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7. STALKER

괴담수사대는 G동의 어느 주택가에 나와있었다. 아침부터 처참한 사건 현장을 본 라우드는 영상을 확인하다가 거의 기절할 정도였고, 현은 그런 라우드를 데리고 잠시 사건 현장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였다. 미기야는 주변에서 탐문수사를 하고 있었고, 파이로는 현장에 보이지 않았다. 백희가 든 거울을 찾느라고 시간이 좀 걸린 탓이었다.

“현장 진짜 개판이네. ”
“파이로 씨! ”
“어, 왔냐… ”
“괜찮으십니까? 상태가 좋지 않아보이십니다. ”
“얘, 가끔 처참한 거 보면 이래. 사이코메트리의 부작용이라고 해두지, 뭐… 현장 난리도 아니었나보네? ”
“어… ”
“수사는 끝났습니까? ”
“오너가 아마 탐문수사 하고 있을거예요… ”

파이로와 백희는 현과 라우드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 현장으로 향했다. 평화로운 주택가, 그 중에서도 한 주택 앞에 출입 금지 팻말과 함께 노란색과 검정색 줄무늬가 교대로 있는 테이프가 있었다. 검정색 대문이 있는, 평범해 보이는 집이었지만 바닥에는 어째서인지 피가 흥건했다.

“이 정도면 조직적으로 사람 죽여서 피 뽑은 거 아니냐… ”
“처참하군요. ”

파이로와 백희도 대문 틈새로 비어져나온 피를 보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테이프를 제끼고 안으로 들어가보니, 사람이 죽어있었던 모양대로 하얀 선이 그려져 있었다. 교통사고 현장에도 그려져 있는, 사람 모양의 선이었다. 하지만 집 마당에 그려진 선은 온전히 사람의 모양을 한 것이 아니라, 크게 이어보면 사람 모양이 나올법한 정도로 조각나있었다.

“라우드가 저렇게 상태 안 좋은 이유도 짐작은 가네. ”
“아, 파이로씨! ”
“여. 탐문 수사는 다 끝난거냐? ”
“네. 일단 형사님께 얼추 보고도 해 뒀고… 저희 지금 점심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
“뭐, 나도 전말은 들어야 하니 밥 먹으러 가자. 근데 라우드 상태가 저래서 밥 먹을 수는 있겠어? ”
“라우드 씨가요? ”
“어, 상태가 말이 아니던데. 거의 죽어가더라. ”

탐문 수사를 마치고 담당 형사와 얘기를 나눈 미기야는, 현장 안쪽을 둘러보던 파이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점심이나 먹으면서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려던 미기야는, 라우드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에 라우드를 보러 갔고 파이로와 백희는 현장을 얼추 둘러본 다음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라우드의 상태가 심각해보였는지, 결국 점심 메뉴는 죽집으로 정했다. 각자 먹을 죽을 시키고 음식이 나올 동안, 미기야는 사건의 개요와 탐문수사 결과를 얘기했다.

“피해자는 대략 20대 중후반정도 되는 남성이예요. 현장을 둘러본 결과, 사람이 했다고는 볼 수 없는 수준이어서 저희가 이 쪽으로 오게 된거고요. 라우드 씨, 영상은 어떻게 됐나요? 상태가 좋지 않았던 걸 보면… 뭔가 확실히 있었나요? ”
“일단… 범인이 사람이 아니라는 건 확실해요. 피해자의 집 마당에 놓여있던 인형에서 뭔가가 나와서 피해자를 죽이고, 인형을 들고 사라지는 걸 확인했어요. 그것도 매우 처참하게 죽이고… 두 번은 못 볼 정도로 처참했어요. ”
“상태를 보아하니, 그런 듯 하군요. ”
“그나저나… 인형? 현장에 인형이 있었나? ”
“들고 사라졌으니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인형이 없었던거겠지. 나도 영상으로 보고 알았어. ”
“주변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
“사람 좋고 건실한 청년이었는데 갑자기 죽었다고만 하더라고요. 오전중에는 그냥 피해자에 대한 것만 물어봤던 터라, 인형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라우드 씨는 오늘 일찍 들어가시는 게 나을 것 같고… 파이로씨는 백희씨와 함께 집 안을 확인해주세요. 현, 너는 나랑 같이 움직이자. ”
“네. ”

점심을 먹고, 파이로와 백희는 집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바깥이 피투성이 참혹한 현장이었던 것과 달리, 집 안은 깔끔했다. 부엌에는 아침에 먹으려고 전날 해동해 둔 모양인지 녹아버린 냉동 볶음밥이 있었고, 그 옆에는 빈 맥주캔이 하나 놓여있었다. 이렇다 할 특이사항은 없었는지 방을 둘러보기 위해 들어갔던 백희가, 뭔가 역한 것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짓기 전까지, 그 집은 평범했다.

“죽은 사람, 내실은 그리 좋지 못 한 사람이었군요. 구역질이 날 것 같습니다. ”
“그게 무슨 말… 와, 진짜 토할 것 같다. ”

방 문을 열자, 동물 시체들이 놓여있었다. 구더기가 들끓고, 일부는 이미 파리가 된 걸로 미루어볼 때 죽은 지 오래 된 모양이었다. 길고양이부터 비둘기, 개의 시체까지 방 안에 놓여있었고 파리떼와 바퀴벌레가 방 안에서 우글거리고 있었다.

방 안에 오래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는지, 파이로와 백희는 방 주인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만한 물건 몇 가지를 가지고 나왔다. 전공서적, 그리고 공책, 다이어리와 누군가의 사진이었다. 파이로는 라우드에게 연락해 방 안에서 본 것들을 설명하고, 정확하지 않아도 좋으니 영상에서 봤던 인형의 형태를 그려달라고 했다.

“동물 시체가 있었다고? ”
“어, 심지어 구더기가 이미 파리가 돼서 말도 아니야. 집 주인양반, 고생 좀 하게 생겼다. ”
“허… 안쪽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무튼 알았어. ”

파이로는 밖으로 나와 형사에게 방 안에서 본 것에 대해 설명하고, 다이어리를 펼쳐 읽고 있었다. 첫 장은 평범하게 일정이나 일기를 적어두었지만, 뒤로 갈 수록 페이지 내용이 뭔가 심상치 않았는지 파이로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급기야는 중간쯤에서 다이어리를 접어버리더니, 땅바닥에 내동댕이쳐버렸다.

“역겨운 놈. ”
“어찌 그러십니까? ”
“너도 읽어볼려? 아니다… 멘탈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진짜 읽지는 말고… 저 정도면 거의 기어오는 혼돈이 처리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야. 아주 역겨워… ”
“…… ”

백희도 파이로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던 다이어리를 읽어보곤 사색이 되었다. 그녀는 다이어리의 25%도 채 읽지 못하고, 다이어리를 근처에 있던 형사에게 넘겨주었다.

“실로 역겨운 인간이 아닐 수 없군요. 동물의 시체를 갖다둔 것 하며… ”
“이 녀석, F 대학교 생명공학과랬지? 일단 F 대학교로 가 보자. ”
“꼭 가셔야겠습니까? ”
“저 녀석을 죽인 것의 정체가 뭔지를 알아내려면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

파이로는 미기야에게 연락해 정보가 될 법한 것들은 형사 편에 맡겨놓았다는 것과, 방 안에서 본 것들을 얘기하고 사무실에는 6시 전에 돌아가겠다는 말과 함께 백희와 F 대학교에 가봐야겠다는 얘기를 전했다. 미기야가 알겠다고 하자, 파이로와 백희는 폴리스 라인을 지나 주택가를 나와, F 대학교로 갔다.

“생명공학과 건물이 저 쪽이었던가… 아, 저기군. ”

생명공학과 건물에 도착한 파이로는 지나가던 학생 하나를 붙잡고, 오준수라는 사람에 대한 것과 다이어리와 함께 발견한 사진 속 여자에 대해 물었다. 지나가던 학생은, 자신은 신입생이라 잘 모른다며 아마 과방에 선배들이 계실테니 거기에 가서 물어봐달라는 말과 함께 과방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파이로는 과방에 찾아가, 괴담수사대라는 것을 밝히고 오준수에 대해 물었고 과방 내 사람들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사색이 되었다.

“준수 걔, 그러고보니 오늘 안나왔죠? ”
“같이 실험수업 듣는 후배가 연락했는데 전화도 안 받더라고 했는데, 설마… ”
“설마가 뭘 뜻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은 자기 자취방 앞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됐어. 범인은 모르는 상태고… 다만 우리가 수사를 하고 있다는 건, 그 녀석을 죽인 게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겠지만. ”
“헌데, 그 이름을 들은 여러분들의 반응이 좋지는 않아보이는군요… 실례지만, 이 여인에 대해서 아시는 바는 있으십니까? 그 남자의 집에서 발견한 사진입니다만. ”

백희가 다이어리와 함께 발견한 사진을 한 남학생에게 건네자, 남학생은 사진 속 여인이 스토킹때문에 휴학중이라고 했다. 스토킹에 대해 백희가 캐묻자, 옆에 있던 여학생도 거들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했다.

일부러 수업을 같이 듣는가 하면, 고백을 거절했음에도 계속 나타나서 여자가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도 못 할 지경이었다는 것과 발신번호 표시 제한으로 문자나 전화를 걸거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는 것, 몰래 찍은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는 것, 집 앞을 찾아와서 서성이더라는 것과 집으로 선물이랍시고 야한 속옷이나 성인용품같은 것들이 도착하기도 했다. 자취방을 옮겨도 어떻게든 알아내 다시 나타나고, 선물을 보냈다.

최근에는 집으로 동물 사체를 보내거나, 몰래 찍은 사진을 인화해 머리나 눈에 볼펜으로 점을 잔뜩 찍거나 찢어낸 다음 보내기도 했다는 것, 그것때문에 여자는 지금 몇년 째 휴학중이라는 것까지. 얼마나 심각했는지 학교 안에서도 항상 친한 남자 후배나 남자 선배가 같이 다녀주었고, 보다못한 남자친구가 경찰을 불러주거나 직접 맞서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 집에서 봤던 동물 사체는… ”
“와… 이거 진짜 생각보다 역겨운 놈이었구만… ”
“준수 선배때문에 그 언니, 진짜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졌었어요… 대면식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진짜 예뻐서 연예인 누구더라… 아무튼 배우 닮은꼴이라고 유명했었는데… ”
“아, 혹시 이렇게 생긴 인형 본 적은 있어? ”
“어, 이 인형… 준수형이 시연이 누나한테 선물로 보낸다고 했던 건데? ”
“선물? ”
“네. 근데 아마 시연이 누나가 버렸을걸요… 그때 한참 준수형때문에 자취방 옮길때라… 인형 크기도 커서 집에 둘 데도 없고, 하필 준수형이 준 거라 찝찝하다고 버린댔어요. ”
“그런가… 알겠어, 협조 고맙다. ”

무언가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가 스토커였다는 것과, 방 안에 가득했던 동물 시체가 잘못된 애정의 대상을 항해 주는 선물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진도 그럴 목적으로 모았던 것을 알게 된 이상 추가로 무언가를 더 조사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스토킹떄문에 힘들었던 여자가 죽이기라도 한 것일까요…? ”
“스토킹때문에 멘탈이 나갔어도, 사람이 사람을 하루만에 그렇게 토막내는 건 불가능해. 아무래도 라우드의 말을 들어보면 그 인형에 뭔가 있었을 법 한데… ”
“인형에 말입니까? ”
“응. 집 마당에 놓여있던 인형에서 무언가가 나와서 피해자… 즉 스토커를 죽였고, 그 뒤 인형은 어딘가로 사라졌어. 일단 현장으로 가서 시계를 써 봐야겠지만, 아마 인형에 주령이 깃들어 있었을수도 있어. 그게 동물의 원혼이건, 아니건… ”

파이로는 백희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와, F 대학교에서 알아낸 것들을 미기야와 현에게 얘기했다.

“피해자가 스토커였다고요? ”
“어. 말 그대로. 정도가 너무 심해서 스토킹 피해자가 휴학중이라더만. ”
“…… ”
“아마 법때문에 경찰선에서도 주기적으로 순찰도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건 없었을거야. 칼부림 나거나 누구 하나 죽어야 움직이지… 아무튼, 그 인형에 깃든 무언가가 범인인 것 같은데 그 인형이 어디로 갔는지를 모른단말이지.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 인형은 없었다며. ”
“저도 라우드 씨가 말씀드리기 전까지 인형이 있었다는 걸 몰랐어요. ”
“주변에서 인형에 대해 따로 한 말은 없어? ”
“이웃집 꼬마가 달라고 했었는데, 평소에 사근사근하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해서 거절하길래 애가 울었대요. 그것 말고는 딱히… ”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스토커였다는 것과,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것 때문에 사건은 화제였다.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악질 스토커였다… 그 시점에서 난 동정은 하지 않으련다. 걔는 거기서 더 나갔으면 무간지옥 급행열차를 탔거나 기어오는 혼돈의 먹잇감이 되었을테니… ”
“그거랑 별개로, 범인의 정체나 행방도 묘연해서 아마 미제 사건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
“범인은 아마 크로노스의 시계를 쓰면 어디로 갔는지 방향 정도는 알 수 있겠지. 문제는 행방을 알아내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 곳에 있을지겠지만. 인형 안에 깃든 무언가가 인형을 들고 움직인다… 이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거든. ”
“특이케이스긴 하네요. 보통 물건에 깃든 무언가가 물건을 옮기지는 못 할텐데… “