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괴담수사대의 사무실.
유리문을 열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저, 여기가 혹시… 괴담수사대인가요…? ”
“네, 어서오세요. 미기야씨, 손님이 오셨는데요. ”
“아, 잠시만. ”
곧 안에서 검은 머리의 남자가 나왔다.
하얀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검은 타이를 멘 앳되보이는 남자였다. 정말로 이 남자가 오너인가? 그녀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서 오세요, 괴담수사대의 오너 유키나미 미기야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사실… 의뢰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
“의뢰라면… 무슨…? ”
“저, 이 사진을 좀 봐 주세요. ”
그녀가 내민 것은 가족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엄마와 아이들, 그리고 아버지가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 여느 가족들과 다를 바 없어보이는 행복한 가족이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이구나, 그렇게만 느껴졌다.
“이 쪽을 봐 주세요. ”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까만 그림자같은 것이 있었다.
가족인 양 껴 있는 것도 아니고, 집의 지붕 위에 있었다. 새나 다른 짐승이 찍혔다고 하기에는 어딘지 모를 위화감도 보였고, 다른 사람이 찍혔다고 보기엔 어딘가 석연찮은 부분도 있었다.
“흐음… 이게 뭘까…… 라우드 씨, 이 사진 좀 보세요. ”
“??”
갈색 머리의 남자는 사진을 들고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집히는 게 있나요? ”
“딱히 집히는 건 없어요. 다만 신경쓰이는 게 있네요… ”
“……? ”
“인간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이 녀석의 정체가 뭘까요… ”
“……! ”
그리고 며칠 후.
사무실 문이 열리고 며칠 전 왔었던 여자가 다시 왔다. 하지만 전과 달리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눈을 하고 있었으며, 다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 무슨 일이세요? ”
“도… 도와…… ”
“진정하시고, 여기 앉아서 천천히 얘기해보세요. ”
“도와…… 도와주세요…… ”
“무슨 일 있었어요…? ”
그녀는 현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갔던 그녀는, 부엌에 불이 켜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누군가가 물을 마시러 온 것이라 생각한 그녀가 부엌으로 갔을 때.
부엌에는 이상한 그림자가 있었다.
그것은 벨트같은 것을 온 몸에 두른, 까맣고 긴 머리를 한 여자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보자마자 사진에 찍힌 그것이라는 걸 짐작했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집을 태워볼까…
집을 태운다고? 어째서? 그녀는 무서웠다.
누구와 어떤 원한이 있어서 이 집을 태우는걸까? 가만히 지켜보던 그녀는 얼떨결에 테이블에 놓여있던 물잔을 건드렸다.
-……?
인기척을 느낀 건지 무언가는 그녀를 찾는 것 같았지만 이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내가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그것을 보지 않았더라면? 다음에 또 그것이 나타났을 때 누구도 보지 못 한다면? 그렇다면 그녀는 잿더미가 될 터였다.
방으로 겨우 돌아가 잠을 청해보려고 했지만 아까 보았던 그것의 모습때문에 쉬이 잠이 오지는 않았다. 결국 그녀는 뜬눈으로 그날 밤을 샜다.
그리고 또 다시 며칠 후.
그녀는 잠들었다가 새벽에 눈을 떴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손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무언가가 꽉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이게 뭐지…? ‘
그녀는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하랄없이 천장을 보고 있는데, 그녀의 위에 무언가 올라탄 것이 보였다. 몇일 전 봤던 ‘그것’이었다.
-찾았다…
그것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벗어나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너부터 죽여버리고 이 집도 태워버릴거야.
커다란 가윗날이 그녀의 가슴을 향하고 있었다.
가윗날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젖 먹던 힘을 다해 그것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올 무렵, 그녀는 간신히 그것에게서 벗어났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괴담수사대를 찾아 온 것이다.
“그런 일이… ”
“어떡하죠… 이제 그것이 절 죽이려 들 거예요… ”
“무슨 일이… 아, 당신은…? ”
“오너, 이 사람… 지금 상당히 위험해요. ”
“그게 무슨 말이야? ”
현은 미기야에게, 그녀가 들었던 이야기를 전부 전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미기야는 잠시 눈을 감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온 미기야는 빨간 봉투를 건넸다.
“이것을 받으세요. ”
그녀는 미기야에게서 건넨 봉투를 받았다.
빨간 봉투 안에는 붉은 종이로 만든 부적이 있었다. 부적에는 그림인지 글자인지 알 수 없는 것이 검은 색으로 적혀 있었다.
“이것을 몸에 꼭 지니고 계세요. 그리고 이건 제 명함인데, 혹시 그것이 또 나타나거든 저에게 연락을 해 주세요. 그러면 저희가 그 쪽으로 가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미기야에게서 부적과 명함을 받아 든 그녀는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후 새벽, 늦은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잠에서 깬 라우드가 비척비척 다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도, 도와주세요! 그것이… 그것이 나타났어요!!
“자, 잠시만요! 미기야 씨! ”
전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자, 라우드는 정신이 확 들었는지 현과 미기야를 깨웠다. 그리고 미기야에게 수화기를 넘겨준 라우드는, 나갈 채비를 마쳤다.
“여보세요, 미기야입니다. ”
-도와주세요! 그것이 나타났어요, 지금 저를 찾아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어요… 흐윽-
“진정하시고 부적을 꼭 가지고 계세요. 그 부적을 가지고 있는 한 그것이 당신을 찾지는 못 할겁니다. 안전한 곳에 숨어계시거나 가능하시면 밖으로 나와계세요. ”
-흐윽… 알겠어요. 꺄악!
“여보세요? 여보세요! ”
-꺄악- 시, 싫어! 난 죽고싶지 않아! 저리 가!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 쪽으로 가겠습니다! ”
미기야는 다급히 전화를 끊고 나갈 채비를 했다.
“무슨 일이예요? ”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것이 훨씬 강한 것 같아… 이러다간 의뢰인이 위험해져! ”
“!!”
“어서 가자! ”
“네! ”
세 사람이 그녀의 집으로 뛰어갔을 때, 그것은 그녀를 거의 찌르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것이 그녀를 공격하기 전에 미기야는 부적을 날렸고, 스파크가 튀자 당황했는지 그것은 그녀에게서 물러났다.
“라우드 씨, 현. 의뢰인을 부탁해. 저 녀석은 내가 맡을게. ”
“알겠습니다. ”
“라져. ”
기절했는지 정신이 나간 그녀를, 라우드가 일으켜 세웠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자. ”
“네. ”
두 사람은 의뢰인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가고, 미기야는 혼자서 그것과 대치중이었다.
“너는 누구지? 누군데 저 여자를 죽이고 이 집에 불을 지르려는 거지? ”
“너는 누구인데 내 정체에 대해 묻는거지? 너도 내가 보이나? ”
“…질문은 내가 먼저 했어. 대답해. ”
“아-하하하… 너, 꽤나 당돌하구나. 뭐, 나에 대해 알려주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이는 녀석이군… ”
그녀는 한 손에 들었던 가윗날을 내려놓았다. 가윗날은 땅바닥에 푹, 박혔다. 한 눈에 봐도 사람 키만한 가윗날이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 곳에 있었던, 유령이야. 소위 말하는 지박령이라고 해야 할까? ”
그녀는 이 곳에 붙어있었던 지박령이었다.
지금 의뢰인이 있는 집은, 원래 그녀가 살았던 집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군가의 소행…그것도 하등 원한관계가 없는 사람에 의한 방화때문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완전히 소사체가 된 그녀는 사망했지만, 집에 불을 지르고 도망간 범인을 증오했기때문에 성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몇년 후, 그녀가 살던 집터에 새로 집이 지어지고 사람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 집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알지 못 했다, 이 곳에 그녀의 영이 남아이다는 것을. 그도 그럴 것이, 뉴스에도 짤막하게 나왔던 데다 이 곳이 그 곳이라고 알려주지도 않았으니까. 심지어 소사체가 되긴 했지만 시체를 누군가가 찾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이렇게 난폭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집터에 새로 집을 짓고 이사온 입주민들을 그렇게 고깝게 보지도 않았고, 그들도 사고의 존재를 몰랐기때문에 그녀에게 별로 해가 될 만한 짓을 한 것도 아니었다. 가끔 그녀의 시체를 찾아달라고 나타나기만 할 뿐, 그녀는 별로 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음 입주자가 들어오고나서부터 그녀는 난폭해졌다.
이 다음에 들어 온 입주자는, 히키코모리였던 데다가 부모가 버리고 가다시피 하여 집에 두고 간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녀도 그를 안쓰럽게 생각했지만, 갈수록 벽에 발길질을 하고 기물을 마음대로 부수는 등, 난폭해지는 그가 싫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제 분노를 못 이겨 바닥을 마구 내리친 그는, 그녀의 소사체가 묻힌 바닥을 파 냈다. 어느 누구도 파내지 못했던 소사체를 찾았다는 것에 그녀는 감사했다.
하지만 그녀의 소사체는 훼손 상태가 너무 심해서, 시체라는 것도 알아보지 못 할 정도였다. 시체를 파 낸 그는 그것을 타서 버린 인형 정도로만 생각했고, 그것을 쓰레기와 함꼐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는 그 사실에 격분해, 그 날로 그를 죽이고 집과 같이 태워버렸다. 자신의 시체를 쓰레기와 함께 버렸던 것처럼, 그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새로 집이 지어지고 사람이 이사올때마다, 그녀는 새 집에서 누리는 단 꿈을 누리게 둔 다음, 입주자들을 죽이고 집을 태워버리기를 반복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더니 그녀의 일이 소문나고, 나중에는 집에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원한을 가지고 집을 태워달라고 빌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죽이고 태우고를 반복하던 끝에 지금의 의뢰인이 이사를 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집을 태우려고 나갔다가 그녀를 발견하고, 그녀를 죽이기 위해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 넌 저 여자에게 무슨 원한같은 게 있는건가? ”
“원한…? 그런 건 없어, 딱히, 내 시체를 쓰레기 취급 하는 인간들이 싫은 것 말고는. ”
“…… ”
“너라면 기분이 좋겠어? 자신의 몸이 불타버렸다는 이유로, 형태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쓰레기 취급 당하는 거…? 아니, 결코 기분이 좋을 수는 없어… 그런 걸로는…… 그러니까- 난 인간이 싫어. 인간이 싫은거야. ”
그녀가 안쓰러웠지만 그는 여기서 그녀를 멈춰야만 했다. 그녀가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는 게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네 일은 참 마음 아프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 할 생각은 없어. ”
“그렇겠지. ”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대답이었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미기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로 무너질 것만 같은 눈이었다.
“하지만 날 성불시킬 생각이라면 포기해. 난 이승을 떠날 수 없는 몸이 되었으니까… 몸이라는 매개체는 쓰레기가 돼 버려진 지 오래. 혼만이 남아서 이 세계를 떠돌고 있지… ”
“…… ”
“자. 저 여자를 넘기지 않을 거라면, 네가 여기서 죽어줘. 어떻게 할래? ”
“의뢰인을 죽게 놔 두면 괴담수사대가 아니지. 물론, 나 역시 죽을 생각은 없지만. 네녀석을 성불시키지 못 한다면 적어도 이런 짓은 못 하게 만들어주겠어. ”
“아-하하하… 그럼, 누가 이길지 한번 해 볼까? ”
다음 순간, 눈빛이 바뀐 그녀는 땅에 꽂았던 가윗날을 다시 집어들었다.
가로등 불빛에 빛나는 날은 꽤 날카로워보였다. 몸체에는 상어 이빨처럼 삐죽빼죽한 무늬가 그려진, 외날이었다. 저렇게 큰 가위가 있었던가, 싶었다.
‘이런, 급하게 나오느라 부적을 두고 왔군… ‘
수중에 부적이 몇 장 남아있지 않았다.
급하게 나오느라 써 두었던 부적을 다 챙기지 못해 비상용으로 넣어두었던 부적만 챙겨 나왔던 것이다. 미기야는 그녀가 휘두르는 가윗날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뭔가 쓸 만한 게 있다면… 저거다! ‘
그리고 그는 바닥에 떨어진 가로수 나뭇가지를 주웠다.
“언제까지 그렇게 피할 지 궁금한데? 지쳐버리면 어떻게 동강내줄까- ”
“시끄러워- 네녀석한테 동강날 일은 없을테니 입 다물지 그래? ”
“너무한 거 아냐, 숙녀에게 그런 말…? ”
“너야말로, 너무하잖아. ”
번개를 떨어트려가며 그녀의 가윗날을 피하던 그는, 체력이 떨어져감을 느꼈다. 슬슬 손 안에 남아있는 부적도 다 떨어져서 싸울 수단도 남아있지 않았다.
“슬슬 지쳐가는 것 같으니 이쯤에서 끝내볼까… 염라대왕한테 내 안부나 좀 전해줘. ”
“어림 없는 소리. ”
미기야는 정신을 가다듬고 허공에 무언가를 썼다. 나뭇가지가 허공을 날아다니는가 싶더니, 곧 주문을 외우자 하늘이 갑자기 흐려졌다. 그리고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는가 싶더니 천동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적어도 불은 못 붙이게 하려면, 일단 비는 부르고 시작해야지? 자, 그 가위를 함부로 휘둘렀다간 너도 죽을 지 몰라. 이 벼락, 귀신도 맞으면 죽는단다. ”
“!!”
그녀는 확실히 전보다 주춤거렸다. 자칫 잘못하면 그녀가 벼락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비가 오기 때문인지… 이전보다 공격의 빈도도 느려졌다.
“넌 이렇게까지 해서 저 인간을 지키려는 이유가 뭐지? ”
“그야, 의뢰인이니까. ”
“의뢰인이 아니라면, 지킬 이유가 없겠군? ”
“아니. …의뢰인이기 전에 무고한 사람이잖아. 너와는 하등 관계 없는. 그 자리에 집터가 있고, 마침 저렴해서 샀을 뿐인. 너의 집에 불을 지른 사람도 아니고, 그저 그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인데 어째서 너한테 죽임을 당해야 되는건데? ”
“…그런 이유인가… ”
그녀는 땅에 가윗날을 꽂았다. 푹, 질어진 땅에 가윗날이 꽂히는 소리가 났다. 마당은 빗물과 흙이 섞여 질척한 진흙투성이였다. 그럼에도 비는 쉬지 않고 내렸고, 천둥번개 역시 쉬지 않고 치고 있었다.
“뭐, 좋아. 그런 이유라면, 납득했어. ”
그리고 순식간에 땅에 꽂았던 가윗날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겠어. …언제 이사가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 녀석만이야. 이 녀석이 이사가고 난 다음에는… 언제가 되든 죽인다. 그리고 그 때 이 집도 같이 태워버릴거야. ”
“…… ”
그녀도, 미기야도, 완전히 지쳐있었다.
미기야가 허공에 손짓을 하자, 비가 그쳤다. 천둥번개도 진정되자, 미기야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금 진흙이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지쳤을 뿐.
“오너! ”
“미기야 씨! ”
“아…… 라우드 씨, 그리고 현… 의뢰인은 괜찮은가요? ”
“네. 놀라서 기절하긴 했지만, 정신을 차렸어요. ”
“다행이네요…… ”
“그 녀석은…? ”
“…… ”
미기야는 대답 대신 그녀가 쓰러진 곳을 가리켰다. 이제 대답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건지, 그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오너! 오너! 정신차려! ”
그렇게 새벽의 전투를 끝내고, 미기야는 오후가 되서야 눈을 떴다.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익숙한 사무실의 풍경이었다. 길게 놓인 소파와 책사이 서류뭉치들…
“으음…… 얼마나 잔 거지…? 지금 대체 몇 시야…? ”
“두 시. ”
‘어라, 여기는 나 혼자 있는 방인데…? ‘
분명 사무실에는 혼자 있을 터인데, 사람 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현이나 라우드는 존칭을 쓸 텐데, 목소리의 주인은 어쨰서인지 말을 놓고 있었다. 소리가 들린 쪽을 보니, 어제 한바탕 싸웠던 그녀가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너… 니가 왜 여기에 있는거야? ”
“쓰러져있는 걸 여기로 데려왔어. 그 날씨를 바꿔버렸으니 영력이 다 떨어지는 거야 당연지사겠지만… ”
“으으…… 그런건가…… ”
“아직 움직이면 안 돼. 영력 충전되려면 아직 멀었어. ”
오른손에 무언가가 올려져 있었다. 마치 도깨비불과 같은 불덩이는, 푸른 빛을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이…건…? ”
“혼불. ”
“혼…불…? ”
“그래, 혼불. 죽은 자만이 쓸 수 있는 불이지… 인간에게 영력을 채워줄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
“…… ”
“뭐, 이제 괜찮은 것 같으니 난 이만 나가봐야겠군… ”
그리고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곧이어 현이 들어왔다.
“오너, 괜찮아요? ”
“응, 이제 괜찮아. …그보다, 왜 저 녀석이 여기에 있는 거야? ”
“아… 파이로 씨 말인가요? ”
현은 미기야에게 간밤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한바탕 접전이 끝난 후, 파이로와 미기야는 둘 다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기력을 상실한 파이로와 달리, 미기야는 영력을 전부 소모해버려 눈을 뜰 수 없었다.
날씨를 바꾸는 주술을 사용하게 되면 영력을 대량으로 소모해버리는데, 하필 부적도 얼마 없었던지라 날씨를 바꾸는 주술을 사용했던 탓에 평소와 달리 영력을 전부 사용해버렸던 것이었다. 게다가 접전 중이라 휴식할 틈도 없어서, 영력을 회복할 틈도 없었다.
현과 라우드가 미기야를 깨워봤지만, 미기야는 아무리 흔들어 꺠워도 눈을 뜨지 않았다. 반면 한 쪽에서 지쳤는지 늘어져 있던 파이로는 금세 기운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파이로 씨가 다시 일어나길래 오너를 공격하려는 줄 알았지 뭐예요. 그런데 파이로씨는 오너를 건드려보더니 영력을 전부 소모했다고 하더라고요. 날씨를 바꾸는 주술을 쓰면 영력 소모가 많은데, 무리를 한 것 같다고… ”
“아아, 그랬지…… 맞아, 나한테도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
파이로는 미기야를 안아들고 두 사람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미기야를 사무실 소파에 눕힌 다음 혼불을 사용해 영력을 주입했다. 게다가 소파에 누워 잠을 자는 동안 천천히 영력이 차올라, 미기야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된 거였나… 그런데, 파이로…라니? ”
“저 분 이름이 파이로라고 하던데요…? ”
“아…… ”
“좀 더 쉬세요, 저녁 먹을 때 부를게요. ”
“응… ”
미기야는 그 뒤로 해질녘까지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