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6. 죽은 자의 편지(2)

“이 아이가? ”

시트로넬은 다이어리 표지 안쪽의 사진을 보았다. 이목구비가 생긴, 그래도 이제 사람의 형태를 갖춘 아기였다. 일기장 앞쪽의 달력에는 스케줄이 적혀 있었지만, 그것도 어느 시점에서 끊겼다. 뒷면의 일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 저 자식은 답이 없군… ”
“…… ”

일기장을 한장 한장 읽어보니, 일기장의 주인은 근식에게 강제로 범해진 후 원하지 않는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아이임에도 낳아서 키우고 싶었다. 그랬기에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근식은 사고를 위장해 죽여버렸다. 분명 다이어리의 주인도, 아이도 같이 명계에 있을 것이다.

“전화 하셨어요? ”

사무실 문이 열리고 미기야가 라우드와 함께 들어왔다. 파이로는 라우드에게 다이어리를 건네주고, 주인이 누구인지 찾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미기야와 시트로넬은 근식의 사무실 근처로 갔다. 다이어리의 영상을 보던 라우드 역시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 할 정도였다.

“…… 세상에… 이런 인간이 버젓이 가정을 꾸리고 산단 말인가… ”
“…… 너도 동의하냐? ”
“…… ”

파이로는 화면이 꺼진 전화기를 톡톡 두들겼다. 그리고 애시가 튀어나오자, 라우드가 들고 있던 다이어리를 건넸다. 다이어리를 건네받은 그녀 역시 다이어리를 읽어보곤 충격을 받았다.

“인간은 확실히 우리보다 무섭네… ”
“크리멘 어딨냐, 당장 연락해. ”
“나 여기 있는데? ”

애시가 전화기 속에서 완전히 튀어나오자, 그 뒤를 이어서 크리멘이 튀어나왔다.

“뭐야, 둘이 어떻게 같이 있었어? ”
“아, 잠깐 놀러왔다가. 뭐냐? ”

애시에게서 건네받은 다이어리를 읽어 본 크리멘에게서는 평소같은 능글능글한 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 역시 분노하고 있었다. 다이어리를 탁, 덮어서 파이로에게 건넨 그녀는 하루빨리 그 녀석을 찾아서 먹어치우고 싶은 눈치였다.

“저런 놈은 하루라도 빨리 내가 먹어치우는 게 답이지. 아마, 저런 놈들은 리바이어던도 더럽다고 안 먹겠지만. …그 자식 지금 어디 있냐? ”
“미기야가 그 녀석 근처로 갔다는데? 시트로넬이랑 같이. ”
“단죄자까지 뜨다니… 이거, 엄청난 영광이군. ”
“아니, 그 녀석은 그 인간을 노린 건 아니지만… 시트로넬, 그 인간은 너에게 양보할 생각인가보던데? ”
“그럼, 먹어치워줘야지. ”

크리멘이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미기야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냐? ”
‘어, 크리멘 씨. 파이로씨는요? ‘
“지금 같이 있는데? 그나저나 거기 아주 좋은 먹잇감이 있다며? ”
‘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시트로넬 씨 말로는 그렇다네요… 파이로 씨좀 바꿔주세요. ‘
“지원이냐? ”
‘급해요! 빨리 이 쪽으로 와야 해요. ‘
“알겠다. ”

전화를 끊은 크리멘은 애시와 파이로를 데리고 미기야가 있는 곳으로 갔다. 세 사람이 도착했을 때, 미기야와 시트로넬은 두 사람의 그림자와 대치중이었다. 하나는 이전에 봤던 아이의 그림자였지만, 하나는 전혀 처음 보는 그림자였다. 그것은 아이의 그림자를 어르고 있었다.

“!!”
“뭐야, 크리멘도 같이 왔냐? …존재를 먹어치우는 녀석도 왔군. ”
“우후후, 단죄자님. 오랜만. ”
“인사 나눌 시간 없어. ”

파이로는 미기야와 시트로넬을 물러나게 하고, 그림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내밀었다. 그림자는 다이어리를 받아들었다.

“니 꺼냐? 그리고, 이 표지 안쪽에 있는 사진이 이 아이냐? ”
“!!”

다이어리를 받아 든 그림자가 움찔했다. 그리고 마치 소중한 것을 받아들 듯, 다이어리를 꼭 끌어안았다.

“자, 아가. 네가 한 번 말해보렴. 이 사람은 누구고 너는 누구인지. 그리고, 이 사진 속 아기가 네가 맞는지. ”
“…… ”

큰 그림자의 품에 안겨 있던 작은 그림자도 움찔했다. 큰 그림자가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이자, 작은 그림자는 그런 큰 그림자를 달래주었다. 한참 뒤 큰 그림자가 울음을 멈추자, 작은 그림자는 큰 그림자를 쓰다듬었다.

“이, 이건… 제… 친구 다이어리예요…… ”
“친구…? ”
“네…… ”
“그럼 네녀석은 대체 왜 이 인간을 죽이려고 하는거냐? ”
“저 쓰레기같은 자식때문에, 제 친구가 죽었어요… ”
“…… 이 아이도, 그 녀석의 아이야? ”
“네… ”

큰 그림자는 얘기를 시작했다.

“…은희가 이 아이를 가지게 된 건, 회식이 끝났을 때였어요… 몸도 가누지 못 하는 친구를, 그 녀석이 외진 곳으로 데려가서는…… 그리고 며칠 후 이 아이가 들어선거죠… 은희는, 그것 때문에 많이 울었어요… 몇년을 백수로 지내다가 드디어 취직했고, 월급 타서 부모님께 효도도 할 거라고 좋아했는데 억지로 당해서 원하지도 않는 아이까지 가졌으니… 하지만, 그래도 은희는 아이를 키우고 싶어했어요… ”
“…… 그럼 이 아이를 여기에 있게 한 건, 저 녀석이 확실하군. ”
“하지만… 저 쓰레기같은 자식은 이 아이도, 제 친구도 전부 눈엣가시였겠죠… 왜냐하면,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아이를 지우라고 종용했던 거예요. 아이만 지우면 된다고 회유도 하고, 협박도 하고, 그러다가 그 자식이 친구를 죽인거죠. …그 자식은 자기가 완전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아니었어요. 제가 목격자였으니까요. ”
“네녀석도 죽은거냐? ”
“아뇨, 저는 죽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왜 여기 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저 저 쓰레기를 죽이고 싶어서… 너무 죽이고 싶어서, 그래야만 제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았는데… 어느 날 이렇게 되버렸어요… ”
“생령인 모양이군… 너도 아이도, 더 이상 죄를 짓는다면 명계에서 벌을 받게 될 거야. …이만 돌아가는 게 좋아. ”
“…… ”
“아가, 너도. 여기서 돌아가면, 다음엔 꼭 축복 받으면서 태어날 수 있을거야. ”

두 개의 그림자는 인사를 건네고 천천히 사라졌다.

“저 쓰레기 자식. ”

파이로는 짧게 한 마디를 뱉고는 크리멘만을 데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에 들어선 그녀는 근식의 사무실을 찾아 갔다. 그리고 들어서자마자 그는,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근식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던 그는, 파이로와 크리멘을 보고 흠칫, 놀랐다.

“누구… 아, 괴담수사대에서 오셨군요. ”
“네놈, 어떻게 이때까지 두 명의 영혼이 공격하는데도 살아있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구나. ”
“……? 네? ”
“서은희, 몰라? 니가 강제로 범해서 애까지 배개 만들어놓고 니 손에 피를 묻힌 그 여자 이름을 니가 모를 리가 없는데? ”
“……! ”

파이로는 책상을 탁, 쳤다. 그 진동으로 모니터며 펜이며, 사무실의 집기가 살짝 흔들렸다. 근식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녀, 그녀를 어떻게 알고 있지?

“네놈 때문에 세상을 기다리다 어둠으로 빠져버린 그 아이가 네놈을 죽이려고 했어. 그리고 그 일로 네놈에게 원한을 진 여자도 같이 네놈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고. ”
“아이가…… 저를 노려요? ”
“원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 아이라고 품어주던 엄마도,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갈 날을 꿈꾸던 아이도 네놈이 모두 어둠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더구나. 그것도 매우 잔인하게 말이지. ”
“…… ”
“두 사람을 어둠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걸로도 모자라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못을 박고도 태연히 웃고 있었느냐? 태연히 일상생활이 가능하더냐? 그래놓고 잘도 네놈은 행복해지려고 했느냐? 아니, 그건 안 될 말이지. 수많은 사람들이 네놈에 대한 원한으로 자신을 갉아먹을 때의 고통을, 이제 네놈도 느껴봐야 하지 않겠어? ”
“파이로, 거기까지 해. 그러다가 너도 먹혀. ”

보다 못한 크리멘이 파이로를 막아섰다.

“네놈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는 매우 잘 봤다. 나조차 분노하고 욕이 나올 정도로, 네놈은 쓰레기구나. 리바이어던도 네놈은 더럽다고 안 먹을거야. 하지만 네놈이 여기에 있는것만으로도, 네놈은 세계에 폐를 끼치고 있어.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네놈을 먹어치우기 위해 왔지. 깔끔하게 말이야. ”
“아직도 살아있었단 말인가, 그 녀석들… 언제까지 나를 이렇게 둘 생각인거지… ”
“아직도라니, 더럽게 뻔뻔하군… 어이. 크리멘, 이 자식 빨리 먹어치워버려. ”
“바라던 바입니다요~ ”

크리멘의 손이 근식의 머리를 통과함과 동시에, 근식은 그 자리에서 모래처럼 스르르 녹아버렸다. 선풍기 바람에 흩날리던 파편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건물을 나온 두 사람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에게로 돌아갔다.

“어떻게…됐어요? ”
“그 자식, 얼굴에 철판을 35mm로 용접했나 보던데. 아직도 살아있었냐고 묻더군. ”
“…… ”
“보통은 거짓말로라도 미안한 기색을 보일텐데 말이지. 정말 리바이어던도 더러워서 안 먹을 것 같아. ”

여전히 화가 덜 풀렸는지, 그녀는 종이컵을 구겨서 땅바닥에 던져버리곤 돌아서서 사무실로 가 버렸다.

“그런데… 어비스가 끝일 리는 없잖아요. 리바이어던이 먹지 않는 영혼도 어비스를 헤메게 되는 건가요? ”
“사실 어비스 최심부에 그런 영혼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긴 하지. 뭐, 거기까지 가는 영혼들은 웬만하면 없지만, 거기는 정말 안 가는 게 좋아. 거기는 무간지옥과 달리 끝나지도 않는 고통을 끝나지도 않는 시간동안 느껴야 하지… 거기의 시간 개념은, 여기와 달라. 여기에서 100년이 지나야 거기서는 1초가 지날까 말까야. ”
“…… ”
“그 녀석도 그 곳에 떨어지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