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사람들은 엽기 살인마 이야기로 시끌시끌했다.
엽기 살인마라는 이명이 붙은 이유는 살해한 방식 때문이 아니라, 살해 동기때문에 붙었다. 그녀가 자신의 직계 가족을 살해한 이유는, 어느 누구도 변호할 수 없었다. 내로라 하는 로펌에서도 변호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이유였다. 그리고 실제로, 변호인들은 그녀를 변호하길 거부했다.
그녀가 자신의 두 양친을 살해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오빠와 이어지기 위해서였다.
물론 배다른 오빠가 아니라, 부모가 같은 친 남매였다.
“이쯤 되면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은 쓰지도 못 하겠군. 인간만도 못 한 짐승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지 않아? “
“그도 그러하군. “
“그 마물 놈은 차라리 양반이었지…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녀석이긴 했지만. “
그리고 그 날 오후, 검은 머리에 군데군데 자줏빛이 섞인 여자가 찾아왔다. 전에 자살 시도를 했던 라이트닝 보이즈의 광현을 사무실로 이끌었던 그녀였다. 그녀의 뒤에는 아나키나시스도 있었다. 파이로는 그녀의 뒤에 있는 아나키나시스를 보자마자 짜증이 솟구칠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서오세…요… 라고 해야 하는거냐? “
“저도 손님이니까요? “
“저 마물 놈은 또 어디서 만난거야… “
“어머, 그렇게 부르는 건 실례라구요. “
“그래서, 무슨 일이야? “
“파이로 씨도 뉴스 보셨죠? “
“어, 봤지. “
“그럼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크리멘 씨를 찾고 있습니다. “
“나도 걔 못 본지 오래 됐어. 일단 애시 통해서 연락은 해 볼게. …그 녀석이랑 관련 있는거냐? “
“네. 제 굴레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말이죠. “
아나키나시스는 애시에게 연락을 해 크리멘이 어디에 있는 지 알아냈다. 파이로가 크리멘에게 사정을 설명했지만, 크리멘은 오히려 그 정도의 죄악을 저지른 자는 자신이 먹었다간 배탈이 날 것 같다며 거절했다. 생전 처음 보는 일인지 파이로는 당황했다.
“크리멘이… 거절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심각한거냐…? “
“뭐라고 하면서 거절하는데요? “
“일단… 저지른 죄가 원죄급으로 짬뽕이라 이 정도면 어비스로 가도 안될 것 같다는데… 일단 살인을 했는데 그것도 존속살인이지, 거기다가 살해 동기도 근친상간이지. “
“죄가 너무 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
“그럼, 아포칼립스에서는 어떨까요? 거기도 안 된다면, 판데모니움은? “
“판데…모니움? “
“우리같은 마물들이 사는 곳이라고 보면 돼요. 아포칼립스는 어비스 밑바닥이지만, 판데모니움은 그곳과는 별개로 취급되는 곳이예요. 그 곳은 우리와 같은 마물들이 득실거리고, 마물들은 그 곳에 발을 들인 인간들을 아주 좋아하죠. 뭐,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
“아포칼립스에서 받아주길 바래야겠군. “
아나키나시스가 잠시 바닥에 손을 올리자, 그림자가 마치 웅덩이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온 것은 까만 머리에 소용돌이치는 보랏빛 눈을 가진 여자였다.
“지상은 참 눈부시군… 뭐야, 무슨 일이냐. “
“아포칼립스 씨, 크리멘이 먹어치우기를 거절한 죄인이 있는데 혹시 그 쪽에 자리 있나요? “
“크리멘이 먹어치우길 거절한 죄인이 있다고? 우리쪽에 오려면 거의 대량학살 정도는 해야 하겠지만… 뭐, 크리멘이 먹어치우길 거절했다니 뭐가 문제인가 보자. “
“후훗, 역시 아포칼립스 씨.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친오빠를 사랑해서 부모님을 살해한 여자가 있거든요. 운 씨의 능력으로도 어떻게 안 된다고 하고, 크리멘은 그런 인간같은 거, 먹었다간 배탈이 날 것 같대요. “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오빠를 사랑해서 친부모를 죽였다고? 그렇다고 남매의 연이 없어지나? 요즘 어비스가 시끄럽다 했더니, 인간들이 막장이군… 그런 녀석들은 아포칼립스에 와서도 정신 못 차릴 것 같은데? 판데모니움으로 보내버려. 니네들이 지지든 볶든 맘대로 해. “
“음… 결국 거절인가요. “
아포칼립스는 아나키나시스에게 인사를 건네고 가 버렸다.
“판데모니움은 어떤 곳이냐…? “
“마물들의 주거지죠. 이클립스 씨도 계실거예요. 아마 죄에 걸맞는 저주를 걸어줄 지도 모르겠네요. “
판데모니움이라는 곳은 들어본 적 없었지만, 마물들의 주거지라고 하니 파이로는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녀석만 해도 심심하다고 사람 죽이는 녀석인데 다른 마물들은 또 얼마나 가관일까. 산 채로 사람을 잡아먹거나 실험을 하지는 않겠지?
“우리는 그 곳에 발을 들인 인간들을 해치지는 않아요. 다만 우리 안의 동물이 된 기분이 어떤 건지, 피부로 느끼게 될 거예요. “
아나키나시스는 그런 파이로의 생각을 읽은 듯 했다.
“우리 안의 동물이 된 기분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
“말 그대로예요. 인간들이 동물원에 가면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바라보듯, 우리는 판데모니움에 발을 들인 인간들을 한 곳에 가둬두고 구경하는거죠. 뭐… 처우는 그래도 죽을 정도는 아니예요. 저주에 걸리자마자 죽어버리면 효과가 없으니까요? “
“그게 더 무섭다… “
“아무튼, 판데모니움으로 데려가는 걸로 결론이 났으니 이클립스 씨를 만나러 가야겠어요. 바이바이~ “
아나키나시스는 운과 함께 돌아갔다. 두 사람이 돌아가고 난 후, 파이로는 그 떄의 일을 생각했다. 며칠 전, 한 집에 살던 부부가 살해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일을. 그 때 사무실로 찾아왔던 것은 가해자로 밝혀졌던 여자의 친오빠였다.
“걘… 정말 미쳤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어요… “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웬만해선 눈썹 하나 까딱 않는 파이로와 애시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여동생이, 그것도 부모가 같은 여동생이 자신을 남자로 느끼고 있다니. 그 자체로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그의 여자친구를 질투해 그의 전화기로 폭언이나 헤어지자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단 둘이 있을 때면 보란 듯이 야한 옷을 입고 그를 유혹하기도 했다. 그럴깨마다 그는 치가 떨렸다.
그는 결국 집을 나가기로 했다. 집 주소는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고, 이사 날짜도 말하지 않은 채였다. 이사를 가자마자 전화번호도, 이름도 바꿨다. 혹시나 해서 부모와는 연락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촌과 연락한 게 화근이었던 걸까? 사촌과 연락하는 걸 우연히 본 건지, 아니면 사촌이 말한건지 그녀는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문이 닳도록 두드리고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통에 그는 경찰을 불러야만 했다. 가족에게 알린 것도 그 때였다.
가족에게 알리기까지 수도 없이 생각했다. 집에서 도망치자, 그러면 모든 게 끝나겠지. 그렇게 생각했고 실제로도 한동안은 그랬다. 하지만 그 평화는 금방 깨져버렸다. 그는 다시 이삿짐을 싸야 했고, 이번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이사를 가 버렸다. 돈이 있고 언어가 된다면 해외로 나가서 살고 싶을 정도로, 그녀는 지독하게 따라붙었다.
그 뒤로 듣게 된 소식이 부모의 사망 소식이 될 줄, 그는 전혀 몰랐다. 그조차 친척들 중 입이 무거워서 가끔 연락하고 지내던 사촌 형에게서 들은 얘기였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를 죽인 것은 그의 여동생이자 그녀가 도망치고자 했던 대상이었다.
“정말… 소름끼쳤어요. 제가 어딜 가든 따라다니려고 했고… 걔 때문에 여자친구랑 수도 없이 싸우고, 헤어지기까지 했어요. 그랬는데…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
“네녀석이 장남이니까. 장례식장에는 나타날거고… 장례식을 하기 위해 부모를 죽인 모양이군… 역겨운 인간이야, 정말. “
사건 현장에 간 라우드는 영상을 확인하기도 전에 구토를 했다.
“라우드 씨, 괜찮아요? “
“이건… 인간이 맨정신으로 볼 수준이 아니예요… 우욱- “
“미기야, 이 녀석 데리고 여기서 기다려. 내가 간다. “
사건 현장을 보러 갔던 파이로 역시 불쾌함을 느낄 정도였다. 수사대 내에서는 그나마 비위가 좋은 편이었던 그녀조차 제대로 보지 못 할 정도로 현장은 처참했다. 사람이 이렇게 너덜너덜하게 죽을 수가 있나, 싶을 정보로 시신이 처참해서 부검의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현장에는, 범인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태연한 표정으로. 파이로는 그녀를 보자마자 범인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을 잃은 슬픔에 아주 정신을 놓았거나. 그리고, 그녀의 짐작대로 그녀가 범인이라는 걸 알자마자 파이로는 그녀의 뺨을 한 대 올려붙였다. 몇 대 더 올려붙이려는 걸, 정훈과 미기야가 말려서 간신히 참았다.
“네놈은 미쳤구나. 정말 미친 게 틀림없지. 이 썩어빠진 세상이라고 할지언정 네놈에게 부여되는 형량마저 줄이진 못 할거다. 뭐? 이렇게 하면 오빠를 볼 수 있으니까? 네녀석은 살아있는 그 자체가 아깝구나. 짐승도 네녀석처럼은 절대 못 할거다. 아니, 그 마물 놈도 너처럼은 못 하겠지. “
“오빠만 볼 수 있다면… 난 뭐든지 하겠어… 이제, 볼 수 있는거야…? “
“내가 그렇겐 못 하겠는데, 어쩌지? 형사 양반, 장례식이 시작되기 전에 이 녀석은 얼른 쳐 넣어버려. 다시는 자기 오빠랑 못 만나게. 네녀석은 이제 죽어서도 절대, 못 만날거다. 용서? 꿈도 꾸지 마. 천륜을 스스로 저버린 것도 모자라서 낳아준 부모를 살해한데다가 그 이유가 해서는 안 될 사랑때문이야? 네놈은 살아있는 것 자체로 죄악이야. 알아? “
정훈이 그녀를 차에 태우고 떠났다. 미기야와 라우드, 그리고 파이로는 경찰차가 현장을 떠난 후 남겨진 남자에게 갔다. 그리고 그녀가 체포되었으며 장례식이 시작되더라도 못 나오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 녀석은 미쳤어. 하지만, 다시는 못 만날거다. 다시는. …빠져나오기라도 한다면, 그 때는 정말로 이승에서 다시 못 만나게 해 주지. “
“…… “
파이로는 이를 뿌득, 갈았다.
“아직 사무실에 계셨어요? “
“아아, 응. “
어느덧 시간은 오후 다섯시 반이었다. 평소같았으면 일을 해야 할 시간이지만, 오늘은 의뢰도 없고 해서 미기야는 일찍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사무실에 거주하는 파이로와 달리, 미기야는 지낼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이, 미기야. “
“네? “
“판데모니움이라고 들어봤냐? “
“판데모니움이요? “
“어. “
“처음 듣는데요… 그게 뭔가요? “
“마물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라는데? 그 재미로 사람 죽이는 녀석도 그 곳에서 여기로 넘어온 모양이고… “
“그런가요… 그런데 그건 왜요? “
“아까 그 마물 녀석이 왔다 갔거든. 그 미친 녀석, 크리멘에게 먹일 요량이었지만 크리멘도 거절했어. 먹었다간 배탈 날 것 같은 녀석이라고… 어비스 밑바닥의 주인도 거절해서 갈 곳이라곤 판데모니움밖에 없다더군. “
“…… “
“마물들의 본거지, 그리고 이클립스의 거주지… 하지만 자세한 건 몰라. 그 곳에 떨어지면 우리 안의 동물이 느끼는 심정을 피부로 느끼면서, 죄에 맞는 저주를 받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밖에… “
판데모니움, 아나키나시스의 본거지이가 마물들의 주거지. 그리고 이클립스가 있는 곳. 아나키나시스는 교도소에 갇힌 그녀를, 오빠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말로 꾀어내 그 곳으로 데려갔다. 판데모니움에 도착하자마자 그녀가 본 것은, 오빠를 꼭 닮은 마물이었다.
“오… 오빠? “
“아나키나시스, 오랜만이네. 이 인간은 뭐야? “
“엄청난 죄를 저질렀지 뭐예요? 이클립스 씨는 계세요? “
“저기. “
아나키나시스는 그녀를 데리고 이클립스에게 가, 그녀가 저지른 죄를 설명했다. 친오빠를 사랑해서 친부모를 죽인 죄, 그래서 크리멘도 아포칼립스도 거절했다는 것까지. 주변은 그녀가 지내던 곳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그 곳에는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많았다.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부터 인간이 아닌 것까지…
“요즘 인간들은 정말 막장이군. “
“운 씨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해요. 아포칼립스 씨도 판데모니움에 데려가서 지지든 볶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고 말이죠… “
“뭐, 그 정도 중죄라면… 원죄를 두 개나 저질렀으니 당연한 결과지. “
그녀는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이 곳에는, 자신이 부모를 죽여가면서까지 만나려고 했던 오빠는 없다, 속았구나.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클립스는 그녀에게 저주를 내렸고, 판데모니움의 사슬은 그녀의 양 손과 다리에 채워졌다. 아나키나시스는 그녀를 오빠를 닮은 마물에게 데려갔다.
“이클립스 씨는 만난거야? “
“그럼요~ 우리로 데려가라고 하던데요? 그것도 이 인간이 그렇게 좋아해 마지 않던… 죄의 계기가 된 오빠와 닮은 당신이. “
“쳇. 간수장 일은 재미없는데… “
“대신, 이 녀석이 죽을떄까진 당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얘기도 있었지요. 당신의 부탁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들어주게끔 저주를 걸었으니까요. “
“그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