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Stay alive, Stay abyss

눈을 떠 본다.

그의 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캄캄한 어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신이 어디 있는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 치 앞의 캄캄한 어둠. 정체 모를 녀석이 ‘먹어치운다’는 말을 한 뒤로, 자신은 계속 캄캄한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꼐 잠들어 있었고, 눈을 떠 보니 이 곳이었다.

“정신이 들어? ”

정신을 잃었던 그가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쪽 팔이 없는 여자였다. 왼쪽 팔은 어딘가에 뜯겼는지 사라진 상태였고, 왼쪽 어깻죽지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으, 아아아? 다, 당신, 대, 대체 그 팔…! ”
“놈에게 잃었으니까. ”
“놈… 놈이라니? ”
“표정을 보아하니 여기는 처음인 모양인데, 잘 들어. 넌 죽어서 여기, 그러니까 어비스로 온 거야. ”
“주…죽어…? 그럴 리가… ”
“너, 이렇게 생긴 여자같은 게 널 잡아먹는다고 했었지? 그 녀석은 죄를 먹는 녀석이야. 너도, 나도 그 녀석에게 잡아먹혀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

다음 순간, 그녀는 뭔가에 놀린 듯 흠칫하며 한족 팔로 그를 잡아 끌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방향도 모르는 곳으로 무작정 뛴 그녀는 겨우 달리기를 멈췄다.

“놈이 왔어. 분명 이 근처에 있어… ”
“놈이라니, 대체 누굴 말하는거야? ”
“리바이어던. 놈은 여기에 있는 죽은 자들을 잡아먹어. 그리고 그렇게 먹힌 사자들은 사흘 후 다시 살아나지… 여기는, 그런 아비규환이야. 너나 나나, 지상에서 죄 지어 끌려온 자들은 여기서 끝도 없는 싸움을 반복해야 하지… ”

죽었다는 것도, 이 장소도 실감이 나지 않는데 잡아먹히고 살아나길 반복하는 곳이라니, 대체 이 곳은 어떤 곳일까. 그리고 무언가를 더 물어볼 새도 없이, 그녀의 뒤에서 붉은 안광이 나타났다.

“이, 이봐! 뒤, 뒤에! ”
“!!”

그녀가 뭐라 대처할 새도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을 드러낸 그것은 이내 하얀 어금니를 드러내며 그녀의 뒤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녀를 집어삼킨 그림자가 사라졌을 때, 그의 눈앞에 남은 것은 녀석이 미처 삼키지 못한 그녀의 오른팔이었다.

“……!! ”

진정시킬 새도 없이, 붉은 안광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마치 신호등처럼 번득이며, 그를 노려다보는 안광을 향해 그는 바닥에 떨어진 오른팔을 단지고 무작정 달렸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고싶지 않다. 단지,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정신없이 내달리던 그는, 초로의 노인과 부딪힌 후에야 겨우 멈췄다.

“죄송합니다! ”
“괜찮소. 그나저나 처음 보는 얼굴이로군? 그쪽도 여기에 떨어진 모양이구려.. ”
“네, 네… 그, 그나저나 그 녀석이… 녀석이 나타났어요! ”
“녀석…? 아아, 리바이어던이 나타난 모양이군… ”

노인은 어느 새 덤덤해진 듯 했다. 확실히, 여기에 오래 있었던 사람인 듯 했다.

“그 녀석은, 누군가를 먹어치주기 전까지는 절대 물러나는 법이 없지… 그래, 젊은이는 무슨 죄를 지어서 예까지 떨어졌소? ”
“저는… ”

학교는 멀쩡히 다니고 있었다. 분명 그의 관점에서는 그랬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어서 마음을 털어놓았지만, 그녀에게는 연인이 있다며 거절당했다. 그래서 홧김에 죽인 것이 전부였는데, 웬 여자에게 잡아먹혀서 이 곳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 여자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게다가, 그가 떨어진 것은 그녀가 나타난 직후도 아니고, 그녀를 죽인 죗값을 치르기 위해 감옥에서 출소한 직후였다.

“저는… 그녀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
“음… 젊은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고백을 한 자체는 나쁘지 않다네. 하지만, 때로는 포기해야 할 때도 있고 조용히 기다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 여기서 후회한 들, 다시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뉘우치지 않는 자들보다는 나을걸세. ”
“…… ”
“나는 내 욕심때문에 여러 사람을 저승으로 보내고, 여기로 떨어졌지… 지금도 그 사람들에게 미안하다오. 그들이 나를 용서해줄 지 어떨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한 번 이 곳에 발을 들인 자는 다시는 지상으로 나갈 수 없소. 그건 알고 있었소? ”

그게 무슨 말이야, 한 번 발을 들이면 나갈 수 없다니? 그렇다면 그녀의 말대로 이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야 하는 걸까, 영원히? 그의 표정에서 두려움이 역력했다.

“혹시 젊은이, 이 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 적 있소? ”
“비명…소리요? ”
“이 위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비명은, 바로 이 위가 무간지옥이라는 애기요. 이 위에서 고통을 받는 자들은, 무간지옥에서 벌을 받고 죗값을 치르면 지상으로 나가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지…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소. 무간지옥에서도 받아주지 못 하는 죄인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 없소… 지상에서 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의롭지 않은 이득을 취한 댓가로, 영원히 이 곳에서 지내야 하는 거지… 하지만, 여기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라오. ”
“그럼 여기보다 더한 곳도 있습니까? ”
“물론 있소. 그 밑은, 아포칼립스라 불리는 곳이지… 우리는 리바이어던이 끊임없이 잡아먹고, 그 후 되살아나기를 반복하지만… 저 아래는 그조차 불가능하다오. 여기가 어디인지, 그리고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는 채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지… 그들이 이곳으로 팔을 빧는다면, 이 곳에 있는 사람들도 끌려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오. 물론, 그들은 단지 이 곳으로 나오고 싶어 할 뿐이겠지만, 잘못하면 말려들어가기 때문이지… ”
“아포…칼립스…… ”

또 다시 붉은 안광이 보였다. 아까 그녀를 집어삼킨 붉은 안광이었다. 이내 노인을 향해 그것이 엄니를 드러낼 때, 그는 노인을 밀치고 스스로 삼켜졌다.

“!!”

뼈가 갈리고 살이 찢겨지는 고통이 오랜 시간동안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감각이 없어졌다. 매우 캄캄한 곳이었는 지, 시야에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아득해지는 정신,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봐. 어이. ”

그가 다시 눈을 뜬 건, 그로부터 사흘 후였다.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킨 그는, 자신의 사지를 확인했다. 분명 녀석에게 잡아먹혔을텐데 손가락이 멀쩡히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살점도 온전히 붙어 있었다.

“너도 그 놈에게 잡아먹혔군? ”
“아, 너는…? ”

그는 어비스에 떨어졌을 때 처음 만났던 그녀와 재회했다. 처음 만났을 때 한쪽 팔이 없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사지가 온전했다. 단지 그녀의 가슴 한켠이 뻥 뚫려있었던 걸 빼면.

“……괜찮아? ”
“아아, 놀라지 말라고. 여기서는 심장같은 거, 없어도 잘만 살아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너처럼 몸이 온전히 재생되려면, 리바이어던이 전신을 먹어치워야 해. …네가 내 남은 팔을 던져준 덕에, 그나마 재생은 온전히 됐지만… ”
“…… ”
“이 곳에서 척을 진 자에게 복수하는 법은, 리바이어던이 몸을 온전히 먹지 못 하게 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온전히 재생할 수 없이 조각만이 살아서 존재하거든… 뭐, 이제 와서 그런 건 상관 없어. ”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심장이 없다고…? ”
“뭐… 보시다시피. 밑의 주인이 심시해서 기지개를 키다가 관통한 모양이야. 뭐, 그 녀석도 자기가 뭘 가져갔는지 알게 되면 적당히 가지고 놀다 돌려주거나 하겠지. ”
“…… 설마, 아포칼립스에서…? ”
“정답. 그 녀석은, 밑에서 뭐든지 집어삼키고 난폭하게 가지고 노는 게 일상이거든. ”

그녀를 걱정하고 있는 그와 달리, 오히려 그녀는 덤덤했다. 도대체 얼마나 죽고 다쳐야만 이렇게 될 수 있는 걸까, 게다가 한 번 발을 들인 자는 다시 나갈 수 없다니. 여기는 정말로 지옥일 지도 모르겠다.

“… 이봐, 여기를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거야? ”
“여기? 무간지옥에서도 안 받아줄 인간들이 여기로 들어오는거야. 여기서 죗값을 치른다고 해서 다시 나가지는 못 해. 오히려 밑으로 끌려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
“…… 하지만, 무간지옥에서는 죗값을 치르면 다시 지상으로 나갈 수 있잖아. ”
“이봐, 넌 아직도 무간지옥과 여기의 차이점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여기에 발을 들인다는 건 무간지옥에서도 안 받아줄만큼의 죄를 지었다는 얘기야. 저 쪽에서도 죗값을 치르려면 무한한 시간이 걸릴 것 같은 인간들을 이 쪽으로 보내는 거라고. 그런데 여기서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
“…… ”
“나도 여기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는 그랬었지.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야. 우리는 지상에서 지은 죄가 너무나도 무겁기 때문에, 다시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존재가 된 거라고. 그저 잡아먹히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리고, 웬만한 건 다 밖에서 실컷 누렸잖아? ”

물론 누리기야 누렸지. 하지만 그녀의 마음만은 얻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다시 몰 수도 없다니.

그 때, 그녀의 뒤에 보랏빛 눈들이 생겨났다. 수많은 눈들이 깜빡거리는 가 싶더니, 낯선 여자가 그림자 뒤에서 튀어나왔다.

“본의 아니게 심장을 꿰뚫어버렸군. ”
“!!”
“…손수 행차하실 줄은 몰랐는데. ”
“옛다. ”

심장을 건네받은 그녀는, 구멍 한 켠에 심장을 아무렇게나 집어넣었다.

“그러다 흘리지나 마라. 리바이어던이 주워먹는다. ”
“그럼, 이제 몸만 먹히면 재생되겠지… ”
“이 녀석은 누구냐? 신참? ”
“아, 응. 사흘인가 전에 새로 들어왔어. ”
“호오- 그런가… ”

마치 소용돌이처럼 돌아갈 것만 같은 눈이 이 쪽을 보고 있었다. 이내 그녀는 흥미를 잃었는지 저 쪽으로 가 버렸다.

“…저 여자는 뭐야? ”
“밑의 주인. 여기까지 행차하는 건 이례적인 케이스지만… ”
“…… ”
“뭐, 어쨌든… 놈이 나타나지 않을 동안 충분히 쉬어 두라고, 녀석이 배가 고파지면 우린 또 도망다녀야 하거든… ”

그녀는 저 편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 곳에 한 번 발을 들인 자는 다시는 나갈 수 없다, 게다가 이 밑에 있는 자들에 의해 끌려갈 수 있다… 그렇다는 건,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의미였다. 왜 이 손으로 그녀의 목숨을 거두어서, 사신이 해야 하는 일을 자처해서 나는 이 곳에 떨어졌을까. 그는 그제서야 후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