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5. 죽은 자의 편지

여느떄처럼 밀린 잔업을 마치고 가기 위해 사무실에 앉아 있던 근식은,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흔히 사용하는 도메인은 아닌 듯 했지만 기업체의 도메인이겠거니 하고 메일을 열었던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섰다. 그를 경악시킨 것은, 메일에 쓰여 있는 단 한 줄.

‘아빠, 보고싶어. 만나러 갈거야. ‘

“오너, 손님이 오셨어요. ”
“아, 알았어. ”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느긋하게 독서를 할 요량이었던 미기야는, 커피잔을 책상에 내려놓고 사무실로 찾아 온 근식을 맞았다. 어제 온 메일로 인해 충격을 받았는지, 그는 여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
“메, 메, 메일이… 이상한 메일이…… ”

여전히 겁에 질려 말을 더듬는 그를 본 미기야는 근식에게 물 한 잔을 건넸다. 적당히 미지근한 물이었다. 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 겨우 근식은 숨을골랐다.

“후우… ”
“이상한 메일이 왔다는 건 무슨 말인가요? ”
“그러니까… 어제, 야근을 하던 중 메일함을 열어 봤는데… 주소도 처음 보는 곳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아빠, 보고 싶어라고… ”
“……? ”
“하, 하지만 전… 아이가 없어요… 몇주 전에 와이프가 유산을 해서…… 그 때 하늘나라로 보낸 아이 말고는… ”
“그러시군요…… ”
“하지만 그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도 못 했어요… 메일같은 걸 보낼 수 있을 리도 없고…… ”

미기야가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는 사이, 현이 미기야의 명함을 건넸다. 근식이 그걸 받아 들고 지갑에 넣자, 미기야가 무언가 생각난 듯 근식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사서함에 아직 메일이 남아 있나요? ”
“모,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그냥 후다닥 뛰어 나와서… ”
“그 메일이 남아 있다면, 저에게 전달해주세요.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
“가, 감사합니다… ”

인사를 건네고 뒤돌아 사무실을 나가는 근식의 등이 어쩐지 쓸쓸해보였다. 아마도, 그 메일이 정말 죽은 아이가 보낸 것일지도 몰라서일까.

“그런데… 저승에서 메일을 보내기도 하나요? ”
“흠… 파이로 씨랑 가끔 통화도 하는 거 보면, 메일도 전송 할 수는 있을걸요… 일단, 그 도메인이 어디서 온 도메인인지를 알아야 해요. ”
“파이로 씨한테 여쭤 보면 되지 않을까요… 아, 마침 오셨네요. ”

파이로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현이 기다렸다는 듯 파이로를 향해 인사를 건네며 이 쪽으로 잠깐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파이로 씨, 혹시 명계에서 메일도 보낼 수 있나요? ”
“메일? 보낼 수야 있지. 생전에 자기가 쓰던 메일 계정같은 거 있으면 그거 가져다가 쓰기도 해. ”
“생전에 쓰던 게 없으면, 아예 못 쓰는건가요? ”
“개설도 해 주긴 하지. 근데 그건 왜? ”
“의뢰인이 왔는데, 명계에서 메일이 왔대요. 메일을 보낸 주체가 아이인 것 같다는데… ”
“요즘 애들 얼마나 빠른데. ”
“그게… 의뢰인의 부인께서 유산을 하셔서… 그 아이가 아닐까 생각도 해 봤는데… 몇 년도 아니고 이제 죽은 지 몇 주 지난 아기가 메일을 보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
“…그럼 그 애는 대체 누구지? 아니, 애초에 명계에서 메일 계정을 새로 신청하려면 나이가 어느 정도 차야 하는데…? 뱃 속에서 죽었다면 메일같은 거 하지도 않았을거고, 그럼 계정을 새로 파서 메일을 보내야 한다는 거잖아. 명계에서 메일 주소를 새로 만들려면 적어도 열 네살은 돼야 해. ”
“!!”
“계정을 빌렸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건 일단 메일을 받고 나서 생각 할 일이지… 미기야, 메일은 왔어? ”
“네. ”

미기야는 파이로에게 근식이 전달한 메일을 보여줬다. 보낸 사람의 주소를 한참동안 유심히 살펴 보던 파이로는 어딘가로 연락을 했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메일의 아랫 부분을 확인했다. 메일의 아랫쪽에는 부적에나 있을 법한 붉은 문양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이건 명계에서 온 메일이 맞아. 명계에서 메일을 보낼 떄는 서명 란에 이 문양이 들어가거든. 이 도메인도 명계에서 사용하는 도메인이고. 아마 저 쪽에 조회 요청하면 계정 주인이 누군지 금방 나올거야. ”
“그럼 저 메일은, 죽은 아이가 보낸 걸까요…? ”
“명계에서 메일 계정을 받으려면 열 네살은 돼야 해. 뱃속에서 죽은 아이가 메일을 보내려면 몇 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아마 정말로 아이가 보낸 거라면 누군가의 계정을 빌렸을 수도 있지만, 이 계정은 아이의 계정이 아냐. ”
“그렇군요… ”

파이로의 전화기가 부르르 울렸다. 세베루스의 전화였다.

“아, 세베루스 씨. 메일 주소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아내셨나요? …네? 시트로넬이라고요? ”

세베루스와 전화 통화를 하던 그녀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옆에서 듣던 미기야와 현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전화를 끊은 파이로는 또 다시 급하게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가 싶더니,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
“너희들은 여기 있어, 인간이 함부로 나섰다간 죽을 수도 있어. ”

그리고 밖으로 나간 파이로는 근식의 사무실 근처를 배회하는 시트로넬을 발견했다.

“어, 파이로. ”
“이봐, 네 녀석이 애한테 메일 계정을 빌려줬냐? ”
“아아, 어. ”

그녀는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파이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시트로넬이 들고 있는 것은, 진주 목걸이였다. 알알이 큰 진주를 엮어 만든, 하얀 진주가 이름답게 빛나는 목걸이.

“단죄자가 메일을 보낼 정도라니, 대체 무슨 일이지? 연유나 좀 알자. 저 인간이, 네녀석이 보낸 메일 때문에 우리 사무실에 왔었어. ”
“뭐… 그런가. …가만. 설명은 나중에 하지. ”

뚱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바라보던 그녀는 가위를 빼 들고 창문 쪽으로 향하는 그림자를 꿰뚫었다. 그러자 그림자는 비명을 지르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겨우 떨쳤나… 대체 저 그림자는 뭔지 모르겠군. ”
“……? ”
“저 녀석은, 크리멘이 와서 처리해야 할 녀석이라 난 딱히 죽일 생각 없어. …저 자식이 그렇게 사고를 칠 줄은 몰랐지만… ”

그림자가 도망친 곳을 보며 그녀는 쯧, 혀를 찼다. 그리고 마시다 만 바나나 우유를 마저 마시며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저 인간을 만나기 전에, 저 아이를 먼저 만났어. 저 아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죽였다고 했지… 하지만 너도 알잖아,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은 아기가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는 지…? 영겁의 시간동안 환생하지도 못 하고 무간지옥에서 태어나지 못 하고 죽어가는 벌을 받아야 하지…

그래서 처음엔 저 녀석이 지 아비에게 원한을 갚겠다는 걸 반대했지. 처음엔 고집을 부리던 녀석도 수긍했는지, 그럼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나 하게 해 달라고 하더군. 그래서 내 계정을 빌려 작별 인사를 하게 해 줬더니만… ”
“그럼 여기까지 저 녀석은 어떻게 찾아 온 거야? ”
“집념이야. 메일을 보내고 얌전히 물러나는 척 하면서, 뒤에서 계속 잠복해 있었던거지… 이대로 물러가는 편이 저 녀석의 신상에도 좋겠지만… 그리고 저 인간, 저 아이가 아니더라도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 ”
“무슨 말이야? ”
“저 녀석… 원한이 상당해. 우리와 동류이지만 동류가 아닌 것이, 저 녀석을 쫓고 있어. 그 녀석이 다시 움직이게 되면, 내가 그 쪽으로 가지. ”
“…… ”

사무실로 다시 돌아온 파이로는 미기야에게 시트로넬과 나눴던 얘기를 전부 말했다. 그 계정의 주인이 시트로넬이었다는 것과, 시트로넬을 만나러 가서 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근식을 쫓는 무언가가 하나 더 있다는 것까지…

“아이가 제 아비를 죽이려고 쫓을 정도라면… 게다가 그 녀석을 죽이려고 쫓는 인간이 하나 더 있다면, 글쎄… 아무래도 이번 일을 해결하기 전에, 그 녀석의 아내를 먼저 만나봐야 할 것 같다. ”
“흠… 아내분을요? ”
“그래. 뱃 속의 아이도 들을 건 듣고, 알 건 알아. 아마 아이가 죽은 것이 그 인간 떄문일 수도 있어. 아이와 아이를 품은 어미까지 괴롭혔을 수도 있다는 얘기지… ”
“가만, 혹시 리바이어던이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아이가 왜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지…? ”
“미기야, 애시 불러라. 리바이어던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나는 일단 저 녀석의 부인을 만나보고 올게. ”

파이로는 사무실을 나와 근식의 처가 일하는 곳으로 갔다. 근식은, 메일 건으로 물어볼 것이 있다는 말에 그의 아내가 일하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아내의 근무처에 찾아간 파이로는 근식의 아내를 만났다. 아이를 보내고 몇날 며칠을 울었는지, 그 흔적은 몇 주가 지났음에도 고스란히 몸에 남아 있었다.

“…… 가슴에 대못을 수도 없이 박았군. ”
“…… 저는 무슨 일로…? ”
“당신의 아이가, 당신 남편에게 편지를 보냈어. 곧 만나러 가겠다고… 그리고 남편을 죽이려고도 했지… 그래서 당신에게 물어보려고 왔어. 좀 미안한 얘기지만, 당신의 아이… 그리고 당신마저도, 그 녀석이 괴롭힌 끝에 이렇게 된 거라면… 그래서 그 아이가 그러는 걸 수도 있으니까. ”
“아아… 저희 아이는…… 아뇨, 그이는 야근이 잦았지만 다정했어요…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낸 건 제 불찰이었어요… 길을 건너다가 사고가 나는 바람에…… 그래도, 저희 아이는…… ”
“…… 그럼 당신과 당신의 아이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는 거로군… 미안하군, 아픈 곳을 건드려서… ”
“잠시만요.. ”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파이로를, 여자가 불러세웠다.

“저… 제 남편을 죽이려고 한다는 아이라면… 하나, 짐작 가는 게 있긴 한데… ”

그녀는 가방을 뒤져 작은 다이어리를 꺼내 파이로에게 건넸다. 손때가 묻은 가죽 다이어리는, 어딘가의 회사에서 받은 물건인 듯 했다.

“그 다이어리의 주인이… 아마, 그 아이와 관련이 있을거예요… ”
“이… 다이어리의 주인이? ”
“네…… ”
“…… ”
“제 아이가 그렇게 가 버린 것도, 어떻게 보면… 저희 남편이 아직 죗값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아마도, 그럴거예요… ”
“당신도 그 여자를 알아? ”
“그이의 회사에 갔을 때, 몇 번 본 적 있었어요. ”
“그렇군… 알겠어. 그럼, 이만. ”

사무실로 돌아온 파이로는 다이어리를 찬찬히 뜯어봤다. 갈피끈이 끼워져 있는, 표지 군데군데 얼룩이 묻은 다이어리였다. 정말 열심히 쓰는 녀석이었군, 그녀는 다이어리의 표지를 넘겼다. 표지 안쪽에는 아기의 초음파 사진과 ‘엄마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킬게. ‘라는 글귀가 있었다. 그녀는 어쩌면, 이 아이가 우리가 찾는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랑

문이 열리고, 시트로넬이 사무실로 들어왔을 땐 파이로밖에 없었다.

“녀석이 나타났냐? ”
“아무래도, 둘이 같이 나타날 것 같아서. 오너는 어디 있냐? ”
“퇴근. 연락해 줄까? ”
“응. 급하니까 빨리. …그건 뭐냐? ”
“설명하자면 좀 긴데… 의뢰인의 부인에게서 건네받은 건데, 아마도 이 아이가 범인일 지도 모른다는군. ”
“…이 아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