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람들은 누군가 내 대신 일을 해 줬으면 하고 바라곤 한다. 그리고 그 바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괴이, 그것은 ‘치환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아~ 회사 가기 싫다… 누가 내 대신 일 좀 해주면 난 펑펑 놀텐데… “
“아서라 아서. 지금 일하는 걸 감사히 생각해. 너, 치환자 얘기 못 들었어? “
“치환자? “
“그래. 그런 말 계속 하면, 치환자가 나타나서 니 대신 일을 해 주는거야. “
“오, 그럼 좋은 거 아냐? “
“거기서 끝이 아니야. 치환자가 너를 대신해 일을 하면 할 수록, 너는 네가 아니게 되는 거야. “
“에이… 그런 게 어딨어. “
회사일이 힘들고 지쳐서, 그녀는 누군가 하루정도 자기 일을 대신 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일이 너무 고되지만 아무도 덜어주지 않았다. 차라리 일을 늘려주지 않는 걸 검사해야 할 판이었으니, 말 다 했지. 그녀는 매일 오전에 출근해서 밤에 집으로 가는 게 일상이었다.
“휴… 진짜 누가 내 대신 일 좀 해줬으면 좋겠다… “
오늘도 넋두리를 늘어놓은 그녀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그녀는 어쩐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눈을 떴고, 이내 지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겁지겁 아침을 먹고 준비해 사무실로 가던 그녀는, 옆 부서에서 일하던 친구와 마주쳤다.
“어, 너 어디 갔다 오는거야? “
“아니, 냐 지금 출근했는데? “
“무슨 말이야, 너 아까 출근해서 보고서 준비한다며. “
“그게 무슨 말이야, 난 지금 출근했는데? “
분명 그녀는 방금 출근했는데, 친구는 사무실에서 그녀를 봤다고 했다. 의아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사무실로 들어가 보니, 사무실에는 그녀와 똑같은 형태를 한 무언가가 보였다. 형태는 그녀와 닮았지만 무언가 투명한 슬라임같기도 한 무언가는 그녀 대신 일을 하고 있었다.
‘저게 말로만 듣던… 치환자? ‘
이 참에 잘 됐다, 그녀는 치환자가 자기 대신 출근했으니 하루정도는 그냥 쉬기로 했다. 어차피 지각한 건 아무도 모를 테니, 괜찮겠지.
그렇게 며칠동안, 그녀를 닮은 투명한 것이 그녀 대신 일을 하고 있었다. 매일 오전에 출근해서 밤 늦게 들어오는 게 일상이었지만,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반복하고 있었다. 투명한 슬라임같던 몸은 점점 무언가로 채워져 가는 듯 했다. 그리고…
“어라…? “
반대로, 그녀의 몸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그녀와 똑같이 생긴 무언가를 만났을 때 봤던 모습처럼, 서서히 온 몸이 투명해져 가고 있었다. 거기다가 사람들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과 닮은 그것을 자신인 듯 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제서야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그녀를 인식하지 못 했다.
“치환자에게 씌였군. 너, 온 몸이 투명해져가고 있어. “
그런 그녀를 발견한 것은 키츠네였다. 괴이사냥꾼인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치환자에 씌여서 치환자로 변해가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그녀를 데리고 사무실로 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인 지 물었다.
“그게 저를 대신해서 일을 해 주고 있어요. 제가 바랬기 때문이예요… 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
“치환자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대신하면서 모습이 변해. …그 녀석이 왜 치환자라고 불리는건지 알아? 그 녀석은 무언가로 단순히 변신해 가는 게 아니야. 존재 자체가 변하는거지. 그 녀석이 무언가를 대신하면서 무언가로 번모해갈 때, 원래 무언가였던 것은 존재를 잃고 치환자가 되는거지. 너, 그 정도면 꽤 오랫 동안 치환자가 대체한 모양인데. “
“대체… 맞아, 며칠 째 저를 대신해서 회사에 출근해서… “
“그래서 변이 속도가 이렇게 빨랐던거로군. “
“네? “
“너는 회사에 가면 단순히 일만 하니? 그건 아니잖아. 일하면서 커뮤니케이션도 하고, 같이 식사도 하고, 교통수단도 이용하고… 인간들이 망각하고 있는 건데, 인간들은 일상을 보내는 중에도 많은 일을 해. 그저 모를 뿐이야. 그리고 치환자가 일상의 일 하나하나를 너를 대신해서 하면서 빠른 속도로 대체되고 있는 거지. 너, 네 이름은 기억하니? “
“…… “
그녀는 어느 샌가,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나는 누구였더라,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더라.
“저, 저는 이제 어쩌죠? “
“일기든 뭐든, 너에 대한 기록들은 남아있을 거야. 그 기록들을 찾아서 적어도 네 이름 석 자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면, 변이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 하지만 그 치환자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 해. 괴이는 누군가의 바람에 의해 생겨나는 건데, 누군가 자기를 대신해 먼가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인간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없애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생겨날거야. “
“이름… 이름을 기억하면… “
“SNS라던가, 하고 있지 않아? 거기엔 네 본명이 있을 텐데. “
그녀는 핸드폰을 켜 SNS에 들어갔다. 실명으로 가입할 수 있는 거니까, 분명 이름이 있을 거야. 키츠네의 말대로 그 곳에는 그녀의 이름이 있었다. 한유라, 그녀는 그녀의 이름을 되뇌여본다.
“그 이름을 잊어버리면 변이 속도가 빨라질거야. 적어도 그 이름만큼은 잊어버리면 안 돼, 이름을 잊어버린다는 건 치환자에게 존재를 뺏긴다는 거거든. 그리고 뭐든 좋으니 네가 일상적으로 하던 일을 해. “
“하지만, 이런 몸으로는 무리예요. 사람들이 저를 인식하지 못 하는데… “
“꼭 누군가와 소통하는 일이 아니어도 좋아. 청소건 설거지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변이 속도를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그 녀석은 네가 처음으로 지각했을 때 네 소원을 듣고 나타나서 타겟을 너로 정한 것 뿐이야. 그런 바람을 갖는 인간은 맞지만 네가 근처에 있었고 강하게 바랐기 때문에 널 타겟으로 한 거지. “
“…알겠습니다. “
점점 투명해져 가는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집에 돌아와서 어질러진 집안을 청소하기로 했다. 청소나 설거지, 쓰레기 버리기 같은 집안일이라면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그녀는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봉투를 정리했다. 투명해져 가던 몸이 조금이나마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이나마… 치환을 멈춘건가… “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자잘한 것이라도 좋으니 뭐든 해라.
존재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평소에 하지 않던 청소와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리고 투명해져 가던 몸은 조금씩이나마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조금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아. 이대로만 하면… ‘
며칠 후, 그녀는 키츠네를 다시 찾아갔다. 몸은 어느 정도 되돌아 온 상태였지만, 아직 배꼽 아래로는 투명한 상태였다.
“오, 꽤 되돌렸네. “
“자잘한 일들을 했더니, 점점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
“좋아, 좋아.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돼. 그러다가 그 녀석이 틈을 보일 떄를 노리면 되는거야. 그 녀석이 틈을 보일 때 네가 그 녀석 대신 출근해서 일을 하면, 너라는 존재는 치환되지 않고 계속 너로 남아있을 수 있어. “
결국 그녀는 다시 또 지루한 회사 일을 해야만 했다.
“직장 일이 많이 힘들긴 하겠지.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해. 그건 너 아니면 어느 누구도 못 해. 정 힘들면 다른 조건 좋은 회사를 찾아서 가면 되는거야. 적어도 네 존재 정도는 지켜야지. “
“그… 그런가요… “
“인간들은 자기들이 정해 둔 법조차 지키질 않는단 말이지… 어떻게든 쥐어짜려고 들어. 정면으로 부딪히거나 니가 떠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
“…… “
키츠네는 그녀가 우려하는 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애초에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휴게 시간도, 근무 시간도 계약서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서 매번 도시락을 싸오거나 간편식을 먹어야 했고, 퇴근은 툭하면 밤 8시, 9시였다. 야근을 해도 댓가는 없었다.
“치환자가 널 침식하게 두지 마. 대처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
그녀는 집에 돌아와서, 퇴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녀석이 일을 할 동안, 인수인계 준비를 해야지. 하지만 어디까지 진전되었는지 그녀는 알 길이 없었다. 어떻게 할 지 고민하던 끝에, 그녀는 회사 메일함에 접속하기로 했다. 그 곳에는 그녀를 대신해 치환자가 주고받은 메일들이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토대로 일이 어디까지 진행된 건지 알 수 있었다. 클라우드에 올라 온 파일들과 메일들을 토대로 그녀는 인수인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딴 직장, 이제는 못 다니겠어. 너무 힘드니까… 그만 할래. 그만 다닐거야. 네가 날 대신해 줄 이유는 전혀 없어. “
몇 주동안 그렇게 진행하던 그녀는, 마침내 온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온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자마자 그녀가 한 것은, 지금까지 존재를 지키기 위해 집에서 준비한 것을 토대 인수인계를 진행하고 퇴사하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투명해진 치환자가 있었다.
“그동안 날 대신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 나, 회사 그만 뒀거든. 이제 다른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러 가도 돼. “
“…… 어쨰서… “
“너무 힘들었어. 너도 그렇지 않았니? 아침에 나가서 밤에 돌아오는데다가 휴게시간도 없이… “
“…… 맞아. 힘들었어. “
“그래서 그만 두기로 했어. 다른 직장을 찾아갈거야. 며칠이나마 날 대신해줘서 고마워. 대신 너에게는 이름을 하나 지어줄게. “
“…이름? “
“그래, 그렇게 하면 넌 더 이상 누군가의 존재를 뺏지 않아도 되는거잖아. 이름이 생기는 거니까… 이름을 불러주면 되는거야. “
그녀는 치환자에게 ‘도펠’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치환자는 만족한 듯, 그녀를 떠났다.
며칠 후, 유라는 퇴사 후 오랜만에 친구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회사는 아직도 그래? “
“응… 너 그만두고 나서 사람들도 다들 그만둘 거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쥐어짜는 거 멈추더라. “
“그럴 줄 알았지… 몇 번이나 건의했는데 씨알도 안 먹히더만. “
“그러니까 말이야. “
무심코 창 밖을 본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분명 그녀의 친구는 그녀와 같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밖에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어떻게 한 공간에 닮은 사람이 둘이나 있을 수 있지?
“유라야, 너 왜 그래? “
“저, 저, 저기… “
친구를 닮은 무언가는 사라졌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
“싱겁긴… 모처럼 만났는데 밥이라도 먹자, 내가 살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