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過)

“엄마! 지훈이 어디 갔어? ”
“지훈이? 오늘도 심령 스팟인가 뭔가 탐색한다고 나갔지. 왜? ”
“지훈이가 내 차를 가져갔어. 전화도 안 받고… 한두번도 아니고 대체 이게 몇 번째야? ”
“그러게 말이다…… 지혜야. 정 급하면 아버지 차라도 빌려서 나갈래? ”
“아냐, 그렇게 급하지는 않아. 그럼 나 갔다올게~ ”
“응, 갔다와라~ ”

그 시각, 지훈은 오늘도 취미삼아 각 지역의 폐건물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돌아볼 건물은 어느 낡은 집이었다. A시 근처에 있는 그 집은 상당히 위험한 심령 스폿으로 유명했다. 지금까지 돌아다녔던 폐건물이나 흉가 중에도 과거에 살던 사람이 살해당했다던가, 하는 소문이 있는 집은 많았지만 탐험하러 갔던 사람들이 실종됐다는 소문까지 들려오는 집은 처음이었다.

“우와, 진짜 낡았다. 한 200년동안 비어있었던 것 같아. ”

지훈은 목적지인 폐가에 도착했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 썩어가는 초가지붕에, 책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초가집이었다. 문살에 문풍지가 붙어있기는 했지만, 문풍지를 문틀 모양으로 붙여둔 것처럼 바람이 숭숭 들어갔다.

집에는 담이라고 할 것도, 대문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낡을대로 낡은 황토벽과 집 이곳저곳에 붙은 부적, 그리고 부엌에는 불을 떈 지 오래된 것 같은 아궁이와 차가운 가마솥. 얼핏 보기에도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긴,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았다니 당연한건가…싶지만. 그런데 실종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

이런 집에서도 실종 사건이 일어나나?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냥 낡아빠진, 오래된 초가집인데. 그것 말고 딱히 이질감이랄 건 없어보였다. 그런데 부적까지 붙일 정도라면 보통은 아니겠구나.

지훈은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며칠 후.
지혜는 괴담수사대를 찾아왔다.

“저, 여기가 혹시…… 으익? ”
“……? ”

사무실로 들어선 지혜가 처음 본 것은 파이로였다. 온 몸에 진보라색 벨트같은 것을 두르고, 검은 머리를 풀어헤친 그녀의 모습을 본 지혜는 잘못 왔나 싶어 밖으로 나가 문을 확인했다.

“…… 괴담수사대로 온 거라면 제대로 찾아왔어. 어이, 미기야. 손님이다. ”

파이로는 그런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은지 미기야를 부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파이로의 목소리를 듣고 나온 미기야 역시 상황 파악이 된 건지 라우드에게 파이로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어서 오세요. ”
“…… 아까 그 분은… 누구세요? ”
“이번에 새로 들어온 직원입니다. 하하… 특이한 복장이 취미라서요, 죄송합니다. ”
“아아… ”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저… 제 동생때문에 왔어요. ”
“동생이요? ”

지혜가 괴담수사대에 오게 된 것은 지훈때문이었다.
폐가를 탐험하고 온 뒤로, 지훈은 심한 두통과 환청에 시달리며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거기다가 지훈을 그렇게나 따랐던 애완견이 지훈의 방을 향해 컹컹 짖더니, 지훈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물려고까지 했다.

지혜는 처음에 개가 짖는 것을 보고 무슨 영문인 지 몰랐지만, 그녀의 친구에게서 ‘개나 고양이가 허공을 보고 짖는 것은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동생분이 폐가에 갔다 온 다음에 이상해졌다는 얘기죠? 동생분을 잘 따르던 개가 짖거나 물려고 덤벼들기까지 하고요. ”
“네. ”
“혹시 동생분이 갔던 폐가가 어디에 있는 곳인 지 알 수 있을까요? ”
“으음… 잠시만요. 아, 여기 있다. 여기에 갔다 온 모양이예요. ”

지혜는 미기야에게 작은 쪽지 하나를 건넸다. 그것은 지훈이 퍠가에 가기 전에 남겨뒀던, 폐가의 위지를 적어둔 쪽지였다. 포스트잇같은 것에 휘갈겨 쓴 것은 폐가의 위치인 것 같았다.

“동생이 그 폐가를 탐험한다고 갈 때, 하필이면 제 차를 몰래 타고 나가는 바람에 따지려고 방에 갔더니 책상 위에는 이것밖에 없었어요.”
“알겠습니다. 동생분의 일을 해결하게 되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이건 제 명함인데, 동생분께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쪽으로 전화 주세요. ”
“감사합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

지혜가 사무실을 나가자, 미기야는 그제서야 파이로를 불렀다.
사무실 안에서 갇힌 듯 앉아있던 파이로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미기야에게 미친듯이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내가 무슨 죄인이냐? 나를 왜 여기다 가둬놓는거야? ”
“고객들이 무서워한다니까요. ”
“아니 그럼 그렇지 않게끔 옷이라도 입혀주던가 해야지, 무작정 가둬놓냐? 장난하냐? ”
“음… 옷이라… 그거 좋네요, 옷. 이번 의뢰가 끝나면 파이로씨에게 옷 한 벌 해 드려야겠네요. …근데 그 머리는 어떻게 묶으면 안 될까요? ”
“뭐, 좋아. 머리정도는 묶어주지. ”

파이로는 풀어헤쳤던 머리를 한 손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빗을 집어 머리를 빗은 다름 위로 올려묶었다. 머리를 묶고 나니 이전보다는 한층 깔끔해보였다.

“좋아요… 그런데 라우드 씨는 어디 계신거요? ”
“현이랑 같이 있는데. ”
“현은 어디에 있는데요? ”
“아까까지 나랑 같이 있었는데. ”
“그럼 사무실에 있다는겁니까? ”
“정답. ”
“…… ”

미기야는 그런 당연한 걸 왜 물어보느냐는 듯한 파이로의 말투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내 의뢰에 대한 회의를 해야 했기 떄문인지, 평정심을 되찾은 그는 파이로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당신도 들어오세요, 이번 의뢰 건으로 할 얘기가 있습니다. ”
“엥? 내가 왜? ”
“당신도 이제 수사대의 일원이잖습니까… 놀고 먹으려는 건 아니겠지요? ”
“기껏 쓰러져있는 거 데려와서 살려줬더니 놀고 먹다니… 그게 지금 생명의 은인한테 할 소리야? ”

미기야를 한번 노려본 후, 파이로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눈빛에 잠깐 움찔한 미기야 역시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에서 차를 마시던 현은 찻잔을 치우고, 라우드는 읽던 책을 책꽂이에 꽂았다.

“의뢰가 들어왔는데 말이죠… 폐가에 탐험을 하러 갔던 의뢰인의 동생이 상태가 이상해졌다고 하네요. ”
“폐가에 갔다 온 다음에요? ”
“네. 두통과 환청에 시달리고 있는데다가 기르던 개가 덤벼들어오려고 했다고 합니다. ”
“흐음…… 기르던 개가 덤벼들었다…… 혹시 그 폐가 위치가 어딘지는 아시나요? ”
“여기라고 하던데요. ”

현, 라우드, 파이로는 미기야가 건넨 쪽지를 읽어보았다. 하지만 다른 두 사람과 달리 파이로는 쪽지를 읽어보곤 흠칫, 하더니 쪽지를 재차 확인해보는 게 무언가에 대해 아는 눈치였다.

“뭔가 집히는 거라도…? ”
“…진짜 여기로 갔다고? ”
“네. ”
“…… 여기는 함부로 접근하면 안 되는 지역인데? ”
“자세한 건 모르지만, 여기 실종 사건도 몇 건 있었다고 하던데… 의뢰인의 동생도 소문떄문에 이 곳을 탐험해보기로 한 것 같고요. 그런데, 폐가는 원래 함부로 접근하면 안 되는 지역 아닌가요…? ”
“보통 폐가는 그렇지만, 여기는 특히 더 그래. ”

파이로는 주소에 적힌 집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곧 책꽂이에서 무언가를 한참 찾더니, 종이 몇 장과 책을 펼쳐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 주소에 있는 집이 여기거든. 이 집이 이 마을에 남은 유일한 초가집이야. 마을 주민들이 이 집을 없애려고도 해봤는데, 집을 없애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이 전부 죽거나 큰 사고를 당해서 마을에서도 손을 못 대고 있거든. 무슨 원한이있어서 이 집에 악령이 깃들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엄청난 기근이 왔을 때 여기에 노인이나 아이들을 버리고 갔다는 설이 있어. ”
“그렇다는 건… 강력한 녀석이라는거네요… ”
“보통 사람은 이 집에 들어서기만 해도 악령에 씌이거나 죽을 수 있어. 아무리 소문이 났다지만 이런 곳을 겁도 없이 가다니, 대체 어떻게 돼먹은 녀석인거지… ”
“흠… 라우드 씨, 일단 이 집에 대해 더 조사좀 해 보세요. 이 집에 얽힌 이야기라던가… 그리고 현과 파이로 씨는 잠깐 대기하세요. ”
“알겠습니다. ”
“알겠어. ”
“알겠습니다, 오너. ”

미기야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라우드는 쪽지에 적힌 주소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시간 후…

“오너, 집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이 집을 없애려고 했던 사람들은 죽거나 크게 다치고, 이 집에 얽힌 원한을 풀어보려고 지금까지 용하다는 무당이며 영능력자며 전부 불러봤지만 손사래를 치며 가까이 가려고 하지도 않고, 진혼굿을 하던 무당이 피를 토하더니 죽기도 했대요. ”
“파이로 씨가 했던 말대로네요… ”
“거기다가 의뢰인의 동생 이전에도 이 집에 다녀갔던 사람들이 실종됐다고 소문이 났던 건, 이 집에 발을 들였던 사람들이 전부 마을 근처에서 죽었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집에 부적을 붙여뒀는데, 이것도 안에 깃든 악령이 나가게 막지는 못 하고 발을 들이더라도 죽지 않게끔만 해 주는거래요. ”
“그 정도로 위험한 곳이 있었다니… ”

-따르르르르릉

그 떄였다. 미기야의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
-미기야씨, 제 동생이… 동생이 이상해요!
“동생분이요…? ”
-도와주세요! 지금 엄마랑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고 있어요!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피해 계세요! 댁 위치가 어디시죠? ”
-C동 34번지예요… 빨리 와주세요!
“알겠습니다. ”

전화를 끊은 미기야는 다급히 재킷을 걸치고 부적을 챙겼다. 말없이 미기야를 보고 있던 파이로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마쳤고, 그런 두 사람을 본 현과 라우드 역시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네 사람은 C동 34번지로 달려갔다.

네 사람이 도착했을 때, 지혜는 밖으로 몸을 피했지만 부모님은 보이지 않았다.

“괴담수사대입니다. 괜찮으세요? ”
“네,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엄마가…… 아버지가…… ”
“이봐, 진정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
“흐윽… 지훈이가 방에 틀어박혀 있길래, 저는 평소처럼 두통때문에 자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두통약이라도 가져줄 요량으로 방에 들어갔는데, 방문을 닫아두고 어딘가로 사라졌더라고요… ”

지혜는 지훈에게 두통약을 챙겨줄 요량으로 방에 들어갔지만, 지훈은 방에 없었다. 그래서 책상 위에 두통약을 놔 두고 방을 나가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뒤에서 달려든 지훈이 지혜를 넘어뜨리고 송곳으로 찍으려고 했고, 지혜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부모님이 지훈을 지혜에게서 때어놓았던 것이다.

지훈은 지훈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려고 달려들었고, 그런 지훈을 지혜는 필사적으로 막았다. 하지만 지훈이 휘두른 송곳에 아버지의 얼굴은 베였다.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자, 지훈은 마치 굶주린 맹수처럼 날뛰었고 손에 집히는 것을 휘둘러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다.

그리고 그 떄 집에서 기르던 개가 달려들어 지훈을 물어뜯었다. 그 틈에 지혜의 부모는 방 안으로 피신을 가고, 지혜는 베란다를 통해 밖으로 나갔던 것이다.

“전 괜찮지만, 부모님을 구해야 해요… ”
“걱정 마세요. 꼭 구해드리겠습니다. 현, 이 분을 지켜드려. 라우드 씨, 현과 같이 있어주세요. ”
“네, 오너. ”
“파이로 씨, 가요. ”
“아아, 알겠어- ”

파이로의 등 뒤에서 가윗날이 튀어나왔다. 상어 이빨 모양의 무늬가 햇빛을 받아서 그런지 한층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부적 넉넉히 챙겼냐? ”
“네. ”
“다행이군… ”

집 안으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피비린내가 났다.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집 안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 냄새를 따라가보니, 고깃덩이가 놓여져 있었다. 고깃덩이의 옆에는 개털이 흩날리고 있었고, 주변은 완전히 피범벅이었다.

“윽… ”
“이거 혹시.. 그 집에서 기르던 개 아닐까요… ”
“개털이 있는 걸 보면 그런 것 같군… 그나저나 이 괴물 녀석은 대체 어디에 있는거지…? ”
“아까 방 안으로 피신갔다고 하던데… 서둘러, 빨리 찾아야 해. 그 녀석, 지금 집히는 대로 들고 휘두르는 거 보면 단단히 미쳤어. ”
“잠시만요. ”

가만히 서 있던 미기야는 곧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무언가가 나무를 긁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아마도, 지훈에 빙의한 악령이 문을 열기 위해 문을 긁고 있는 소리겠지.

“저 쪽이다! ”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어가보니, 한 남자가 식칼을 들고 방문을 긁고 있었다. 문을 긁다가도, 문고리를 철컥철컥 돌리다가, 다시 문을 긁고, 칼을 억지로 열쇠구멍에 쑤셔넣었다. 열쇠구멍은 칼을 얼마나 쑤셔넣었는지 너덜너덜해졌고, 문짝은 아예 파일 지경이었다.

“같이 좀 가지, 어? ”

미기야를 쫓아 올라온 파이로 역시 이 광경을 보고 말았다.

“저게 그 미친 괴물 녀석이냐? ”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요… 그나저나 안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구하죠…? 파이로 씨, 벽 투과할 수 있어요? ”
“투과는 가능한데 어떻게 대리고 나올래? ”
“…… 아, 그러네요… 어디 비상 계단같은 거 없나… ”
“일단 한번 들어는 가 볼게. ”

파이로는 벽을 통과해 지혜의 부모님이 있다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는 두 사람이 공포에 떨고 있었다. 옷장을 옮겨 문을 막아둔 탓인지, 한 부분이 휑해보였다. 방 안을 이곳저곳 둘러봤지만, 빠져나갈만한 구멍은 창문뿐이었다. 거기다가 창문 밖으로도 뛰어내리지 않는 이상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다시 방을 둘어본 그녀는 안에 딸린 화장실로 들어가봤지만, 딱히 나갈 수 있을만한 구멍은 없었다.

‘나가기는 글러먹었구만… ‘

다시 밖으로 나온 파이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갈 방법이 없군요… 그렇다면 저 악령을 쫓아내든가 해야겠네요. ”
“쉽게 나갈 것 같지는 않다. ”
“어떻게든 해봐야죠… ”

그게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라고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꽤 급박했던지라 미기야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부적을 꺼냈다. 파이로는 들고 있던 가윗날을 지훈에게 겨눴다.

“어이, 짐승. ”
“…… ”
“네녀석, 결국 여기로 해방돼서 나온거냐… 기념으로 미쳐 날뛰는 건 좋은데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두는 건 대체 뭐 하자는 짓거리야? ”
“크르르… 네녀석은 누구지…? ”
“너 도축하는 사람. ”
“날 방해햐지 마라! 방해한다면 네녀석 먼저 죽이겠다… ”
“말이 통할 것 같았으면 이렇게 난장판을 만들지는 않았겠구만… 저녀석 몸애 생채기 나면 안되겠지? ”
“아마도요. ”
“뭐… 좋아, 그럼 죽지 않을 정도로만. ”

파이로는 들고 있던 가윗날을 휘둘렀다. 지훈은 그 가윗날을 식칼 한 자루로 막고 힘으로 누르고 있었지만, 거대한 가윗날에는 역부족이었는지 이내 힘에서 눌리고 말았다.

“어차피 안에서 옷장으로 막아둬서 지금 구조하러 들어갈 수는 없어. 우선 이 짐승부터 끌어내고 생각해보자고. ”
“크르르- 누구 맘대로 나를 끌어내? ”
“시끄럽네요- 뇌격부! ”

부적이 빛나는가 싶더니 한 줄기 번개가 지훈의 몸에 맞았다. 그러자 지훈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고, 이 틈에 파이로는 날 등으로 지훈의 손을 쳐 칼을 떨어트렸다. 피범벅이었던 식칼이 떨어지면서 질퍽거리는 소리와 금속음이 동시에 들렸다.

“일단 무기를 떼어놓는데는 성공… 이제 몸에서 저 녀석을 끌어내는 일만 남았군. ”
“그러네요… 파이로 씨, 그냥 혼불 쓰면 안 돼요? ”
“지금은 인간의 몸이기때문에 영력을 회복하거든. 저 녀석을 조금이라도 끌어낸 다음에 완전히 전소시킨다. ”
“알겠습니다. 뇌격부! ”

미기야가 다시 한번 번개를 쐈지만, 이번에는 지훈을 맞히지 못 하고 문을 맞췄다. 문 가운데에 그을음이 보이자, 이떄다 싶었는지 지훈이 문으로 달려들려던 찰나…

“이 몸에게 걸린 이상, 네녀석이 빙의하는 시간도 끝이다. ”

파이로는 문으로 달려드는 지훈에게 돌진해 날 등으로 지훈의 배를 가격했다. 그 반동으로 지훈이 튕겨나가 벽에 부딪히자, 지훈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보였다.

“좀만 더 하면 나올 것도 같은데, 여기서 더 하면 저 인간이 죽겠는데? ”
“그럼 어쩌자는거예요… ”
“안 죽이고 빼야지. ”
“…… ”

참 당연한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시네요, 미기야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지훈을 죽여버리면 간단한 일이었겠지만, 지금 이건 의뢰다. 그렇기때문에 지훈을 죽이지 않으면서 그 안에 깃든 악령만 꺼내는 게 급선무였다.

밖에서 지훈을 걱정하고 있을 지혜 생각을 하니, 더더욱 저 악령을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원한이 있는가보다도 일단 지금은, 하등 상관도 없는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게 문제였다.

“어이. ”
“네. ”
“저거 발 좀 묶어. ”
“네? ”
“발을 묶으라고. 저항도 못 하게 수족을 완전히 묶어버려. ”
“아, 네. ”

곧이어 두 줄기의 번개가 나오더니 지훈을 완전히 포박하자, 지훈은 번개를 풀려고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번개는 워낙 단단하게 묶여서 풀리지 않았다.

“아까 튀어나온 부분을 보니, 이게 머리인 것 같은데… ”

그리고 파이로는 지훈의 등을 한쪽 발로 밟고, 목 부분에 손을 뻗어 무언가를 꺼냈다. 그녀의 손을 따라 까만 무언가가 스멀스멀 나왔다.

“매… 맨손으로 꺼내다니… ”
“머리를 정확히 잡고 꺼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안 하는데… 귀찮게 됐어. …하등 상관 없는 인간에게 해코지를 한 녀석은, 벌을 받아야겠지? 벌로서 그 혼을 완전히 전소시켜주지. ”
“히이익- ”
“혼불. ”

파이로의 손에서 푸른 불꽃이 일었다. 그리고 그 불꽃은 손을 통해 까만 무언가로 옮겨간 다음, 지훈의 전신을 태웠다. 불꽃은 한참동안 지훈을 태우더니 저절로 사라졌다.

“끝…난건가요? ”
“일단 녀석에게 붙어있던 악령은 태워버렸지만, 근원을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겠지… ”
“그렇네요… ”

미기야는 지훈의 부모님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지혜는 두 사람이 무사한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곧이어 파이로가 쓰러진 지훈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지훈아! ”
“아직 기절한 상태입니다. 안정을 찾게 해 주세요.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세 분은, 개가 없었으면 벌써 죽었을거예요. ”

사무실로 돌아온 네 사람은 잠깐 쉰 다음, 주소에 적힌 집으로 찾아갔다. 여전히 그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꽤 이질적인 초가집이었다.

“하아… 이건 어떻게 혼불로 전소가 안되나요… ”
“나도 이것까지는 무리야.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하지… 금줄을 치는거야. ”
“금줄을요…? ”
“응. 대신,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못 나가게 거꾸로 쳐야겠지만… 이건 우리 선에서는 해결이 안 되는 것 같으니, 돌아가자. ”
“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