르겠다… ”
“그럼 그러고 나서 계속 책을 여기로 보낸다는거야? ”
“응. 이사가기 전에는 집으로 새벽마다 찾아와서 난동도 부렸어. 그래서 매일 경찰이 집 앞으로 와서 그 애를 끌고 가거나 했지. ”

현태는 상현의 얘기를 듣고 혀를 끌끌 찼다.

“참… 내가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그 여자 완전 별종이다… 야, 너 잘못 하나도 없다. ”
“하아…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해야 하냐… ”
“그러게… 회사를 옮기기도 뭐하고… 특정 주소가 보내는 우편물은 반송처리하게 할 수 없나…? 그 주소로 오는 우편물은 반송해달라고 해봐. ”
“그래야겠어. ”

다음날, 상현은 출근하자마자 매일같이 소포가 오는 주소의 우편물을 반송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회사로 소포는 오지 않았지만, 그녀가 직접 찾아왔다.

“오빠… ”
“……여기까지 찾아오는 이유가 뭐야? ”
“우리 다시 시작하자… 시작할 수 있어… 응? 오빠…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 마… ”
“혜연아. ”
“응? ”
“가토 좋아한다며. 가토같은 남자랑 결혼하고싶다며. 자기한테 헌신해 줄 남자가 좋다며. 너 평소에도 나랑 가토를 가끔 비교하곤 했지…? 평소에는 참아왔지만 정말, 결혼할 사이에 다른 남자랑 비교하면서 마지못해 한다는 투로 말하는 건… 정말 아냐, 혜연아. 헤어졌으면 헤어진 걸로 끝내. ”
“오빠… ”
“지금도 이러면 결혼하고 나서도 가토랑 계속 비교하겠지. 내가 그 전에도 몇 번 그럴때마다 하지 말라고 했는데, 너 그럴때마다 알겠다고 하고 돌아서서 가토랑 비교하더라. 난 너랑 다시 시작할 생각 추호도 없고 만정 다 떨어졌으니까 다시는 이런거 보내지 마. 반송할거니까. ”
“오빠! ”
“…안 나가면, 경비 부른다. ”

상현을 저지하려던 혜연은 경비에게 끌려가듯 사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상현은 머리를 감싸쥐고 자리에 앉았다.

“하아… 회사도 옮겨야 할 모양이네… ”
“상현씨. 무슨 일이야, 대체? ”
“부장님, 저 죄송한데 오늘은 일찍 들어가보겠습니다. 몸이 안 좋아서요… ”
“그래, 얼른 들어가봐. ”

퇴근길, 일찍 집에 들어가던 상현을 누군가가 뒤쫓고 있었다. 상현도 그것을 눈치챘지만 눈치채지 못한 척 태연히 걸었다. 그리고 그는 지하철을 타는 척 하면서 지하철 역 화장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상현을 따라오는 누군가는 화장실까지는 갈 수 없는지, 멈칫하는 눈치였다.

짐작 가는 사람이 있었던 상현은, 혜연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밖에서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오빠?
“이혜연. ”
-응.
“날 미행하는 이유가 뭐야? ”
-……

수화기 너머에서는 말이 없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니 목소리, 다 들려. 순순히 돌아가. 안 그러면, 경찰 부를거야. ”
-……

다시 말이 없었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화장실에 언제까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상현은 결국 또 다시 경찰을 불러 그녀를 쫓은 후에야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간 상현은, 혜연의 엄마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어머님, 저 상현입니다. ”
-아, 상현군. 무슨 일이예요?
“혜연이가 저를 자꾸 미행하고, 회사로 소포를 보냅니다.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
-소포를요…?

상현은 혜연의 엄마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전부 얘기했다. 소포를 보내고 밤 늦게 집으로 찾아와서 소란을 피운 것 하며, 헤어지게 된 경위와 소포가 반송되자 회사로 찾아온 것, 그리고 오늘 미행을 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

“소포의 내용물은 가토 켄이치의 책이었습니다. ”
-가토 켄이치의 책이요…? 아무래도 이상하네요… 우리 혜연이는 가토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는 가토의 책은 잘 안 보던 아이인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문자 그대로예요. 혜연이는 가토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는 가토의 책에는 거의 손도 안 댔어요. 거기다가 헤어지자고 했음에도 그렇게 따라다니거나 할 아이가 아니라는 건 상현군도 알잖아요.
“…… ”
-아무래도 상현군의 얘기를 들어보니 뭔가 이상하네요… 원래 그럴 애가 아닌데… 제가 한번 잘 얘기해볼게요.
“알겠습니다. ”

상현의 전화를 끊은 혜연의 엄마는,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혜연이 상현을 미행하다가 지하철 역에서 난동을 부려서, 끌려나왔다는 것이었다.

요즘들어 부쩍 이런 전화가 늘었다. 상현의 오피스텔로 찾아가질 않나, 생전 손도 대지 않던 가토의 책을 다시 읽질 않나… 게다가 헤어진 남자에게 따라붙고, 미행까지 하다니…

‘아무래도 이상해… ‘

혜연의 엄마도,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꺠달았다. 단순히 뭔가 변한 정도가 아니었다. 지극히 병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